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관노비가 되어버린 여인, 정난주
매몰차고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김소윤 장편소설 《난주》 출간!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김소윤 장편소설 《난주》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난주》는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 명망 있는 조선 명문가의 장녀였던 ‘정난주 마리아’가 신유박해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후 제주도 관노비가 되어 견뎌야 했던 신산한 삶을 그려낸 소설이다. 역사와 종교, 실존인물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빼어난 문장과 개성 있는 문체로 녹진하게 녹여냈으며, 당시 제주의 풍습과 방언 등을 뛰어난 수준으로 고증하고 복원해냈음에 큰 가치가 있다.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난주는 박학다식하고 현명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기씨’라 불리며 어여쁨을 받았던 그녀는 천주교 탄압을 피해 친정으로 피신했지만 남편 황사영이 천주교 부흥을 위한 백서를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참형당한 후 관비로 정배되고 만다. 하루아침에 집안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가 천하디천한 관노비가 되어 제주라는 변방으로 향하는 길. 난주는 어린 아들만큼은 관노비로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경헌을 추자에서 몰래 빼돌리고 평생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사무쳐 살아간다. 관노비 신분에도 올곧고 강직한 성품을 버리지 않는 난주를 눈엣가시로 여겨 그녀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줄곧 나타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주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 또한 그 주변에 머물며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양딸 보말을 키우면서도, 보말로부터 시작된 전염병이 온 마을을 휩쓸었을 때도, 시샘하고 투기 부리는 자들에게 모함을 받아 곤경에 처했을 때도, 난주는 역경과 고난을 묵묵하게 뚫고 나아간다. ‘정난주’라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찬란했던 인물. 소설가 김소윤은 장편 《난주》를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문체로 정난주 마리아의 삶을 그려냈다.
“하늘이 멀다 하나 어디서나 흰빛은 내리고
그 땅이 멀다 하나 마음까지 멀겠느냐.
너는 어디서나 반듯하게 이름을 지키고 몸을 세우며
함부로 울지도 엎드리지도 말라.”
소설가 김석희 송기원 한승원은 “역사와 문학의 만남이 이렇게 아프고 슬플 수 없다. 제주도의 역사와 풍토, 서민들과 노비들의 학대받는 아픈 삶을 바탕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고 오늘 부활시켜야 하리라 생각된다”고 말하며 “이 소설 속의 정난주는 당시의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정글의 세상 속에서 평화를 조성하고자 하는 의지의 인물로 읽힌다. (……) 작가는 종교에 치우치지 않으려 애쓰고 철저하게 그의 절대고독과 생명력을 형상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심사경위를 밝히며 작가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
혹독한 겨울바람 같던 신산한 삶,
그럼에도 난주는 계속 나아갔다
남인 명문가의 장녀이자 천주교도인 정난주는 신유박해로 인해 시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한다. 남편 황사영은 제천 배론 골짜기에 숨었으나 천주교 부흥을 위한 백서를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고 만다. 결국 난주는 두 사람과 함께 관비로 정배되어 시어머니는 거제로, 난주는 아들 경헌과 함께 제주로 떠난다. 하지만 어린 아들만큼은 관비의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추자에서 아들을 빼돌린다. 하루아침에 천한 관비가 된 난주는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로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한 해 뒤, 설운이란 어린 여종의 난산을 도운 후 설운의 딸 보말을 양딸로 얻어 관아에서 키우게 되는데, 보말은 제주에서 천한 일꾼이 되어 살아가는 난주에게 빛이자 기쁨 그 자체가 되고, 한편으로는 경헌 또한 추자에서 좋은 부모를 만나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기를 바라며 아들을 그리워한다.
보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난주의 삶은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가뭄과 장마가 반복되는 날씨 탓에 전염병이 찾아들고야 만 것이다. 난주의 양딸 보말을 시작으로 마을 전체에 마마가 퍼져나가는데, 난주와의 원한이 큰 병방이 박수무당 이성두의 사주를 받아 난주에게 환자들을 떠맡긴다. 숙부 정약용이 마마에 관한 책을 썼고 그녀 또한 의술 서적을 다양하게 봐왔던지라 난주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치료한다. 이때 별감 김석구의 아들 상집과 병방의 아들 태선도 마마에 걸려 난주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러던 중 침을 놓을 줄 아는 정방호라는 상인이 난주를 돕고, 둘은 그렇게 벗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완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태선은 끝내 목숨을 잃는다. 아들을 잃은 병방의 원한이 하늘을 찔러 논의 끝에 난주는 별감 김석구 집안의 유모로 가게 된다.
