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

박승규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0년 2월 19일 | ISBN 9791190492300

사양 변형판 140x210 · 360쪽 | 가격 17,000원

분야 인문, 종교/역사

책소개


동물 없이는 역사도 없다
인간들만 판치는 지루한 역사에 종지부를!

 

동물이 역사를 바꿨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후추, 소금, 감자 같은 작물도, 석유, 총, 균, 쇠 같은 자원이나 과학 문명도 아닌 동물이 말이다. 사실이다. 『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물론 주변 아시아 국가의 역사, 문화 속에서 동물이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역사의 장면 장면에 얽힌 흥미로운 동물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02년 경남 하동에서 미지의 파충류 화석이 발견됐다. 복원 작업 끝에 이제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악어종임이 밝혀졌다. 이 악어는 조류, 포유류보다 앞선 2억 4천만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나 공룡이 멸종된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한반도의 원주민은 인간이 아닌 악어였던 셈. 이처럼 동물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은 역사를 오직 인간만이 좌지우지해온 듯 으스대는 걸까? 현재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린 신종 코로나는 ‘박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쥐’를 매개로 전염된 흑사병 페스트는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빼앗으며 중세 유럽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이 책은 많은 국가와 사회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의외의 동물부터 역사의 결정적 장면에 틈입해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 동물들, 각 나라 사신이 보내온 외교 답례품 속 동물부터 한중일 3국의 전통문화․정신문화의 원형을 만든 신화 및 설화 속 동물, 용과 봉황, 기린, 해치 같은 환상 동물들까지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동물에 관한 흥미진진하고도 유익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유쾌한 필치로 풍성하게 펼쳐진다.


중국은 참새, 일본은 고래, 한국은 호랑이라고?
역사를 바꾼 작지만 대단한 동물들

그렇다면, 한중일 3국의 역사를 바꾼 대표 동물은 무엇일까? 인류의 오랜 가축이었던 양이나 돼지, 닭일까? 농업 혁명의 주역인 소, 또는 교통과 전쟁의 혁명을 가져온 말일까? 한중일 3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바꾼 의외의 동물은 곤충에 불과한 메뚜기다. 1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메뚜기 떼는 하루 3만 5천 명분의 식량을 먹어 치워 ‘마른 쓰나미’로 불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8번, 백제 5번, 신라는 19번의 대규모 메뚜기 피해가 발생했다. 백제 무령왕 가을에는 메뚜기 때문에 무려 900호가 신라로 탈출했다. 메뚜기 떼가 곡식을 먹어치우자 적어도 수천 명이 신라로 집단 탈출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중국과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당 태종은 가장 큰 메뚜기를 잡아 삼키며 “네놈이 백성의 곡식을 갉아먹는다니 차라리 내 오장육부나 갉아먹어라”라고 대성일갈을 했다는 야사도 전한다.

이 밖에도 한중일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만든 동물은 많다. 중국은 참새, 일본은 고래, 한국은 호랑이 때문에 역사의 장면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일등공신 호랑이

한반도의 밤은 호랑이와 표범이 지배했다. 조선에 호랑이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중국 속담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한테 물려죽은 사람 문상을 다니고, 나머지 절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를 봐도 알 수 있다. 1571년에는 백호가 사람을 비롯해 가축 400여 마리를 물어 죽인 충격적 사건이 있었고, 1607년에는 호랑이가 궁궐 안에 새끼까지 낳았다. 결국 조선에서는 호랑이와 표범 사냥을 전담할 특수 부대 ‘착호갑사’를 운영했는데, 이 착호갑사가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선두에 섰다. 인조반정의 중심인물이었던 이귀는 마침 군사력을 보유한 황해도 평산 부사로 임명됐다. 그 후 평산에서 개성에 이르는 길목의 호랑이를 퇴치하겠다는 빌미로 착호군을 모아 호랑이 대신 광해군을 잡았다. 호랑이가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던 쿠데타였다.


