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공상하지 않는다

복도훈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9년 2월 15일 | ISBN 9791188810802

사양 변형판 150x210 · 420쪽 | 가격 16,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2019 1분기 문학나눔 선정 우수문학도서

책소개

SF는 오락소설인가, 진지한 사고실험인가? 국내 최초 SF문학 평론집 출간!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을 종횡하며 독특하고 과감한 사유로 비평적 영토를 개척해온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SF평론집 《SF는 공상하지 않는다》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십 년에 걸쳐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썼다.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는 그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 SF문학의 비평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단행본으로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작품의 생산만 있고 제대로 된 비평은 없는 상황에서 한국 SF는 종종 논쟁의 대상이었고 상업적이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이 책은 그러한 SF의 의미를 되짚고 무중력 서사로 일컬어지는 텍스트들을 본격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첫 시도다. ‘미래’라는 화두를 통해 비평적 실험을 해온 저자는 한국 문학의 장에서 발표된 SF소설의 비평과 작가론, 작품론뿐 아니라 해외 SF작가들의 아포칼립스 및 유토피아 소설, 우리에게 아직 낯선 영역인 북한 과학환상문학에 대한 비평까지 그러모아 한 권에 묶었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과학소설, 새로운 리얼리즘’과 2부 ‘한국 과학소설의 여러 면모’에서는 SF 장르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둘러싼 여러 비평들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SF에 대한 유형화를 시도한다. 복거일, 듀나, 배명훈, 김보영, 박민규, 윤이형, 김희선, 백민석, 조하형 등의 SF와 1960년대 한국 SF의 돌연변이인 문윤성의 《완전사회》, 그리고 북한의 SF(과학환상소설)를 다룬다. 3부 ‘미래 없는 미래의 이야기들’과 4부 ‘이 지상의 낯선 자들’에서는 정용준(《바벨》), 손홍규(《서울》), 최인석(《강철 무지개》)의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소설, 정유정의 재난소설(《28》),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 」(2003), 한국 최초의 아포칼립스 소설인 김윤주의 <재앙부조>(1960)와 박문영의 《사마귀의 나라》(2014)를 살핀다. 그리고 J. G. 발라드, 필립 K. 딕, H. P. 러브크래프트의 SF를 다루는 한편 SF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 이론적 근거가 되는 철학과 비평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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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미학적 지평 확대를 위한 비평적 시도

그동안 한국 문학은 리얼리즘 서사에서 우수한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왔고, 그것은 공히 ‘한국 문학의 보람’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재현과 해석의 측면에서 리얼리즘이 본의 아닌 규율과 법칙으로 다른 문학의 가능성에 억압적인 기제로 작용한 측면도 더러 있었다. 장르적인 혼효와 습합을 통한 소설미학의 갱신, 확대된 리얼리티로서의 환상의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험, 현재의 연장 또는 단절로서의 미래에 대한 대안적인 상상력 등은 그동안 한국 문학에서 리얼리즘이 지닌 현실원칙의 강고한 규율에 얽매인 한낱 ‘낮꿈’과 같은 잔여물처럼 취급되었던 게 사실이다. 여전히 SF의 번역어가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점이 이것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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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는 ‘공상’에 오래 들러붙어 있는 내실 없거나 근거가 빈약한 상상이라는 낡은 의미를 도려내기 위해 다소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입니다. 만일 SF를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하려면, ‘공상(imagination, fancy)’의 본래적인 의미를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문학에서는 근거 없고, 허황되며, 공허한 환상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근거 없고, 허황되며, 공허한 현실도 존재하는 마당에. _<들어가는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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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로 구축되고, 그것의 발달로 인해 변화가 추동되는 현대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방법이 SF다. 저자는 SF라는 용어에 들러붙은 ‘근거 없고 허황되고 공허하다’는 이미지를 벗겨내고 본래적 의미를 회복시키는 한편 한국 SF를 유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격문학에서 시도되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논거한다.

