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에너지, 광기 어린 아름다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혜령 시인의 산문집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

장혜령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5년 5월 12일 | ISBN 9791167375513

사양 변형판 132x209 · 252쪽 | 가격 17,000원

책소개

차학경, 한강, 아니 에르노, 김혜순······
매혹적인 에너지, 광기 어린 아름다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혜령 시인의 산문집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 출간!

문학은 마음을 긁는다. 또 다르게 문학은, 마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긁힌 마음은 원래대로 복원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무너진 마음은 다른 무엇으로 일으켜 세우거나 그냥 무너진 채로 놔두게 된다. 대개 우리는 긁힌 자국보다 무너진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너졌다는 건, 우리 마음의 구조가 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단단하지 못함의 이유에는 수많은 감정들과 진실이 결합되어 있어 그렇다.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봐 두렵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건 롤랑 바르트였다. 문학의 토대가 진실에 기원하기 때문이란 걸 바르트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말하기 두려운 그 일은 문학의 서사가 되며, 그 일에 대한 과정은 플롯으로, 그 일이 다 끝나고 난 후의 기억이 최종 문학성〔特性〕이 된다. 그렇고 보면 문학은, 문학을 쓰는 자의 삶에 온전히 속박된다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쓰는 자의 삶의 미세한 결에 의해, 쓰는 자의 감정의 터럭들에 의해 완성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모래로 글을 쓰는 자에 대한 글이 있다. 모래로 글을 쓰는 여자들. 왜 모래로 쓰는가. 아니 여자는 왜 모래로 쓸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 차학경, 아니 에르노, 다와다 요코, 한강, 소피 칼, 김혜순, 클라리스 리스펙토로, 엘프리데 옐리네크. 올가 토카르추크. 9명의 국내외 여성작가들에게 그에 대해 간절하고 집요한 질문과 답이 오간다. 보이지 않음을 애써 드러냄으로 9명의 여성작가들의 작품 속 ‘여자’를 호출한다. 여성으로써, 여성작가로써 자신의 삶과 문장을 통과시킨 그 9명의 여성작가들의 여정에 장혜령 시인이 내레이터가 된다. 매혹적인 에너지, 광기 어린 아름다움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혜령 시인의 산문.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이다.

이 배설. 이 내뱉음. 이 쏟아냄. 이 토해냄.
이것은 자기 언어를 허락받지 못한 여자의 유일한 발화다.

모래는 운동에 의해 존재한다. 그 힘의 모태는 시간이다. 몇 억 년의 시간이 모래를 만든다. 억겁의 시간으로 원래의 형상은 사라진다. 바람 혹은 중력에 의해 모래가 된다. 모래는 움직이되 멈춰 있고, 멈춰 있되 움직인다. 어린아이들이 모래를 손에 움켜쥐고 버리고 하는 장난은 바로 그 형상의 실재 때문일 것이다. 모래의 질량을 느끼는 순간이란 손이 움직이지 못할 때, 가만히 부동자세로 멈출 때뿐이다. 바람이 불거나 움직이는 순간 다시 모래는 바닥에 흩뿌려져 본래 형상을 잃는다.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의 제목으로 연상할 수 있는 건 대개 그런 것들이다. 손 안의 모래. 조금의 움직임으로도 빠져나가버리는 모래. 바람으로 인해 날려가는 모래와 같은 문장들을 왜 장혜령은 필사적으로 움켜쥐려 하는 것인가. 그리고 장혜령이 움켜쥔 9명의 여성작가들은 왜 굳이 모래로 문학을 ‘쓴다’ 말하는 것일까. 역으로, 움켜쥘 수 없기에 모래로 글을 쓴다는 것인가. 사라질 걸 뻔히 알고 있음에 모래로 글을 쓰는 것은 아닐까. “불가능이 가능이 될 때까지. 살릴 수 없음을 살려낼 수 있을 때까지”(16쪽) 글을 쓰는 여자들. 이 책은 그 간략한 질문에 대한 여러 방면의 답이다.

우선, 목소리이다. 쓰기보다 말하기이다. 차학경, 아니 에르노, 한강. 세 작가의 작품에서의 ‘여자’의 음성성을 살핀다. 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달하는 여자.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를 말하고, 그 기억을 대신 소리 내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말한다. 더불어, ‘여자’의 목소리에 육체를 부여한다. 지워진 존재들 사이에 서 있게 한다. 지워진 목소리를 그들 자신에게 돌려준다. 차학경의 말하지 않으려는 고통, 아니 에르노의 자기 육체에서 새어나오는 신음, 한강의 역사의 파편이 깊숙이 박혀 꺼내지도 못한 슬픔 들을.

