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은 정원에 숨겨진 금기는 무엇인가?
금지된 정원
생명을 품은 정원에 숨겨진 금기는 무엇인가?
날카로운 역사관, 추리적 통찰, 유려한 문장이 빛나는 역사 미스터리
《금지된 정원》은 일제강점기에 영원히 조선을 발아래 두려는 일본의 야심과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조선의 치밀한 두뇌싸움을 풍수사상을 소재로 긴박감 넘치게 풀어낸 역사 추리소설이다. 현재는 사라져버린 총독관저가 왜 경복궁 후원이었던 수궁터 자리에 지어지게 되었는지, 일제 통치의 야욕에 맞서기 위해 평범한 백성인 지관들이 어떻게 머리를 맞대고 지략을 짜냈는지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실마리들을 찾아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로 재구성했다. 그동안 《훈민정음의 비밀》, 《모반의 연애편지》 등 굵직한 역사적 소재들을 여성 특유의 유려하고 섬세한 서간체 문장으로 선보여 대중적인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김다은의 장편소설로, 2013년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을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재출간하였다.
이 작품은 픽션인 역사소설이다.
역사에 가지고 있던 의문에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쁘기도 했지만,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담론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중에 회자되는 불행의 언어를 걷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왜냐하면 이 불행한 언어표현을 계속 사용한다면, 비록 땅은 해방되었지만 우리의 사고와 언어표현은 여전히 식민 상태로 남아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콜로니즘(postcolonism), 즉 후기식민주의가 암암리에 우리의 영혼과 인식 속에 잔존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청와대 구 본관을 허물고 새 본관을 짓듯, 우리의 의식도 새로운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청와대 터가 안 좋아 역대 대통령의 말년이 불운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풍수지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최고의 명당이자 권력의 정점으로 알려진 이곳에 대한 엇갈린 담론의 실체와 오해를 풀기 위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 날카로운 역사 인식과 추리적 통찰이 돋보이는 이 소설을 통해, 기존 팩션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통속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팩션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목숨을 건 두뇌싸움
소설은 테러의 위협을 느낀 총독이 안가를 확보하기 위해 풍수사상가인 지관들을 동원해 경복궁 안 최고의 명당을 찾아내는 과정과, 순종(이왕)의 태무덤에서 하복부가 사라진 젊은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과정이 교차로 그려진다.
일본인 형사 하루키는 전국 명산에 묻힌 조선 왕실의 태항아리를 수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조선철도호텔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던 여성을 만나 우연히 도와주게 되면서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그 후 충남 홍성의 이왕 태무덤에서 하반신과 자궁이 도려내진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조사과정에서 하루키는 미국인 선교사 전도관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세린을 만나는데, 그녀의 모습에서 일전에 자신이 구해줬던 여성과 묘하게 닮은 느낌을 받는다.
한편 조선총독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그리고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기 위해 ‘생명의 집’을 짓기로 하고 조선의 유명한 지관들을 모아 총독관저가 들어설 최고의 명당자리를 찾으라고 명한다. 김 지관은 역시 지관이던 아버지의 유서를 통해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뒤쪽 후원이 천하제일의 복지(福地)임을 알게 된다. 그는 경복궁 후원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 자신의 목숨도 구하면서 동시에 나라의 운명도 구할 기가 막힌 묘안을 내놓는다.
“그림만 보면 산 자의 명당자리를 찾는 양택의 풍수지리도인데, 선친은 왜 죽은 자의 묘도라고 적어놓았을까요?”
“참, 그것 묘한 자리로군. 묘도가 참 묘해.”
“…….”
“하하하, 금지된 정원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구먼.”
“아니 그럼 금지된 정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는지요?”
다소 민망하게 묘도를 내려다보던 김 지관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러면…… 그것이.”
- 135쪽
소설에서 김 지관은 지관으로서의 양심 때문에 명당이 아닌 땅을 추천할 수도 없고, 명당을 추천해 일제의 지배를 도울 수도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데 이 문제를 ‘금원(禁垣)’이란 지혜로 풀어나간다. 지배 야욕으로 가득 찬 총독, 지관과 백성의 본분 모두를 지키고픈 갈등에 휩싸인 김 지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싶은 세린, 단 한 번 스쳐간 여인을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의 하루키, 야비하고 출세 지향적인 지바 형사와 카케노 형사 등 등장인물 모두 서로 다른 갈망 속에서 운명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들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특히 일본의 문화말살 정책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독립투사나 영웅이 아닌, 배우, 풍수사상가, 통역사, 요리가 등 소위 ‘문화투사’들의 활약상을 그려냄으로써 전혀 정형화되지 않은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선보인다.
명당 중의 명당, 금원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은 대부분 실제 기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왕실의 태항아리 수거령이나 총독관저를 짓기 위해 지관들을 동원해 명당을 찾도록 압박했던 일은 모두 우리 역사 속에 실재하는 사건들이다. 또한 태화관 기생이던 명월의 자궁을 도려내 실물표본을 만들었다는 생체 실험도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작가는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조선 문화를 통째로 왜곡시키려 했던 1920년대 일본의 간교한 문화통치 참상을 고발하면서 생생한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 속에 재배치하여 단순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넘어 우리 역사의 진실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서려 한다. 또한 여전히 식민지배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사회에 고통스러웠던 과거사를 복기해 돌아보게 함으로써 현재에도 역시 진행 중인 다양한 질문들에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가도록 한다.
“총독이 그렇게 생명에 연연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뭐 계시라는 것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아마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어서 생명의 위협을 항상 느끼는 모양이지. 계시도 그런 공포감에서 생겨난 환상일 게야.”
“그렇게 생명의 집을 찾아 헤맬 것이 뭬 있겠습니까? 밥 먹는 숟가락이 하나씩이라도 있는 집은 모두 생명이 있는 집이지요. 숟가락이 있는 조선의 모든 집이 생명의 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모든 집이 생명의 집이지.”
- 262쪽
누구나 좋은 땅, 명당을 꿈꾸지만, 먹고 사는 일이 행해지는 곳이면 어디든 ‘생명의 집’이 될 수 있다. 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땅을 차지하는 주인, 인간이 비밀을 푸는 열쇠인 셈이다.
프롤로그 7
1부 13
2부 69
3부 137
4부 191
작가의 말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