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의 방

지음 진유라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9년 5월 30일 | ISBN 9791189982195

사양 변형판 140x210 · 216쪽 | 가격 12,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2019 문학나눔 선정 우수 문학도서

책소개

경계를 넘어온 당신의 기억을 듣고 싶습니다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 《무해의 방》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사위원 윤대녕·윤성희·구병모·송종원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 진유라의 《무해의 방》이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무해의 방》은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탈북한 한 여성, 무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탈북 사실을 숨긴 채 가정을 꾸리고 생활하던 중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은 그녀는 홀로 남게 될 딸에게 남겨줄 기록을 시작하고, 자신 안에 기록이 되지 못한 기억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경유하는 그 험난한 고난 속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무해의 고백이 치매의 몸을 입고 소설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변화하는 남북한 관계를 예민하게 감각하여 축조해낸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역사와 맥락을 가진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질문한다. 같은 맥락에서 《무해의 방》이 가장 치열하게 파고드는 탈북자 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도래할 가까운 미래의 꿈을 미리 연습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심사평에서처럼, 《무해의 방》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의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미리 추체험해보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탈북이라는 생존의 위협을 견뎌온 무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 존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무해의 방》은 치매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소중해지는 망각의 순간을 통해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면서, 소설은 치매가 만들어내는 비일상의 공간을 재현과 고백의 공간으로 바꾸어낸다. 무해의 기억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데, 특히 기억의 폭풍 속에 주저앉은 무해를 붙드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해의 고백기도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광범위한 취재를 바탕으로 구성된 생생한 소설적 상황은 무해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게 하는 한편 고통을 넘어서려는 문학적 시도를 구성한다. 이 시도를 통해 《무해의 방》은 미래에서부터 이쪽의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너머’의 메시지를 전한다.

 

 

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기억’들이 있었다.
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감정’들이 있었다.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딸 모래와 함께 살던 무해는 초로기 치매를 진단 받는다. 그녀는 지금까지 탈북 사실을 숨겨왔지만 초로기 치매의 진단 후 생존 기간이 5~6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홀로 남을 딸을 위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무해는 북한에서 자주 먹던 감자 전분으로 만든 담박한 농마국수를 만들어놓고 딸 모래에게 자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모래는 순식간에 농마국수 한 그릇을 비워냈다. “엄마는 북한 음식에 대해서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아? 북한 사람처럼?” 무해는 모래의 질문을 잠시 밀쳐놓았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자 그녀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농마국수는 엄마가 북조선에서 즐겨 먹던 국수였다고 그녀는 모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 본문 47쪽

치매가 진행될수록 무해의 행동은 모래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해가 가진 과거의 기억들이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기억, 기록되지 못한 무해의 역사가 치매가 만드는 비일상의 시공간에서 현실로 되살아난다.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기근을 겪은 북한에서의 삶, 그 속에서 존엄을 잃고 비참해진 사람들의 모습, 탈북을 결심하고 홀로 내달렸던 숲과 압록강의 검은 물, 중국 브로커의 집에서 팔리기만을 기다리며 지낸 시간, 장애가 있는 시골의 한족에게 팔려간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고백해야 하는 한 아이가 있었다.

고소한 콩 볶은 냄새와 카스텔라처럼 달콤한 냄새가 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 체취가 나는 사람도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체취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콩 농사를 짓는 농부의 딸이었으므로 콩 냄새가 났고, 엄마가 만들어준 유일한 간식거리인 카스텔라를 자주 먹었기 때문에 달콤한 카스텔라 냄새가 났다. 남편이 이 세상에 있었다면 결코 하지 못할 이야기를 무해는 오늘 하고 싶었다. ― 본문 177쪽

그 기억들은 무해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을 잃어가는 무해에게는 그런 기억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하다. 노트에 북한에서 먹었던 음식의 레시피를 기록하거나 모래에게 북한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무해는 그녀가 겪은 삶의 충만한 순간도 함께 떠올린다. 아버지가 밀수해왔던 카스텔라의 맛, 남한에 도착해서 처음 들었던 정중한 인사, 남편인 은석과 벌였던 탁구 시합, 절친한 친구 영주와 놀러 다닌 곳, 무해를 낳고 씻기고 먹여 키운 일 등. 그녀는 그녀를 따듯하게 감싸고 있는 사소한 일들과 엉성하지만 사랑스러운 공동체를 되살핀다. 그리고 그녀를 단단히 붙잡아 지탱하는 것은 딸 무해와 그녀의 오랜 친구 영주의 손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그들의 따듯한 손에 붙들린 채 그녀는 절절한 고백기도를 시작한다.

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로 치매였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보니, 그제야 인생이 막 작동되었다. ― 본문 30쪽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절실해지는 순간,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묻다

《무해의 방》은 ‘호적이 없다’는 의미의 ‘후이구가’, 혹은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무해의 삶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엄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대기근과 함께 정부의 구조적 도움조차 멈춰버린 북한의 비인간적인 삶과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중국에서의 야만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재난을 피해 국가를 탈출해야만 했던 개인에게 새겨진 폭력의 역사를 조명한다. 그러나 소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폭력에 노출된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 어떻게 타인을 신뢰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한 반추의 자리가 ‘치매’가 만들어놓은 비일상의 자리라는 점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사회와의 격리나 단절로 여겨지는 치매를 통해서 무해의 기억은 비로소 타인과 공유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무해의 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 외부를 조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치매 노인인 무해가 겪는 일들은 한국 사회 내부의 노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더 나아가 ‘굶주림’의 경험이 있는 무해와 그렇지 못한 남편 은석의 만남은 한국 사회 내부를 가로지르는 다종다양한 계층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소설은 한국 사회의 내부와 외부를 가로지르면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으며, 또한 겪게 될 이야기를 문학의 힘으로 경험함으로써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목차

프롤로그…7
초로기 치매…14
농마국수…29
공산주의식 사랑…48
굶주림에 대하여…71
인조 고기밥…95
국경…110
엄마만의 방…125
검은 사람…143
카스텔라…166
고백기도…193

작가의 말…210
참고자료…214

작가 소개

진유라 지음

2019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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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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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6 =

  1. 박상일
    2019.06.12 8:34 오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먹고 사는 기본이 인간다운 자존감을 세워준다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해의 아픔도 모래의 헌신도,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감에도 어찌나 실감나게 와닿던지요.
    생존의 막바지에서 바둥대던 무해에게 음식이…탈북이 해결책이었다면
    이 책에서 느낀 자존감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마음을 두드리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정독해 보렵니다. 작가님 고맙습니다. 읽는 내내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겠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