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감정의 정치학
타자를 열등하다고 낙인찍음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가장 정치적인 감정
혐오의 대상은 다양하다. 현재 회자되는 혐오가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혐오이기에 다른 인간에 대한 혐오만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혐오의 시작에는 자기혐오가 있고 근대 이후 한국에서 나타난 사례에서처럼 혐오 식품과 혐오 범죄도 있다. 건국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 김종갑은 감정으로서의 혐오를 원론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서양 문학과 철학의 맥을 짚으며 충실하게 추적해나가면서 혐오의 다양한 양상들을 소개한다.
혐오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는 자기혐오다. 내가 되고 싶은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현재의 나를 혐오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도 그 활약상이 그려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구토》의 작가 장 폴 사르트르를 소개한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외부의 충격에 상처를 입는 연약한 육신을 혐오했으며, 사르트르는 자신의 정신적인 자유를 구속하는 육체를 혐오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내면과 정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둘러싼 겉껍질을 혐오했던 셈이다. 결국 자기혐오는 자기애의 일종으로 나타난다. 모든 주체는 되기 싫은 것을 혐오함으로써 보다 우월한 정체성을 취득해 자아를 달랜다.
강자와 약자의 상호 관계에서 불거지는 혐오는
자극적인 발화와 표현으로써 또 다른 혐오를 키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두 가지 사례를 통해 혐오의 역사성을 설명한다. 첫째는 개장국, 즉 지금의 보신탕이다. 개장국은 근대 이전 소고기를 구하기 힘들던 서민들의 보양식이었지만,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서양인들이 우리를 열등하게 볼 것이라 생각하여 숨겨야 할 혐오 식품이 되었었다. 하지만 국제 행사를 성공리에 치르고 경제도 성장하면서 서양에 맞먹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이후, 그 유명한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일갈조차 무시하며 우리는 개장국을 보신탕이란 이름으로 전통 음식에 복귀시켰다. 다른 하나는 ‘삼청 교육대’로 표상되는 혐오 범죄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에 대한 정당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을 법한 불량배들을 사회의 폐단으로 지목하여 반드시 축출되고 교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만들고는, 그들에 대한 국가 폭력을 혐오스러운 불량배에 대한 당연한 처분으로 삼았다. 감정이 사회적인 수준으로 함양되었을 때의 특성을 보면서, 혐오가 그 어떤 감정보다도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감정인 동시에 역사성을 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혐오는 직관적이고 자극적으로 표현된다. ‘탐욕’을 악덕으로 생각한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 영감이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퀼프처럼 탐욕스런 인물을 생김새부터 고약하게 묘사했으며, ‘배신’을 최고 악덕으로 취급했던 단테는 브루투스를 지옥의 제일 하층부에 적치해 엄청난 고통을 안긴다. 현대의 혐오는 더욱 음험하게 나타난다. 아내와 그 정부를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은 〈타임〉지의 표지에 명암 대비를 과도하게 준 머그샷으로 실림으로써 딱딱하게 굳고 어두운 ‘범죄자스러운’ 인상으로 표현되었고, 조카에게 숙청당한 장성택은 다리가 부러져 절뚝대며 최후를 맞았다. 혐오 감정은 혐오해야 할 상대의 열등함이나 악함을 더 잘 드러나도록 조작함으로써 심화되지만, 그 과정에서 수용자들은 저도 모르게 그들을 선천적으로 싫어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동성애나 이슬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사실은 생래적인 게 아니듯이 말이다.
