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가르는 칼과 세상을 품은 학의 예술적 승화

칼과 학

지음 정범종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6년 12월 19일 | ISBN 9788956605692

사양 변형판 150x210 · 292쪽 | 가격 13,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제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책소개

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격조 높은 시적 문장, 속도감 있는 서사
시대를 가르는 칼과 세상을 품은 학의 예술적 승화

7천만원 고료 제주4․3평화문학상의 4회 수상작 《칼과 학》이 출간되었다. 1회 수상작 구소은 장편 《검은 모래》, 2회 양영수 장편 《불타는 섬》, 3회 장강명 장편 《댓글부대》에 이은 네 번째 수상작이다.
《칼과 학》은 고려시대 문인과 무인의 갈등을 배경으로 고려청자에 상감 기법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에서 민중계급으로 이행하려는 천민들의 갈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비색 청자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상감기법을 둘러싸고, 이를 억압하려는 지배계급과 예술의 혼을 담아 평화를 기원하는 천민계급의 첨예한 대결이 세세한 문체로 그려진다.
왕의 다회를 준비하는 상서 시랑 주상우는 개경 궁궐에 들어온 그릇들을 살펴보던 중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상감청자 찻잔을 보고 당황한다. 그는 그 아름다움에 찬탄하는 한편 그것이 불러올 변화에 위협을 느끼고 칼잡이인 동생에게 상감청자를 만든 이를 찾아서 처단할 것을 지시한다. 시대를 가르는 칼과 세상을 품으려는 예술의 암투가 시작된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소설가 이경자, 현기영으로 구성된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위원단은 “격조 높은 시적 문장의 경쾌한 속도감은 고전적 소재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며 “갈등구조는 평화의 미륵세상을 불러오려는 ‘소신공양’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장면이 지닌 극적 긴장감과 주제의 상징성에 심사위원의 일치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암흑의 시대
, 차디찬 바람 가르고
하늘로 박차 오르는 천년 비색의 노래

소설은 고려 때 문신과 무신의 대립과 갈등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궁궐에서 왕의 다회를 준비하는 상서 시랑을 맡고 있는 주상우는 무예 연마에 힘쓰는 동생 주상모를 늘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문신의 천거 없이는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시대였다. 어느 날 주상우는 탐진(강진)의 가마에서 개경의 궁궐로 온 비색 청자들에 섞여 있는 상감청자 찻잔 한 점을 보고 의아해한다. 왕궁에서는 여태껏 비색으로 된 청자만 써왔다. 주상우는 처음 본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면서도 왕의 색인 비색에 무늬를 새긴 무엄함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범인을 색출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고 칼잡이 동생을 탐진으로 내려보내기로 한다. 형으로부터 늘 무시를 당해왔던 동생 주상모는 이번에 일을 성공하면 벼슬이 내려질 거라는 형의 말을 믿고 탐진으로 내려간다. 함께 길을 나서는 이는 청허라는 청자 감별관.
한때 탐진의 청룡요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장인(匠人)인 청허는 기억을 떠올리며 상감청자를 개경 궁궐로 보낸 이가 누구일지 헤아린다. 오래전 자신에게 도예 기술을 배우고 몸을 의탁하러 찾아왔던 윤누리라는 이름이 퍼뜩 떠오른다. 이곳저곳 수소문하다 마침내 찾아낸 윤누리는 여전히 그곳의 외진 가마터에서 그릇을 굽고 있다. 그는 옛날의 스승 청허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예의를 갖춘다.

