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을 통해 만나는 선지식들의 깨어 있는 삶과 수행의 향기 - 사상 최초 근현대 선지식의 선문답 모음
선답 진리를 묻고 깨달음을 답하다
경허 문하 선지식 13인의 선문답 해설
“그대 마음 가는 대로 사시게나…”
단박 깨닫는 기연으로 이끄는 조사 스님들의 보석 같은 언구,
그 속에 녹아 있는 깊은 진리를 헤아리다
선문답을 통해 만나는 선지식들의 깨어 있는 삶과 수행의 향기
- 사상 최초 근현대 선지식의 선문답 모음
젊은 스님이 경허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경허 스님이 답했다.
“그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게. 착함이건 악함이건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하게. 그러나 털끝만큼이라도 머뭇거린다든가 후회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되네. 망설임과 후회만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게. 바로 이것이 산다는 것일세.”
p.15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참선하는 사람들끼리 진리를 찾기 위해 주고받는 대화인 ‘선문답’은 조사 스님들의 가르침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깊은 진리와 지혜가 응결되어 있어 수행자들에게 깨달음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문답은 간화선(看話禪) 수행자들이 화두로 삼는 만큼 일반 불자들에게는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선답 진리를 묻고 깨달음을 답하다》(은행나무 刊)는 이처럼 난해한 선문답에 좌절하거나 간화선의 높은 벽에 질린 불자들의 참선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된 선문답 해설집이다. 사상 최초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근현대 선지식들의 선문답을 모으고 풀이한 이 책은,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들은 물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진리와 지혜가 오롯이 담긴 선문답
말끝에 단박 깨달으면 언하대오, 깨닫지 못하면 화두
이 책 《선답 진리를 묻고 깨달음을 답하다》는 한국 선(禪)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선사와 ‘경허의 세 달’ 수월음관(水月音觀), 혜월혜명(慧月慧明), 만공월면(滿空月面) 그리고 한암·용성·경봉·춘성·전강 스님, 지난 3월 18일 입적한 원담 스님 등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사 13인의 살아 있는 법거량을 빌어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인 선지식들의 깨어 있는 삶과 수행을 드러내고 있다.
예부터 선사들은 “불교의 대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흔히 평상(平常)의 사물이나 일로 대답을 대신하곤 했다. 예를 들어, 찻잔을 들고 “차나 마셔라” 하거나,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나 하게”라며 불법의 전체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불법이 일상사를 떠나 있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진리이기에,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주인이 되어 깨달음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은 애써 공을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상대로 아무 일 없는 것이다.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눕는 것이다.” – 임제 선사
그리하여 조사 스님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대자유와 행복을 쓰고 펼치는 언행일치의 삶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또는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분들의 가르침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동시에 그 정수를 담은 것이 바로 선문답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문답들은 그 언행 자체에 진리와 지혜가 오롯이 담겨 있어, 말끝에 단박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운을 남겨 깨달음의 씨앗이 된다. 말끝에 단박 깨달으면 언하대오 할 것이요, 깨닫지 못하면 화두가 되는 것이다.
어떤 학인이 만공 선사에게 물었다.
“불법(佛法)이 어디에 있습니까?”
“네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왜 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느니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보지 못하느니라.”
“나도 없고 스님도 없으면 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는 누구냐?”
p.67 <불법은 네 눈앞에 있다>
진리는 항상 우리 눈앞에 있다. 다만 그것이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만공 선사는 말하고 있다. 더구나 ‘나’에 대한 집착에다 ‘너’를 포함한 객관적 사물과 현상에 집착한다면 진리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요리조리 따지고 분별하고 집착할수록 진리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다. 보는 순간, 보는 사람과 보이는 대상이 하나 되면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보리(菩提)가 되는 것이다.
영흥 스님이 합장을 하며 여쭈었다.
“이 길이 끝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큰스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10리쯤 침묵과 정적과 고요 속에서 걷고 있었지만, 내면의 어딘가 모르는 저 깊숙한 곳에서는 삶의 본질에 대해 이심전심하고 있었다.
마침 버스 한 대가 와서 멈추었다. 춘성 스님이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깊은 침묵을 깨뜨리면서 말했다.
“나는 간다. 그대의 길은 그대가 길이요, 그대가 시작이요, 그대가 끝이니라.”
춘성 스님이 차에 오르자, 영흥 스님도 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 합장을 한 후 다시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p.246 <그대가 길이요, 시작이요, 끝이니라>
“이 길이 끝나는 곳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은 기나긴 구도의 종착역, 궁극적인 깨달음의 끝은 어디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에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춘성 스님은 이별을 고하는 순간, “그대의 길은 그대가 길이요, 그대가 시작이요, 그대가 끝이니라”는 가르침을 준다. 바로 자신이 깨달음 그 자체라는 뜻이다.
이렇듯 이 책에 소개된 생생한 법거량은 불법(佛法)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깨달음의 삶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며, 경허 선사와 근현대 고승들의 천둥과 벼락같은 살아 있는 선문답은 수행자들의 안목을 높여줌은 물론, 단박 깨닫는 기연(機緣)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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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5079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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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5/07/20080507017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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