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민감하게 분노하고 통감하라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

윤김지영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8년 4월 27일 | ISBN 9791188810222

사양 변형판 146x216 · 240쪽 | 가격 13,000원

분야 인문

책소개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_뮤리엘 루카이저

 

어디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여성 혐오
완전히 존재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메갈

2018년 4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일어난 차량 돌진 사건으로 많은 여성이 사망했다. 또 여성 혐오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이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가 아닌, 명백한 여성 혐오 사건임을 공론화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〇〇_내_성폭력’ 폭로 운동이, ‘#MeToo’ 운동으로 다시 불붙었다. 미국발 미투 운동의 때늦은 상륙이다, 정치적 음모론이다, 지겹다, 여자들이 무섭다 등 다양한 반응이 있지만 모두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강간 문화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다’의 변주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강간 문화에 대한 여성들의 폭로는 언제나 있었으나 듣지 않아도 되는 범위에 자리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가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아무리 사회·경제적 우위에 올라서더라도 젠더 계급성은 사회의 근원적 억압 조건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원치 않더라도 잠재적 피해자 또는 가해자라는 이 폭력적 판에 서게 된 우리에게 젠더 감수성은 이제 취사선택 사항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페미니즘을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남역 사건을 ‘5·17 페미사이드’, 즉 여성이라는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라며 봉기한 여성들을 ‘헬페미’라 이름 붙이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린 윤김지영의 저서 《헬페미니스트 선언》이 2018년의 이슈와 담론을 담아 개정 증보판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은행나무 刊)으로 새로이 출간되었다. 아카데미와 대중 강연을 종횡하며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를 연구해온 삶 철학자의 근간의 기록이다. 한국 페미니즘의 계보와, 이 계보를 모두 엎어버리는 새 세대의 전략과, 지독히도 견고한 남성 중심주의 문화와, 비로소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균열을 이 책을 통해 목도할 수 있다. 여성 혐오 사회 속 생존 기술과 혁명의 언어를 습득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을 숙지하기 위한 지금 가장 첨예한 책.

 

오빠들의 착한 소녀는 더 이상 없다
“페미니즘은 귀를 간질이는 깃털이 아니라 경화된 고막을 찢는 비수”

많은 이들이 주목했듯이 2016년 강남역 10번 출입구를 뒤엎은 포스트잇에는 유독 “내가 너다”, “너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다”라는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표현이 반복하여 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붙이기 쉬운 만큼 떼어내기도 쉬운 포스트잇 위의 목소리가 그 이후(post it)를 가능케 했다. 미투는 “나도 당했다”는 말 외에도 복잡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나도 자기혐오에 휩싸여 나 자신을 부정했다” “나도 남성이 무섭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 “살고 싶다”는 도움의 요청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획 의지가 담긴 것이다. 미투가 좋거나 싫은, 맞거나 맞지 않는 취향이나 기호와는 다른 차원의 담론으로 반드시 지금 다뤄야 하는 이유다.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기제인 남성 중심주의가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 동물, 퀴어(Queer)를 비롯한 모든 비주류를 이탈시키고 억압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오직 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백인, 엘리트 계급, 기독교인만이 인간 중심주의 속 인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출산의 기능을 가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연과 더 가깝고 더 동물적인 존재이므로 남성의 여성 착취는 정당하다는 주장이 이렇게 성립되는 것이다. 동물이 아닌 고등한 존재인 ‘인간’이 동물에 가까운 ‘비인간’ 여성을 착취했던 역사는 바로 인간의 동물 착취 정당화와 맥이 닿아 있다.

