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

김선영

브랜드 라이킷 lik-it | 발행일 2019년 8월 9일 | ISBN 9791189982225

사양 변형판 128x200 · 232쪽 | 가격 13,000원

분야 시/에세이

수상/선정 2019 문학나눔 선정 우수 문학도서

책소개

우리는 과연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그러나 나를 잃지 않는 삶은 있다

 

암 환자의 딸이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상실과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

하루에도 몇 번씩 시한부의 삶을 선고하는 종양내과 의사 김선영이 죽음과 삶, 그 경계에서 바라본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언젠가 맞이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에세이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이 출간되었다. 죽음과 질병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는 ‘내가 암에 걸린다면,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가정을 불운을 불러오는 금기로 여겨왔다. 그러나 통계상 사망원인 1위가 암이고,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언젠가 우리는 모두 결국 죽게 되어 있다. 죽음이 앗아갈 것을 떠올리며 두려워만 하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나의 죽음, 혹은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서 송두리째 삶이 뒤흔들릴 것이다. 많은 환자가 병에 대한 불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남은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껴온 저자는, 자신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어떻게 죽음을 인정하고 겪어낼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 책은 언제일지 모르는 끝까지 꽉 찬 삶을 살고, 마지막까지 소중한 것을 놓지 않으면 죽음은 그리 허무한 것만은 아님을, 삶은 그렇게 끝이 나버리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컨베이어처럼 돌아가는 빡빡한 대형 병원의 잔혹한 시스템에 젖어 죽음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더 이상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를 포기하는 의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렇다고 환자의 슬픔에 너무 동화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의사도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온 14년 차 내과 전문의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병원 내부의 풍경과 더불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암, 항암 치료, 대체 요법에 엄밀히 접근한다. 또한 연명의료법, 사전돌봄계획, 완화적 진정 등 의료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들을 짚어가며 죽음에 대비하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본다. 죽음에 대한 담론에서 시작해 인간의 실존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대비책을 담아냄으로써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은 죽음에 관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27년 만에 복기해본 아버지의 죽음
“슬픔을 안고 산다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내고 앞만 보며 달려온 저자는 우연처럼 아버지 투병 당시 부모님이 함께 써 출간했던 투병 에세이를 찾아 읽게 되며 해묵은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는 무력감 한가운데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면, 이 비극에서 한발 물러나 있기가 너무 힘이 든다. _33쪽

다시 펼쳐본 부모님의 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고통이 어떻게 일상이 되어가는지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의사가 되어 톺아보니, 지나버린 그 일상을 조금 더 평온하게 유지하거나 조금 더 특별하게 장식했을 수도 있었다며 후회한다. 한편으로 그때는 암환자의 가족이었지만 지금은 암환자를 마주하는 의사로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말들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만났지만 항상 충분하지 않은 설명과 냉정한 말로 아픈 우리에게 마음의 상처까지 주는 멀고도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병원에서 일하면서 모든 죽음을 다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죽음은 그 무게만큼 힘겹고 슬프며,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겪어내는 병동 간호사들은 종종 극심한 소진에 빠진다. 의료인인 우리들은 죽음의 민낯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_85쪽

저자 스스로 정의내린 의사는 환자에게서 죽음이라는 장막을 조금씩 걷어내어 그 아래 약간의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는 사람이다. “3시간 동안 40명.” 이것은 그녀가 외래진료실에서 만나야 할 환자의 수다. 덤덤히 긴 치료의 여정을 겪어내는 저자에게 힘든 일 중 으뜸은 바로 어린 자녀를 둔 환자를 대하는 일이다. 저자 또한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윈 유가족이기에. 남아 있는 몇 주의 시간 또한 엄연한 삶이기에, 그 시간을 온전하게 채우는 방법을 알려주려 고민하고, 말을 고르고, 그리고 여전히 부족하다며 자책한다. 세상을 떠난 환자에게 쓴, 미처 보내지 못한 편지는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조언을 담고 있다.

