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나 이별 사무실

손현주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0년 11월 19일 | ISBN 9791191071214

사양 변형판 130x190 · 240쪽 | 가격 13,5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연인, 직장상사, 나쁜 습관, SNS……
지긋지긋한 모든 것들로부터 대신 이별해드립니다

가족과 또래집단 등 삶의 섬세한 관계망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꼭 필요한 문제적 소설’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손현주의 신작 장편소설 《도로나 이별 사무실》이 출간되었다. 그간 예민하게 격동하는 청소년의 감수성을 깊이 있게 조명해온 손현주가 이번에는 관계를 버거워하는 이 시대 성인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았다. ‘이별 대행 서비스’라는 매력적이고 문제적인 소재를 특유의 유쾌하고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는 이번 소설은, 관계 피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과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안전 이별’이라는 말이 화두가 될 정도로, 우리 시대는 이별에 민감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서로와의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워진 한편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은 오히려 터부시되는 이런 사회에서 만남과 이별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누군가 이별을 대신해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지금의 2,30대를 대변하는 듯 인간관계에 회의적인 ‘이별 매니저 이가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보편적 감각을 일깨운다. 하지만 소설은 이별의 필요성에 대해서 긍정하는 한편, 우리가 ‘무엇’과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를 고찰해보기를 촉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와 연관된다. 이 가을, 이별과 만남을 겪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도로나 이별 사무실》은 위로와 응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관계를 끊어내는 일들이었다.
그걸 누군가 대행해줄 수는 없을까?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서른이 된 이가을은 위무력증 증상을 보이는 엄마를 부양하기 위해 애쓰다가 ‘도로나 이별 사무실’에 취업하게 된다.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이별을 대행해주는 사무실로, 사랑이 식은 연인에서부터 괴팍한 습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이별을 주선하고 완성해주는 일을 하는 곳이다.

내 직업은 이별 매니저다. 입사한 지 한 달째다.
한 달 전 나는 연남동에 있는 도로나 이별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갔다. (……) 도로나 이별 사무실은 연남동에서도 데이트장소로 인기가 많은 골목에 있었다. 껄끄러운 감정의 해소를 대행해주는 사무실이 이렇게 연인들이 걷기 좋은 곳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골목 입구부터 화보 감성이 물씬 피어났다. 나는 뭔가 홀린 듯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안은 가정집과 음식점들이 촘촘히 줄지어 있었고 애주가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도 많았다. 내가 찾은 주소는 골목 끝 낡은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분명 연남동이 맞는데 연남동답지 않은 노후된 오피스텔 건물이 날 실망케 했다.
―본문 11~12쪽

가을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레지던트 2년차 황석원의 의뢰로, 여자친구 강미후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미후는 이별을 인정할 수 없다며 강경한 반응을 보인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입사했지만 첫 번째 임무부터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설상가상, 첫 번째 일을 끝내지도 못했는데 들어온 두 번째 의뢰는 책에 파묻혀 사는 남자 진우에게서 책을 떼어내는 일이다.

“근데 제게 어떤 이별을 의뢰하실 건가요?”
빨리 화제를 일 얘기로 돌렸다. 사적인 이야기가 길어지면 곤란했다.
“아, 그거요. 바로 이 책들이에요.”
“네에? 책이요?”
이별의 대상이 책이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책이 뭔가 일상을 방해하나봐요?”
“여자친구 때문에요.”
그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댔다.
“전 주로 골방에서 책 보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데이트도 주로 서점이나 도서관 열람실에서 하게 돼요. 단 하루도 책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서요. 근데 그 습관을 여자친구가 아주 싫어해요.”
―본문 65쪽

도로나 이별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정은 실로 다양하다.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려는 사람이나 30년간 함께해온 남편에게 이혼을 대신 말해달라는 사정에서부터, 스마트폰 중독인 초등학생 아들을 스마트폰과 이별 시키려는 부모, 취직이 어려운 시대에 학교를 떠나기 두려워하는 대학생, 10년 가까이 살던 고시원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고시생, 퇴직한 회사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인 등……. 모든 이별에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일까. 가을은 이별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사연에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 속 깊숙이에 묻어두었던, 스스로 ‘잘’ 이별하지 못했던 상처를 떠올리고 그것과 마주하게 된다.

