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선율만큼이나 처절하고도 비장한 사랑이 아프게 가슴을 울린다.
—정덕성 장편소설《첼로의 향기》출간
장기적인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설 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올 참신한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정덕성 장편소설《첼로의 향기》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재미와 감동이 뛰어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무려 3년이나 되는 시간을 투자했을 만큼 의욕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었다. 작가의 섬세한 필치와 유려한 묘사는 우리들 주변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순수한 사랑의 발자취를 실감나게 옮겨놓고 있다.
사랑은 여전히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감정임에 틀림없다.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요소 가운데 사랑만큼 유용한 감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 이야기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부활》,《좁은 문》 등의 문학작품이 사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진다. 영화화된 작품으로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마의 휴일》,《러브스토리》,《시네마 천국》 등이 기억에 새롭다. 이렇듯 가슴을 격동시키는 연애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어왔다. 문학을 비롯한 각종 예술 분야에서 러브 스토리가 이처럼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을지라도 누구나 가슴 깊이 숨겨 둔 사랑의 꿈을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의 부재를 확인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깊은 숲의 청량한 공기처럼 신선한 느낌을 던져준다.
《사람의 향기》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송기원 씨는 이 소설을 읽어본 소감의 일성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수작이라며 이 소설이 이루고 있는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애틋한 사랑 노래가 저문 들녘의 범종 소리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송기원 씨의 평가처럼 이 소설은 우리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감동을 은은하게 새겨주는 매력적인 소설임에 틀림없다.
2. 시련이 더해질수록 점점 더 깊어가는 사랑!
초등학교 시절 잠시 좋아했다가 다 자란 고교생으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민우와 리에. 두 남녀는 서툴고 낯설지만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이별과 재회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중심 스토리를 이룬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경이롭게 보이는 열여덟 무렵, 두 남녀는 우정을 넘어 사랑이라는 서툰 감정의 울타리를 배회한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이들의 사랑이 순탄하게 이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들은 재일 한국인이며 일본 사회에는 민족 차별 의식이 뿌리 깊게 잔존해 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고초를 겪어가면서도 이들은 끝내 진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소설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함께 했던 기억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두 남녀의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차마 사랑한다는 말조차 변변히 꺼내지 못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 그러나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소설은 의외의 반전을 드러낸다. 두 남녀 앞에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시련은 시종 안타까운 느낌과 함께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전형적인 멜로의 틀을 벗어난 이색적인 구성도 특징적이며, 마지막 무렵의 비장한 느낌은 저절로 눈물이 툭 솟아나올 만큼 강렬하다. 때 묻지 않은 청춘의 심리, 영상을 대하는 듯한 섬세한 배경묘사는 멜로물임에도 긴장과 속도감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시시각각 반전을 거듭하는 사랑의 행로를 안타까이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은연중 사랑의 회복이라는 희망을 다시금 가슴 깊숙이 새기게 된다. 인간들이 만든 어떠한 악법이나 억압 구조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 그런 사랑이 있기에 세상은 언제나 희망이 살아 숨쉬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에 박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한편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운다.
3. 내 가슴 가득 채운 네가 있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첼로의 향기》줄거리 요약
소설의 첫 무대는 일본 오사카이다. 첼리스트를 꿈꾸고 있는 여고생 리에는 모스크바 음악원 유학을 권유받는다.
남자 주인공 민우는 재일 한국인으로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지만 딱히 결정한 바는 없다. 그들 두 사람 사이에 규코가 있다. 규코는 민우의 친구이기도 하고 리에의 친구이기도 하다.
리에와 민우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두 사람은 원래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리에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지만 민우는 아니다. 민우가 일본 아이들과 맞서 싸운 날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준 여자 아이, 그녀가 바로 리에였기 때문이다. 민우는 리에가 건넨 손수건을 받아든 순간 어린 나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그러나 민우는 그 운명의 발길을 돌려놓기 위해 애쓴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어린 민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끔찍스런 고통을 리에처럼 사랑스런 여자 아이에게 겪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리 쉽사리 민우의 뜻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고교생이 된 어느 여름날 민우는 리에와 재회한다. 그 날은 규코와 음악회에 가기로 한 날이다. 규코와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민우와 리에, 그 때부터 두 사람의 삶은 시련의 그늘 속으로 빠져든다.
한편 리에는 유학 서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인임을 알게 된다. 한국인 부모들이 모두들 그러는 것처럼 그녀의 부모 역시 딸이 따돌림을 받을까봐 이 사실을 감춘 것이다. 학교 학생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고 리에는 심한 이지메를 당하기 시작한다. 일본 학교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지메는 평상적인 것이지만, 뒤늦게 밝혀진 리에의 경우에는 특히 강도가 점점 더해간다. 리에는 아버지 태원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민우는 일본 아이들과 싸움을 벌여야하는 뒷골목 대신 유도장에서 하루의 전부를 보낸다. 그는 공평한 유도 매트가 좋다.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된다. 하지만, 해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국적이 ‘조선’이어서 일본 여권도, 한국 여권도 가질 수 없다.