가령 박민규와 윤이형의 문제작들에서는 두 소설가가 각자 다르게 외삽한 현실을 통해 공통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를, 배명훈과 김보영에 대해서는 ‘한국판 데카르트의 SF적 후예들’이라 일컬으며 그들이 주체와 타자,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톺아본다. 또 저자에 따르면 현재 한국 문학의 SF는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그 첫째는 타자성에 대한 환상적인 매혹(반발)과 그런 식으로 발견된 다른 세계와 (유사)인간을 그린 작품들이다. 그는 그 예로 문윤성의 소설 《완전사회》(1967)를 언급하며 미래의 화성(남자)과 지구(여자) 사이의 정체성(젠더) 갈등을 그리는 한편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는 탈자본주의적인 세계도 재현했다고 말한다. 이중에서 특히 정체성은 복거일의 《비명碑銘을 찾아서》(1987)를 비롯한 작품과 듀나의 소설 들에서 각각 민족적 정체성과 젠더 정체성으로 분화되어 묘사된다. 복거일의 경우, 민족적 정체성은 《비명을 찾아서》에서 일본인과 간통한 아내를 죽이고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을 되찾는 방식과 결합한다. 듀나의 경우, 젠더 정체성은 무수한 소설적 변주를 통해 미분화된다. 저자는 대체로 최근 한국의 SF가 듀나의 노선을 따라 젠더, 인종, 인간과 유사인간의 정체성 형상화에 몰두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둘째는 ‘세계의 세계없음’의 증상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인지적 지도 그리기’로 형상화하는 과학소설(과학 밖 소설)이다. 첨단의 테크노 미래가 불과 모래비의 재난으로 무너지는 방식으로 세계의 세계없음을 재현한 조하형의 장편소설 《조립식 보리수나무》. 이 작품에서 ‘예정된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세계없음의 항구적인 재난을 살아가는 실존에게 던져진 ‘구원은 가능한가’라는 물음과 맞닿는다. 이와 더불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세계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재현한 SF도 있다. 이 경우 SF는 정체성의 형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세계를 재현한다. 그런데 세계화에 대한 ‘인지적 지도 그리기’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김희선의 장편소설 《무한의 책》에서 평행우주와 시간여행으로 재현된 다른 세계란 소설의 진정한 무대라고 할 만한 세계화된 세계의 변주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진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SF에서 이 노선은 귀하고 드물다. 셋째는 마이클스가 말한 풍속(계급)소설로서의 SF다. 그러한 SF에서는 정체성과 차이(신체와 문화)로 구축되는 SF의 유사인간과는 다른 유사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좀비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성, 인종, 민족)의 표시가 삭제되거나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고 미래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순전히 헐벗은 비체(abject, 非體/卑體)로 드러나는 좀비는 풍속(계급)소설로서의 SF에 어울리는 유사인간일 수 있다. 물론 클론, 로봇, 외계인 등이 정체성(차이)보다 계급(신분)을 구현하는 유사인간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박민규(《더블》 side A/B, 2010; 〈로드킬〉, 2011; 〈대면〉, 2014)와 김창규(《우리가 추방된 세계》, 2017; 《삼사라》, 2018), 최민호(《창백한 말》, 2017) 등의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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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기획하고 전시하며 공연한다” 북한 과학환상소설!

작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사람들은 이 회담을 SF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SF’라는 흥미로운 표현에 주목해 김 위원장이 SF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팬이었다는 추측성 기사를 쓰기도 했다. 북한과 SF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 과학소설은 서구 및 한국의 SF와 비교했을 때 그 위상이 여러모로 독특하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소련의 과학소설과 서구의 과학소설이 북한에 번역되기 시작했으니 창작과 비평의 양적인 비중도 남한에 비해 그 축적이 상당하다 하겠다. 북한에서 과학환상소설은 북한의 여타의 다른 문학과 비슷하게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문제의식의 문학적 산물로, 문학적 독자성과 자율성을 거의 견지하지 않는다. 과학환상소설을 포괄하는 개념인 과학환상문학은 문학의 실용주의적 도구화, 즉 문학을 당 정책의 예술적인 수행 과정으로 간주하는 북한 문학의 일반적인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남한보다 훨씬 빠른 1993년에 이미 북한에서 출간된 황정상의 SF평론집 《과학환상문학창작》에 주목하면서 김동섭(《바다에서 솟아난 땅》)과 조천종(《남색하늘의 나라》), 박종렬(《탄생》) 등의 작품들에 드러난 상징과 비유체계, 주요 플롯들을 두루 살핀다. 이들 작품에서 과학자가 경험하는 극복과 시련의 서사는 대체로 조국 수호와 영토 확장의 꿈으로 제시된다. 이를테면 “숭고한 자연을 보면서도 공포감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크고 웅장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인간의 위대한 힘에 의하여 정복되고 개조되고 만다는 굳은 신심과 용기로 가득 찬 강렬한 충동”으로 숭고화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북한 과학환상소설에서 사회주의적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담지하는 과학자 인물형을 감싸고 있는 아우라라고 지적한다. 또한 숭고는 과학환상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외국인에게 깊은 감화와 감명을 주는 방식으로 그것을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만드는 미학적 전시의 효과이기도 하다. 나아가 과학환상소설에서 인물의 숭고미는 ‘글로벌 조선’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한 모두가 관객이자 동시에 배우가 되는 극장국가의 과시적 전시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학환상소설은 가능한 하나의 미래를 재현하거나 미래에 대한 관념을 일관되게 형상화한다기보다는 미래를 기획하고 전시하며 공연한다. 미래에 대해 재현하기보다는 공연해 보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서구 과학소설과 대비되는 북한 과학환상소설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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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장르문학이자 문학 장르이다