▶ 고래 때문에 강제 개항을 맞은 일본, 조선과 중국을 앞지르다

고래는 일본 근세사를 바꿨다. 1853년 일본에 문호를 열라고 협박한 미국 페리 제독은 실상 고래를 쫓아 일본까지 왔다. 당시 세계 최대의 포경 국가였던 미국은 태평양 고래잡이 어선의 기착 항구가 필요했다. 어업 전진 기지를 확보하고 중국과 무역을 트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강제 개항시켰다. 비록 강압으로 맞은 개항이었지만 일본은 서구의 신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강대국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1945년 패전 때까지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위세를 떨쳤다.


▶ 참새 때문에 닥친 대기근, 4천만 명이 목숨 잃고 마오쩌둥은 정치 2선으로

마오쩌둥은 가장 존경받는 중국의 지도자였다. 어느 날, 쓰촨성 농업 현장을 시찰하던 마오쩌둥 눈에 벼를 쪼아 먹는 참새가 포착됐다. “인민의 곡식을 뺏는 해로운 새다. 없애라!” 마오쩌둥의 명령이 떨어지자 참새 박멸 운동이 시작됐고 학교, 작업반, 정부 기관마다 죽인 참새의 양에 따라 표창이 주어졌다. 이렇게 잡힌 참새는 1958년에만 2억 1천만 마리. 그러나 참새를 잡으면 곡식 수확량이 늘 줄 알았건만 1958년부터 60년까지 중국은 최악의 흉년이 들었고, 1958년 한 해 동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참새를 박멸하니 참새들이 잡아먹었던 해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대흉작이 된 것. 일설에 따르면 3년간 약 4천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여파로 마오쩌둥은 권력 퇴진을 압박받아 정치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중국 인민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대재앙을 초래한 후였다.


▶ 원숭이부터 낙타, 비둘기, 코끼리까지 전쟁의 역사는 곧 동물의 역사

대부분의 전쟁에는 인간만큼 중요한 자원이 작용해왔다. 바로 동물의 힘이다. 동물은 때로는 식량으로, 때로는 이동 수단으로, 때로는 무기 발명에 커다란 영감을 줬다.
중국 송나라 때 소수민족 10여만 명이 규합해 반란을 일으키자 송은 인근 산에서 원숭이 수십 마리를 잡아와 원숭이 등에 횃불을 묶어 풀어줬다. 원숭이가 뜨거워 날뛰자 불은 순식간에 반란군 진영을 태웠고, 이 혼란을 틈타 반란을 진압했다. 전투에 투입된 역사상 최초 ‘원숭이 가미카제’다. 6.25 전쟁에는 낙타가 참전했다. 당시 북한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중공군이 낙타를 이용해 탄약 등 보급품을 수송한 것. 사막에나 어울릴 법한 낙타가 영하 35도의 혹한이 맹위를 떨치는 장진호 전투에 나타난 것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혹사당하다가 죽는 동물은 말과 당나귀다. 말과 당나귀에 각종 중화기와 탄약을 싣고 험지의 적진에 침투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말과 사람을 동시에 제압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무기를 ‘인마 살상용’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탱크가 없던 시절, 코끼리는 적의 견고한 방진을 뚫는 역할을 했고, 전쟁 후 바닷속 숨겨진 기뢰나 적 잠수요원을 찾아내는 특수 임무에는 잘 훈련된 돌고래가 이용됐다.


