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물고기 모어
“모어는 MORE고 毛魚다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진한 화장과 화려한 의상, 과장된 몸짓
이태원의 지하 클럽 트랜스에서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극장 무대에 서기까지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드래그 아티스트 모지민의 삶과 꿈
전무후무한 독창성을 드러내며 장르 불문, 문화 예술의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는 드래그 퀸Drag Qeen아티스트 모지민의 첫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가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오랜 시간 음악과 시, 현대무용이 절묘하게 결합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영화, 뮤지컬, TV 광고 등 각종 매체에서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그가 유장한 자신의 역사를 촘촘히 써내려갔다. 산문과 시, 희곡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날것 그대로 자유로이 쓰인 글은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듯 희귀하고 진한 개성을 내보인다. 국내외 굴지의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풍부한 예술 작업을 선보이며 소수자의 삶을 대변하는 춤사위를 수면 위로 훌쩍 끌어올렸던 모지민이 사력을 다해 털어놓은 세상만사 인간사, 희로애락의 단면이 깊은 울림을 던진다. 《털 난 물고기 모어》는 크고 작은 인터뷰와 소식지 등 여러 지면에서 편린으로 접했던 작가의 생각을 한데 모아 응축한 에세이다. 작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무대 및 일상 사진도 함께 실었다.
“아빠,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당신이 절대로 알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인생
“나는 나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누구든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저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이것마저 오류인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늘어놓길 좋아하고,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싶다. 당신이 우연히 날 만나게 된다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이 ‘짓’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본문에서
《털 난 물고기 모어》는 사회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털 난 물고기[毛魚]로서 불안한 정체성을 향한 어린 날의 질문에서 출발하여, 본디 모습 그대로 나를 인정하며 꿋꿋이 버티고 삶을 지켜온 한 인간의 삶을 생생히 펼쳐 보인다. 자유를 찾아 뛰어든 이태원의 지하 클럽 ‘트랜스’에서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극장’ 무대에 우뚝 서기까지 작가가 거쳐야 했던 가시밭길 여정은 장면 장면 가슴을 치지만, 동시에 불쑥 끼어드는 특유의 발랄함과 배꼽 쥐는 유머를 선사한다.
작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모어〉는 2021년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 프로젝트 수상작으로 ‘아름다운기러기상’을 받았으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일상을 밀착 취재하며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겪어야 했던 무수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고통을 넘어서는 필사적인 노력과 창작 활동을 미려한 영상으로 그렸다. 영화에서도 소개되었듯, 2018년 공연차 한국을 방문한 미국 유명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헤드윅〉의 존 캐머런 미첼은 우연히 모어의 쇼를 보게 되고 훗날 뉴욕에서의 만남을 기약했다. 시간이 흘러 순수 국내창작 뮤지컬 〈13 Fruitcakes〉가 2019년 6월 뉴욕 라 마마 극장La MaMa Experimental Theater Club에서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기리기 위한 페스티벌 참가작으로 성황리에 초연되고, 무대에서 ‘올랜도’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 열연한 작가는 다시금 미첼과 재회하고 그의 제안으로 그해에 헤드윅 〈The Origin of Love> 투어를 함께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유영하는
털 난 물고기 모어가 바라보는
웃픈 세상사, 치열한 인간사
모 아니, 옛날에 트랜스 쇼 할 때 문 앞에 날아다니는 바퀴벌레, 언니가 힐로 때려잡은 거 기억해? 나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뒤로 뒤집어져.
종 바퀴벌레만 잡았니. 분장실에서 가발 뒤집어쓰는데 얼굴로 뭐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거야. 세상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모 악.
종 쥐들이 전선이며 뭐며 다 파먹어서 새로 공사했잖니. 분장실 천정에 쥐들이 미친년 널뛰듯 하고 화장실 맨날 막혀서 똥 푸고. 대체, 썩은 건물이야.
