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이야기
유연한 손과 물결치는 음표 사이에서
세계를 관찰해온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
그가 전하는 음악과 예술에 깃든 자유로운 삶
음악과 예술에 대한 그의 지적인 통찰은 더 많이 상상하고 사유하기를 요구함으로써,
비로소 아름다움이라는 미지 앞에 당도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_천희란(소설가)
악기를 초월한 피아노의 무한한 가능성,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영혼과 가치를
독자들에게 섬세하게 전달한다._김선욱(피아니스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인류학자이며 오랜 세월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건반 위의 철학자’ 러셀 셔먼의 음악 에세이 《피아노 이야기》가 새롭게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피아니스트를 비롯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에서 셔먼은 음악가로서의 섬세함과 철학자로서의 깊이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글을 써낸다.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과 문명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며 삶에 대한 통찰과 음악의 원천을 탐구하려는 열정을 가득 비춘다.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관찰해야 하고 더 나아가 기존의 틀과 관습에 물음을 던지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의 역할과 기능, 선율과 멜로디의 구성 방식 등 연주 기교에 대한 단상부터 곡의 해석과 개념에 대한 설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며 피아노 전공자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음악과 예술을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접근한다.
책은 게임, 가르침, 상관관계, 악보, 그리고 코다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짧은 에세이와 아포리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게임_ 피아노 연주는 몸 전체의 유기적인 움직임이다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넋을 잃은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 독사, 수증기,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_13쪽
‘게임’에서 셔먼은 아름다운 소리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 건반 위에서 손가락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척추와 다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등 연주의 기본이 되는 소리(음)와 최고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신체적 조건들에 관해 조언한다.
특히 개개의 손가락의 역할과 이를 단련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글은 시적인 동시에 암시적이다. 건반이 손 밑에 있지 않고 손 위에 있는 것처럼 손가락을 위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라,각자 제멋대로 움직이며 무질서하고 서로 어울리지 않지만 절묘하게, 능숙하게 역할을 분담하라 등 건반과 음들의 움직임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면서 각 손가락의 역할을 특징적으로 알기 쉽게 전달한다.
▶가르침_ 뛰어난 연주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한 학생에게 회화의 명암법에 관한 짧은 논문을 쓰라고 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화초를 몇 그루 사서 성장주기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고, 또 다른 학생에게는 러시아의 찻주전자인 사모바르의 이미지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스물다섯 가지 써보라고 했다. 이런 것은 결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일이 아니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훈련일 뿐이다.”_93쪽
‘가르침’에서는 피아노 교육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 즉 음악 교육의 제도적인 문제, 선생과 연주자의 자질, 선생의 역할, 연주자의 마음가짐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특히 셔먼의 독특한 교수법은 주목해볼 만하다. 그는 학생들이 고난이도의 기교를 연마하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연주,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독특한 연주를 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 그는 릴케, 버나드 쇼, 니체 등의 작품을 인용해 학생들의 사고력을 넓히고,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탐구를 통해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천편일률적인 연주가 유행하는 연주계와 인습적인 음악 교육의 문제점에 관한 신랄한 비판은 음악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만 피아노에 평생을 걸고 애쓰는 한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상관관계_ 피아노를 아는 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다
“침묵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 청각이 퇴화하기 때문이 아니라, 침묵은 음악적인 (그리고 시적인) 생각의 틀이자 안정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탄산수이며, 상쾌한 공기이며, 천사의 지시를 받기 위해 건너야 할 존경의 다리요 방식이다. “나는 음표는 몰라도 쉼표는 다른 피아니스트들보다 더 잘 연주한다”고 한 아르투르 슈나벨의 말을 상기해보라.”_192쪽
셔먼은 연주가 단순한 기교가 아닌 세상과의 교감과 조화라고 강조한다. 이 장에서는 광범위한 인문학적 지식(신화학, 생태학, 문학, 언어, 우주학, 탱고)을 바탕으로 작품의 문화적 및 철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예술의 의미, 위대한 작품의 조건, 연주에 있어 표현력의 문제 등 예술의 본질적인 문제에서부터 대중 매체와 음악 산업의 폭력 등의 시사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걸쳐 자신의 다양한 견해를 거침없이 역설한다. 그러나 여기에 맹목적이고 소모적인 비판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콩쿠르의 잘못된 관행과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주계에 당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짧은 단어들로 단정 짓고 평가하기 이전에 평가자들의 자격과 권위를 먼저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보_ 교사는 학생을 악보로 인도할 뿐이다
“악보는 지도와 같다. 이정표, 도로, 교차로, 우회로 등이 음악적 형식의 청사진이 되고, 감각에 새겨진 음들의 토론장이 된다. 파란 음, 회색 음, 단단하거나 말랑말랑한 음, 빛나거나 매끄러운 음, 오목하거나 볼록한 음, 파릇파릇하거나 향기로운 음. 이리하여 음악적 상상력이 음들의 지도에 풍경의 특징들을 투영한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의 눈에는 모든 음표가 흑과 백으로,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므로 전체적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물론 그 보상은 매우 값지다.”_199쪽
‘악보’에서는 악보와 연주와의 관계, 악절의 구성, 음과 화음, 동기와 악절 간의 관계를 통해 음악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리스트, 하이든, 쇼팽의 음악 세계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이어진다. 셔먼은 특히 상투적인 표현과 기교로 넘치는 연주, 판에 박힌 작품 해석을 비판하며, 고전주의, 낭만주의라는 식으로 고정적인 틀 속에 갇힌 대가들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곡에 대한 냉소주의와 소비주의식 비평에 의해 왜곡된 음악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한편, 꿈을 꾸게 하고, 삶의 고통을 치유하는 음악을 옹호한다. 그리고 마침내 ‘코다’에서는 한 가지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단상들이 펼쳐진다.
셔먼의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계,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 찬 세계 앞에 우리를 당도하게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매일의 삶과 피아노와 음악이 되살아날 것이다.
피아노와 더불어_8
게임_12
가르침_78
상관관계_122
악보_198
코다_322
옮긴이의 말_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