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통각(痛覺)에 통감(痛感)하며 정면으로 마주하는 고통의 세계
개 다섯 마리의 밤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미’ 충분한 고통이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어떻게 소환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은 이 소설만의 값진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 소설의 통각(痛覺)에 통감(痛感)하면서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하였다. _ 심사위원 김미현(문학평론가)
삶의 통각(痛覺)에 통감(痛感)하며 정면으로 마주하는 고통의 세계
새로운 상상력과 역량 있는 서사로 장편소설의 가능성을 가늠해온 황산벌청년문학상이 제7회를 맞아 수상작으로 채영신 장편소설 《개 다섯 마리의 밤》을 선정했다. 수상작 제목인 ‘개 다섯 마리의 밤’은 호주 원주민들이 아주 추운 밤이면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아야만 체온을 유지했다는 데에서 온 은유로써 혹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소설은 제목의 의미처럼 그 혹한의 시간을 백색증을 앓는 초등학생 아들과 엄마를 중심으로 혐오와 고통에 대해, 구원과 용서가 도착하지 않은 불가능한 비극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작가는 탄탄한 플롯과 인물묘사, 안정적인 문장과 맞춤한 비유들로 학교폭력과 따돌림이라는 수치와 모멸의 세계를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또한 사회적 ‘약자’로서 공동체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입체적 수난을 통해 차갑고 서늘하게 펼쳐 보인다. 슬픔과 혐오가 지독한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모자(母子)의 기구한 삶.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등한시했던, 오히려 가담하기도 한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감각하게 된다. 그래서 왜 우리가 지금 이곳을 ‘혐오사회’라 불러야 하는지를 통감하며 외면할 수 없는 현재의 정확한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헛되게 다독이지 않고 속절없이 구원하지도 않는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혐오와 거짓된 위로
동네 아파트 단지 인근에 방치된 한 폐가. 그곳에서 초등학생들이 잇따라 살해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남자아이 둘을 차례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동네 태권도장 권 사범. 살해된 아이들 모두는 백색증을 앓고 있는 세민을 괴롭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 이후 세민은 권 사범 얘기를 꺼내며 그가 아이들을 살해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엄마에게 말한다. 하지만 세민의 엄마 박혜정은 두려움 때문에, 불행한 사건에 자신과 아들이 엮이게 될까 불안해 권 사범에 대해 더는 묻지 않는다.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 안빈이가 그러는데 권 사범 그 새끼랑 박세민이랑 아주 특별한 사이래.”
“정말요?”
“죽은 애 있잖아, 상훈이. 걔가 도장에서 박세민일 좀 놀렸나봐. 뭐 심하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딴 애들 수준으로 말장난 좀 친 건데, 그러다가 재수 없게 권 사범 눈에 띄었다네. 그걸 갖고 그 미친 새끼가 거품을 무는데, 말도 마, 미친개도 그렇게 미친개가 따로 없더래.”
―본문 37쪽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여자 둘과 그 뒤에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남자 노인 한 명. 여자들은 동일하게 색깔만 다른 투피스, 남자 노인은 몸보다 큰 양복 차림이다. 9시 뉴스가 시작되는 어느 밤. 권 사범에 의해 살해된 아이들의 흉흉한 사건들로 인해 찾아오는 낯선 이들의 방문조차 오해를 살 만한 그때, 불현듯 세민의 집을 방문한 수상한 사람들. 삶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줄 복된 소식을 전하고 싶다 했고 세민은 손님이 오는 걸 좋아했으므로 문은 쉽게 열렸다. 찻잔을 내오는 박혜정. 낯선 자들의 방문과 함께 자신의 과거가 파고든다. 새아버지 방에 들어가 차를 놓고 마주하는 어둠의 시간들이 낯선 자들의 옷깃에 묻어 그녀의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집에 손님이 왔다. 종교인들 셋. 그 사람들은 세민을 알고 있었다. 세민을 일부러 찾아온 게 분명했다. 그는 두렵다. 왠지 그들이 권 사범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들을 둘이나 죽인 권 사범과 종교인들과 세민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는 것 같은 불안한 예감. 그는 아들이 버겁다. 버거워 죽을 것만 같다. 세민아, 넌 왜 늘 문제를 일으키니? 왜 다른 아이들처럼 조용히 살아가지 못하니? 그게 너의 생존방식이니?” ―본문 30쪽
