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왕관

김다은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0년 2월 21일 | ISBN 9791190492270

사양 변형판 140x210 · 220쪽 | 가격 13,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한 사람을 구원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할까?
창조하는 신, 창작하는 인간.
세계와 언어의 격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은유!
국민문학상 수상작가 김다은 신작 장편소설 《손의 왕관》

굵직한 역사적 소재를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조명해온 김다은의 신작 장편소설 《손의 왕관》이 출간되었다. ‘글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소설은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작가 강천우가 성경 낱장으로 통도배된 방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인류의 스테디셀러이자 신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과 아름답게 조탁된 인간 언어인 ‘시’를 두 축에 놓으면서 《손의 왕관》은 신의 창조와 인간의 창작을 치열하게 대비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조선에 유입된 계기인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일제강점기 일본 고관대작들이 기생에게 신라여왕의 금관을 씌우고 조선을 조롱했던 ‘차릉파 금관 사건’을 소설 속에 녹여내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명예와 권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세계와 인간 언어의 격돌을 아름답고 섬려한 언어로 포착하면서, 이 소설은 언어를 읽고 쓰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한 사람을 구원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할까?

 

 

“술집에 성경을 바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 내기할까요?
평생에 한 번은 신과 줄다리기를 해봐야지요.”

첫 작품의 성공으로 기대와 견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드라마 작가 천우, 그는 차기작을 타진하기 위해 한 술집에서 방송국 제작국장을 만나고, 보조 작가 수동이 술집 벽에 쓴 질문과 마주한다.

Q. 술집을 성경으로 도배하면?
⓵ 사람들이 불편해하며 오지 않는다.
⓶ 성경을 무시하려고 의도적으로 술을 더 많이 마신다.
⓷ 주(酒)님의 영향으로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⓸ 술집이 교회가 된다.
⓹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본문 20~21쪽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천우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라며 코웃음을 치고 차기작의 모티프인 ‘차릉파의 금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국장은 드라마2국의 신설에 분노하며 시청률만을 강조하고, 국장의 무관심 속에 천우의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된다. 작업실을 찾던 천우는 연을 끊어온 친형 만우를 피해 오랜 친구 우걸에게 연락한다. 우걸은 자신의 밭 옆의 농막을 작업실로 내어줄테니 자신이 살고 있는 청송으로 오라고 제안하고, 천우가 장난삼아 던진 말에 반응하며 천우가 머물 집을 성경으로 도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술 먹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 했던 이야기였어. 성경을 술집 벽에 바르면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내기를 해보자고 했거든. 말이 그렇지, 그런 쓸데없는 내기를 누가 실행에 옮기겠어. 무심코 한 말인데 네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여놓았더라고.”
“너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어?”
“5번.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가 있으면 어쩌려고? 성경 말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아?”
―본문 51~52쪽

천우가 성경으로 통도배된 집에 머무는 동안 우걸은 천우의 형인 만우에게 연락하여 천우가 청송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정을 꾸린 만우는 자신이 천우가 쓰는 글을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오해했던 과거를 아쉬워하고 이번 기회에 화해를 하고자 청송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천우가 자리를 비운 탓에 만남은 성사되지 못하고, 만우는 우걸과 함께 성경을 바른 방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돌아간다.

“어떻게 시를 이해하게 되셨습니까?”
“아버지가 되니 이해가 되었어. 사랑하면 다 이해가 되나봐. 그런데 천우가 이 시들을 벽에 붙여 달라고 했나?”
―본문 93쪽

한편 천우는 고립된 농막에서 지내다가 밤만 되면 산 중턱에서 환하게 빛나는 왕관 모양의 건물을 발견한다. 천우는 그것이 차릉파의 금관이자 자신의 앞날을 상징하는 금관이라고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금관을 쓰는 꿈에 부풀며 시나리오를 전송한 날, 우걸은 만우와 함께 농막을 찾아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꺼낸다. 돌아가신 두 형제의 아버지에게 숨겨진 재산이 있다는 것.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우걸은 두 형제에게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질문을 던진다. 성경이 도배된 방과 아버지의 유언은 어떤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불가해한 언어를 온몸으로 뚫고나가는 인간 언어의 투쟁,
불가역의 세계를 움직이는 인간의 상상력!

