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눈 밝은 수행자들이 일러주는 진정한 나를 찾는 구도와 깨달음의 세계
선지식에게 길을 묻다
한국 대표 선지식 8인에게 듣는 마음공부의 정도(正道)
불교에서 선지식(善知識)이라 함은 마음의 스승을 일컫는다. 선지식은 초조하거나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갈등을 느낄 때, 인생이 고달프고 시련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선지식을 만나 길을 묻고 깨달아 지혜와 용기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 말씀을 듣기란 일반대중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언론이나 불교행사를 통해서도 쉽게 친견하기 어려웠던 산중의 선지식들을 찾아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간명하고도 깊이 있는 답변을 듣고 지혜를 얻는 인터뷰 에세이 《선지식에게 길을 묻다》가 출간되었다.
《선지식에게 길을 묻다》는 대한불교조계종에 몸담고 있는 저자가 진제∙혜정∙고우∙우룡∙무비∙근일∙무여∙혜국 스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지식 여덟 분을 직접 만나 그들의 출가와 구도과정, 여러 선지식과의 법거량, 깨달음 등에 관해 묻고 답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 선지식들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이 책은 참선은 어렵고 힘들다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에게 선지식들의 생생한 언어로 구체적인 수행과 공부법을 알려준다. 견성이니 본래성불이니 용어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뜨거운 돈점(頓漸) 논쟁에 혼란스러워 하던 이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선과 수행의 개념 정리는 물론 참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책에 담긴 산중의 눈 밝은 수행자들이 들려주는 수행담을 통해 그들이 수행과정에서 겪은 치열한 내면적 갈등과 깨달음을 엿볼 수 있다.
참선을 통해 ‘참나’를 찾기를 강조하는 진제(眞際) 스님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 바른 수행을 듣고 바르게 배워 갈고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특히 아랫사람을 다스릴 올바른 혜안을 갖추기 위해 모든 지도자들은 이러한 참선 수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선을 수행함으로써 마음의 번뇌와 불행이 사라지고 동시에 지혜가 밝아진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처다. 마음에는 모든 진리와 덕과 복이 다 갖추어져 있다. 이미 다 갖추어져 있는데, ‘참나’를 알지 못하여 쓰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이다.
바른 선지식을 만나 바른 수행을 듣고 바르게 배워서 갈고닦으면 다 된다. 아무리 높은 산도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정상에 이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혜정(慧淨) 스님은 철야에 화두를 참구하고 있던 중, 몸이 공중에 뜨는 신비한 경계를 체험한 후 확실한 발심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런 체험에 현혹되기보다는 목적한 바를 향해 용맹정진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경이든 염불이든, 참선을 비롯한 모든 수행이 하나같이 최고의 인격을 체득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매사에 성심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어느 날 철야 용맹정진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데 홀연히 앞 벽이 무너지고 둥근 빛이 눈앞에 보이면서 육신이 공중에 붕 뜨는 체험을 했어요. 그 후에도 그런 경계가 몇 차례 더 나타났어요. 그래서 ‘아, 정말 이 길이 우주의 실상을 깨닫는 길이구나!’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평온함과 환희심은 떠나지 않는데, 그때 확실한 발심을 하게 되었죠.”
고우(古愚) 스님의 경우, 우연히 《육조단경(六祖壇經)》 가운데 에서 ‘통류(通流)’라는 말을 보는 순간 강렬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가치와 의미의 중요성은 물론, 무엇이 참된 행복이고, 모두가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인지도 깨닫게 되었다고 전한다.
