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요상한 게 유전인 책쟁이 집안의 오방난장 연대기
일본 트위터리언이 뽑은 정말 재밌는 소설 1위
요상한 게 유전인 책쟁이 집안의 오방난장 연대기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는 2009년 제21회 일본 판타지노블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오다 마사쿠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애서가 집안의 비밀을 둘러싼 사건을 다룬다. 서점가의 입소문을 타고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제3회 트위터 문학상 ‘정말 재밌는 국내 소설’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망상과 환상을 통해 인간 심연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필치와 가늠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호평받아온 작가는 이 책에서 환상적인 분위기와 재담 속에 우리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들, 인간됨과 가족애와 사랑에 대한 통찰을 녹여냈다.
단번에 ‘오다 스타일’를 각인시킨
신예 작가 오다 마사쿠니의 놀라운 소설
저자 오다 마사쿠니가 수상한 일본 판타지노블 대상은 제25회를 끝으로 ‘일정의 역할을 다했다’며 중지되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확고한 작가들을 여럿 공인하고 배출해온 상이다. 온다 리쿠, 모리미 도미히코, 스즈키 고지 등이 그 예로, 오다 마사쿠니 역시 선배 작가들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 독특하고 개성 강한 이야기를 써왔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괴짜 애서가 집안의 비밀을 풀어내면서, 식자연하는 만연체의 문장으로 황당무계한 폭로를 사뭇 진지하게 이어간다. 그러나 이렇듯 B급 감수성을 잔뜩 자극하는 요설 속에, 느닷없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예측불허의 감동들이 포진해 있다. ‘일본 서점 직원들이 먼저 알아본 소설’이라 수식되는 이 책은, 애서가들의 입소문을 통해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제3회 트위터 문학상 ‘정말 재밌는 국내 소설’ 1위에 선정되면서 오다 마사쿠니만의 그 기상천외한 매력을 입증했다.
괴짜 애서가 집안이 불러일으킨 전 지구적 동네 판타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만, 서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다. 그렇다면 이목을 피해 밀회를 거듭하고, 때로는 서책의 몸으로 페이지를 섞어서 방사(房事)에도 힘써, 심지어 대를 이을 자식도 낳는 것이 당연한 이치. 터럭만큼도 기억에 없는 책이 시침 뚝 떼고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어라’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일은 간혹 가다 있으나, 꼭 깜박깜박하는 머리가 그 책을 산 기억을 고스란히 상실한 탓이라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는 그 같은 성인의 사정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이 내 외조부, 즉, 네게는 외증조부인 후카이 요지로가 장황하게 에둘러서 하던 말이다.
책은 ‘진보적 지식인’이 아닌 ‘산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정치학자 후카이 요지로의 외손자 히로시가 자신의 아들에게 외가의 비밀을 글로 남기는 형식을 취한다. 그 비밀이라 함은, 책에도 암수가 있어 그 사이에서 책이 태어난다는 것. 요지로는 그러니 책의 위치를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지만, 히로시는 자꾸 책을 사들이는 애서가 할아버지가 눙치느라 하는 말이라 여기고 그 금기를 어겨버린다. 그러나 그 순간 듣도 보도 못한 책이 탄생하고, 늘쩡늘쩡한 농담 속에 감춰두었던 후카이가의 비밀이 드러난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능청스레 오간다. 할아버지 요지로의 최대 숙적이 실존하는 에도 시대 명의 오가타 고안의 딸의 손녀의 아들이요, 할머니 미키가 볼셰비키에 쫓겨 남사할린에서 일본까지 흘러들어온 잠정적 소련의 스파이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식이다. 피식 웃음을 주는 이런 설정에 더불어 묵직한 역사적 사건들까지 더해지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색해지면서, 한 애서가의 서가에서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인간과 가족과 사랑,
책 읽는 자들의 궁극적 갈망을 향한 가장 기분 좋은 환상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배 속 깊은 곳에서 네 이름을 천천히 기르기 시작했지 싶다. 사반세기도 더 전부터 언젠가 내게도 아들이 생기면 반드시 게이타로라 이름을 짓자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지로의 인생이 누군가의 그다음이듯, 내 인생이 누군가의 그다음이듯, 네 인생 역시 누군가의 그다음일 테니. 그런 마음을 네 이름에 새기고 싶었다.
이렇듯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허풍인지 너무 진지해 도리어 농담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인지 알 길 없는 이야기 속에 묘한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함께한 시간이 만들어내는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작은 신화들과 닮아 있으며, 그런 애착과 아낌이야말로 우리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하여 작가가 선사하는 소소한 웃음을 즐기다 보면, ‘이야기는 어느새 인생을 품을 만큼 넓어져 있다.’(일본 아마존 서평) 책이 책을 낳는다는 설정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시작해, 인생은 물론 책이라는 물성에 대한 고찰과 빛나는 해답을 건네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