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를 낱낱이 들여다보다
미당 서정주 평전
더 없이 아름다운 꽃이 질 때는
우리 민족의 정한을 모국어의 혼과 가락으로 풀어낸,
민족의 가슴속에서 살아갈 시인, 서정주
민족의 격동기인 지난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시인’
미당 미발표작 절명시(絶命詩) 발굴, 최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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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 문학평론가는 미당 서정주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평전인 《미당 서정주 평전》을 은행나무출판사에서 펴냈다. 저자는 이 평전에서 미당이 남긴 1천여 편의 시와 저작은 물론이고 사후 공개된 1천 쪽가량의 시작 노트까지 샅샅이 살폈다. 또한 미당이 활동한 시대의 신문과 잡지, 교유했던 사람들의 글과 저서, 연구 논문과 평도 섭렵하고 인터뷰하며 당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미당이 살아간 당대 사회와 문단사도 함께 조명하며 보편적인 고증에 생동감을 더해 미당 평전의 완성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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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 시인 미당 서정주 평전 완성판!
첫 시집 『화사집』(1941)부터 마지막 시집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까지 15권의 시집으로 한국 현대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미당 서정주. 이어령 문학평론가는 “미당의 시야말로 의미 이전에 갓난애의 옹알이 같은 언어, 방언이나 사투리가 아니라 태초의 언어”라고 밝히며 “동시대를 살았던 자체가 행운”이었던 사람으로 서정주를 꼽았으며, 이남호 문학평론가는 “미당 서정주는 겨레의 말을 가장 잘 구사한 시인이요, 겨레의 고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다”라고 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시 전집이 출간되는 등 문단 여기저기에서 미당에 관한 새로운 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발맞춰 그의 생애를 낱낱이 파헤친 《미당 서정주 평전》이 출간되었다(은행나무刊).
한국 현대시사의 명장면을 고스란히 옮겨놓다
미당의 생애와 현대시사에서 기념비가 될 만한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1941년 명월관에서 열렸던 《화사집》의 출간기념회일 것이다. 이 평전은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지용은 ‘화사집’이란 제호를 써주고 오장환 등은 호화판으로 시집을 내줬다. 거기다 더해 임화, 김기림 등 당대 유력한 평론가들이 ‘딱한 이 나라의 제1의 시인’, ‘이제부터는 서정주의 시대’라 추켜주며 당시 최고 요정이었던 명월관에서 출판 기념회까지 열어줬”다.(본문 18쪽) 일자리를 찾아 만주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온 서정주는 어리둥절한 가운데 《화사집》을 출간하고 뜻하지 않은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냥 우연히 얻은 행운이 아니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란 작품으로 등단하기 전부터 습작 작품을 발표해온 서정주는 엄격한 자기 검열과 편집 의도로 《화사집》에 실린 24편보다 많은 28편의 시를 버리고 이후의 어느 시집에도 싣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화사집》은 서정주만의 혼돈과 광기와 관능이 뒤섞인 혁명적인 시 세계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굴절과 고난의 생애 속에서 피어났던 시인
우리에게는 《질마재 신화》로 익숙한 질마재(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난 서정주의 삶의 궤적을 좇는 일은 흥미의 연속이다. 보통학교를 모범생으로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하였으나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여 종로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으며,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어 빈민굴에 들어가 살다가 병을 얻었다. 다시 입학한 고창고보에서도 학생 비밀 회합을 주동하다가 자퇴하고 아버지 돈 3백 원을 훔쳐 아라사로 가려다 서울에 눌러앉은 서정주는 그때부터 세계적인 문호들의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허무주의에 빠져 넝마주이가 되고, 중이 되고 싶어 박한영 대종사를 찾아가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시절은 모두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되어주었다. 중앙불전에 입학하여 문학을 하고자 했던 서정주에게 김동리와 오장환과의 만남은 일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일 것이다. 또한 2호 발간에 그치고 말았지만, 오장환 등과 함께했던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은 해방 이전의 서정주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이후 해방 직전까지 심각한 일제의 압제 아래 겨우내 목숨 연명하듯이 살아갔던 시절, 해방과 함께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맞이할까 싶었던 꿈은 6·25전쟁을 통해 무너지고야 만다. 시대가 선사하는 불안감에 환청 증세를 겪었으나 이를 극복하며 《귀촉도》와 《서정주시선》을 출간하며 영통 시인으로 거듭난 서정주. 이렇듯 2000년 겨울에 그가 눈감을 때까지 서정주는 20세기 민족의 고난기를 맨몸으로 살아내기에 힘썼다.
