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어떤 게 진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인지 모르겠어
활활 타오르는 불의 언어로 기록한 상처 입은 우리의 목소리,
스스로를 부단히 삶의 순간으로 이끌어오는, 중단될 수 없는 이야기!
오늘의작가상·수림문학상 수상작가 김혜나의 신작 장편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이 출간됐다. 《정크》 《제리》 《그랑 주떼》 청춘 3부작을 통해 삶의 자리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이십대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그렸던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이십대와는 다른 삼십대의 고민을 섬세하게, 때로는 폭발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집 《청귤》의 수록작인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를 장편으로 재탄생시킨 이번 작품은, 헌신했던 관계가 무너진 후 인도로 요가 수행을 떠난 삼십대 여성 메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도라는 타국에서 신도 ‘당신’도 구원할 수 없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화자의 몸부림이 절절하게 펼쳐진다.
사회가 기대하는 삼십대의 안정적인 모습과 달리, 실제 우리의 삶은 불안과 격정으로 가득하다. 세상의 부조리도 그리고 그 부조리 속을 하나의 몸으로 살아내는 자기 자신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세상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고통스럽게 고백한다. 이런 통렬한 고백의 자리에서 발원하는 목소리를 올곧게 기입하면서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고통과 번뇌를 통한 생의 가능성을 이곳에 위치시킨다.
“좋은 거니 올바른 거니 하는 것들은 하나도 모르겠어.
나는 그냥 알고 싶을 뿐이야. 나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진실에 대해서……”
가장 내밀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서간문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며, 작가는 삼십대 여성 ‘메이’가 겪는 심리적 혼란을 섬세하게 드러냈다. 메이는 진심으로 사랑해서 모든 헌신을 바쳤던 연인, 요한과 헤어진 후 인도로 향한다. 요가 수련을 위해 떠나왔지만 마음의 평안이나 깨달음은 얻어지지 않고, 오히려 여행지에서 만나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든 되돌려놓고 싶었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이곳으로부터 멀리 떠나가면 달라지지 않을까,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곳 마이소르까지 왔다. 그러나 인도에 와서 메이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본문 206쪽
한편 메이는 인도에 도착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유명 여행작가 케이와 교류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돌아본다. 케이와 있을 때 메이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기억까지 훌쩍 꺼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메이는 그가 자신에게 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케이를 죽이고 싶었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를 죽여야만, 죽여버려야만 이 모든 분노와 절망과 갈등과 고통이 끝날 것이다. 죽이고 싶어, 죽여버리고 싶어……. 메이는 자기 안에 떠오르는 살의를 발견하고 그 충격으로 온몸을 떨었다. 이 살의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케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명확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케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아온 모든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일었다. 우선 케이를 소개해준 선배 윤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왜 그의 연락처를 나에게 준 거지? 왜 하필 케이였지? 왜 하필 나였지? 그리고 케이는 왜 나에게 보자고 했던 거지? 왜 나의 존재를 무시해버리지 않았지? 왜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았지? 그러나 기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바로 신에게 있었다. 만나지 않게 할 수 있었잖아, 피해가도록 할 수 있었잖아, 얼마든지. 신이라면, 나를 진짜 사랑하는 신이라면 그렇게 해줄 수 있었잖아. 하지만 신은 끝내 메이와 케이를 만나게 만들었고 지금은 메이 홀로 남겨지게 만들었다.
―본문 267~268쪽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메이에게는 어린 시절 앓던 폭식증이 재발한다. 메이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가 버겁다. 왜 자신의 삼십대는 이다지도 무자비한가. 진심을 다할수록 어긋나는 현실과, 한국에서의 삶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고 두렵다. 메이는 저물녘에 숙소에서 나와 홀린 사람처럼 차문디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계속하기 위해, 더 살아내기 위해, 언제나 지금을 살기 위해,
명랑하지 않은 삶의 한복판에서 기록하는 상처 입은 우리의 목소리
사회가 재현하는 삼십대의 모습은 안정적이다.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고 연인과 안정적 관계를 맺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은 갈무리되어 완숙한 자아를 형성한다. 그러나 모든 삼십대의 모습이 그렇지는 않다. 우리의 삶은 오히려 고통과 불안에 더 가깝다. 사랑할수록 헌신할수록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나빠지고, 삶의 나아갈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욕심을 버리고 싶지만 마음은 늘 무겁고 나답게 사는 것은커녕 상처받지 않고 살기에도 버겁다. 그래서 때로는 이 모든 일을 기획한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라서, 신도 ‘당신’도 구원하지 못한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스스로이다. 집요할 정도로 음식을 먹고, 비록 저주와 원망일지언정 언어를 쏟아내면서, 우리는 매 순간 삶의 자리로 스스로를 끌어당긴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만신의 나라 인도에서 수행에 안간힘 쓰는 메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원은 너무 멀리에 있으므로, 소설이 진짜로 보여주는 것은 번뇌로 가득 찬 우리의 실존이다. 그러나 고통의 언어는 단순히 고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발화로 이어진다.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내 안에 아무런 기억도 상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거야. 써나갈 수밖에 없을 거야.(304쪽)”라는 화자의 자기고백은 “그러니 당신도 편지하기를, 이야기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304쪽)”라는 초대의 말로 이어지며, 지금 우리의 고통을 여기에 적극적으로 기입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모든 고통 속의 생명이 죽지 않고 살아가기를, 죽음을 불사하고 오른 고통의 언덕 끄트머리에서 지는 해의 찬란함을 목도하기를, 소설은 기대하는 것이다.