전 세계 SF 팬들에게 2019년은 매우 각별한 해다. 로봇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속 시간적 배경이 바로 2019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핵전쟁으로 인한 방사능으로 지구는 완전히 오염되었고, 감정을 가진 복제인간이 반란을 일으킨다. SF영화와 SF소설은 물론 상상을 토대로 한 것이기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필립 K. 딕의 원작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가 1968년에 쓰였고 1992년을 작품 속 배경으로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가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허무맹랑한 공상오락물로만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인류가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지금 여기’의 문제를 은유하고 돌아보게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SF는 오락인가 아니면 진지한 사고실험인가? 이 오래된 질문과 논쟁에 대해 《SF는 공상하지 않는다》의 저자 복도훈은 이미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둘 다”라고.

목차

들어가는 말 SF, 최초의 접촉

1부 과학소설, 새로운 리얼리즘
SF, 과학(Science)과 픽션(Fiction) 사이에서
SF와 계급투쟁: 박민규와 윤이형의 SF에 대하여
이야기의 클리나멘, 클리나멘의 이야기: 김희선의 《무한의 책》에 대하여
데카르트의 SF적 후예들: 배명훈과 김보영의 SF에 대하여
SF의 존재론을 위한 사고실험

2부 한국 과학소설의 여러 면모
한 명의 남자와 모든 여자: 문윤성의 《완전사회》에 대하여
화성을 젠더 수행하기: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에 대하여
한국의 SF, 장르의 발생과 정치적 무의식: 복거일과 듀나의 SF에 대하여
“원쑤들을 쓸어버려라”: 북한 과학환상소설과 바다
“무한히 넓어지는 우리의 조국 땅!”: 북한 과학환상소설과 우주

3부 미래 없는 미래의 이야기들
마니교 시대의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바벨》 《서울》 《강철 무지개》에 대하여
‘인간 없는 세상’을 꿈꾸는 소설: 정유정의 《28》에 대하여
원한의 리셋충동과 구원의 해석학: 다시 본 「지구를 지켜라!」
리셋과 무망(無望)의 서사: 김윤주의 〈재앙부조〉와 박문영의 《사마귀의 나라》

4부 이 지상의 낯선 자들
역사의 기후와 인간 종의 변이: J. G. 발라드의 파국 삼부작에 대하여
필립 K. 딕의 환생 : 그의 서사적 우주로 들어가기 위한 몇 개의 키워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탐사하는 흑마술 서사: H. P.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
두 마르치온주의자에 대한 단상: 야콥 타우베스와 윤인로
세계의 끝에서 다시,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나가는 말 종말기상관측소 K의 하루

작가 소개

복도훈

안면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5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했으며, 2007년 제52회 현대문학상(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평론집 《눈먼 자의 초상》(2010), 《묵시록의 네 기사》(2012), 연구서 《자폭하는 속물》(2018)을 썼고, 옮긴 책으로 《성관계는 없다—성적 차이에 관한 라캉주의적 탐구》(공역, 2005)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을 계속하며 ‘미래’라는 화두를 통해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기후와 징조를 관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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