인터넷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M.E.R.S) 갤러리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Egaliàs Daughters》의 합성어인 메갈리아(megalia)는 ‘꼴통페미’ 혹은 ‘페미나치’라고 불리기도 하며, 일베, 나치, IS와 등치되기도 한다. 여성 혐오자들의 이러한 낙인적 범주화는 최종적 식민지로서의 여성, 그 마지막 종속의 영토를 잃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방어기제임을 지은이는 꼬집는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공적인 영역이자 정치적 영역은 남성들 간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여성이 개입된 영역은 사적 영역으로 격하되고 있는 현실인지라 그 어떤 정치적 집단도 이러한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의론의 문제가 아닌 본능의 문제로 치환되는 여성 혐오를 판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너 메갈이냐”라는 낙인에 부정하지 않기, 오히려 “넌 한남이냐?”라고 호명의 발신자가 되기, 혐오가 투사된 백래시(backlash)를 깊게 파악하기, 진보 세력과 민주주의 운동 속 여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더 유연하고 자유롭고 즐거운 연대하기 등 이 책은 지적이고 유쾌한 대응법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메갈이라는 낙인이 오히려 페미니스트를 강하게 만든 것이다. 지은이는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소(rature) 개념을 가져와 여성 혐오의 노력이 가해질수록 강해지는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역설한다. 삭제하고자 하는 글자 위에 줄을 긋는, 자신이 지워낸 것을 읽을 수 있게 내버려두는 이중적이고도 상반된 행위가 오히려 메갈이라는 기표를 더 두드러지게 남겨두어 지속해서 읽히게 만든 것이다. 메갈은 마치 유령처럼 존재와 부재의 두 항을 끝없이 오가며 출몰해 남성 중심적 현실에 균열을 내고 있다.

 

모든 변화는 불편하다
미투, 투쟁 서사에서 공존 서사로

이 책은 짧고도 강렬한 헬페미 운동사의 기록이다. 인터넷이라는 넷(net) 공간에서 발발된 폭로가 증폭되어 거리의 아우성으로 쏟아져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담았다. 혐오와 유머가 뒤섞인 인터넷 속어처럼 헬페미의 족적은 본의 아니게 불편하고도 유쾌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특정 젠더나 세대의 문화로 간주하기엔 그 정치적 효과와 파급력이 엄청나다. 이 뜨거운 정치적 현장의 올바른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메갈리안의 탄생과 미러링 운동의 전복성, 그 상상력의 힘을 내포한 공동체의 기록에 주목해야 한다.

삼포세대의 ‘미혼’이 아닌 사적 영역의 정치화인 ‘비혼’, 남성들의 번식 탈락 공포와는 다른 결을 지닌 여성들의 비혼 선언에 대한 분석 또한 통쾌하다. 지은이는 많은 사회학자들이 비혼을 청년 빈곤에서 비롯된 현상이자 사회정치적 소외의 국면, 불안정 취약성의 징표로만 읽어내는 것에서 벗어나 비혼의 정치적 의미를 일깨워준다. 비혼을 몸소 실행하는 것이 곧 무수한 질문들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 나아가 동성애, 양성애, 우정 결합체를 비롯한 다양한 결합 형태의 비혼 양식, 그리고 퀴어의 시민성을 발명하는 과정의 전복성도 섬세히 다룬다. 페미니즘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방대하게 얽혀 있는지를, 얼마나 혁명적인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미투 운동에서 파생되는 개념과 문제들인 미퍼스트(MeFirst) 선언, 펜스룰(Pence rule), 가해자의 자살, 미투를 보도하는 언론이 유의해야 할 점, 여성 혐오 폭로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큰 맥락 안에서 설명한다. 쏟아지는 폭로와 들끓는 혐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사회의 역동에 함께하는(WithYou) 행위가 될 것이다.

