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짐승의 연애

이응준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1년 11월 26일 | ISBN 9791167370921

사양 변형판 135x205 · 344쪽 | 가격 15,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서로가 서로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는 세계
폭력(暴力)과 무력(無力)이 빚어낸 경계인의 초상

이응준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 개정판 출간

-

2004년 출간됐던 이응준의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가 오랜 수정 작업을 거쳐 은행나무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밤의 첼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과 더불어 그의 ‘현대예술로서의 소설 3부작’을 이루는 《무정한 짐승의 연애》는 짐승을 화두로 삼은 아홉 편의 단편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양일 수밖에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폭력성(暴力性)과 무력성(無力性)의 레이어를 반복해 쌓아놓고 그 속성이 얼마나 치열하게 재생되는지,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휘저어놓는지를 보여주며 광대한 지적 사유의 장(場)을 열어둔다. 제단 위에 세워진 상처받은 존재들의 성전. 그 위에서 지휘되는 “아무도 추모하지 않는 레퀴엠”. 이응준의 시적인 문체와 그의 소설이 갖는 탐미주의적 요소가 빛을 발하는 작품들을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밀어 보낸다.

“……호수는 트럭이 건너갈 수 있을 정도로 짱짱하게 얼어붙어 있었어. 나는 그 위를 천천히 걸어갔지. 분열하는 사랑, 오로라의 치마 끝으로. 비록 오늘은 도중에 되돌아왔지만, 내일은 얼음 호수의 절벽으로, 두근대는 오로라의 심장 속으로 뛰어들고 말 거야.”_〈오로라를 보라〉 중에서

-

타고난 미학주의자가 시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산문의 숲을 관통해나감으로써 이룩한 희귀한 세계

작품 속 대부분의 화자가 ‘나’로 지칭되는 《무정한 짐승의 연애》는 사실상 사랑에 실패한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거듭된 실패로 인해 무감해지고 무정해진 존재들로 그려지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극심한 무력감에 젖어 있다. 그 감각은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들고, 무정한 짐승을 닮기로 한 그들은 때때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정한 짐승이 자신의 상처를 먹어치움으로써 ‘거듭난’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상처를 결코 해소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변신해간 존재들”(문학평론가 정과리)임을 암시한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정함은 사실상 보호색처럼 뒤집어쓴 갑주에 가까운 외피(外皮)일 뿐, 그 내면은 연약한 초식동물에 가깝다. 그렇기에 소설 속 무정한 짐승들은 끝내 완벽하게 무정해질 수 없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무정하고자 했지만, 본질 자체가 연약한 초식동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야생과도 같은 현실에서 점점 고립되고 고독해진다.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도록, 빛이 완벽히 차단된 공간에서 존재 자체가 암전되고야 마는 일. 소설 속 인물들이 자주 길을 잃고 방랑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일 것이다.

“도시에 늘어선 붉은 십자가들을 무심코 헤아리다가는, 생전에 아버지가 무릎 꿇은 우리에게 묻던 것이 고작 우리의 하찮은 죄 따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결국엔 죄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원했던 게 아닐까?”_〈무정한 짐승의 연애〉 중에서

-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상처적 존재들에 대한
소설가 이응준의 오랜 미적, 지적 탐구의 역사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표제작 〈무정한 짐승의 연애〉 첫 문단이 “이응준만의 소설적 방랑의 초입에 놓인 약한 촛불”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이는 소설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인물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그 촛불은 “내부에서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다. 이 소설들을 오롯이 음미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 경계인들의 초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사적 차원을 넘어 그 뒤에 세워진 인간 심연의 터널을 이해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길고 캄캄한 터널의 끝. 저 멀리서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빛의 이명(異名)이자 사실상의 본명(本名)인 검은 희망”(문학평론가 박혜진)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폭력이 만연한 흑백의 세상 속에서 무력감에 젖어 살아가는 인물들은 끝끝내 희망을 발견해내 그것을 가슴에 품으려고 한다. 그것은 결국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모든 희생양들의 면면일 것이다.