▣ 본문에서
“어렸을 때는 말이야,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쉬워질 줄만 알았어.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 답답해하는 것, 어려워 하는 것이 모두 해결될 줄만 알았어. 나이가 들면서 육체는 노화하지만 이성은 발달하고 경험과 지혜가 쌓이는 거잖아. 그러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어.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거야. 아니, 사실은 어릴 적보다 훨씬 더, 모든 게 다 어려워.”
―본문 80쪽
그 순간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존재하는 것?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누군가와 마음으로 하나 될 수 있을까, 간절히 바라던 시기가 있었어. 어떤 존재와 나의 존재가 합일하는 순간 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다면, 하고 말이야. 그것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어. 그것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그저 담담했어. 모든 것이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본문 129쪽
메이는 이제 신상보다는 그 앞에 엎드린 사람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을 신상 앞으로 내모는 것일까? 어째서 저들은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 저 석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석상 따위가 정말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그들을 지독한 가난과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피안의 세계로 인도해줄까?
―본문 177쪽
메이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웃옷도 없이 나온 터라 맨살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메이는 샌들을 벗어 양손에 하나씩 든 채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이 차다 못해 시렸다. 그 시림이 발바닥을 통해 회음부로, 심장으로, 머리 꼭대기로 전해져왔다. 아, 아아……. 신음이 나왔다. 심장이 찢어져 그녀 몸의 구멍을 타고 쏟아져내리는 듯했다. 머릿속 골수가 산산이 부서져 심장의 피와 함께 온갖 내장기관들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온몸에서 오물이 뒤엉키고, 쏟아지고, 비어져나왔다……. 메이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양 손바닥을 바닥에 짚고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 계단을 올랐다. 거대한 난디상을 지나 정상 부근에 다다를 즈음, 바로 그곳, 메이가 늘 보아오던 커다란 바위틈이 드러나 보였다. 그 바위 틈새로 나아가면 편평한 돌무더기가 나오고 그 아래가 바로 절벽이었다.
―본문 287쪽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도 끝이 나겠지.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내 안에 아무런 기억도 상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거야. 써나갈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당신도 편지하기를, 이야기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
―본문 304쪽
▣ 추천의 말
서른의 사랑은 포옹이다. 삶의 상처와 자기내면의 지옥과 용서할 수 없는 타인을 끌어안는 일이다. 데뷔작 《제리》로 밑바닥 청춘의 어둠과 자기파괴를 그려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가 김혜나는 이번 소설을 통해 사랑이 흔들리는 미완의 청춘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준다. 그녀의 인장인 활활 타는 불의 언어와 휘몰아치는 서사는 이 소설을 성장담을 넘어선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시킨다. 차문디 언덕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확인해보시길._정유정(소설가)
살아 있다는 것은 죽음을 막아내는 데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살아가는 일은 이 실패의 실패를 중단하지 않기 위한 움직임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 앎을 주관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혼신을 다해 매달리는 마음들이 도처에 우글거린다. ‘기도를 올리는 듯 비명을 지르는 듯’, 신을 향해, 당신을 향해, 결국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아픔과 후회와 절망의 이야기들. 김혜나의 이야기는, 후회하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절망하는 자기 자신을 이겨내어 죽음을 막아내는 데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 개의 매달림, 두 개의 구도(求道/構圖)에서 흘러나온다. 제가 만든 미궁을 헤매느라 얽혀버린 문답을 고통스럽게 풀어내는 몸짓과, 제 안의 비루함을 들춰내서라도 거짓됨의 폭력을 저주하는 외침. 이 몸짓과 외침이, 신도 당신도 구원하지 못한 자신을 부단히 삶의 순간으로 이끌어온다. 계속하기 위해, 더 살아나기 위해, 언제나 지금을 살기 위해, 김혜나의 소설은 중단될 수가 없다._백지은(문학평론가)
▣ 작가의 말
팬데믹으로 인해 국경이 차단되고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헝가리에서 저는 다시 자리에 앉아 요가를 하고 소설을 썼습니다. 글쓰기 따위, 수도 없이 그만두고 싶었으나 요가를 수련할 때마다 제가 발견하는 것은 결국 작가로서의 자의식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어떠한 이유도 목적도 알지 못하지만, 요가를 하면 할수록 저는 그저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요가를 하고 있지만 요가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매일 소설을 쓰고 있지만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매일 살아가고 있지만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매일 요가를 하고
그래서 매일 소설을 쓰고
그래서 매일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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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