“무늬가 비색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한 적은 없느냐?”
“무늬가 있어야 비색이 더 살아납니다. 제 찻잔을 구워낸 후에 그걸 확신하게 됐고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궁궐의 찻잔에는 용이나 봉황이 무늬로 어울리지 않느냐?”
“찻잔이 어디에서 쓰이든 그 무늬는 왕의 것이 아닌 제 것입니다. 용이나 봉황은 어울리지 않지요. 제가 어릴 적부터 보아온 학이 어울리지요.”
“네 무늬가 새겨진 찻잔은 궁궐로 올 수 없었을 텐데?”
“비색 청자 찻잔들을 상자에 담을 때 하나를 상감청자 찻잔과 몰래 바꿔치기했지요.”
“그 연유를 알고 싶다.”
“고려에만 있는 상감청자를 왕께서 알아야 한다고 진즉부터 생각했어요. 개경의 대신과 백성도 알아야 하고요.” _본문 47쪽

청허는 상감청자를 궁궐로 보낸 이가 윤누리라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대신 그는 자신과 함께 함께 개경으로 올라가서 상감청자의 시대가 왔음을 왕실에 알리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윤누리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상서가 상감청자를 궁궐에 들여놓을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주상우는 왕의 응대가 궁금했으나 왕은 말이 없었다.
“폐하, 상감청자를 만들지 못하게끔 어명을 내리소서.”
상서가 소리쳤다. 그러자 대부분의 대신들이 입을 모아서 어명을 내리소서, 하고 외쳤다. 왕이 눈길을 허공에서 형부 상서에게 돌렸다.
“상서, 천민의 물건이라고 해서 궁궐에 둘 수 없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소. 궁궐의 그 많은 비단옷은 천민이 치는 누에에서 시작한 것 아니오?” _본문 103쪽

백성이 만든 상감청자를 궁궐에 들여놓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조정에서 이루어지고, 결국 왕이 직접 상감청자 도공 윤누리를 만나보기로 한다. 조정은 상감청자를 받아들인다. 고려는 비색 청자에서 상감청자로 바뀌어간다. 윤누리는 청허의 뒤를 이어 상감청자 감별관이 돼 궁궐을 드나들고 명성을 누린다. 또한 탐진에서의 인연이었던 다물이를 아내로 받아들여 가정을 이룬다.
문신과 무신의 갈등은 더 극심해지고 상감청자는 이들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상모는 문신인 형과의 관계가 틀어져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청자 장사꾼으로 변신해 부를 축적한다. 반면 형 주상우는 권모술수로 권세가가 된다. 윤누리는 명성에 취해 함부로 행동하다가 대비의 명으로 궁궐을 나가게 된다. 윤누리는 탐진 가마로 돌아가서 다시 상감청자를 만든다. 그곳에서 그는 다양한 무늬를 상감한다. 윤누리가 유명해지자 주상우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세를 키우려다 갈등하게 되고 그의 혀를 잘라 농장의 노예로 보내버린다. 주상모 역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형을 이용하려고 들다가 오히려 형에게 내쫓긴다.
그즈음 정중부, 이의방이 주축이 되어 눈엣가시였던 문신들을 죽이고 조정을 장악한 ‘무신의 난’이 일어난다. 그들의 밑으로 들어간 주상모는 문신의 실세였던 형을 죽여서 무신의 환심을 사고 마침내 벼슬을 얻는다. 윤누리는 농장의 노예에서 풀려나 다시 상감청자를 만든다. 그는 힘겹게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무늬를 상감한다.
당시 고려의 바닷가에서는 미륵의 새 세상을 기원하며 통나무를 갯벌에 묻는 매향(埋香)이 성행했다. 이 매향에 참가한 윤누리의 아내 다물이는, 죽고 죽이는 세상이 끝나기를 기원하며 소신공양한다. 그는 아내의 비원을 생각하며 학의 무리를 항아리에 상감한다.