혐오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혐오와 ‘미소지니’의 시차
혐오에 관한 이 책의 논의는 지금 한국 사회를 말하는 가장 강렬한 키워드 ‘여성 혐오’로 귀결된다. 서양의 ‘미소지니(misogyny)’가 번역되며 함께 수입된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서구에서의 전통적인 여성 혐오를 먼저 소개한다. 남성 중심적으로 발전해온 서양사에서 여성은 남성의 이성적 활동을 방해하는 종족 번식의 노예이자 이성을 흐리는 살덩이로 묘사되어왔다. 대표적인 여성 혐오자인 쇼펜하우어나 오토 바이닝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양상이다. 이들이 여성을 존재 자체를 이유로 혐오했다면,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햄릿은 어머니의 신속하고도 그릇된 재혼이라는 ‘행동’을 원인으로 여성 일반을 혐오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는 이들의 계보를 잇는 것일까? 저자는 사회적 특성에 비추어볼 때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가 원론적인 여성 혐오와 거리가 있다고 선을 긋는다. 전통적으로 혐오는 나의 우월함을 다지는 강자의 감정이다. 하지만 요즘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내보이는 감정은 열패감으로 분석할 수 있다. 때문에 ‘미소지니’가 번역되며 붙여진 이름 ‘여성 혐오’가 사실은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잘못 만들어진 것이며, 또 이때 ‘혐오’라는 단어 때문에 실제 나타난 미소지니 현상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혐오 사회
사랑과 정의, 이성의 의지로 혐오의 굴레를 벗어날 것
한국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모든 혐오들은 삶이 팍팍한 사회 구성원들이 우월한 것, 다수인 것, 기득권을 지닌 것을 표방하기 위해 만들어낸 감정이다. 약자와 소수자를 같은 인간의 지위에서 깎아내려 동물화하는 감정인 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인들이 현재 우월하려고 애쓴다는, 곧 열패감에 젖어 있다는 반증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뜨거운 정동(情動)인 혐오를 그 감정 자체로서 분석한 저자의 시도는 우리 사회에 대한 초상이 된다. 혐오 표현의 자극성은 중독적이기에 사람들이 서로 반복해서 발화하다 보면 혐오 감정의 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혐오에 노출된 주체나 타자 모두 혐오 감정에 무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혐오를 또 다른 혐오가 아니라 다른 방향의 에너지로 전복해야만 한다고 제언한다. 그것은 동물화했던 타자를 재인간화하는 사랑일 수도 있고, 폭력에 분개하여 정의로써 저항하는 분노의 감정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싫거나 미운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증상적으로 내뱉는 혐오라는 일차원적인 감정의 재생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성의 의지로 혐오의 굴레로부터 탈피해야만 한다.
한번 읽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 반려인문학
은행나무출판사 〈배반인문학〉 시리즈 출간!
인문학의 효용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관심, 나다움에 대한 발견에 존재한다. 또한 인문학은 스스로 성숙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근본의 힘을 제공한다. 〈배반인문학〉 시리즈는 이처럼 ‘나’를 향한 탐구,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질문과 그것을 둘러싼 사유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현대철학과 사회의 화두인 ‘몸’을 매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필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선정해, 일상 속 인문학적 사유를 쉽고 명료하게 펼쳐낸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배반인문학〉의 다채로운 사유의 항해에 몸을 실어보자.
들어가며 혐오라는 심미적 감정
1장 혐오란 무엇인가?
생물학적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아름다운 삶과 추한 삶, 웰빙과 혐오
자기혐오의 사도들
타자 혐오: 미움과 싫음
2장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혐오 식품의 발명
혐오 식품의 탈혐오화
혐오 범죄의 연대기
예술과 대중매체의 혐오 만들기
3장 혐오와 정체성
혐오의 역설, 자기애로서의 자기혐오
아름다운 몸과 추한 살
정체성을 위한 혐오
4장 여성 혐오, 또는 미소지니
여성 혐오의 전통과 문화
두 개의 여성 혐오
혐오와 증오: 존재와 행동
만들어지는 혐오
5장 여성 혐오 논쟁: 여성 혐오가 있는가?
페미니즘과 여성 혐오
여성 혐오의 정체
남성성의 쇠퇴와 여성 혐오
여성 혐오의 해부: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와 분노, 그리고 남성의 피해의식
여성 혐오와 여성 비하
나가며 혐오의 구조를 전복해야 한다
인명 설명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