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고 경이로운 우리들의 근로 미래에 대하여

근로하는 자세

이태승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2년 4월 12일 | ISBN 9791167371522

사양 변형판 135x205 · 288쪽 | 가격 14,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2022 문학나눔 선정

책소개

산뜻하다. 허세나 지나친 자의식을 벗어나 균형 있게 섬세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_선정위원 은희경·정유정

직장인으로서, 청년으로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겪는 삶의 굴곡,
반짝이고 경이로운 우리들의 근로 미래에 대한 해학과 페이소스

첫 책. 작가에게 ‘첫 책’이란 이제부터 그려나갈 지도의 수많은 좌표들 중 처음일 것이다. 어떤 지도가 만들어질지 혹 어떤 모양이 갖추어질지는 작가 자신도, 독자도 그 누구도 모르지만 일단 그 시작을 알리고 긴 여정을 위한 첫 발을 떼었다는 것. 여기 첫 번째 자신의 지도에 좌표를 찍은, ‘첫’을 맞이한 작가가 있다. 등단작가 중 출간 경험이 없는 소위 ‘첫 책을 출간해드립니다’라고 명명된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 등단작가 ‘첫 책 지원 공모’에 선정된 이태승.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며 소설을 쓰는, 다소 남다른 이력을 가진 그의 출사표이자 작가로서의 첫 시작인 《근로하는 자세》를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선보인다. 소설가 은희경·정유정 두 선정위원들은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이태승의 《근로하는 자세》를 결정했던바, “젊은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지금 소설계의 트렌디함을 벗어나 자기 이야기와 세계를 구축하는 힘”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이태승의 첫 소설집 《근로하는 자세》는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관료주의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웃픈’ 사회생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도에 희생당하며 관성과 체념이 점철된 일상이 전부인 사람들. 소설은 그 반복되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여전히 반짝이는 삶의 감동과 의미를 블랙유머를 통해 말하고, 더불어 서류더미로만 존재하는 사람들의 현재의 균열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또한 이태승의 소설은 관료제의 조직논리에 짓눌린 인간관계의 아이러니와 조직이 부과한 책임과 의무에 몽땅 삶을 잃어버리는 순간들을 조망한다. 가벼운 잽과 묵직한 스트레이트로 ‘웃픈’ 상황들을 서사화하여 현재의 무미건조한 사회생활을 우리들로 하여금 성찰하게 만든다. 이태승의 소설은 그 지점에서 문학적 유희와 비의를 드러낸다. 본의 아니게 무의식적으로 관료주의의 관행에 ‘공범’이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코믹한 상황으로 풀어내고 스스로 그 범주에 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종국엔 관료주의적 생태에 과몰입되어 우리들이 놓쳐버린, 망각하게 된 삶의 빛나고 경이로운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당신은 이 직원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까?

이태승 소설의 시작이자 출발점인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는 그 관료주의 사회에서의 관행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 그의 공무 업무는 의례적으로 실시되던 보도블럭 정비사업을 중지하고 시장의 치적을 보여주는 “천리북” 설치 사업이다. 조선시대의 신문고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천리북을 제작하라는 시장의 요구에 그는 아무 이견 없이 이 우스꽝스러운 사업을 수행하기에 나선다. 졸속행정이 분명한 이 사업에 부당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밤마다 천리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때문에 소음 처리 민원이 새로운 업무가 되어 밤마다 잠복근무를 하게 된다. 동시에 시청에서는 ‘최악의 직원’을 선별하는 투표가 실시되고, 조직원들과는 달리 열정과 창의성이 충만한 그의 첫 상사이자 ‘어공’(어쩌다공무원)인 ‘황 과장’이 선정된다. 선정 이유인즉슨, 그가 다른 조직원들에 비해 ‘공무원 마인드’가 부족했기 때문.

“그들은 함께 일하고 싶은 직원이었나,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직원이었나, 그 중 한 명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언제 점심 한번 먹자고 말했다. 나는 “좋지”라고 답하며 슬그머니 손을 뿌리쳤다.”
―본문 36쪽

이태승의 실제 직업인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주된 직업이기도 한 공무원 인물은 단편 〈아침이 있는 삶〉에서도 등장한다. 국립묘지 관리 공무원인 주인공 ‘나’는 한 번도 회사생활을 해본 적 없이 시나리오 작가만을 꿈꿔온 지 오래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국립묘지 직원 채용 원서를 냈고 합격했던 것.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아침이 있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문제는 스스로 아침식사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하루의 일정한 노동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했던 건 일상에서의 지리멸렬함을 벗어나는 것보다 하루치의 에너지를 내는 ‘아침밥’이였고 그는 아침을 먹기 위해 주말마다 부모의 집에서 반찬을 챙겨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모가 와서 음식을 만들어줬다고 했다. 이건 이렇게 만들어라, 저건 저렇게 만들어라, 얼마나 요구사항이 까탈스럽고 유난한지 아주 곤혹스러웠다고. 이모의 책망에 듣는 내
가 다 민망했다. 그러니까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은 반찬들은 전부 이모 솜씨였다. 이모가 주중에 미리 만들어놓고 엄마는 옆에서 거들기만 했다고. 그나저나 자매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는 게 오랜만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텃밭에서 감자, 당근, 부추를 가득 품에 담아 가져왔다. 온 식구가 한마음으로 나를 속이고 있었다.” ―본문 99쪽

