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빛

강화길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5년 6월 11일 | ISBN 9791167375629

사양 변형판 135x205 · 384쪽 | 가격 18,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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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나의 몸, 나의 고통, 나의 과거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작가 강화길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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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소설은 핏줄 속에서 보내온 초대장 같다.
(……) 우리는 핏줄을 따라 정신없이 떠돌다가
소설의 심장을 만지게 될 것이다”_임솔아(소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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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백신애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형 여성고딕소설’의 정점에 오른 소설가 강화길의 신작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치유의 빛》은 그간 작가가 천착해온 긴밀하고 폐쇄적인 공동체―가족과 학교, 지방 소도시, 종교 단체―와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밀도 높은 감정―동경과 애증, 질투와 소유욕―을 다시 ‘안진’이란 장소에 펼쳐놓으며 끝장을 향해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지수’는 작고 마른 몸으로 존재감 없이 지내던 자신이 갑자기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순간을 회상한다. 열다섯 살 가을. 감당할 수 없는 식욕과 함께 급속도로 거대해진 체구를, 지수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적나라하게 직면한다. 어린아이에게 쏟아지는 타인의 시선은 곧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지수는 점점 더 움츠러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해진 몸 덕분에 오래 동경해오던 ‘해리아’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리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수영장 사고로 인해 지수는 고향 안진뿐 아니라 자신의 몸―끔찍한 통증을 떠안고 있는 덩어리들―을 벗어던지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런 의미에서 《치유의 빛》이 품고 있는 물리적 공간은 여성의 ‘몸’ 그 자체로 재조립된다.

고딕 소설에서 ‘공간’은 인물을 가두고 옭아매는 장치로 작동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소설 속 공간은 현재를 살고자 하는 인물들의 발목을 붙들어 단단히 동여맨다. 앞서 강화길이 ‘한국형 여성고딕소설’의 정점에 올랐다고 언급한 이유는, 그의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이 일종의 ‘사회적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 감옥은 천륜으로 얽힌 가족이 되기도, 태어난 고향이 되기도, 모태신앙으로 떠안게 된 종교가 되기도 한다. 나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 세상에 나와 보니 이미 내 것이 되어 있는 것들. 이런 의미에서 《치유의 빛》 속 인물들의 기억이 십대에 묶여 있는 이유 또한 의미심장해진다. 작가는 부모와 사회의 보호 아래에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 그 보호가 사랑인지 구속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일단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 그래서 서로의 여린 부분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장 먼저 탐하고, 가장 먼저 동경하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깊숙이 파고들며 묘파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가장 비극적인 감옥”(전청림 문학평론가)에 갇혀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또한 그 감옥을 내내 짊어져 왔으므로. 내내 짊어져야만 할 것이므로.

“사람들은 왜 동경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질투하고 증오할까. 그래서 갖고 싶어 하고,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고 싶어 하고. 불쌍해하다가 미워하고, 안타까워하다가 꺾어버리고 싶어 할까.”(70-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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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그때 왜 죽지 않았어?”
그해 가을, 네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끔찍한 사고
동경과 질투, 애증으로 점철된 서늘한 서스펜스

지수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경력을 향한 목표. 성취감과 쾌감. 숨 막힐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끝에 누리는 강렬한 자극”에 중독되어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때 느껴지는 희열. 지수의 애인 ‘태인’은 지수에게 말한다. “너한테는 항상 일이 전부지. 일 이외에 의미 있는 게 있기나 해?” 하지만 지수는 개의치 않는다. 일 이외에 의미 있는 일이 지수에게도 있다는 걸 태인은 모르기 때문이다. 176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 ‘지수’는 심각한 거식증과 폭식증을 앓고 있다. 경우에 따라 식욕억제제까지 먹는다. 태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몰라야만 했다.

“밥 몇 숟가락에 반찬 조금. 아니면 빵 한 조각. 계란 하나. 당근이나 오이. 방울토마토. 그게 나의 주식이라는 걸 절대 몰랐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먹었으니까. 밥 한 공기를 야무지게 싹싹 먹어치웠으니까. 몸무게를 신경 쓰는 여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아니, 원래 마른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40쪽)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지수는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거라고, 피로가 쌓인 것일 뿐이니 좀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휴가차 고향인 ‘안진’에 내려간다. 지수의 엄마는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딸에게 밥을 차려준다. 너무 말랐다며 걱정을 내비치는 엄마를 앞에 두고 지수는 떠올린다. 비만이었던 열다섯의 자신을 엄마가 얼마나 난처해했는지, 그런 자신을 앞에 두고 친척들이 얼마나 쑥덕거렸는지. 한편 지수의 엄마는 자신이 참여하는 요리 세미나 ‘채수회’에 채소를 조달해주는 청년의 아내가 지수의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아. 지수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묻어두었던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자신이 동경했던 해리아와 해리아 주변을 맴돌던 아이들―신아와 지연을.

