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2.11-12
● cover story
“이방인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용어를 언어, 혹은 관습이나 문화와 관련해서 주로 사용해요. 외국어를 쓰는 사람,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관습과 문화가 이질적인 사람, 그래서 통하지 않는 사람이 이방인이지요. 예컨대 외국인이나 이방인을 가르는 데는 내용이 있어요. 외부인과 내부인을 가르는 데는 내용이 없어요. 국적, 언어, 관습, 그런 거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밖에 있는 사람이 외부인이지요. 밖이 어딘가요? 어디나 밖이 될 수 있어요. 내용이 없어도 되니 자의적으로 칸막이를 세우면 거기가 밖이 돼요.” ―이승우, 「cover story」 중에서
45호 cover story 인터뷰이는 최근 장편소설 『이국에서』를 통해 독자를 만난 소설가 이승우이다. 40년간 글을 쓰며 언제나 ‘나이 없는 시간 속을 사는 문학’으로 독자를 만나온 그의 시간이 지면에 옮겨졌다. 사회를 구성하는 내부와 외부, 그 안팎을 숙고하며 늘 가뿐히 지금의 시간을 초월하는 그의 작품처럼, 문학과 사회, 구조와 개인, 문장과 문장의 바깥을 넘나드는 그의 진폭은 감히 함부로 짐작하기 어렵다. 그 깊고 넓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실타래의 한쪽 끝을 이곳에 남겨준 소설가 이승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인터뷰는 평론가 박혜진이 진행해주었다. 『지상의 노래』의 ‘천산 수도원’에서 『이국에서』의 ‘친구들의 집’까지 작가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이승우를 만난 것 같다는 그의 말은 그가 이승우를 따라 읽으며 그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지내왔고, 그 이야기 속 장소와 공간에 사로잡힌 그의 독자임을 방증한다. 빠르게 책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요즘, 오래 읽고 오래 쓰는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기록할 수 있어 기쁘다. 이곳에 쓰인 글이 함께 읽고 쓰는 독자들에게 마음 머물 곳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문학이라는 그 곡진한 지경으로 용기 내어 들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게 되기를 기대한다.
● intro
“고백으로 고백을 무시한다. 자신과 화자가 솔직하다는 위선을 비웃는다. 그리하여 봉합을 불가능하게 하고, 언어의 불가능성을 폭로한다. 타자의 묵묵부답을 향해 고백을 시도한다. 모스 부호 같은 말이 저절로 탄생하게 한다. 고백할 수 없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시작한다. 그러기에 고백은 작가 내부의 타자를 찾아나서는 것이 시작일지도 모른다. 고백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고백을 끌고 가는 목소리를 고백하는 자가 들으면서, 그 고백의 불가능성을 향하는 고백적 글쓰기를 향해. 늘 다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_김혜순, 「고백할 수 없는 고백」 중에서
intro에서는 시인 김혜순이 고백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있는 것을 뱉어내길 강요하는 시대에 우리는 쉽게 고백의 힘을 믿는다. 고백이 또 다른 강요가 되어 고백의 연쇄를 부르고 그 안에서 잠시 연대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가 멈추는 곳, 고백되기를 멈추는 것들이 도처에 있다. 그것들을 없는 체하지 않는 것, 불가능을 확인하며 나아가는 글쓰기, 그것을 향해 걷는 일. 문학이 하는 일은 그 완수불가능한 일을 시작하는 일 아닐까. 기꺼이 그 일에 동참하기로 한 글들에 힘입어 『Axt』 45호를 시작한다.
● key-word * novel
‘도시괴담’을 주제로 한 key-word의 릴레이 단편 연재의 마지막은 소설가 정지돈과 이현석이 장식해주었다. 소설가 정지돈의 「무한의 상태」에는 홍제동의 한 호텔을 배경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무한’을 쫓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현대 예술계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도시괴담 속의 한 장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소설가 이현석의 「조금 불편한 사람들」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만났던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코로나19 백신, 집회, 결혼 등에 대한 주제에서 북한이탈주민인 은화와 남한에서 의사로 살아온 ‘나’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지속된다. 소설은 서로 다른 사회 문화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차이를 주목하면서 내가 알던 사람의 선택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동시대적 공포의 상황을 재현한다. novel에서는 소설가 배수아의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연재가 시작된다. 고유한 문학의 영역을 가진 그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소설의 도입에서 화자는 “이것은 최초의 여행에 관한 글이다. 여행은 편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고백한다. 독자에게 보낸 편지이자 또 하나의 세계로 통하는 길이 될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연재에 많은 관심을 바란다. 윤고은과 박서련의 장편 연재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소설가 윤고은의 『불타는 작품』에서는 약정한 마감 기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이 펼쳐진다. 예술가를 후원하는 개 ‘로버트’와의 첨예한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고, 마침내 주인공은 ‘결코 누구를 자극하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닌 행동을 하고 마는데……. 과연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소설가 박서련의 『폐월閉月』에서는 초선이 마침내 봉선을 만나게 된다. 여자는 초선관을 쓸 수 없다는 말이 마치 신탁처럼 초선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멀리 그를 위한 풍랑이 예비되었다. 과연 초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 결정적 순간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 hyper-essay
hyper-essay에서는 시인 장혜령이 작가 한강을 다룬다. 한강의 소설과 시를 두루 읽으며 존재와 부재를 잇는, 흰과 어둠을 잇는 거울을 발견한 그는 거울 너머에 있을 생에까지 상상력을 확장한다. 존재와 부재까지 포함한 한없이 무한에 가까운 그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문학만이 가능한 경지인지도 모른다.
