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3.01-02
● cover story
“나는 작가가 되고 나서 비로소 구원받은 것 같아. 사실은 뭐 그 전에도 직장 생활도 했고, 돈도 벌고 했으니까. 그래서 작가가 안 됐어도 목구멍에 풀칠은 하고 살았을 거라고, 소설가라는 직업 역시 그냥 밥벌이일 뿐입니다, 쿨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아닌 것 같아. 난 소설 안 썼으면 지금까지 못 살았을 것 같아. 이런 건 얘기해도 되겠지? 너무 촌스러운가? 너무 없어 보이나? 사춘기 같나?” ―박상영, 「cover story」 중에서
46호 cover story 인터뷰이는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후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가 박상영이다. 특유의 유머와 시니컬한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이 시공간을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를 다뤄온 그의 소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진지하게 삶과 소설을 응대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인터뷰에는 무엇보다 문학하는 마음에 관한 그의 올곧은 진심이 가득 담겼다. 작가가 되고서 구원받은 것 같다는 진솔한 고백의 곁에는 문학에 대한 애증 역시 함께했다. 유쾌한 대화 속에서 진심이 눈물처럼 터져나오는 순간은 그의 소설을 닮아 있다.
인터뷰는 소설가 강화길이 진행해주었다. 습작기부터 서로의 작품을 함께 읽어온 두 소설가가가 함께했기에 인터뷰에 실린 진심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소설로 구원받았다는 말은 촌스럽지?’라는 물음에 ‘하나도 안 촌스러워’로 응답하는 대화에서 그들이 글로써 함께 만들어온 고민과 연대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함께 울고 웃으며 쓰인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독자들도 함께 울고 웃으며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 intro
“우주적 관점에서는 티끌도 안 되는 행성에서 고작 100년도 안 되는 시간만을 살다 떠나는 허술한 생명체이고 숨 쉬는 시간이 끝나면 온갖 물질에 골고루 흡수될 ‘원자 조립품’일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생애를 온 힘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그 엄중한 동사에는 망각을 거부하고 슬픔을 공유하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도 포함되리라.”_조해진, 「우리는 결국 입자로 흩어져 텅 빈 우주를 떠돌겠지만……」 중에서
2023년의 첫 『Axt』는 소설가 조해진이 열어주었다. 어느 때보다 우주와 천문에 관심이 많았던 2022년을 지나오면서 이 광대한 우주에 인간이 놓일 자리를 고민하다 보면 그 ‘텅 빔’ 앞에 엄숙해지곤 한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은 엄숙함 앞에서도 계속되는 것. 삶을 닮은 우리의 문학도 2022년을 지나 2023년을 향해야만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삶에 포함시키며, 2023년의 『Axt』를 시작한다.
● colors
시대의 정전을 다루는 colors에서는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더 이상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필요치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라는 작가의 바람과 달리 여전히 주거와 점유의 문제는 우리의 화두이다. 평론가 손정수는 지금도 생동하며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 작품을 작가의 인터뷰 기록과 함께 읽으며 작가가 가졌던 사명과 작품 사이의 아이러니에 집중해 펼쳐 보였다. 시대를 관통해 영속하는 문학, 그 본을 보인 작품에 경의를 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review * biography * short story * novel
언제나처럼 『Axt』는 소설을 읽고 소설에 대해 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먼저 review에는 김성중 정지돈 성해나 강보원 김지승의 서평이 실렸다. 이번 호에는 다섯 명의 필진이 모두 소설에 대한 리뷰를 보내주었다. 이들의 리뷰에 잇닿아 독자들의 1월 역시 소설과 함께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작품집을 출간한 소설가의 자전에세이를 싣는 biography에는 『어느 날 거위가』를 출간한 소설가 전예진, 『나주에 대하여』를 출간한 소설가 김화진의 에세이가 실린다. 소설집을 낸 뒤 바뀐 일상을 감각하며, 어쩌면 소설이 나 자신을 바꾼 것이 아닌지를 고민하며 작품 앞에 서 있는 소설가의 뒷모습이 글 너머로 비친다. 그들의 귀한 작품과 더불어 작품 뒤에 둔 그들의 진심을 함께 읽어주시기를, 그리고 그 뒷모습에 부드러운 응원의 목소리를 덧붙여주시기를 바란다. 소설을 위한 지면도 준비되어 있다. short story에는 소설가 김종옥의 「춤추는 소녀」가 실린다. 체육관 건물 옆 좁은 공간에서 춤을 추는 영상을 촬영해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주희를 같은 반 학생인 승오가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춤을 추고 영상을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행위와 드러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변수, 즉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음이 미묘한 불협화음을 내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novel에서는 소설가 배수아의 『속삭임 우묵한 정원』 연재가 계속된다. MJ의 편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또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억 속에서 화자는 숭배의 기억을 더듬는다. 유예된 여행이 다시 여행의 시간으로 움직일 때, 소설은 독자의 곁을 향한다. 소설가 윤고은의 『불타는 작품』에서는 새로운 통역사가 등장하며 로버트와의 그간의 불화가 다소간은 통역의 문제였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새로운 통역사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며 주인공은 로버트에게 힌트를 얻어 작품전을 위한 작품 창작을 시작하게 되고,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정말로 불태울 작품을 골라야 하는 순간이 다가옴을 의미하게 된다. 과연 로버트는 어떤 작품을 고를 것인가? 그리고 그 작품을 불태우는 순간은 정말 다가올까? 한편 소설가 박서련의 『폐월閉月』은 최종화로 독자를 만난다. 동탁과 여포의 불화를 조장한 초선. 삼국지에 기록된 짧은 이야기를 초선의 목소리로 써온 이 작품은 동탁과 여포, 그리고 종국에는 왕윤과 초선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그간 욕망에 솔직한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삼국지 다시쓰기를 수행해준 소설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독자들이 함께해주시기 바란다.
