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자살

때로 사람은 자살을 선택한다. 그 이유가 심각한 우울증에 의한 것이든,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든, 숭고한 뜻이 담긴 것이든, 그동안 자살은 지성과 감정이 발달한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물도 특별한 경우 자살을 한다. 자살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동물처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자살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자의식이 없는 세포가 자살한다니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세포 자살은 우리 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세포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희생정신’ 때문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도대체 ‘자살’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세포의 죽음은 어떤 것일까?

'아포토시스', '예정세포사'라 불리는 세포 자살.

 

네크로시스(타살) vs 아포토시스(자살)

‘세포 자살’이 있다는 말은 ‘세포 타살’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타의적인 죽음은 네크로시스(necrosis), 자의적인 죽음은 아포토시스(apoptosis)라고 불린다. 세포의 타살과 자살은 그 과정과 형태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타의적인 죽음인 네크로시스는 세포가 손상돼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세포 안팎의 삼투압 차이가 수만 배까지 나면 세포 밖의 물이 세포 안으로 급격하게 유입돼 세포가 터져 죽는다. 마치 풍선에 바람을 계속 불어넣으면 ‘펑!’ 하고 터지듯이 말이다.

반면 자의적인 죽음인 아포토시스는 세포 스스로 죽기로 결정하고 생체에너지인 ATP를 적극적으로 소모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는 유전자가 작동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네크로시스와는 정반대로 세포는 쪼그라들고, 세포 내의 DNA는 규칙적으로 절단된다. 쪼그라들어 단편화된 세포 조각들을 주변의 식세포가 시체 처리하듯 잡아먹는 것으로 자살의 과정이 종료된다.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도록 결정이 되면, 세포는 쪼그라들고, 세포 내의 DNA는 규칙적으로 절단된다. 단편화된 세포 조각들을 주변의 식세포가 잡아먹는 것으로 자살의 과정은 종료된다.

 

세포가 자살을 택하는 이유

그렇다면 왜 세포는 자살을 선택할까? 진화의 관점으로 본다면 개별 세포도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마땅한데 스스로 죽기를 택하다니 역설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세포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신이 죽는 것이 전체 개체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던져 전체를 살리는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인체 내에서 세포 자살이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발생과 분화의 과정 중에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기 위해서 일어난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서 꼬리가 없어지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은 태아의 손이 발생할 때 몸통에서 주걱 모양으로 손이 먼저 나온 후에 손가락 위치가 아닌 나머지 부분의 세포들이 자살해서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손 모양을 만든다. 이들은 이미 죽음이 예정돼 있다고 해서 이런 과정을 PCD(programed cell death)라고 부른다.

세포 자살은 발생과 분화의 과정 중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기 위해 일어난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면서 꼬리가 없어지는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출처: (CC)LiquidGhoul at Wikipedia.org>

세포 자살은 세포가 심각하게 훼손돼 암세포로 변할 가능성이 있을 때 전체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기도 한다. <출처: gettyimages>

다른 하나는 세포가 심각하게 훼손돼 암세포로 변할 가능성이 있을 때 전체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세포 자살이 일어난다. 즉 방사선, 화학약품,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나면 세포는 이를 감지하고 자신이 암세포로 변해 전체 개체에 피해를 입히기 전에 자살을 결정한다. 이때 아포토시스 과정에 문제가 있는 세포는 자살을 못하고 암세포로 변한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아포토시스와 암의 관계를 알게 되자 암세포의 세포 자살을 유발하는 물질을 이용해 항암제를 개발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포 자살 연구로 암 치료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도록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하는 P53(푸른색 부분). <출처: (CC)Thomas Splettstoesser at Wikipedia.org>

그렇다면 아포토시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날까?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에는 수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이 관여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전자는 p53이다. 많은 세포에서 p53은 세포의 DNA가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경우, 세포 분열을 멈추고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도록 시동을 켜는 역할을 한다. 반면 bcl-2 유전자는 아포토시스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일단 아포토시스가 일어나도록 결정이 되면, 단계적인 유전자 조절 과정을 거쳐 캐스패이즈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키게 되는데, 이들이 미토콘드리아의 핵심 단백질 NDUSF1을 파괴하여 세포 사멸에 이르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아포토시스의 중간 과정 물질들을 통해서 세포 자살을 유도하거나 막는 방법으로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제어하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세균 등을 죽이는 역할의 T-면역세포(Tk cell)도 아포토시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식세포 등이 세균을 둘러싸 잡아먹는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는 데 반해 T-면역세포는 보다 똑똑하게 죽인다. 세균이 몸 안에 침입하면 T-면역세포는 세균에 달라붙어서 세균의 세포벽에 구멍을 뚫고 아포토시스를 유발하는 물질을 집어넣는다. 세균은 원치 않는 자살의 과정을 겪게 된다.

이처럼 아포토시스는 우리 몸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도와주며, 정상세포가 암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자신이 죽어야할 때를 알아 기꺼이 사멸하는 세포처럼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손해도 감수할 수 있다면 우리가 속한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김정훈
KAIST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세포생물학을 전공했다. 현재 동아사이언스의 기자이자, 과학쇼핑몰인 시앙스몰(scimall.co.kr)의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과학상품 잡지인 [시앙스가이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출처 김정훈, [과학도시락], 은행나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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