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에센스 02 오직, 내 마음이 느끼는 것 - 후기인상주의
“그림은 눈앞의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펼쳐지는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면의 감정, 인간 존재의 본질, 세계의 구조
보이는 것 너머의 진실을 담아내는 예술의 탄생
오직 다섯 개의 작품이면 된다. 현대미술사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지식 시리즈, ‘아트 에센스’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학계와 현장의 접점에서 활약 중인 현대미술포럼 집필진의 서양미술사 강의를 책으로 만나는 아트 에센스 시리즈는 오직 다섯 개의 대표 그림으로 각 미술사조의 핵심만 파악해 ‘아는 만큼 보이는’ 감상의 기쁨, 명작을 알아보는 감식안, 자신만의 자유로운 예술적 취향을 발견하게 해준다. 매혹적이지만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완벽한 길잡이다.
오직, 내 마음이 느끼는 것 – 후기인상주의
보이는 것 너머, 인간 존재의 본질을 그리다
인상주의가 화가들에게 색채, 소재, 형태의 자유를 주었다면, 후기인상주의는 그 자유로 ‘나만의 그림’을 추구하는 여정이었다. 제2차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전통보다는 실용성을, 권위보다는 객관성을,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거대한 집단의 서사 대신 ‘나’의 서사가 점차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기였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인상주의가 가져다준 ‘자유’ 속에서 이러한 변화를 그림에 반영했다. 쇠라는 과학적인 색채 이론을 그림에 도입했고, 세잔은 ‘원통, 구, 원뿔’과 같은 세상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도형들로 대상의 본질적인 구조를 파악하려 했다. 고흐는 ‘눈에 비치는 것’을 넘어 화가의 내면을, 로트레크는 대상의 내면을 붓질과 색채로 표현해냈고, 고갱은 원시적인 세계를 묘사해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는 그림을 그려냈다. 후기인상주의는 예술가들이 ‘나만의 예술’을 본격적으로 추구한 전환점이며, 그림을 ‘대상의 재현’을 넘어 화가의 자율적 언어로 확장한 도전이었다.
자유로운 예술에서, 오롯한 ‘나다움’을 담은 예술로
‘아트 에센스’ 시리즈는 매혹적이지만 난해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오직 다섯 개의 대표 그림으로 각 미술사조의 핵심만 파악하는 시리즈다. 그 두 번째 책 후기인상주의는 눈에 비치는 것 너머의 진리와 화가의 내면세계를 화폭에 담아낸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의 눈에 포착된 순간의 인상을 담아낸 인상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상과 세계의 구조, 감정을 투영하는 색채, 나아가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그림으로 탐구했다. 후기인상주의는 회화를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에서 자아를 표현하는 예술가의 언어로 확장한 도전이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묘사하는 대신, 색을 자유롭게 활용해 나다움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편이야.” 신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게 이렇게 썼다. ‘나다움’. 그것은 신인상주의를 함축할 수 있는 단어이자, 제2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이 지향해온 것이다. 19세기 후반은 전통보다는 실용성을, 권위보다는 객관성을,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싹트고 있었다. 거대한 역사나 집단의 서사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나다움’을 그림에 녹여내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 현대미술로의 길을 열어준 이들이다.
“나-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눈에 비치는 세상 너머 색과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다
예술이 개성이 뚜렷하고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 대척점에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이 자리할 것이다. 그런데 ‘점묘법’으로 유명한 화가 조르주 쇠라의 별명은 ‘화학자’였다. 그는 인간이 색채를 인식하는 방식을 탐구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냈다.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드는 일반적인 유화와 다르게, 캔버스 위에 촘촘하게 점을 찍어 색채를 구현하는 ‘시각적 혼합’을 고안한 것이다. 거대한 캔버스를 작은 점으로 채우는 작업은 엄청난 인내심과 치밀한 계획을 필요로 했지만, 덕분에 그는 과학이라는 객관적인 언어를 회화에 도입하여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그림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한편 세잔은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보이는 생트 빅투아르산을 반복해서 그리며, 자연에 숨겨진 본질적인 형태에 천착했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자연의 모든 것은 구, 원뿔, 원통을 본떠서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인물화 역시 ‘구, 원뿔, 원통’을 바탕으로 그렸다. 세잔의 〈수욕도〉 속 여성의 신체는 기하학적 도형에 가까운데, 이러한 묘사는 이후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로 시작되는 입체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한편 그는 자연의 근본적인 형태와 함께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고민했다. 그는 우리가 대상을 단일한 시점으로 보는 듯하지만, 사실은 여러 방향에서 본 것을 머릿속으로 종합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입체주의의 원리가 되는 ‘다중 시점’을 도입해, 남다른 정물화를 그렸다. 세잔이 그린 ‘사과’들이 놓인 정물화는 앞, 뒤, 위, 옆에서 본 모습이 공존한다. 그는 자연의 근본적 형태와 인간의 인식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자신만의 회화 언어로 전달했다.