 

 

새 시대의 움틈은 사회의 친족 구조는 물론 노동 배분 양식, 섹슈얼리티라는 친밀성의 양식에 대한 재배치를 요구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감각에 의해 본격화되었습니다.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사회적 감수성은 내 일상의 습속을 북돋우는 힐링 담론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정답지에 가둬지지 않은 숱한 질문들에 충돌케 하는 문제적 계기일 뿐입니다. _8쪽

 

강간 문화는 형용모순 아닌가요? 어떻게 ‘강간’이라는 흉물스런 폭력과 ‘문화’라는 고고한 장이 조합될 수 있나요? 문화의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문화는 자연과 야만, 미개성의 영역을 설정해야만 존립 가능한 개념입니다. 즉 문화의 타자들에 대한 조작, 이용, 착취, 통제, 정복 행위가 문명화라고 불리는 것이죠. 문화란 타자에 대한 폭력의 이름인 것입니다. 남성들 간의 결속체로 이루어진 문화가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여성인 것이지요. _85쪽

 

폭로 행위자들이 자신이 느꼈던 바가 무엇인지 그 고통의 강도가 어떠한 것인지에 오롯이 집중하며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세상은 폭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 혐오 사회의 긴 터널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이자 새로운 사회를 상상해내는 폭죽입니다. 이미 폭로가 바로 해방의 언어 그 자체인 것입니다. _100~101쪽

 

강간 문화에 대한 방관은 수동적 입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또 다른 강간 문화의 적극적 생산 지점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_215쪽

강간 문화는 여성과 자리를 바꿔 앉아주거나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젠틀한 제스처를 몇 번 취함으로써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행위는 성폭력 가해자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공동체 내부에 폭압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게 해 가해자의 행동 양식의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항시 피해를 입는 자들의 처신과 대처법의 간구로만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_218쪽

목차

들어가는 글

1장______헬페미
헬조선의 시공간성 | 노오력과 포기 세대 | 헬조선에 여성 시민은 없다 | 뉴페미, 영페미가 아닌 헬페미 | 헬페미가 꼴페미, 페미나치일 수 없는 이유 | 전략1. 소비 기부자의 탄생 | 전략2. 개념 발굴과 재맥락화 | 전략3. 용어 창안 | 주체에서 변이체로

2장______메갈 사냥
헬조선을 떠도는 메갈이라는 유령 | 낙인의 이름 | 왕자가 필요 없는 소녀의 전복성 | 넥슨 사태 | ‘그 메갈’이 아님을 증명하지 말라 | 일베의 형제들 | #내가_메갈이다 | 호명의 발신자 되기 | 백래시 | 안티 페미 매카시즘 | 민주주의 광장 속 여혐 | 고체 연대에서 유체 연대로

3장______폭로와 상상
문명, 누구를 미치광이로 만드는가? | 유리구두와 유리천장 | 강간 문화 | 고백의 값 | 해방의 언어, 폭로 | 폭로와 알레테이아 | 폭로와 파르헤지아 | 폭로의 계보학 | 기록과 해석의 공동체

4장______통감하라!
포스트잇 정치학 | 여성 혐오 | 미소지니 가루내기 | 폭력의 얼굴들 | 통감하라! | 혐오와 분노의 차이 | 남성 혐오는 없다

5장______비혼 선언
감각판의 요동 | 사적 영역의 정치화, 비혼 |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하다 | 번식 탈락 공포와 비혼 선언의 불안 | 포스트휴먼적 기획으로서의 비혼 | 비혼 양식 세분화하기 | 퀴어 시민성의 발명 공간 |미래적 비전 비혼 선언

6장______#MeToo
폭로는 항시 있었다 | 문제는 남성 | 폭로 그 이후 | 고통 그 자체와 고통의 맥락화/의미화 | 고통은 그저 과거로의 포박인가? | 고통의 의미 기입은 종교 담론으로의 귀결인가?

나가며_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하여

참고문헌

작가 소개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철학 학사와 석사를, 파리 1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취득했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 데리다, 푸코, 들뢰즈를 비롯한 프랑스 현대 철학 사상과 포스트휴머니즘, 정신분석학 등을 넘나들며 여성 철학의 계보학을 열어가고자 한다. 「가장 첨예한 철학으로서의 페미니즘」 「현실의 운용 원리로서의 여성 혐오」 등 20편의 논문들이 있고 프랑스에서 발간한 저서 《La déconstruction du phallogocentrisme(남근이성중심주의의 해체)》과 공저서 《감정 있습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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