모 맞아. 열악한 세월 기억난다. ― 본문에서
지금 여기, 현재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며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하는 가족과 친구, 오늘날 모어를 있게 한 많은 이와의 추억이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묶였다. 무대 위 한 장면처럼 서로를 오롯이 비추는 인물 간의 대화, 짧은 말 속에 담긴 묵직한 해학은 이 책의 묘미라 할 만하다. 특히 2부의〈그런 날도 있는 법 1, 2〉는 장장 535편에 달하는 서사시로 매일의 무참한 촌극이 끊어질 듯 이어지다 눈부신 해탈로 끝맺는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처럼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에는 창자가 끓는 비애와 좌절 속에서도 하염없는 사랑의 힘으로 마침내 승화시킨 정다운 웃음이 배어 있다. 매 시절 매 순간 도전과 반성을 놓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나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모어의 헤엄은 곳곳에서 사회의 편견과 맞서는 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것, 아름답지만 슬픈 것, 슬프지만 계속되는 것이 삶이라면 그 모든 아이러니를 아우르는 신묘한 용기로 이 책은 탄생했다. 《털 난 물고기 모어》는 부단한 움직임과 창작으로 거듭나며 ‘너는 누구냐’는 세상의 질문에 맞서 ‘찬란한 나’로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선택한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다.
‧추천의 말
가수 CL
Grow more
Swim more
More, more Zmin
+ Love, CL +
시인 황인찬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글쓰기로 나는 모어의 글을 꼽고 싶다. 시이면서 시가 아니고, 일기면서 일기가 아니며, 말이면서 말이 아닌 것이 바로 모어의 글쓰기다. 이렇게나 쓸쓸하고 집요한 글을, 이토록 악랄하고 처연한 글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죽음과 사랑과 삶과 증오가 드글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때로는 숨 막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그 투명한 언어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짧고 단순한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이 책이 바로 그 한 사람의 설명 불가능한 인생을 어떻게든 해명하기 위해 쓰인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눈으로 읽지 말고 몸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이 책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무대에 가깝다. 한 명의 배우가 혹은 한 명의 발레리나가 무대 위에 올라서서 그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일찍이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 이 무대 위에 올라와 있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한 존재의 몸짓을 목격하며 사로잡히고, 압도당하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야 말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티스트 이랑
같은 24시간, 365일을 살고 있지만 사람에 따라 주어진 시간에 포착할 수 있는 사건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모어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는 1초당 1건의 사건이 아니라 1천 건의 사
건을 지각하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임사 체험을 한 사람처럼 생의 모든 사건을 슬로모션처럼 보고 기억하는 것 같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훈련된 운동선수의 능력과 다름없는 이 능력을 모어는 어떻게 갖게 된 것일까. 어쩌면 모어는 특정한 능력이 고도로 발달된 초인류일지도 모른다. 아슬아슬한 칼날 위에 사는 것처럼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초인류.
차별과 혐오의 사회 속에서 그저 사랑과 아름다움을 좇으며 그가 살아낸 시간의 무거움은 어떤 것일까. 그 수많은 일을 기억하는 존재의 무거움은 어떤 것일까.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도 대체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모어의 글은 지금까지 내가 한국에서 읽어본 그 어떤 글보다 끼스럽고 아름답고 역겹고 무엇보다 생생하다. 내 몸처럼 사랑하는 모지민이 기적처럼 평안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1부 모어가 무어야
모어는 모어고 모어다
More Says,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볕이 나에게로 온다
같이 가요, 끼대디
같이 있어요, 끼마미
아가야
비극적 상상으로 치달은 매일이
혼절 두절 새절역의 드래그 퀸
구더기 말하기
아무도 찾지 않는 코미디 극장에서
창밖으로 나는 새
벗는 날
유달산과 영산강은 말을 해주오
That I Could Live Only 20 Years
2부 끼와 털로서
끼로書
보광동 세련된 아이들
마더 종잘레나와 벌미미의 산책
검은 눈으로 맞는 아침
그런 날도 있는 법1
아, 이 냄새
입을 쩍 벌린 안식년에
카메라오브스쿠라
그런 날도 있는 법2
해피 뉴욕 타임스
3부 사랑으로 하염없이
무덤을 이고 사는 우리
아니마, 아니무스
모모가 된 모모와
공기방울 세탁기
상상, Y
목동이 구름을 부르면 순한 양들은 잠에 들어
잊을 수 없는 물치항 여행
흔해빠진 해의 날
엔간한 사랑
어떤 가족
결혼 2주년 이브
장흥에 내리는 눈
달려가는 빛
*추천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