“그림은 화가의 영혼과 대상의 내면을 담아내야 한다”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색채, 생의 이면을 포착하는 시선
“저 나무가 어떻게 보이나? 녹색이지? 그럼 녹색을 칠하게, 자네 팔레트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녹색을. 그리고 이 그림자, 이건 파랑으로 보이지 않나? 그럼 망설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파랑으로 그리게.”
_폴 고갱
페루 출신의 어머니를 둔 고갱은 페루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자신을 ‘원시인의 영혼을 가진 문명인’으로 여겼다. 그는 급격하게 발달하는 산업문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탐구하고자 했다. 고갱은 ‘원시의 세계’로 여겼던 타히티로 건너가 인간의 원시성, 곧 ‘원시인 고갱’을 표현하는 작품을 그려냈다. 그에게 색채는 예술가 고갱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고흐 역시 대상의 색채와 형태를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고흐가 그린 밤하늘은 불안한 내면을 따라 일렁이고, 해 질 녘에 고된 노동을 하는 농부의 모습은 밝고 강렬한 색채로 묘사되어 풍요로움과 생명력을 발산한다. 그의 그림에 남은 선명한 감정의 흔적들은 백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객을 전율케 한다.
한편 프랑스의 황금기 ‘벨 에포크’를 누렸던 툴루즈 드 로트레크는 대상의 내면을 그림에 새겨넣었다. 그는 밤마다 성대한 쇼가 펼쳐지는 유흥가 물랭루즈의 인물들을 묘사했는데,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 대신 감춰진 인간적인 면모를 담았다. 신체장애로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귀족 출신의 로트레크는 찬란한 황금기의 빛에 뒤따르는 그늘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다. 그는 타인의 내면 깊숙한 곳의 정서와 공명하여 이를 화폭으로 옮겨내는 화가였다.
인상주의가 화가들에게 관습과 전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었다면,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들이 쟁취한 자유 아래 각자 새로운 길을 열었다.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은 대부분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그들이 대중에게 이해받기에 너무 고유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과 연구를 이어받아 후대 화가들은 야수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등 다양한 사조를 창조했고, 그것은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나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추구한 그들의 삶에서, 우리는 현대예술의 정신과 나다운 삶의 모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사
윤난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19세기 중엽 이후 100여 년은 진정 당대적인, 즉 ‘모던modern’ 미술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과감한 실험을 통한 형식과 기법의 비약적인 전환이 거듭된 이 시기 미술은 그만큼 흥미로운, 그러나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왔다. 한편 인터넷과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이미지의 광범위한 유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당대 미술을 감각적으로 수용하는 이른바 ‘미술 애호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에게 모던 미술은 매혹적인 그러나 난해한 대상이다.
〈아트 에센스〉 시리즈는 이러한 일반 감상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기획되었다. 제목처럼, 당대 미술의 에센스를 뽑아 쉽고도 친근한 어조로 이야기해주자는 것인데, 이번에는 인상주의에서 후기인상주의와 야수주의, 그리고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추적한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교육과 집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사학자들로 이루어진 필진은 각 사조를 대표하는 5개의 작품을 선별하여 그 형식과 내용, 미술사적 의미를 쉽고도 친절한, 동시에 알찬 강의로 재구성한다. 필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참신한 내용 구성과 필체도 주목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바로 옆에서 강의를 듣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끼는 동시에 미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될 것이다. 풍부한 관련 도판, 충실한 주석과 함께 전개되는 내용은 주요 작품을 넘어 당대 미술사 전반을, 나아가 그 사회적 맥락까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이 작은 책이 실제로는 매우 넓고 깊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미술애호가들이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의 이 책을 들고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할 날을 상상해본다. 그들이 그 작품들의 진정한 미술사적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현대미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들어가며
I. 쇠라,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과학자의 시선으로 그린 빛
II. 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세상을 보는 방식’을 그리다
III.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색채에 영혼을 담다
IV.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원시와 상징의 세계
V. 로트레크, <물랭루즈에서> ‘벨 에포크’의 민낯
나가며
참고 문헌
미주
후기인상주의 다섯 개의 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