인간으로서의 서정주, 시의 정부로서의 서정주
현대시의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긴 시인인 그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많다. 그의 명작 시로 꼽히는 <부활>의 주인공은 ‘유나’인지 ‘수나’인지, 그 이름은 실제로 서정주의 곁에서 살았던 여인의 이름인가 하는 문학사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더불어 친일 시를 발표했다는 분명한 사실을 다시금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찬동연설을 했던 그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는지도. 이 평전에서는 살아생전 서정주 시인과의 대담이나 주변 지인의 기록 등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으로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문학전문기자였으며 시인이기도 한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서정주 15권의 시집은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의 수확”이라는 생각으로 서정주가 남긴 1천여 편의 시, 자전적 산문, 시작 노트까지 살펴보고, 그 당시 글과 저서, 연구 논문과 평도 수집, 정리하여 미당 당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고자 했다. 이로써 당대 사회와 문단사도 함께 조명하며 보편적인 고증에 생동감을 더하여, 시대가 낳은 인간의 이상과 실제 삶의 간극을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면밀하고도 고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을 통해 이 평전은 우리 민족의 정한을 모국어의 혼과 가락으로 풀어낸 시인이자, 지난 세기 최고의 문제적 시인인 서정주의 삶과 시를 온전히 다룬 평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특히 말년의 미당 시작노트에서 ‘더 없이 아름다운/꽃이 질 때는’으로 시작되는 5행의 짧은 시를 발굴해내 이 첫 구절을 이번 평전의 제목으로 삼은 동시에 그것을 미당의 절명시(絶命詩) 혹은 종시(終詩)로 자리매김해 최초로 발표한 아래의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
“더 없이 아름다운
꽃이 질 때는
두견새들의 울음소리가
바다같이 바다같이
깊어만 가느니라.
1995년 5월 1일 시작 노트에 손 떨리는 필체로, 크게 꾹꾹 눌러, 한 번의 고침 없이, 페이지 한가운데에 보란 듯이 써놓은 시이다. 그 이후에 쓴 시들도 대부분 발표했는데 이 시만큼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아직 발표 안됐다.
더없이 아름다운 깊이로 더없이 아름다운 꽃을 지게하고 있는 이 시, 혹여 절명시絶命詩로 남겨둔 것은 아닐까. 평생 표현해내려 애썼어도 10%도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했다는 그 두견새 울음소리. 줄포 바다가 빼꼼히 열린 소요산 자락 질마재에 누워서도 그 소리의 한량없는 깊이를 재고 또 재보며 온전하게 다 형상화해 내기위해 남겨둔 것일까.”
– 본문 중에서
책 머리에 7
1. 처녀 시집 『화사집』─시를 사랑하는 것의 재앙됨이여! 9
2. 『시인부락』과 1930년대 문단 풍경 47
3. 질풍노도의 편력 시대─궁핍한 시대, 8할이 바람이여! 89
4. 일제 말 고난의 연대, 모가지들의 ‘행진곡’ 137
5. 친일파냐? 종천순일 從天順日 이존책 以存策 이냐? 179
6. 덤으로 맞은 해방과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감투 231
7. 6·25 피난 시절 환청과 영통하는 국민 시인 277
8. 시 詩 의 정부 政府 , 미당 학교 329
9. 전두환 찬양과 늙은 소년 떠돌이의 노래 383
10. 유소년기의 질마재·줄포 신화 435
서정주 연보 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