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언어로 삶의 환희를 그려내는 작가 이명랑 장편소설
삼오식당
사람 냄새 나는 날것의 문장, 살아 숨 쉬는 해학과 풍자
경험의 언어로 삶의 환희를 그려내는 작가 이명랑 대표작
사람 냄새 나는 경험의 언어로 삶의 환희를 그려내온 작가 이명랑의 소설 《삼오식당》이 새로운 장정으로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2002년 첫 출간 당시 독자와 평단,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삼오식당》은 영등포시장 식당집 둘째딸이었던 작가의 기억과 체험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영등포 시장을 무대로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들의 애잔한 눈물과 희망찬 웃음, 삶의 악다구니를 따뜻한 시선과 구성진 입담으로 그려냈다.
《삼오식당》은 작가의 또 다른 장편 《꽃을 던지고 싶다》, 《나의 이복형제들》과 함께 ‘영등포 삼부작’으로 일컬어진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우리들의 화장실> 등 모두 일곱 편의 연작이 실려 있는 《삼오식당》에서 작가는 소설가이자 이십 대인 여성의 꾸밈없는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시장 사람들의 삶의 해학과 슬픔을 생생한 장터의 언어로 그려낸다.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강퍅한 시장의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시장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공감과 이해, 그리고 연민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이 주목하지 않았던 삶의 현장, 영등포시장을 한국문학사의 중요 공간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삼오식당》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인생에 히든카드 하나 없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을 견뎌낼까?
그때부터 저는……“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인생에 ‘그러나’로 시작되는 히든카드도 하나 뒤로 감추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을 그 박복한 운명을 견디어내는 것일까?”를 소설의 화두로 삼게 되었지요. _‘작가의 말’에서
《삼오식당》의 화자인 ‘나(이지선)’를 통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영등포시장 속 다양한 군상을 만나볼 수 있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은 영등포시장 안, 삼오식당 둘째 딸인 ‘나(이지선)’의 혼수를 들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나’가 ‘나랏밥 먹는 나리들’의 집안으로 시집가게 되자, 삼오식당 여주인인 엄마는 부족한 것 없이 보내려는 마음에 천만 원짜리 대리석 장롱을 준비한다. 그것을 보기 위해 시장 사람들은 저녁 무렵까지 시끌벅적하게 모여든다. <까라마조프가의 딸들>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노름꾼 남편을 둔 0번 아줌마가 남편 대신 종업원 황씨에게 가게를 맡기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한편 식당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돌보는 엄마의 빠듯한 하루와 한평생 밥장사를 하면서 생긴 퉁퉁 부은 무릎을 <엄마의 무릎>에서 만날 수 있다. <보일러실 쟁탈전>에서는 다가구 주택에 사는 ‘나’와 ‘은지 엄마’가 보일러실 사수를 위해 구둣방 사장에 맞서 합동 작전이 펼쳐진다. <잔치>에서는 자기네 가겟방 아랫목에 붙어 앉아 있던 봉투 아줌마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당진상회 할머니가 굿을 하고 난 음식으로 시장 사람들을 모아 뒤풀이를 벌이는 장면을 ‘잔치’로 표현했다. 공교롭게도 굿을 한 다음 날, 봉투 아줌마는 당진상회 할머니에게 봉투 장사를 하던 평상을 넘겨준다. <결승선에서>는 난치병이 있는 영선이 장터 안, 무료 치료기 체험을 하는 장면을 담았다. 영선은 병이 나으려면 치료기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주변 성화에 떠밀려 치료기 위에 눕는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화장실>에서는 시장에 하나 있는 똥할매의 화장실을 둘러싼 소동을 담아놓았다.
영등포시장에서 이루어진 생활의 발견, 배설의 축제
내가, 어른이 아니어서 할 수 없는 거, 그건 대체 뭐냐고 물었더니 현미는 눈물 자국마저 깨끗이 닦아낸 얼굴로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 그거? 우리 작은언니가 그러는데, 그건 생활이래.” _<까라마조프가의 딸들>에서
<까라마조프가의 딸들>에서 영악한 셋째 딸 현미는 어른이 아니어서 할 수 없는 것이 뭐냐는 ‘나’의 물음에, “그건 생활”이라는 답을 찾아낸다.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생활이라는 것이다. 그 어떤 분노도, 미움도, 사랑도, 희망과 절망도 극단화하지 않고 삶의 흐름 속에 녹여버리는 것, 그렇게 “언제나 현재뿐인 삶”(<우리들의 화장실>)을 살아가는 것이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생활’의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삼오식당》은 영등포시장에서 이루어진 ‘생활의 발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이자 중심이 ‘삼오식당’인 것은 상징적이라 할 만하다. 과일 장사꾼을 최고로 치고, 식당을 최하로 치는 영등포시장이지만 이들의 생활을 가능케 해주는 토대는 ‘밥’이다. 밥은 분노, 미움, 사랑, 희망, 절망을 삭이고 또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등장인물들이 크고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꾀하는 온갖 자질구레한 간계와 술책들도 밥 속으로 몰려든다. 이 밥은 또 똥과 오줌이 되어 순환한다. 《삼오식당》의 마지막에 <우리들의 화장실>을 배치한 것도 큰 상징성을 갖고 있다. 자기 몫의 가난과 불우함 때문에 괴롭고, 그 괴로움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던 영등포시장의 아줌마들은 공원의 ‘친환경적인 소멸식 화장실’에서 배설의 축제를 치른다. 이 유쾌하고 놀라운 ‘배설의 소설학’은 자칫 불운의 파노라마에 그칠 뻔한 <삼오식당>의 이야기를 카니발리즘의 특성을 갖는 소설로 발전시킨다.