《칼과 학》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청자에서 상감청자로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피지배계급에서 민중 계급으로 이행하려는 천민들의 갈망을 다양한 재미를 곁들여 그려낸 작품이다. 위로는 청자와 상감청자에 대한 이해는 물론 탐미취향을 가진 왕실의 대비에서 아래로는 짐승처럼 짓밟히는 삶을 살아내는 천민 도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급을 다루는 작가의 핍진한 공력이 돋보였다. 격조 높은 시적 문장의 경쾌한 속도감은 고전적 소재를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소설의 갈등구조는 마침내 죽고 죽이는 살육의 세상을 끝내고 평화의 미륵세상을 불러오려는 주인공 윤누리의 아내 다물이의 ‘소신공양’으로 마무리된다. 이 장면이 지닌 극적 긴장감과 주제의 상징성에 심사위원의 일치된 긍정적 평가로 수상작 선정에 이르렀다. _‘심사평’에서


비색 하늘에 사랑과 평화를 새긴 첫 소설
십 년에 걸친 개작과 퇴고
끝내 당선의 영예로

상감은 칼로 시작한다. 도공은 칼로 그릇의 표면을 파낸다. 여기에 흙을 채워서 무늬를 만든다. 찻잔에 학이 날고 항아리에 모란이 핀다. 완성된 상감청자에 칼의 흔적은 없다. 무늬는 칼을 넘어선다. 학 무늬가 새겨진 상감청자 도편을 움켜쥐고 한 줄, 한 줄 써나갔다. 도편의 가장자리에 손을 베이기도 하고 햇빛에 새하얗게 빛나는 학의 날개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_‘작가의 말’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 평화에의 비원은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였다. 2007년까지 줄곧 희곡을 써오던 그는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새연>이 입선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자유를 상징하는 ‘새 모양의 연’과 그것을 총으로 쏴 떨어뜨리는 사냥꾼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었다. 2007년 5ㆍ18문학상 희곡부문 우수상에 선정된 <오방색 양말>은 상무관(5ㆍ18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곳)을 찾은 한 여인이 희생자의 시신에 양말을 신겨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었다.
《칼과 학》은 정범종 작가의 첫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의 초고를 쓰고 다듬고 완성하는 데 십 년의 시간을 보냈다. 신문사와 잡지사 생활을 하는 틈틈이 작품을 썼다. 계기는 고려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부터였다. 그는 간송미술관,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등 청자가 전시되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았다. 도편을 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려도공은 어떻게 해서 상감을 시작하게 된 걸까. 거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질문은 이어졌다. 상감의 무늬 가운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는가?

“강진 고려청자박물관에서 정수사로 이어지는 30리 정도 되는 길을 걷다보면 근처 논밭에서 군데군데 떨어진 도편(陶片)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깨진 조각들에도 비색이 남아 있고 무늬가 있습니다. 도편의 삶. 고려시대 민초들의 어려웠던 세상살이를 형상화하고 싶었어요.” _‘작가 인터뷰’에서

도공 윤누리가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학을 새기고 백토를 채운 데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상감의 의미를 사랑과 평화의 의미로 해석한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에 몰입되어 도자기를 빚기 위해 생활도예 교실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투박한 찻잔 하나를 만들었다. 사람들과 질흙처럼 섞여 지내면서 경쟁하는 삶 너머의 평화에 대해 생각했다. 《칼과 학》은 이제 소설가로서 첫 발을 뗀 그의 문학적 다짐일지 모른다.

목차

상감청자 찻잔
청기와
학의 무리

제4회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평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정범종 지음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로 일했으며 경향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입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5․18문학상, 2016년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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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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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6 =

  1. 물고구마
    2017.01.08 3:31 오전

    저는 방금 전에 「칼과 학」을 읽은 독자인데요.
    충격적이었어요. 내용이 충격적인 것이 아니라
    네이버 책 검색에 「칼과 학」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경악스러웠어요. 12월 20일에 출간 된 「모나드의 영역」이나 Axt 2017 1/2호도 네이버 책에 등록되어 있는 데 누락된 건지 알고 싶고 빨리 등록해주셨으면 합니다.
    작가님과 친분은 없지만 이런 사실을 아시면 정말 슬퍼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읽어보니 정말 흥미로웠고 인상이 깊어 한동안 머리 속에 남아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