“사실을 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사실과 진실 사이의 시차를 견딜 수 있는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 여자의 텍스트를 읽는 일은 이중의 의미로 번역적인 경험이다. 외국어에서 옮겨진 한국어를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한편, 현실에서 초현실을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110쪽)

두 번째로 번역성에 대해 말한다. 다와다 요코, 소피칼, 올가 토카르추크의 ‘여자’들을 호출한다. 셋의 여자들은 나무, 짐승, 새가 된다. 또한 커피포트가 되어 말한다. 인간이 아닌 것에 의해 말해지고, 타자의 몸으로 갈아타면서 말한다. 현실에서의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봐야만 하고, 그 바라봐지는 것을 말하는 ‘여자’가 존재한다. 여자는 환승을 통해 현실에서 초현실을 읽게끔 한다. 인간의 시각의 한계를 넘어 보아야만 드러나는 세계가 있음을, 말한다. 일본어의 바깥을 열기 위해 독일어로 간 다와다 요코, 캐릭터와 자신의 이중 작가를 드러내고자 한 소피 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을 보여주려 한 올가 토카르추크처럼.

“그렇다. 텍스트는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고 하는 힘에서 왔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여성적인 것, 여자의 것이다.”(199쪽)

마지막으로 세 명의 작가를 불러내 유령성에 대해 말한다. 죽음의 세계와 산 세계를 오고 가는 자. “죽음으로 죽지 않고 죽음으로 살고 있는”(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자들을 불러낸다. 죽어서도 말하는 자의 의도를, 죽어서 저 세계에서 본 것을 이 세계에 건너와 말하는 것에 대해. 죽음으로 살고 있는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 말하는 김혜순의 ‘여자’와, 존재하지만 존재되지 않는 삶을 생존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여자’, 그리고 살기도 전에 이미 죽음과 폐허를 드러내 보이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여자’들을 통해 오직 한 번은 죽어본 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것들을 말하게 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면서도 만나고, 또 만나기 위해 흩어지는 것이리라.

다시, 모래에 대해 생각한다. 모래가 되기까지 원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상상한다. 거대한 돌 하나가 떠오른다. 그 돌은 억겁의 시간과 바람에 의해 지구를 맴돌다가 지금 내 눈에 모래로 존재해 있다. 그 작은 무게 속에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들어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 시간성, 모래가 움켜쥔 그 장대하고 넓은 시간에 기대어 장혜령이 불러낸 9명의 여성작가들의 ‘여자’를 본다. 그 ‘여자’들이 토해내고 뱉어낸 단어들과 문장들을 읽는다. 결국에는 “어둠 저 편에서 상(像)이 떠오르도록 우물을” 들여다보는, 문학의 오래된 교양에 닿는다. 모래로 쓰는 글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 잉크 대신 모래로 글을 쓰는 ‘여자’들의 마음 저 깊은 우물 표면에 드리우는 하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도 아마 마찬가지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다.

목차

INTRO 모래 여자의 서 … 006

1장 목소리 쓰기, 받아쓰기
여자는 손의 메아리에 귀 기울이며 ― 차학경 … 028
푸른 벼랑의 말을 들어라 ― 아니 에르노 … 056
봄의 아침을 비추면 가을의 저녁이 나오는 ― 한강 … 078

2장 경계의 쓰기, 번역의 쓰기
나는 내가 버린 나의 소녀이므로 ― 다와다 요코 … 100
도플갱어, 두 개의 삶 ― 소피 칼 … 126
별을 잇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별자리는 생겨난다
― 올가 토카르추크 … 154

3장 죽음의 쓰기, 유령의 쓰기
더러운 흼, 불가능한 흼 ― 김혜순 … 178
불타는 부재의 편지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200
포르노그래피 여자의 서 ― 엘프리데 옐리네크 … 222

OUTRO 여자의 묘비명 … 242

작가 소개

장혜령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 소설 『진주』,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를 펴냈다. 최근 몇 년간 문학잡지 『Axt』에 이 책의 시작점이 된 비평 에세이를 연재하는 한편, 리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현대시를 매개해 이미지를 읽고 쓰는 워크숍을 만들며 문학의 바깥을 열어보려 했다. 한곳에 계속 머무르면 그곳은 안이 되어버리고, 안이 되어버리는 것에는 사랑이 없으므로, 앞으로도 바깥을 여는 글을 쓰며 활동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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