“난주는 집안의 종들이 간혹 병으로 죽었던 일들을 생각한다. 아버지는 약도 쓰고 의원도 불러주었으나, 종 하나의 죽음을 온 집안이 애도하는 일은 드물었다. 죽고 나면 누군가 멍석을 말아 지게에 짊어지고 뒷문으로 나선다. 제대로 장례를 치르는 일은 없었다. 난주 또한 유모의 죽음 외에는 오래 애통해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 속에서 쉽게 나고 쉽게 죽었다. 이제 그 천한 생의 한가운데에 바로 자신이 있었다.”(150쪽)
난주는 김석구의 아들 상집과 상윤을 정성으로 돌보면서 안온한 날을 보낸다. 장성한 상집은 소화라는 여인을 마음에 두었는데, 소화의 아비와 오라비가 역적으로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탈옥한 두 사람을 숨겨준다. 하지만 그 사실은 곧 들통이 나고, 난주는 주인댁의 죄를 일부러 뒤집어쓰며 스스로 죄인이 된다. 소화의 탈옥을 주도하고 도망 다니던 정방호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뇌물을 주어 난주를 방면시키지만, 난주는 다시 대정읍 관비로 정배된다. 차귀진의 조방장 황림은 성질이 포악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는데, 다부지고 영민한 난주의 모습이 황림의 마음에 들어 의술에 밝은 난주에게 약방 돕기를 명한다. 따로 살림을 나게 된 난주는 보말을 불러들이고, 황림의 허락 아래 몸이 불편한 어르신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구휼소를 세운다. 하지만 난주가 다시 천주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차귀진의 군사들이 난주의 집에 들이닥친다. 난주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어머니를 그토록 애달파하던 경헌은, 다시 어머니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너무도 서럽고 그리워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그 아픔을 전할 수가 없었고, 사람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울음만이 두 사람의 지난 생애를 위로하고 달랠 수 있었다. 저녁 해가 완전히 기울어 어둠이 투덕투덕 내려앉도록 두 사람의 울음소리는 파도 소리를 이기고도 남았다.”(334쪽)
*
《난주》가 긴 서사와 호흡을 가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겁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건 소설가 김소윤이 보여주는 부드럽고 단단한 문체 덕분이다. ‘정난주’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강인하고 섬세한 성정을 감싸는 작가의 문장과,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꿋꿋한 힘은 결국 문학이 가진 힘이고,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가닿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인물, 하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새겨두어야 할 인물, 정난주. 이해인 수녀는 《난주》를 읽고 “희생과 절제와 극기로 신앙을 증거한 숨은 별의 성녀”라는 추천사를 보내왔다. 정난주 마리아는 김소윤의 소설을 통해 이제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것이다.
“정난주 이름을 딴 성당에 가서 기도할 적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갈망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이 책이 답을 주어 기쁩니다. 우리도 일상의 삶에서 그를 닮아가는 노력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 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십시오. 기쁘게!” _이해인(수녀·시인)
* * *
■ 심사평
본심에는 다섯 편이 올라왔는데, 세 심사위원이 공통으로 추천한 작품은 《난주》였다. 그래서 당선작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 역사와 문학의 만남이 이렇게 아프고 슬플 수 없다. 제주도의 역사와 풍토, 서민들과 노비들의 학대받는 아픈 삶을 바탕하고 있는 이 소설은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고 오늘 부활시켜야 하리라 생각된다. _심사평 중에서
■ 작가의 말
정난주 마리아라는 이름이 가슴에 박힌 것은 벌써 오 년 전 일이다. 조선 명문가의 장녀로서 천주교도의 삶을 살았던 여인. 남편을 잃고 아들과 떨어져 한평생을 제주의 관비로 살아야 했던 여인. 내게 그 여인은 정약용의 조카, 황사영의 아내…… 그런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정난주란 이름 자체로 물음표가 되어 다가왔다. (……) 정난주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곧 조선이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이라고 느꼈다. 악함과 선함이 공존하고 고귀함과 비열함이 함께하며 때론 의도치 않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 혼란한 세계 속에서도 어떤 선한 결과(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만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끝끝내 지키며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부분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이들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난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난주 · 7
심사평 · 337
작가의 말 · 339
주요 참고자료 · 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