엄마의 반찬 솜씨가 점점 늘어가는 동안, 그는 국립묘지 일이 꽤 적성에 맞아갔다. 무겁게 내리 누르는 업무가 많지 않았고 간간이 민원처리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동안 해왔던 글쓰기가 가능했던 것. 하지만 ‘아침을 위한 반찬 만들기’라는 가족들의 웃픈 공모가 발각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미래를 버리고 지금의 현재에 수긍하며 공무원으로의 삶에 귀착하게 된다. 더 이상 시나리오는 쓰지 않았고 아침이 있는 삶은 창작 고뇌가 없는 삶으로 변모하게 된다.

우리 중에서 누가 빠져야 된다고 생각하니?

다분히 사회생활에서 우선시 되는 정의는 다수에 의한 결정일 테다. 이태승의 소설에서 그 힘이 작용되는 원리, 조직 안에서의 다수에 의한 힘의 균형이 어떻게 조율되고 행사되어지는지도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우리 중에 누군가를〉이 보여주는 다수에 의한 배제, 선택은 민주주의 방식이 작동되어 매우 합리적이고 평등하게 문제 해결을 도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인 주인공은 중창 팀 멤버 중 한 명을 제외시켜야 하는 일에 봉착하고 그 한 명을 배제하기 위해 중창 팀 전원에게 ‘우리 중 누가 빠져야 된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면담을 시작한다. 각각의 이유에서 배제를 원하는 아이들. 다수의 합리적 결정이라는 모습으로 둔갑된 혐오, 미움, 사적이익 등이 아이들의 이면에 놓인 채 다양한 배제의 이유들이 등장한다.

“우리 중에 빠져야 할 사람은…… 바로, 너야! 미안하지만 다음 연습부턴 안 나와도 괜찮아.
저런, 네가 그런 시무룩한 표정으로 울상을 지으니 선생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구나. 규정상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으니까 모쪼록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얼마나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지?” ―본문 162쪽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 다수에 의한 결정은 꽤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일과 이분의 일〉 역시 조직의 테두리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리하는 과정을 소설로 말하고 있는데, 성실하고 일처리의 능숙함보다는 공무적 마인드가 공고하거나 혹은 관료제의 시간 구조를 철저히 이행하는 것에 초점이 모아진다. “부모님 양계장 관리를 맡아”하는 노 팀장은 그 양계의 작업에 따라, 기후에 따라 빈번하게 휴가를 사용하는 중이었고, 미안한 마음에 달걀로 사과하며 양해를 구해보지만, 파견직원을 뽑는 투표에서 선정되어 축출당하고 만다. 관료제에서의 동료의식이란 나의 죄를 같이 나누어 들 ‘공범’이 되어야만 한다는 듯.

“노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벽 6시에 출발했는데 하마터면 늦을 뻔했네요.” 그러고는 가방에서 달걀을 꺼내 돌렸다. 노 팀장이 건넨 달걀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일주일 내내 달걀을 받기가 미안했다. 성실하게 알을 낳는 닭처럼 노 팀장은 두말없이 제 일을 처리했다. 두 배로 일하면서도 어떠한 불평 한마디 없이.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 무서울 정도였다.” ―본문 218쪽

산뜻하다. 허세나 자의식을 벗어나 균형 있게 섬세하다

그밖에 서류더미에 묻혀 상사에게 인격모독과 삶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 어떤 잘못이나 오류를 판단하지 못한 채 죽음의 상황조차도 업무의 연장선으로 대하는 〈근로하는 자세〉. 우연히 구덩이에 빠진 택배기사가 오히려 휴가 가는 셈치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미적거리는 상황을 유니크하게 설계한 소설 〈구덩이〉. 동성커플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일탈까지의 과정을 본능보다 사회 속에서의 역할이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의 자세에서 성적 욕망이 끌려나오는 〈오종, 료, 유주〉. 이처럼 이태승의 소설들은 일과 조직과 관료주의 사회에서의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이나 표출된 다양한 문제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설화하며, 무겁지 않고 산뜻하게.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목차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7
근로하는 자세 37
아침이 있는 삶 75
문 앞에서 이만 109
우리 중에 누군가를 139
오종, 료, 유주 163
일과 이분의 일 193
구덩이 227

해설 | 서희원(문학평론가)
서류를 덮고 잠든 소설가의 몽상 255

작가의 말 286

작가 소개

이태승

1986년 정읍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2017년 계간 《아시아》 봄호에 단편 <우리 중에 누군가를>을 수록하며 등단. 심훈문학상,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세종시에서 행정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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