● hyper-essay * table
국경의 이쪽과 저쪽, 이곳과 저곳이라는 경계를 가로지르며 문학의 지금을 전달하는 『Axt』의 코너도 계속된다. hyper-essay에서는 시인 장혜령이 오랫동안 한국 국적 취득하기를 보류하며 재일조선인으로서 ‘변경’에서 읽고 쓰는 작가 유미리의 작품을 다뤘다. 유미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에 서점을 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연극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을 위해 쓴다’는 그의 말에서 장혜령은 강정을 떠올린다. 연극, 그리고 문학. 그 강렬한 발화의 표현이 장소를 잃어버린 삶을 복원해내는 순간을 포착하는 그의 글이 문학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한다. table에서는 아니 에르노의 『카사노바 호텔』을 다룬다. 번역가 정혜용, 편집자 송지선 소설가 천희란이 아니 에르노가 독자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을 개괄하면서 그간 선정성과 계급성, 그 한쪽 편에 초점을 맞춰온 독법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노벨상 수상자로 소개된 까닭에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지만 잘 읽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느껴지는 작가인 만큼, 이 지면에 실린 다종다양한 맥락이 아니 에르노를 읽어내려는 독자에게 길잡이별이 되어줄 것을 기대해본다.
● diary * insite * monotype
소설 밖의 세상과 이곳을 연결하는 지면도 독자를 향해 열려있다. diary에는 소설가 최진영의 네 번째 제주 일기가 소개된다.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하는 기록이다. 절망과 슬픔의 기록 속에서도 이어져나가는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소설가가 신년을 맞이하는 방법이었을까. 이 이야기가 2022년을 갈무리하고 2023을 맞이한 우리에게도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진잡지 『VOSTOK』와 함께하는 insite에는 잡지 『ohboy!』의 편집장이자 사진작가인 김현성의 작품 〈it was there〉이 실렸다. 그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라는 말은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정언명령처럼 들린다. 사진작가의 ‘맨눈’에 포착된 순간들에서 우리의 눈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투명하고 가벼운 그 눈 너머의 세계가 우리에게 건너온다. sports를 주제로 이어지고 있는 monotype의 이번 호 주제는 ‘테니스’다. 소설가 이정명이 테니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테니스는 공을 타격하는 운동이라면 으레 지녀야 할 덕목 즉 공을 정확하게 맞추거나 힘을 주어 라켓을 휘두르기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 독특한 기하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 46호 차례
intro
조해진 우리는 결국 입자로 흩어져 텅 빈 우주를 떠돌겠지만……・002
review
김성중 토베 디틀레우센 코펜하겐 삼부작 『어린 시절』 『청춘』 『의존』・020
정지돈 호르헤 볼피 『클링조르를 찾아서』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025
성해나 김멜라 『제 꿈 꾸세요』・030
강보원 서머싯 몸 『케이크와 맥주』・034
김지승 샬럿 퍼킨스 길먼 「누런 벽지」・039
cover story
박상영+강화길 행복에 대하여・044
biography
전예진 희망 사항・088
김화진 변심 이야기・094
diary
최진영 무제 폴더Ⅳ・100
hyper-essay
장혜령 장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 유미리・114
insite
김현성 it was there・126
monotype
이정명 테니스의 기하학・138
table 아니 에르노 『카사노바 호텔』
정혜용+송지선+천희란 나와 같은 부류의 한풀이・150
colors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손정수 작가의 사명과 작품의 운명 사이의 아이러니・188
short story
김종옥 춤추는 소녀・198
novel
배수아 속삭임 우묵한 정원(2회)・218
윤고은 불타는 작품(7회)・258
박서련 폐월閉月(최종회)・282
outro
손보미・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