이 소설은 신의 언어를 부정하는 작가 ‘강천우’를 통해 언어와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다. 인간 언어를 다루는 천우가 성경과 반목하는 순간은 신의 언어와 인간 언어가 치열하게 격돌하는 언어 전쟁을 재현한다. 《손의 왕관》은 불가해한 언어인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뚫고 나가려는 인물이 겪어내는 우여곡절을 여러 비유와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창작과 창조를 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쓰는 사람인 천우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은 신의 창조를 연상하게 한다. 창작 속에서 인간은 절대적 창조자로서 자신의 세계를 끝내 펼쳐내려고 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1인칭과 3인칭을 가로지르며 표현해낸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입장과 관점을 동등하게 발화하면서도, 신의 언어와 싸우는 인간의 고집과 위엄을 최대한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신의 언어를 온몸으로 고집스럽게 통과해 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한편 《손의 왕관》은 역사의 순간을 지금의 눈으로 다시 써내며 불가역의 역사를 현재로 끌어들여 새롭게 고쳐 읽게 만든다.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차릉파 왕관 사건’은 첨예한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며 동시에 소설 전반에 걸친 신의 권능과 인간 권능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기생 차릉파에게 신라여왕의 금관을 씌우고 일본의 고관대작을 접대하게 한 차릉파 왕관 사건은 천우가 작성하는 시나리오 속에서 차릉파가 접대를 거절하는 사건으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다시 쓰기는 인간 창작자의 권능 속에서 뒤틀린 역사를 다시 읽게 한다. 한편 제너럴셔먼호에 탔던 선교사가 고작 성경 몇 권을 조선에 던지고 순교한 사건은 일면 실패의 기록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성경의 낱장이 주막에 도배되고 후에 그 주막이 교회가 되는 사건은 무용하게 보이는 선교사의 죽음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이는 차릉파 왕관 사건과 비교되며 진정한 권능이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창작하는 손에서 시작된 언어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조명함을 보여줌으로써 《손의 왕관》은 세계와 언어를 대비하면서도 인간의 상상력이 불가역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다시 인간 언어의 방식으로, 소설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 작가의 말
나의 딜레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의 언어와 맞닥뜨리며 시작됐다. 창조와 창작! 신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서 불가피하게 펼쳐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직업의 특성상 인간의 언어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작가가 신의 언어 앞에서 얼마나 헤매었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글을 쓰고 글을 가르치면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할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시대와 가치 판단이 아무리 변해도, 그 책은 한정된 언어로 그토록 수많은 사람을 구원했으니 어찌 저항할 수 있었으랴.

 

 

▣ 책 속에서
성경의 언어는 인간에게는 막다른 글쓰기다. 한 글자도 한 획도 함부로 바꾸지 말라고 했다. 그런 전제주의적인 글은 인간의 상상력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의 언어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운명을 허용한다. 성경의 역사는 예수를 통해 인간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했지만, 나는 내 상상력을 통해 죽은 차릉파를 살려내고 인간을 살려낼 것이다. 성경은 말씀으로 역사하신다고 하지만, 나는 내 기호와 문장들로 새 역사를 만들어갈 것이다.
―본문 84~85쪽

 

“신라의 여왕이 행차하셨습니다! 다들 고개를 숙이시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낄낄거렸다. 폭죽이 터졌고, 사방에서 ‘보이’들이 맑은 술을 배달했다. 조자치는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 중앙 좌석에 앉아 있는 관장에게 다가가서 술을 따르라는 신호였다. 그녀는 갑자기 여왕의 자존심으로 그에게 술을 따를 수 없을 것 같은 심정이 생겼다. 그때 노기를 띤 음성이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 나라의 여왕은 일본인 누구에게나 술을 따를 수 있을 만큼 미천한 존재다. 술을 따르거라.”
차릉파는 술을 따르지 않았다.
―본문 147쪽

 

어둠 속에는 방향이 없음을 여태 몰랐다. 방향이란 나 자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오른쪽과 왼쪽이 정해지고 앞과 뒤도 정해진다고 믿었었다. 인간의 몸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내 오른쪽이나 내 앞이나 의미가 없다. 방향은 빛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빛 안에서만 제대로 방향을 잡을수 있다.
―본문 179~180쪽

 

나는 시를 지킬 마지막 전사다. 나는 인간의 자존심을 걸고, 시인의 자존심을 걸고, 꿋꿋하게 내 죄의 길을 걸어가리라. 그것이 오로지 죽음을 향한 것이라도 그것조차 달콤하게 승복하리라. 내 죄는 내가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못에 스스로 박혀 죽으리라. 장렬한 시인의 죽음을 맞으리라.
―본문 211쪽

목차

프롤로그 7

1부 네가 가서 아무리 말해도
당나귀들의 뒷발질 13
빛의 왕관 27
시의 여왕 36
하늘의 천 46

2부 고양이의 실체
고양이의 실체 65
손가락의 예언 74
사슴의 갈급함 86
성경방의 비밀 95

3부 감옥의 왕
감옥의 왕 111
죄의 공룡 129
차릉파의 왕관 141

4부 의인
공개 157
어둠의 독방 172
모순의 언어 185
은유의 극점 196

작가의 말 216

작가 소개

김다은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와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전2권)》가 1996년 국민일보가 주최한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및 창작집 《모반의 연애편지》, 《훈민정음의 비밀》, 《이상한 연애편지》, 《러브버그》, 《쥐식인 블루스》, 《위험한 상상》, 《푸른 노트 속의 여자》와 문화칼럼집 《발칙한 신조어와 문화현상》, 《너는 무엇을 하면 가장 행복하니?》, 서간집 《작가들의 연애편지》, 《작가들의 우정편지》, 《작가들의 여행편지》, 《해에게서 사람에게》를 출간했다. 프랑스어로 집필한 소설 〈Imagination dangereuse〉, 〈Madame〉을 발표했으며, 《다른 곶》, 《에쁘롱》,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를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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