우리말 ‘시치미 뗀다’의 유래부터
한중일 외교 사절단에 빠지지 않던 동물들
조선 호랑이에 꽂힌 도요토미 히데요시, 고양이 덕후 숙종까지
희귀해서 더 재밌는 동물들의 숨은 일화

‘시치미 뗀다’는 말이 매 사냥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매사냥은 한중일 3국 모두가 사랑했는데 우리나라 매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탐을 냈다. 북방 민족인 발해, 거란, 여진은 물론 당태종 이세민부터 고려 충렬왕, 조선 세종대왕,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매사냥의 재미에 푹 빠졌는데, 워낙 인기이다 보니 길들인 매를 도둑맞는 일도 잦았다. ‘시치미’는 매의 소유주를 표시한 인식표. 매에게 붙여둔 시치미를 누군가 몰래 떼면 매의 주인이 누구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시치미를 뗀다’는 말까지 나온 것. 동물에 얽힌 우리말과 속담, 방언들에는 이 같은 당시 세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용산, 낙산, 내장산 같은 지명 역시 동물과 관련 깊다.

나라 간 외교 사절단에 빠지지 않던 동물들은 그 나라의 환경과 생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뿐일까? 조선 개국 초 일본은 왜구에게 잡힌 조선인 659명을 돌려보내며 이성계에게 원숭이를 바쳤는데, 이는 조선에 유화책을 쓰기 위함이었다. ‘신라개’로 불리던 꼬리 짧은 개 동경이는 통일신라와 당나라가 평화 협정을 맺고 화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력을 확장하던 발해가 당의 산둥반도를 침공한 733년을 전후해 신라는 당나라에 과하마 다섯 필과 개 한 마리를, 당은 개 세 마리와 흰색 앵무새 한 쌍을 포함해 오색 비단 등의 예물을 보냈다. 이처럼 나라 간 동물 선물은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여는 징표가 됐다.

그런가 하면 동물을 향한 유별난 애착을 보인 왕들도 있었다. 일본의 우다 천황은 네 마리 고양이를 키우며 육묘일기를 남겼고, 양녕대군은 세자 시절 금묘를 얻으려고 신하 신효창의 집에서 떼를 쓰다 이 일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조선 제일가는 고양이 덕후는 효종의 셋째 딸 숙명공주와 숙종이었다. 특히 숙종은 수라상을 받을 때도 고양이에게 손수 고기반찬을 먹여줬을 정도였고, 그의 아들 영종 또한 어의가 팔 통증에 고양이 생가죽 찜질을 처방했지만 자신이 고양이 가죽을 써 병이 나으면 고양이 씨가 마를 것을 걱정해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은 난생처음 보는 호랑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호랑이의 위용을 본 뒤 몸보신을 위해 조선으로 출병가는 장수들에게 특별히 호랑이 고기를 부탁할 정도였다.

이 밖에도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여우가 유독 천대받은 이유부터 조선 시대 제주도에 원숭이가 살게 된 사연, 다람쥐 수출을 위해 만든 다람쥐 섬, 대검찰청과 사법연수원에 해치 석상을 둔 까닭까지 풍성한 이야기들이 지면 가득 진진하게 펼쳐진다.

작가 소개

박승규

1964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와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어릴 적부터 개와 고양이, 다람쥐, 백문조, 앵무새, 칠면조 등 다양한 동물과 지내면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왔다. 학창 시절 ‘동요 속에 토끼가 많은 이유’를 발표해 장학사 표창을 받았다.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파고들면서 우리 역사와 고전, 그중에서도 신화와 민담, 설화 등에 흥미를 갖게 됐고 옛 문헌에 등장하는 동물 이야기에 푹 빠졌다. 어른이 되어 화투를 치면서도 점수를 올리기보다 고도리를 이루는 다섯 마리 새가 어떤 새인지를 더 궁금해했다.
대전광역시청을 거쳐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일하며 시민을 위한 역사 다큐를 제작했다. 한때 전국의 명산과 사찰을 다니며 ‘파워 블로거’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대학에서 문화콘텐츠의 원형을 길어 올리는 방법을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강의하며 언론에 ‘박승규의 사사구(史事口) 남발’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하나의 꽃잎, 혹은 길 위의 한 마리 벌레가 도서관의 모든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한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좋아한다. 지역의 작은 도서관에서 주민들과 함께 인문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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