문득 내가 이별하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인가 떠올려봤다. 분명 그런 것들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리게 했던 흔적들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본문 38쪽

 

안전하고 편안한 이별을 꿈꾸는 관계 피로의 시대,
우리가 애써서 지켜야 할 것을 돌아보게 하는 재기발랄한 이야기!

SNS를 비롯한 온갖 매체 때문에 서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진 이 시대,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한 이별을 꿈꾼다. 지겹고 소모적인 감정을 최소화하기를 바라며 누군가가 지겨운 관계를 끊어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은 그런 우리의 욕망을 ‘이별 매니저’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통해 활달하고 속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낸다. 독자는 일견 시니컬해 보이는 이가을이 사람과 사건을 만나면서 변해가는 모습에 몰입하여 따라가게 되고, 이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

‘쿨’한 이별이 숭상되는 이 시기에, 소설은 이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한편 이별하지 못하는 마음을 단순히 약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 대신 우리가 정말 이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대상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떠나보내야 할 것들을 떠나보내는 차분한 의식들, 그것이 타인을 위한 것인 동시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함을 소설은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무수한 관계망 속에 놓인 현대의 우리가 애써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사랑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보게 한다.

 

 

▣ 책 속에서

“아, 도로나.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도로나는 원래의 나, 자연인인 나를 뜻해요. 누군가 만나고 헤어지면 도로 나로 돌아오는 것이고 또 습관이란 것도 모두 원래의 내 모습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도로 나’로 돌아가자 이런 의미로 회사 이름을 만들었죠.”
―본문 16쪽

“너희들 말이 맞아. 지금까지 훌륭한 여성들의 삶을 보면 모두 싱글이었어. 에밀리 디킨슨도, 대서양을 횡단한 아멜리아 에어하트도 그리고 원더우먼도. 내가 앞으로 쭉 싱글로 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이따위 아메바보다도 못한 남자 때문에 눈물 흘릴 수 없어.”
―본문 159쪽

그녀는 비난이나 힐난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이 신선했다. 이별이란 누가 선언하느냐에 따라 감당해야 할 크기가 다르지 않나. 비난이나 힐난이 커질수록 자신은 깊은 늪으로 빠질 수 있다. 그래도 이별 통보가 무효라고 소리 지르지 않는 그녀가 당당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슴 설레는 경험도 헤어진 실연의 고통도 없는 내 삶이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 상실을 두려워하는 나야말로 겁쟁이라는 걸 좀 전의 그녀를 보며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본문 201~202쪽

오랫동안 가슴을 짓누른 아버지에 대한 묵은 감정과 이별하는 시간은 올 수 있을까. 그러나 억지로 이별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자연스레 묵은 감정들과 이별할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분간 회사 문제를 잊기로 했다. 거대한 폭풍우가 바다를 뒤덮을 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몸을 파도에 맡기는 수밖에. 난 여전히 무섭고 어두운 곳에 홀로 떠 있다. 안전한 부둣가를 찾을 수 있을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본문 226쪽

 

 

▣ 작가의 말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오는 이별의 문제를 상품화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상상이 먼저였으나 시간이 흐른 뒤 이미 그런 세상은 와 있었다. (……) 이 책이 사람과의 관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는 자연인 ‘나’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도로 ‘나’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나를 회복하려는 시도이며 정체성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알 시간도 없이 세상에 떠밀려 좌절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가슴이 시키는 짓을 하면서 가도 늦지 않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목차

도로나 이별 사무실 7
작가의 말 238

작가 소개

손현주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가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2009년 <문학사상>에서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싸가지 생존기》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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