“(……) 문학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변하게 하는 한 사람을 호명(呼名)할 수는 있다는 것과, 결국 인간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것임을 이제 나는 안다. 몸이든 영혼이든, 아픈 자가 성자(聖者)라는 것이 모더니스트로서의 내 리얼리즘이다.”_‘작가의 말’ 중에서

-

# 추천의 말

《무정한 짐승의 연애》는 섬세한 책이다. 섬세하다는 것은 초식 동물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의 몸부림에 대해 말하고 있고, 무정한 짐승에 대해 원망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의 고뇌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우선 뜻한다. 기본 주제는 현대 젊은이들의 사랑의 망실과 욕망의 탐닉에 대한 반성적 되쪼임인데, 그것을 부모 세대의 고뇌에 대한 인정과 어린 세대의 발견이라는 우회적 과정을 통해 복합적으로 비추고 있다. 비추고 있다는 말 역시 정확하게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소설은 이야기의 전개를 상징의 베일들로 감싸, 그 베일 위로 감각되는 결들을 느끼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추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미학주의자가 시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산문의 숲을 관통해나감으로써 이룩한 희귀한 세계이다._정과리(문학평론가・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구 면적의 10분의 1 이상이 사막이라는 중립적 문장이 이 책에서만큼 은 각별한 의미를 띤 진술로 읽힌다. “허무에 깊이 바랜” 황폐한 1할을 품지 않은 인생은 어디에도 없고, 그 1할의 면적을 “검은 희망”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응준의 무정한 짐승들이 품고 있는 진실한 어둠을 부르는 이름도 검은 희망이어야 한다. 빛의 이명(異名)이자 사실상의 본명(本名)인 검은 희망. 매일같이 우리를 죽게 하고 또 살게 하는 검은 희망이 말한다. “넘어졌으니, 일어나라. 일어나라!” 여전히 이 황량한 길 위에 서 있는 작가 이응준이 일찍이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땅에 발붙이지 못”하는 상처적 존재들에 대한 그의 오랜 미적, 지적 탐구의 역사를 증명한다. “넘어졌으니, 일어나라. 일어나라!”_박혜진(문학평론가)

목차

초식 동물의 음악
그 침대
해시계를 상속받다
그녀는 죽지 않았어
무정한 짐승의 연애
길과 구름과 바람의 적
오로라를 보라
짐승의 편지
뚱뚱하고 날씬한 물고기 잔치

작품 해설 | 정과리
촛불의 욕망과 사랑의 상대성 원리

2004년 초판 작가의 말
사라지지 않을 권리
―개정판 ‘작가의 말’을 대신하여

작가 소개

이응준

이응준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 외 9편의 시로 등단했고, 1994년 계간 《상상》 가을호에 단편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3년 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중앙선데이〉에 21편의 칼럼을 연재하면서 정치·사회·문화 비평을 시작했다. 시집 《나무들이 그 숲을 거부했다》 《낙타와의 장거리 경주》 《애인》 《목화, 어두운 마음의 깊이》, 소설집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무정한 짐승의 연애》 《약혼》, 연작소설집 《밤의 첼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장편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전갈자리에서 생긴 일》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엣쎄이소설 《해피 붓다》, 소설선집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논픽션 시리즈 ‘이응준의 문장전선’ 제1권 《미리 쓰는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 산문집 《영혼의 무기》, 작가수첩 《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등이 있다. 2008년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 <Lemon Tree>(40분)가 뉴욕아시안아메리칸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 파리국제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2013년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SBS 16부작 TV드라마로 제작 방영되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13년 5월 27일 자와 2015년 10월 9일 자에서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각각의 특집으로 다뤄 집중 조명했으며, 특히 2015년 10월 9일 자 「한국의 통일: 소설은 한반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했다」에서는 작품 중 2개의 챕터(32매)를 발췌 번역 소개하였다. 록밴드 YB의 노래 <개는 달린다, 사랑처럼.>을 작사했다. 문화무정부주의 조직 ‘문장전선’의 리더. 2인 작가 ‘독서실형제’의 일원.

이응준의 다른 책들

표지/보도자료 다운로드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