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치 비트코인
서울의 밤을 밝히던 무수한 불빛
우리를 요동치게 한 건 늘, 예상치 못한 파도였다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작가
염기원 장편소설 《인생 마치 비트코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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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로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변화된 한국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던 염기원의 신작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전작 《구디 얀다르크》를 통해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풀어냈던 작가는, 《인생 마치 비트코인》에서도 그만의 역동적인 청춘 서사를 이어나가며 성공한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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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 함께 상경한 친구는 끝내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내려가고, ‘나’는 연고 없는 서울에서 사실상 고립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날카롭고 뾰족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그보다 더 날카롭고 뾰족한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인생은 마치 코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등락을 거듭하고,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많으며, 마음과 다르게 튀어나와버리는 말과 행동으로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물론 그에게도 여러 차례 소통과 화해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잔뜩 벼려진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다 보면 그 기회를 매번 놓쳐버리고 만다.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을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고 한심해하는 사람들. 들으려 하지 않는 귀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 나아가 ‘다름’을 ‘틀림’으로 속단해버리는 일 또한 우리 주변에서 자주 벌어진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성숙한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이와는 무관하게, 아직 채 성장하지 못한 ‘어른아이’인 것은 아닐까. 《인생 마치 비트코인》은 그런 서툴고 방어적인 주인공이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이의 일기장을 우연히 접하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과 화해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치열한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녀석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그 아래로 높게 솟은 빌딩들이 환한 빛을 내뿜고 있어서 대낮처럼 밝았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전형적이고 압도적인 서울의 야경이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그토록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경탄할 만한 것이 바로 옆에 있어도 보지 못한다.”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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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선 무관심, 다정한 폭력
차가운 도시의 이면 아래 웅크렸던 몸을
서서히 펼쳐내는 청춘의 기록
상경 후 용산전자상가에서 일을 시작한 ‘나’와 상진. 하지만 일이 제법 손에 붙어 어느 정도 살 만해지자 사장이 월급을 들고 잠적해버린다. 큰 충격을 받은 ‘나’는 고향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지만 서울에서 좀 더 버텨보기로 한다. PC방 아르바이트를 거쳐 평일엔 마트에서, 주말엔 경마장에서 투 잡을 뛴다.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는 경마장 VIP 층을 담당하게 되고, 그곳에서 오피스텔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를 만나 오피스텔 관리인으로 채용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만큼 씀씀이도 클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은 천 원 한 장 쓰는 일에도 인색하다. 어떤 경쟁에서든 승리해온 사람들이었고, ‘나’는 사장으로부터 그런 점들을 배웠다. 타인이 봤을 땐 그리 좋아 보이는 일자리도, 그리 멋있어 보이는 삶도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사무실이자 주거 공간인 여섯 평짜리 방에서 낮에는 입주민 관리를 하고, 밤에는 주식과 코인을 하고, 가끔은 중고 벤츠를 몰고 다니며 동호회에 나가는 삶에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셀프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은 뒤 자동세차장에 들어갔다. 고급 세제를 사용하는 곳이라 자주 이용한다. 비싼 차라고 손 세차를 고집하는 건 촌스러운 짓이다. 자랑할 게 차밖에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느긋하게 누워 차를 향해 쏟아지는 세찬 물줄기를 구경했다. 바람으로 말린 뒤 세차장을 빠져나오자 직원이 붙어 남은 물방울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_본문에서
쉬는 날이라고 해봤자 일요일 하루였지만 평소와 다를 건 없다. 여느 때처럼 입주자들의 입금 내역을 확인하던 ‘나’는 403호 입주자가 월세와 관리비를 두 달째 미납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올라가봤지만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집. 불길한 예감에 사장에게 전화를 한 후 급히 문을 따고 들어가지만, 403호 여자는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경찰이 다녀가고 치울 것도 없이 휑한 방 안에 놓여 있는 노트 두 권. 그는 무심코 그 일기장을 펼쳐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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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고 뾰족한 세상에서
서툴고 방어적인 어른아이로 살아간다는 것
읍내에서 전단지를 뿌리며 모은 돈으로 서울행 버스를 탄 두 친구. 아는 사람도, 가진 것도, 대책도 없었지만 튼튼한 몸이 있었고, 기댈 수 있는 서로가 있었다.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는 시골과 달리 서울의 밤은 번쩍이고 화려했다. 두 친구는 그렇게 다짐한다. ‘서울 사람’이 되자고. ‘나’에게 있어 ‘서울 사람’은 단순히 서울에 사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울에 뿌리내린 사람. 멋지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많은 돈을 벌고 도시의 밤을 밝히는 저 수많은 불빛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아직 밤이 되지도 않았는데, 서쪽 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보였다. 별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은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그 별만 바라봤다.”_본문에서
하지만 당연히,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도시의 삶은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과는 달리 빠른 변화가 필요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던 ‘나’는 청소하던 방에서 발견된 죽은 여자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죽음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살아온 삶을 복기하고 주변 사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며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임을 깨닫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우린 정해진 정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가 아닌, 채점 기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는 서술형 문제를 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획일화된 하나의 기준으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단순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과 먼저 화해하고, 스스로 단단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매일 싸우고 있는 건, 어쩌면 타인이 아닌 우리 자신일 것이다.
“타자를 이해하려면 먼저 나를 이해하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 (……) 조금 불편하더라도,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께가 떨어져나가 맨살이 드러나기 전에 실천하는 편이 낫다. 나와 차이가 있는, 지향점이 다른 상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소통의 대상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화해해야 한다. 공포를 부추기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정말 경계해야 할 건 전체주의와 획일화라는 폭력이다.”_‘작가의 말’ 중에서
특수청소
소주와 새우깡
슬픈 세입자의 일기
가난의 법칙
몰라야 하는 이야기
혼자가 아니었다
절름발이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