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이 ‘인생무상’인 어느 한 가문의 4대(代)에 걸쳐 찾아 헤맨 열등의 알고리즘!
열등의 계보
2015년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가풍이 ‘인생무상’인 어느 한 가문의 4대(代)에 걸쳐
찾아 헤맨 열등의 알고리즘!
2015년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독자를 끌고 가서 기어코 끝을 보게 만드는 이야기의 완력!”
-정유정(소설가) ‘심사평’ 중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사는가?”
소설의 첫 문장은 이러했다. 웬 엉뚱한 소리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언제고 우리들의 가슴 복판을 겨냥한다. 그 질문은 날카롭거나 세밀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을, 마음을 우선 찌르고 본다. 그 질문이 만약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왔다면 정처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오롯이 ‘나’와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혹은 생각이란 걸) 하게 될 것이다. 철학의 테제는 늘 그래왔듯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의 중심을 그대로 파고든다. 삶은 늘 준비태세를 갖추어야지만 대비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우리는 이 공격에 철저히 당하고 만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노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낡은 질문이고 무딘 물음이지만 답이 제대로 제출되지 않은 채 삶의 되감기 버튼을 누르는 것. 어느 이름 모를 한 가문의 4대(代)에 걸친 연대기에 포개지는 소설 속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나의 아버지 혹은 나의 할아버지의 삶을 지금의 ‘나’와 오버랩해보는 것. 근원에 대해 호기심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의 근원을 뒤져 내 삶의 동력이 될 만한 그 무엇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번 의심해보는 순간. 그 순간의 촉매제가 바로 이 소설의 첫 문장이라면? 이 소설은 반쯤은 성공한 것이라 단언해본다.
이 소설은 결국엔 ‘나’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뒤 “나는 무슨 동력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물고 덧붙어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하게끔 한다. 이 젊은 나이의 소설가가 우리에게 들이미는 사색의 공격은 무방비, 무방어 상태에서 그렇게 타격을 입힌다.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린다.
1991년생 25살 홍준성. 부산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무려 대학생이다!) 그가 올 초 3회를 맞이한 한국경제신문사 신춘문예에 이 장편소설로 당선되었고 조금 느지막이 수정과 탈고를 거쳐 (주)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이 젊은 소설가의 데뷔를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당선작 『열등의 계보』는 일제 강점기에서 전후 한국과 1980년대, 19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 망라하는 김녕 김씨 충무공파 4대(代)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가문의 주인공들은 힘든 현실을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운명은 그들이 순탄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라는 인간 된 삶의 근본을 물어보는 질문이 전 시대를 걸쳐서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네들이 그 속에서 어떤 군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자기 존재 증명을 위해 몸부림치는,
따까리 인생들의 잔인한 진실과 욕망을 파헤치다
시작은 증조(曾祖) 김무(金無)다. 그는 일제강점기 김녕 바닥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으로 자신이 김녕 김씨 충무공파라는 사실을 유일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저 장가나 한번 멋들어지게 가고 싶은 게 삶의 소박한 목표. 그러나 집안에선 김무에게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는 장남의 학비와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민 노동자로 돈을 벌어다 주기를 원한다. 게다가 김녕 김씨의 조상신들까지 꿈에 나타나서 닦달하는 판에 김무는 하는 수 없이 고향 땅을 떠나 부산항에서 막노동, 경마, 사기, 인질극 등 온갖 난리를 치고 하와이로 떠난다.
한편 하와이에서 태어난 김무의 아들이자 조부(祖父) 성진은 조국이 해방됐다는 소식에 아버지의 친구 염씨와 함께 귀국한다. 담배장사로 인생길이 좀 트이는 듯했으나, 정치깡패인 유 계장의 담배장사와 맞물리며 망치고 만다. 졸지에 거지꼴이 된 성진은 유 계장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지만 갑자기 터진 6·25전쟁으로 그의 인생은 포화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 1970년대로 접어들고, 이때 계보의 3대인 부친(父親) 철호가 물만골 판자촌에서 태어난다. 상이군인으로 다리를 쩔뚝이는 아비는 집을 나가고 가난과 사채 빚으로 술집을 전전하던 어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일하던 공장에서 임금까지 떼인 철호는 악에 받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철거 용역깡패 두한을 찾아가고, 그때부터 쇠망치를 들고 철거촌을 누비며 더 어두운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의 말미는 4대인 유진에서 마무리된다. 비명횡사한 아비의 유골함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유진에게 어느 날 우연처럼 30여년 전 집을 나갔던 조부 성진이 나타나고, 유진은 그의 입을 통해서 김가네의 3대가 걸어온 지난날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다. 이후 의미심장한 꿈을 꾸고 일어난 유진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글을 적어나간다.
1. 하와이 7
2. 오발탄 181
3. 철철철 201
4. 에필로그; 묘청 309
작가의 말 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