아빠를 잊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외면할 수도 없죠.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낙인 같은 것은 아니에요. 슬픔을 안고 산다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을 기억하고 슬퍼하겠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행복을 갉아먹진 않을 것이니, 먼 곳에서도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_38쪽

 

 

패배하기 마련인 죽음과의 투쟁 중인 당신에게
죽어가는 대신 살아가기를, 잃었지만 잊지 않기를

인간이 태어나서 3개월, 즉 백일까지를 삶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죽기 전 3개월은 죽음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수많은 그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 데다 아버지의 죽음까지 일찌감치 겪은 터라 그 어떤 죽음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저자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 어떤 죽어가는 이의 고통도, 그를 알고 사랑해온 사람들의 슬픔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슬픔을 공부할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 _86쪽

죽음을 앞둔 사람과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성찰도 깊고 진지하다. 병에 좋다는 정보나 음식을 검증하지 않고 권하는 일이나, 곧 좋아질 것이라는 대책 없는 희망,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뤄질 것이라는 신앙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꼬집는다. 선의를 행하는 내가 주는 마음보다 “상대가 받는 마음을 더 중심에 놓는 것”이 바로 위로의 핵심이라고 당부하며 가족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그 누구도 엄마에게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고맙다고,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 아픈 남편을 돌보는 삶 그 자체를 걱정했고, 남편 없이 살아갈 날들을 걱정해주었지만, 엄마의 삶을 긍정하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엄마는 이에 죄책감과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_91쪽

더 이상 손쓸 수 없이 암이 진행된 환자들에게는 통증 완화를 위한 길을 안내하며 협조를 요청한다.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지막은 의료진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통제에 중독될까 봐, 통증을 참지 못하면 암이 자랄까 봐, 무뚝뚝한 의료진이 불편해 통증을 말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스스로 통증을 평가하고 말하라고 독려한다.

또한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지금 ‘사전돌봄계획’을 세울 것을 권한다. 사전돌봄계획이란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죽음의 과정에서 어떤 돌봄을 받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1.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2. 가족과 친구들이 알고 기억했으면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3.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어떤 것이 나에게 중요할 것인가?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 질문에 당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내며 위 질문에 답하다 보면 상실과 부재가 아닌, 채우고 나누는 전에 없던 죽음의 가능성을 믿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울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은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비극이 아니며, 당신의 비극 역시 당신만이 겪어야 하는 운명적인 고통은 아니니 부끄러워 말고 마음껏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슬픔은 의외로 도처에 널려 있고 우리는 모두 슬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_228쪽, 〈에필로그〉에서

목차

# 1 우리의 길고 아픈 밤_암환자의 딸
부모님의 병상 일기를 톺아보다
암을 진단받은 세 아이의 아버지
브레이킹 배드 뉴스
어린 자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잿빛의 시간
몸에 박힌, 몸이 아닌 것들
조언보다 관심을
평화로운 마지막 3개월을 위하여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가
바람 저편에

#2 당신의 삶을 지키고 싶습니다_암환자의 주치의
종양내과는 뭘 하는 곳인가요?
환자들은 왜 대체 요법에 의지하는가?
휴대 전화 번호를 주실 수 있나요?
해줄 것이 없는 환자
병원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당신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발, 마지막 소원입니다
건강을 도로 주소서

# 3 삶은 잠시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_엄마가 되어
부모의 마음
나는 네 편이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내가 고자라니!
신천역에서
내 인생의 대머리들
내가 암환자가 된다면
에필로그

작가 소개

김선영

14년 차 내과 전문의.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및 전임의 수련을 받았고, 국립암센터를 거쳐 지금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일하고 있다.
대장암, 부인암, 희귀암 환자들을 진료하며 길어낸 고통과 죽음에 대한 사유, 일상을 그리고 쓴다.

https://brunch.co.kr/@cathykim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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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한겨레] 치료가 병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일이라면
최근 읽은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가족이나 자신의 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와닿는 책이었다. 작가는 암 전문의이면서 어린 시절 젊은 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는 환자 가족이었다. (...) 죽음을 앞둔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연합고사를 잘 봐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열여섯 소녀가 사십대의 의료인이 돼서 절박한 환자를 앞에 둔 의사의 입장에서 당시를 복기하고,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요즘의 상황을 교차한다.
[동아일보] 인간다운 죽음… 삶의 가치를 깨우다
최근 가슴 아픈 일을 겪었거나 감정 조절이 힘든 상태의 독자라면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이 책들을 펴길 권한다.
[문화일보] 위인의 역사 저술만큼 힘 센 ‘평범한 개인’의 기록
의미 있는 개인적 기록.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전문의 김선영 씨가 쓴 이 책은 암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지만, 자신 또한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던 경험과의 사이, 즉 경계에서 바라보고 성찰한 기록입니다. 송두리째 삶을 뒤흔들고 두려워 언급조차 금기로 여기는 암,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남은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껴온 저자는 자신의 그같은 경험을 잔잔하게 담아냅니다. 대형 병원의 냉혹한 시스템도 언급하고, 항암 치료, 대체 요법, 연명의료법, 완화적 진정 등 의료계의 이슈들을 짚어가며 죽음에 대비하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봅니다. 죽음에 대한 담론이면서 슬프지만은 않은 죽음에 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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