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떠나 우크라이나로! 국회의원 최용규, 인간중심의 따뜻한 세상을 꿈꾸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
국회의원 배지를 버리고 무국적 고려인들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최용규 의원의 무대책 희망이야기
국회를 떠나 우크라이나로!
국회의원 최용규, 인간중심의 따뜻한 세상을 꿈꾸다
지난해 10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18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들의 생존권 회복을 위한 새로운 행보를 결심한 최용규 의원의 무대책 희망 에세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행나무 刊)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변호사 시절을 거쳐 인천시의원을 시작으로 재선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의 짧지 않은 정치생활 그리고 이제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무국적 고려인들을 돕는 지원 사업에 이르기까지, 최용규 의원 인생 전반에 걸친 수많은 도전과 선택의 과정들을 솔직하게 담았다. 최선의 노력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 그의 굳은 의지와 소신에 관한 꾸밈없는 이야기가 상처받고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감동과 용기를 전해준다.
희망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을 위해 국회의원 배지를 버렸다
러시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하여 중앙아시아 땅에 짐짝처럼 내던져진 고려인들이 그리운 고국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70년. 고통의 세월 속에서 그들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이제는 동포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잊힌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성(姓)과 외모를 지닌 데다 끈질긴 생명 의식까지 빼다 닮은 그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바로 우리의 한핏줄이다.
구소련의 붕괴와 이민족 차별정책에 따른 핍박에 견디지 못하고 희망을 찾아 우크라이나로 몰려든 고려인들은 대부분 무국적 상태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도 없으며, 경제활동조차 마음대로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매일을 생존의 위협과 싸우며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그 역경을 이겨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능력이다. 하지만 누구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우크라이나에 짐승처럼 내버려진 무국적 고려인들에게는 이러한 꿈을 꾼다는 것조차 일종의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비참한 현실보다 더 가혹한 것은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희망과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2만 명 정도의 고려인들이 국적도 없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다. 국적이 없으니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힘들다.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비참하다. 허름한 짐승우리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가 하면 감시를 피해 허허벌판에서 노숙을 하는 이들도 있다. 당장 먹고살기가 힘든 것도 문제지만, 미래가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가혹하다.
이러한 상황에 국회의원 최용규는 다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들의 생존을 돕기 위해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무국적 고려인 돕기 사업은 단순히 민족적 감정에 기인한 구제운동만은 아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식량난, 교역대상 등 우리가 앞으로 처하게 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출로를 발견하였고, 이를 통해 고려인들 스스로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힘을 찾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낯선 땅에서도 싹을 틔우고 풍요로운 농장을 일구어낸 이들이 지금까지의 고통과 시름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인재로 거듭나도록 도우려는 최용규만의 이유 있는 도전이 본격적인 출발선상에 오른 것이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 최선을 다하는 일에 후회란 없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만나야 했던 갈림길들,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도 그에게 후회 따위는 없었다. 매 순간 그가 걸어가는 길마다 나름의 가치와 새로운 목표를 향한 희망이 숨어있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언제나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훨씬 편안한 생활을 보장하는 국회의원의 길을 버리고 험난한 개척의 길을 선택한 그의 용기 있는 결정은 사실 에너지 넘치는 그의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어린 시절을 궁핍하게 보냈지만, 그는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마는 끈기와 자존심으로 원하는 목표를 차례차례 달성하였다. 은행원에서 인권 변호사로 그리고 시의원에서 구청장으로 목표를 향한 그의 도전은 늘 쉽지 않았고, 낙방이라는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언제나 최선의 노력과 열정을 다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다가갔고, 그렇게 한발씩 내디디며 고난을 극복해온 그에게 열악한 상황과 고난은 결점이나 해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비타민으로 작용하였다.
나는 인간의 노력을 존중하지, 운을 바라는 편은 아니다. 인간의 앞길에 무언가 정해진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가끔 한다. 다만 그것을 알려고 할 필요는 없고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그만이라고 믿을 뿐이다.
과거 독일의 히틀러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그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사형장에서 처형시켰다. 그때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다.
“나는 정말 억울하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히틀러에 반대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을 죽게 만든 이유입니다.”
바로 그것이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없다는 게 내 삶의 지론이다. 적어도 내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삶에서의 내 생존방식이었다.
-본문 중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남을 돕는 일 역시 보람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였지만, 사람을 향한 그의 관심과 애정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직접 민정을 살피며 국민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 보겠노라 결심하고, 마침내 시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정치인생은 인천시의원 활동을 시작으로 구청장, 국회의원에 걸쳐 지금까지 18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깨끗한 정치를 꿈꾸고, 좀 더 따뜻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추구했던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1천원 후원회’, ‘친일파재산환수법’, ‘친일진상규명법’의 입법과 ‘사회보호법’ 폐지 등 좋은 결실을 맺기도 하였다. 이는 국민들에게 정치인의 진정한 면모를 각인시켜주는 의미 있는 일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점차 초심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계를 떠나서 더 보람과 가치 있는 도전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바보 같지만 인생 최고의 선택, 따뜻한 세상을 위한 첫걸음
어떤 일을 하든지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아버지가 했던 일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는 최용규 의원. 그는 자신의 아이뿐만 아니라 나아가 이 세상의 아이들에게 인간중심의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고, 그들이 희망 가득한 내일을 만날 수 있도록 어려운 선택을 결단해야 할 중대한 시간 앞에 서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고 어리석은 선택일지 몰라도 그에게 있어 무국적 고려인을 위한 이번 사업은 남은 그의 인생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할 최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우리 국민을 황막한 중앙아시아 땅에 버려두었던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며,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우크라이나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새싹이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희망과 기회의 땅이다. 국회의원 최용규의 의미 있는 선택이 멀리 타향의 고려인들의 삶은 물론 물질적 풍요에 급급해 진정한 행복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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