세민은 영특한 아이였다. 백색증으로 인해 시력도 희미해지고 신체적인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래 아이들보다 명석하고 설득력 있게 아이들을 이끌었으며 논리적이며 창의적이게 글도 잘 썼다. 학예회 때 연극을 하기로 결정한 날. 세민은 담임 선생님에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추천했고 본인이 희곡을 쓰겠다고 말했다. 선생님 입장에선 《동물농장》이라면 같은 반 아이들이 전부 출연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들은 찬성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문제였다. 박혜정을 이 동네로 이사 오게 한 안빈엄마. 백색증 세민을 가장 괴롭히는 안빈이. 영특한 세민이에게 늘 조금씩 뒤처져 그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안빈이. 자신의 아들이 백색증 세민이 오고 난 뒤로 바보로 비춰지고 비정상인 된 모든 책임을 백색증 혐오로 아들을 다독이는 안빈엄마가 세민이 나대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번엔 더 센 것이 필요했다. 박세민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것. 퍼뜩 근친상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낡은 공책에 적혀 있던 기록이 정말 일기가 맞다면 박세민은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였다. 아니, 새아버지니 생물학적으로야 근친상간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 정도면 얼마든지 근친상간이었다. 그녀는 검색창에 ‘알비노 근친상간’이라고 쳤다. 곧 관련기사들이 떴다.
‘알비노, 근친상간에 의해 출생하는 경우 많아.’
그녀는 인쇄 매수를 20으로 지정하고 인쇄 버튼을 눌렀다. 안빈에게 머리 쓰는 것 대신 씨름이나 하라고 했다고? 되바라진 새끼 같으니. 주둥이 함부로 놀린 값은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그녀는 스무 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접어 안빈의 알림장 맨 앞에 끼워넣었다.“ ― 본문 114쪽
세민은 권 사범, 요한이 보고 싶었다. 요한은 세민을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하다고, 아이들 중에, 아니 모든 이 중에서 선택받은 아이라고 세민에게 따듯하게 다가갔다. 세민과 요한은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요한은 육손이었다. 그런 그에게 세민은 동질감과 함께 부재한 아버지가 떠올렸다. 세민은 그가 감옥에 간 뒤로도 늘 생각했다. 그의 등에 업힐 때가 그리웠다. 그의 등에 업힐 때 세민은 입술만 움직여 아빠라고 발음해보곤 했었다. 세민에게 요한을 더욱 간절하게 그리워하게 된 것은 지난번에 찾아온 낯선 방문자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요한과 같은 곳에서 같은 뜻으로 함께 모여 있는 신도들이라고 세민에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러고는 따로 할 얘기가 있다며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세민은 그들의 요청에 망설였지만 그는 요한을 떠올렸다. 요한과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요한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노아와 예수에 대해, 멸망과 휴거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의 마지막 은총에 대해. 긴 장광설 끝에 그는 말했다. 아직은 네가 어려서 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거란 것도 알아. 하지만 마지막 때가 임박했기 때문에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너는 여호와 하느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야. 그 사실을 어떻게 해야 네가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네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며칠 뒤 그가 특별한 제안을 했다. 속으로 네가 간절히 소원하는 것을 떠올려. 절대로 말은 해선 안 돼. 내가 그 소원을 정확히 알아듣고 그걸 이뤄준다면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지? 그는 세민의 소원을 똑바로 알아들었고 바로 이뤄주었다. 차례로 아이들 둘이 죽었을 때 세민은 그게 요한이 한 일이란 걸 알았다.” ―본문 169쪽
고통을 끌어안는 질문, 외면할 수 없는 질문
백색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 세민. 그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엄마 박혜정. 따돌림과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민 모자의 삶이 비극을 향해 점진적으로 내달리는지를 이 소설은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인간과 사회의 가장 잔인하고 어두운 면모들. 더 이상 타락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이 악무한적 고통의 세계. 학교폭력과 비극적인 가족사, 멸망을 앞둔 세상을 구원할 ‘성별자’를 찾는 종교집단의 기행들이 드러나며 이 소설은 우리에게 고통에 대해,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자리는 지금 어디인가?”
차례
초코파이 7
샤브샤브 32
폐가 61
동물농장 84
대본 116
마술쇼 139
올가미 182
연극 210
미끼 238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심사평 267
작가의 말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