시장통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들의 신산한 이야기
소설에서 영등포시장은 누구든 돈의 엄청난 위력을 수긍할 수밖에 없고, 또 그곳의 규칙에 의해 해석되고 판단되는 관습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까닭에 《삼오식당》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여성수난사’의 성격을 띤다. 이곳의 남성들은 주로 여성들에게 수난을 초래한 가해자들이다. 남성들은 그녀들에게 불운과 가난과 눈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계의 책임을 지워주었을 뿐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여자가 돈 버는 거, 이것처럼 슬픈 인생이 어딨어?”(<잔치>)라는 당진상회 할머니의 탄식은 《삼오식당》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이 함께하는 것이라도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작가의 눈에 비친 영등포시장은 ‘여성적 공간’이다. 물론 그의 소설에는 많은 남성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서사적 기능은 제한적이고 또 대체로 부정적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술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고 바람피우고 이따금 간계를 구사할 뿐, 시장의 리듬을 주도하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시장을 무대로 삼은 소설들이 주로 남성적 시선에 의해 구조화되었던 데 반해, 작가는 그 시선을 여성의 것으로 교체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삼오식당》을 시장에 관한 페미니즘적 보고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시장에 관한 풍자
- 최고가 낙찰을 위해 경쟁하는 연옥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작품 해설에서 “《삼오식당》은 우리 시대의 만연된 ‘부잣병’이 시장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인간을 황폐화하는가를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작”이라고 말한바 있다. 오늘날의 시장은 더 이상 예전의 아고라 같은 광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최고가 낙찰을 위한 연옥으로 한쪽은 천국, 다른 한쪽은 지옥과 통하는 길목이라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인간이 경쟁하고 사는 모든 곳이 연옥이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흥미로운 사건을 전개시키는 《삼오식당》의 소설 공간은 영등포시장이다. 이런 곳에는 사소한 이익을 위해 처절한 아귀다툼을 벌이는 영악하고 속된 사람들이 그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원초적 본능의 세계라고 해서 부정적인 모습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그들끼리 서로 기대어 따뜻하게 감싸고 화해하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한 어울림은 가진 것 없고 더없이 속물적인 인간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함으로 빚어내는 아슬아슬함을 동반하고 있기에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욱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의 이러한 두 얼굴은 모순적이지만, 동시에 다양한 사건을 활기 있게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인간에 대한 탐구를 가능케 한다. 그리하여 작가가 구축한 영등포시장이라는 공간은 우리네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시장의 은유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이미 성장 과정에서, 또 영등포시장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시장의 양면성을 체득했다. ‘경험의 언어’를 가진 작가는 세태소설의 전통과 실존적 성찰을 적절하게 결합시킴으로써, 한동안 잊혀졌던 서사성 강한 리얼리즘 소설의 가능성을 다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태원과 양귀자의 소설이 청계천변과 원미동이라는 공간 이미지를 선명하게 남겼듯이, 이명랑이 구축한 영등포시장 역시 한국문학사에서 오랫동안 뚜렷한 소설적 잔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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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풍속에 대한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묘사보다도, 시장의 날언어들이 펼치는 해학과 넉살의 장판보다도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강퍅한 시장의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시장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 그리고 연민이다. _서영인(문학평론가)
우리 시대의 만연된 ‘부잣병’이 시장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인간을 황폐화하는가를 풍자적으로 묘파해준 문제작. _임헌영(문학평론가, 민족문학연구소 소장)
분명, 이명랑의 《삼오식당》은 그의 동년배 세대의 젊은 작가들의 서사와 큰 차이를 보인다. 영등포시장의 삶과 직접 부대끼면서 건져올린 소설의 언어는 이명랑만의 고유 브랜드를 확보한다. _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어머니가 있는 골목 | 까라마조프가(家)의 딸들 | 엄마의 무릎 | 보일러실 쟁탈전 |
잔치 | 결승선에서 | 우리들의 화장실 | 작품 해설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