“참 뻔했다.
어쩌면 이렇게 모든 것이 예상대로니 신아야. 세월이 이만큼 지났는데 말이야. 너나 나나 참,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니.
아니지. 나는 아니야. 나는 달라졌어.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알아.
내가 달라졌다는 걸 말이야. 신아야. 응?
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신아는 언제나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것.”(60쪽)

해리아. 그 당시 지수의 관심사는 오직 해리아였다. 지수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심지어 학교 선생들까지도. 큰 키와 가늘고 쭉 뻗은 두 다리로 운동장을 질주하던 아름다운 해리아.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다정하기까지 했던, ‘우리’ 모두의 해리아. 신아는 오히려 지수의 걸림돌이었다. 해리아 곁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던 신아는 지수를 늘 경계했다. 영직동을 사이비 소굴로 만들어버린 조칠현 교회의 신자. 사실 신아만 조칠현 교회의 신자였던 건 아니다. 해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리아는 절대 자신이 조칠현 교회의 신자라는 것을 밖에서 티 내지 않았다. 그래서 해리아는 늘 소문의 중심에 있었다. 그 공부 잘하는 애. 107동 사는 걔. 지수는 엄마의 핸드폰을 뒤져 신아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때도 지금도, 지수의 관심사는 신아가 아니다. 오직 해리아. 나의 해리아. 그렇게 신아와 해리아의 이름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다음날 아침. 지옥이 시작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시간에 언제나 잠들어 있다. (……) 마음을 지치게 만드는 것들. 기억들. 가슴을 쿡쿡 찌르는 단어들. 그런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무의식이라는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을 둘둘 말고 있다. 부러워. 그렇게 쉴 수 있는 사람들. 마음 편히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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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끈질겨지고 더 간절해졌다. 더 적나라하고 더 무섭다.
강화길의 이 작정은 마침내 연서가 되었다.”

방향을 정한 강화길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빠르게 내달린다. 멈추지 않는다. 《치유의 빛》은 ‘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내세우며 하나의 덩어리―몸―에 갇힌 인물들의 서사를 묵직하게 쌓아 올린다. 가족, 타인의 시선, 학교, 도시, 마을, 종교 등 여성을 둘러싼 억압의 레이어를 중첩시키고 도려내듯 다시 벗겨낸다. 표출하지 못해 짓눌린 감정. 통증으로 뒤덮인 신체.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단단히 뭉쳐진다.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그 모든 덩어리들을 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인물은 곧 독자의 거울이다. 나아가 소설에 설화처럼 등장하는 이야기 ‘힐라리아와 안티오페’, ‘호랑이 뱃속에 들어간 여인들’은 《치유의 빛》에서 다루는 몸이라는 공간에 대한 거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치유의 빛》은 하나의 몸이자 공간으로 완성될 것이다. ‘강화길이라는 장르’ 위에서.

# 본문에서

“나는 그런 여자들의 마음을 모르겠어. 어떤 마음? 그러니까 박탈감. 허탈감. 압박감. 강박. 어떻게든 허물을 벗고 싶다는 그 발버둥. 몸부림. 악다구니”(41쪽)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는 다른 것들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그 기억을 절대 버리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까지.”(88-89쪽)

“하지만 그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아니, 이건 믿음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녀. 가장 빠르게 달려 모두에게 돌아오는 너. 나의 해리아.”(97-98쪽)

““이 모든 건, 네가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었기 때문이야. 네가 너를 망가뜨린 거란다.”
네가 네 몸에 죄를 지었어.”(194쪽)

“교묘히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 최선을 다해 자제했다고 믿겠지. 하지만 신아야, 너는 항상 나에게 들켰어. 더 열망하고 질투하는 마음.”(198쪽)

“아마 떠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처럼요. 그렇지 않나요? 우리는 우리의 몸을 떠나고 싶어 하잖아요. 오래된 통증과 상처, 질긴 고통, 지루한 외로움.”(225쪽)

“안지연에게서는 저와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무엇을 원하든, 절대 이루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며 헤매게 되리라는, 그런 불안에 젖은 사람의 냄새.”(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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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말

강화길의 소설은 핏줄 속에서 보내온 초대장 같다. 초대를 받으면 핏줄을 타고 한 인물의 몸속을 샅샅이 돌아다니게 된다. 핏줄 속으로의 여행이 나는 꼭 연서 같았다. 여성의 몸과 그 몸에 파고드는 고통에 대하여. 그 고통의 발원지인 타인의 시선에 대하여. 여성이 여성을 향해 품어온 동경과 질투, 애정과 증오, 해방되고 싶음과 소유하고 싶음에 대하여. 강화길은 더 끈질겨지고 더 간절해졌다. 더 적나라하고 더 무섭다. 강화길의 이 작정은 마침내 연서가 되었다. 우리는 핏줄을 따라 정신없이 떠돌다가 소설의 심장을 만지게 될 것이다. _임솔아(소설가·시인)

목차

프롤로그 11

1부 23
2부 113
3부 143

에필로그 370

작가의 말 380

작가 소개

강화길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다른 사람》 《대불호텔의 유령》,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안진 : 세 번의 봄》 등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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