고우 스님이 생각하는 불교 공부란, 자기를 비우는 것이다. 자기를 비우면 지혜와 자비가 드러나 영원한 자유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우룡(雨龍) 스님은 《능엄경》을 볼 때는 스스로 아라한이 되고, 《금강경》을 볼 때는 스스로 수보리가 됨으로써 부처님과 직접 대화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일러준다. 내가 바로 당사자가 되어 그 시간과 공간, 그 자리에서 직접 질문한다는 마음으로 경을 봐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불공이란 이제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언행 등을 반성하는 자신에 대한 참회가 기본임을 거듭 강조한다.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강원이 있는 현당 큰방에서 예불을 마치고 대웅전·장경각에 예불하기 위해 대웅전 계단에 올라섰는데, 하늘과 땅이 없습니다. 물질세계가 없어요. 몇 천만 리 그저 훤한 세계가 보입디다. 그러니까 눈앞에 대적광전과 그 앞쪽으로 가려진 산도 없고 들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훤한 황금색 밝은 평야처럼 느껴졌어요. 그 평야 끝에서 빨갛게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여섯 글자가 지평선에 걸쳐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그 여섯 글자를 앞뒤 아무 생각도 없이 쳐다봤어요. 그러니까 시간도 공간도 잊어버리고 딱 떨어져 버린 세계예요. 나는 그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뒤따라오던 도반이 예불하러 안 가고 우두커니 서서 뭐 하냐고 내 등을 툭 쳐서 본정신으로 돌아왔지요. 깜깜한 세계 이쪽에 대웅전도 있고, 저쪽에 산도 있고, 들도 있고, 집도 있고…. 그게 결국은 어떻게 이야기하면 공의 세계를 체험했다고도 할 수 있을까요?”
오랜 투병생활을 통해 오히려 불교와 인생에 대한 안목을 얻게 되었다는 무비(無比)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진지하게 귀담아 듣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듣고, 사유하고, 내 몸에 녹아들도록 이치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불교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또한 불교 수행을 위한 동기를 확실하게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아픔을 잊기 위해 화두를 들게 되었다는 근일(勤日) 스님은 “아픈 것을 마음으로 관하라”는 말씀에 따라 행하니 도리어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얻었다고 한다. 정말 공부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모두가 도의 모습이고 도와주기 마련인데, 한 생각 잘못 일으킴으로써 전부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마음으로 공부하되 항상 다행스럽게 여기고, 좌절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병으로 양약을 삼아라.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뜻대로 되면 뜻을 가벼운 데 두나니,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수행을 삼아라.”
무여(無如) 스님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반성할 것을 권한다. 이렇게 매일의 점검을 통해 고칠 수 있는 것을 고쳐나가다 보면 하루하루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수행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점도 많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일깨워줌으로써 참선을 하려는 마음을 내도록 돕는 일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다양한 경계를 체험한 것으로 잘 알려진 혜국(慧國) 스님은 인간의 잠재의식에 주목한다. 잠재의식을 바로잡는 것이 곧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며, 운명 또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혜국 스님이 말하는 참선이란, 바로 이 잠재의식을 바로잡아 운명을 개척하는 길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내 안의 문제로 인식하고 내 마음을 바로잡아 업력과 잠재의식을 변화시켜 나가라고 전한다.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정말로 중노릇을 잘 해봐야지’ 하고 ‘어째서, 어째서…’ 하며 몇 시간이 지나갈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서는데 그러다가 또 좌절이 와요. 졸고 또 졸고 하다가 어느 날 저녁에 다짐을 하고 발우를 머리 위에 올려놨는데 눈을 뜨니 해가 뜨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벌떡 일어났는데 그때 발우가 와장창했어요. 그 와장창 하는 소리 찰나 간에 내가 없어져 버리더라고요. 거기에서 뭔가 달라진 거예요. ‘이제 됐구나!’ 그 길로 방을 박차고 나와서 온 산을 헤매고 다녔어요.”
선지식들이 다양한 수행법과 진기한 체험담 속에서도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누구나 다 본래 부처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착각에서 깨어나 자기를 바로 보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본래 부처임을 깨닫기 위해, 착각에서 깨어나기 위해 이러한 선문답과 참선 공부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 현대인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번뇌에 시달리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욕심을 버리고 ‘참나’를 발견하는 진정한 수행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선을 수행함으로써 마음의 번뇌와 욕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마음이 부처라는 진리를 명심하고 오늘을 성실히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게 된다고 가르친다.
치열한 구도의 과정과 그 속에서 얻게 된 깨달음을 생생하게 담은 이 책은 일생동안 온몸을 던져 마음공부에 전념해온 선지식들의 살아 있는 수행기록이자 공부의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생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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