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금기도 억압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눈길도 스스로의 검열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조금 다른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기획자들이 비밀리에 접선했기 때문에 누가 뭘 썼는지 참여 작가끼리도 서로 모른다. 얼굴 사진 없이, 암호처럼 지어낸 약력으로 매달 한 편씩 <문장웹진>에서 독자들을 만나왔다. 은행나무에서 단행본이 발간된 후 일 년 동안의 비밀 유지 기간이 끝나면 각자의 이름을 밝힐 수도 있고 계속 그대로 둘 수도 있다. 살짝 윙크하는 소설가를 만난다면 참여 작가일지도 모른다.
* M_물고기자리
아직 순수했던 시절 어느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다른 수상작들이 전부 야한 소설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최신경향’을 따라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어느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교복 입은 여고생 독자로부터 “저기요, 소설 이렇게 쓰시면 안 되거든요” 하는 준엄한 지적을 받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 겨우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 V_뼈바늘
신비주의, 라는 말을 좋아한다. 벼락치기, 라는 말을 즐겨 행한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우더 팩트 하나 사서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이거 다 떨어지면 또 사다드릴게요, 한마디 하기까지 팔 년 걸렸다. 내내 소설로 ‘기억’하리라고 다짐하고 있다.
* H_달밤에 고백
건강식품 판매원, 관공서 계약직, 록밴드 보컬, 성인영화 시나리오 작가, 심부름센터 직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귀금속센터 경비 일을 하며 틈틈이 쓴 단편으로 당선. 여전히 순찰을 돌고 있다.
* W_해피 쿠키 이어
참 보통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그 말엔 ‘(성깔이) 보통 아니다’라든지 ‘(유난스러운 게) 보통 아니다’라든지 칭찬보다 욕의 함량이 더 높은 것 같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말 아름다웠던 잡지에서 데뷔를 했고, 그 이후로는 숨 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계속 이야기로 숨 쉬고 싶다.
* S_거기에 그렇게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나 경솔함을 떨치지 못했다.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그림도 곧잘 그린다. 운동은 평생 못했고 잘하는 게 소원이다. 훌륭한 사람, 책, 영화, 언론을 좋아한다. 사람은 꼭 훌륭하지 않아도 좋다.
* R_18인의 노인들
어느 날 라마 털로 짠 담요를 두른 채 남미의 민요를 불러대는 괴상한 토끼의 방문을 받았다. 그 뒤로 생각지도 못했던 소설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 A_비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생애 혹은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 일생의 대부분을 서울의 중층에서 단독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드라큘라나 좀비, 문창과 어류무리들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문학의 여러 층을 넘나들고 싶어 하나 부레가 작다고 한다.
* Q_나무힘줄 피아노
철은 없고 돈도 없고 꿈과 소재는 많고 손끝은 무디고 아직 쓰지 않은 걸작 때문에 신나다가 슬프다가 한다. 쓰는 지옥과 쓰지 않는 지옥 중에서 쓰지 않는 지옥 쪽이 더 끔찍해서 혹시 내가 작가가 된 것은 아닐까 신기해하고 있다.
* L_나와 난쟁이와 유원지
1. 엘. 이니셜을 고르고 보니 대문자는 의자 같고 소문자는 날씬한 선 같아 마음에 든다. 누군가를 편안하게 받아주고 나에게는 흔들림 없이 꼿꼿하고 가능하다면 날씬한 사람이 되고 싶다.
2. 아무도 내가 썼는지 모를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한 곡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고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슬픈 소설이 되었다. 슬픔에 대해 썼다는 게 마음에 든다.
* Z_셋을 위한 플롯
서른이 되기 직전에 등단했다. 그 후로 내내 허접한 소설을 쓰며 근근이 살고 있다. 글 쓰며 사는 삶이 너무 좋지만 글은 좋지 않아 걱정이 많다. 위대한 소설을 쓸 순 없어도 유일한 소설은 써야지, 라는 마음으로 밤마다 노트북 앞에 앉지만 대부분 웹툰만 보고 절망하다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