절망한 민우는 유도를 포기하고 조선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이제 3학년인 그에게 주어진 길은‘조선대학교’에 들어가 4년간‘비밀스런 수학’후에 졸업하여 조고 체육교사가 되거나, 아버지 인범의 사업을 물려받아 5만 명뿐인 조총련 사회에 갇혀 사는 길뿐이다. 민우는 갑갑해 한다. 남들처럼 넓은 세상에서 자유로이 살고 싶다.
그러던 와중에 리에가 일본 아이들에게 크게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민우는 그중 주모자를 찾아내 중상을 입힌다. 상처를 입고 절망에 빠진 나날을 보내던 리에는 러시아 유학을 앞당긴다. 민우는 모국유학(서울) 문제로 아버지와 크게 다툰 뒤, 결국 타협하여 평양 밀항을 택한다. 답답하게 옥죄이던 울타리를 벗어났지만, 통제된 환경은 민우를 오히려 더 숨 막히게 한다. 리에를 찾아 극적으로 모스크바에 갔던 민우는 학교 당국으로부터 호되게 질책을 당한 후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다. 체념했으므로 편안하다. 그러나 다시 운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출입국 법령 위반으로 체포되는데…….
<목차>
바람 부는 계절
세상 끝에서
아둠의 지배자
추방
오무라 수용소
또 다른 족쇄
재회
갈림길
장인한 사월
현해탄의 붉은 장미
매년 5월 셋째 월요일(17일)은 성년의날이다. 한 백화점이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성년의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로 사람들은 ‘책임감’(26%)을 꼽았으며 다음이 ‘키스’(17%), ‘향수’(16%), ‘자유’(9%) 순으로 나타났다. 사랑에 대한 관심이 현실로 다가옴을 알 수 있다. 이럴 때 읽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는 평생의 애정관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
정덕성씨의 장편소설 ‘첼로의 향기’(은행나무)는 사랑의 부재를 확인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청량한 공기처럼 신선하게 다가온다. 초등학교 시절 잠시 좋아했다가 고교생이 돼 우연히 만난 민우와 리에는 서툴고 낯설지만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경이롭게 보이는 열여덟살 무렵, 두 남녀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고초를 겪으며 진실한 사랑을 갈구한다.
이 소설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함께했던 기억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두 남녀의 심리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헤어지지만 다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소설은 의외의 반전을 드러낸다. 두 남녀 앞에 닥친 시련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대중소설이지만 전형적인 멜로의 틀을 벗어난 청춘의 심리와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작가 송기원씨가 “잔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애틋한 사랑노래가 저문 들녘의 범종소리처럼 가슴을 파고든다”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높이 평가한 작품이다.
2004년 5월 14일 금요일
/ 스포츠서울신문
TV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했던 소설 ‘스트라디 바리, 문을 열어주세요’의 작가 정덕성씨(44)가 장편소설 ‘첼로의 향기(은행나무 간행)’를 새로 펴냈다.
소설의 기본 얼개는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이다. 운명적으로 만나 한 여자를 사랑하고, 한 남자를 사랑했던 그와 그녀의 인생 전부를 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절로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 민우와 리에는 재일교포이다. 작가 정씨를 9일 만났다.
-책 쓰는데 3년 걸렸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전업작가이다. 3년간 이 작품에 매달렸다. 나의 모든 열정과 역량을 쏟아부었다고 자부한다. 글쓰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가족, 친구와 떨어져 경기 안성의 공동 집필실에서 그간 작업했다.”
-공동 집필실을 설명해달라.
“농가주택을 빌려 조창인, 이정규, 김민기씨 등 4명의 전업작가가 각자 방 하나씩 차지하고 글을 쓴다. 집필실이 우리에게는 직장인 셈이다. 주중 5일간 일하고, 주말에는 가족 곁으로 갔다. 두가지 원칙이 있다. 집필실에는 손님을 데려오지 않는다는 것과 술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다른 작가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남녀간의 사랑을 완성도 높게 그려낸 것 같다.
“소설에서 ‘사랑’만 보았다면 작가로서는 섭섭하다. 소설을 통해 경계인이라 할 수 있는 재일교포들의 아픔을 고발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상상 이상으로 고통을 당하고, 한국에서 외면받는 재일교포들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려는 것이 소설을 쓴 이유 중의 하나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소설속 인물들이 실존인물인가.
“가능하면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많은 실제 사례를 빌려왔다. 재일 한국인 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의 인물들 중 여러명이 실제 인물과 구체적으로 닮았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이 죽는다는 사실을 소설 첫 머리에 썼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는 모험인데….
“대중소설 작가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칫하면 책 팔리는데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스토리에 자신감이 있어 그랬다. 나는 독자들이 결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책장을 빨리 넘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결말을 알면 차분하게 한 장 한 장 책을 읽을 수 있다. 독자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설 첫 머리에 주인공의 죽음을 보여줬다.”
2004년 6월 9일 수요일
김용석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