이번 hyper-essay에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대한 짧은 리뷰가 함께 실렸다. 소설가 이서수와 시인 주민현의 글이다. 전 세계 35명의 작가들이 독자와 소통하는 창구였던 국제작가축제를 거치며 두 작가는 단절 너머를 생각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의 삶의 방식은 급격하게 축소되는 요즘,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 언어와 기술문명을 넘나드는 그들의 사유를 함께 따라가 보자.
● review * biography * diary * insite * monotype
이번 호 review에는 백가흠 김성중 김멜라 서이제 성해나 강보원의 서평이 실렸다. 장르와 분야를 망라하는 독서리스트가 독자들을 기다린다. 추운 겨울 이불 속에 몸을 묻고 가까운 책에 손을 뻗을 때, 그 손끝에 이들 도서가 있기를 기대한다. biography에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출간한 소설가 김병운, 『국자전』을 출간한 소설가 정은우의 자전에세이가 실린다. 책을 내며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하는 마음을 살피며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쓸 결심’을 하는 두 편의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좋은 작가를 얻었음에 마음이 든든해질 테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껏 응원하고 힘껏 읽고 쓸 수 있길, 그렇게 느슨한 언어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diary에는 소설가 최진영의 제주 기록이 계속된다. 사진과 짧은 일기가 실린다. 여름 바다에 가보지 못한 일, 제주에서의 첫 태풍을 만난 일, 무지개와 빈 운동장을 거쳐 이어지던 기록은 겨울을 준비하며 꺼내 온 털 실내화 사진을 향해 간다. 겨울을 맞이한 우리의 시간이 소설가의 일기 속 시간과 겹쳐지는 경험이 즐겁다. 사진잡지 『VOSTOK』와 함께하는 insite에는 사진작가 샐리 조의 작품 〈Rendered〉가 실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과 그래픽이 섞인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골몰하게 된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을 바라볼 때 열리는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직접 체험해주시기를 바란다. sports를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 monotype의 이번 호 주제는 ‘골프’다. 시인 임경섭과 소설가 송지현의 이야기가 실렸다. 두 편의 글 모두 스크린 골프를 먼저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넓은 실외 공간을 필요로 하는 아웃도어 스포츠라는 인상과 달리, 골프는 스크린을 통해 삶에 아주 근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 잇닿아 있는 삶의 양식도 다양할 터. 그중 일부를 공유해준 두 작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 table * ing * colors
해외문학에 대한 내용도 알차게 담았다. table에는 제임스 설터의 『고독한 얼굴』을 함께 만든 번역가 서창렬, 편집자 김수경이 이야기를 나눴다. 소설가 우다영이 함께 자리해주었다. 일견 단선적으로 보일 수 있는 등산이라는 모티프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개진해나가며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더해주었다. 한편 제임스 설터라는 인물과 그가 가지고 있는 논쟁적 지점들에 대해서도 두루 살피는 시각도 함께 담겨 있다.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도 풍성한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ing에는 토니 모리슨 『H마트에서 울다』를 번역한 번역가 정혜윤의 에세이가 실렸다. 그는 『H마트에서 울다』를 ‘한국계 미국인이 쓴 이민자 이야기’로 우선 언급하며 그로 인해 겪을 수 있었던 ‘번역물을 되번역하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소설에서 재차 등장하는 한국음식을 한국어로 번역한 그의 경험을 따라 읽으며 독자들도 ‘되번역’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로서 번역이 다시금 얼마나 유기적인 과정인지를 돌이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colors에서는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룬다. 평론가 손정수는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 사실을 엮어내며 이 소설이 2차대전 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담백한 문체와 소박한 지향점 등을 이러한 외부적 요인과 연결하여 읽는 것이다. 한편 소설가 김종옥은 이러한 소박하고 담백한 작품의 특징이 소설의 본래적 요소와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를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에 붙은 오명, 즉 ‘암살범들의 교과서’라는 호명의 의미를 짚어낸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품을 읽어 낸 두 글이 독자들의 세계까지 풍성하게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 45호 차례
intro
김혜순 고백할 수 없는 고백・002
review
백가흠 백민석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024
김성중 그렉 이건 『내가 행복한 이유』・028
김멜라 안윤 『방어가 제철』・033
서이제 잭 런던 『마틴 에덴』 ・038
성해나 요시다 켄스케 『르코르뷔지에 미워』・043
강보원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047
cover story
이승우+박혜진 삶으로 초대하고 싶은, 다른 가치들・052
biography
김병운 세 번의 만남・088
정은우 계속 쓸 결심・094
key-word
정지돈 무한의 상태・102
이현석 조금 불편한 사람들・118
diary
최진영 무제 폴더Ⅲ・138
hyper-essay
장혜령 봄의 아침을 비추면 가을의 저녁이 나오는 ― 한강・152
이서수 무경계 도시・164
주민현 우리는 새로운 얼굴을 향해 간다・167
insite
샐리 조 Rendered・170
monotype
임경섭 시인이 무슨 골프냐・180
송지현 골프발 가계부채에 대한 소고・186
table 제임스 설터 『고독한 얼굴』
서창렬+김수경+우다영 우리의 얼굴・198
ing
정혜윤 번역물을 되번역하는 특별한 경험・234
colors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손정수 샐린저라는 텍스트 읽기・244
김종옥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252
novel
배수아 속삭임 우묵한 정원(1회)・260
윤고은 불타는 작품(6회)・296
박서련 폐월閉月(7회)・318
outro
김유진・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