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악한 것이 제거되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한 줌의 희망

바비와 루사

박유경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2년 9월 27일 | ISBN 9791167372185

사양 변형판 135x205 · 244쪽 | 가격 14,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태풍이 오염된 대기를 순환시키듯,
모든 악한 것이 제거되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한 줌의 희망
신예 페이지터너 박유경 두 번째 장편소설!

인간의 감추고 싶은 얼룩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일상의 파탄을 극한으로 끌고 가는 집요함을 선보인 2017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여흥상사》로 신예 페이지터너의 등장을 알린 박유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 《바비와 루사》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장편 《바비와 루사》는 남해 지역 한 섬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 폭력 사건을 통해 어린 시절 끔찍한 폭력을 당했던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피해 아동을 폭력에서 구출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되묻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박유경은 세상의 악과 감추고 싶은 인간의 어두운 얼룩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묵직한 문장과 사회학적 상상력을 더해 아동폭력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 피해자를 구원한다는 공감대와 연대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이, 아동에겐 재난이랄 수 있는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른으로 성장하며 온전한 삶의 모습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희망에 관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지독한 절망과 혹독한 폭력을 견뎌내야만
그제야 희미하게 발 앞에 도착하는 한 줄기의 빛

한 아이가 방파제 위에 내던져진 채로 남해의 한 섬에서 발견된다. 허리까지 오는 금발과 주근깨가 드러나 보이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신원 조회가 되지 않는 아이. 어디에서 온 건지, 어쩌다 죽은 채로 이 외딴 섬에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현서는 폴리스라인 뒤편에 외따로 서서 감식용 비닐에 덮인 아이를 바라본다. 현서는 목격자였다. 전날 방파제에서 저 아이가 한 남자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현서가 그들을 눈여겨봤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던 겁에 질린 청록빛 눈동자. 내가 그때 저 아이를 끝까지 붙잡았다면, 붙잡아 데리고 왔다면 죽지 않았을까. 현서는 청록빛 눈동자의 아이를 떠올리며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헬렌에 대한 기억을 끌어올린다.

현서는 숨이 막히고 심장이 조여드는 와중에도 아이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남자에게 어깨를 붙잡혀 이끌려가다가 남자가 무언가를 속삭이자 아이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이가 신은 슬리퍼는 아이의 발보다 작았다. 튀어나온 발뒤꿈치에 굳은살과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아이의 발을 보자 이모의 지하방에서 헬렌의 손을 잡고 도망쳐 나오던 날이 떠올랐다. _본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던 삼촌과 무력한 방관자였던 이모. 잠시 친척집에 맡겨졌던 일곱 살 현서는 폭력에 노출된 채 보호받지 못하고 어둡고 습한 지하방에 갇혀 지냈다. 온몸에 남겨진 상처와 말라붙은 핏자국. 공포와 두려움에 집어삼켜진 현서의 마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은 현서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헬렌이었다. 현서는 삼촌의 끔찍한 폭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헬렌의 손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그들 중 현서의 손을 잡아주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삼촌은 현서와 헬렌의 작은 몸에 끔찍한 상처를 내는 방식으로, 이모를 비롯한 다른 어른들은 눈을 감는 방식으로 가해자가 되었다.

“구해주세요.”
그 사람은 잠시 망설이더니 돌아섰다. 삼촌이 쫓아와 헬렌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헬렌이 파르르 떨었다. 현서는 헬렌의 다른 쪽 손을 잡고 있었다. 삼촌에게 붙잡히기 전에 현서는 헬렌의 손을 놓고 도망쳤다. 다시는 그곳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가장 나쁜 것들이 모두 그곳에 있었다. _본문에서

하지만 현서의 전부였던 헬렌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현서가 헬렌의 손을 놓고 도망쳤던 그날. 그러나 이모에게 붙잡혀 다시 지하방에 갇히게 되었던 그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배를 움켜쥐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헬렌을 삼촌과 이모가 데리고 나간 뒤로 헬렌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현서의 눈앞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모두의 기억에서 증발해버렸다. 이모와 삼촌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 모두 헬렌의 존재를 부정했다. 현서의 상담 선생님마저 헬렌이 현서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한다. 딸이 당한 끔찍한 폭행의 과정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노하면서도 헬렌을 찾는 현서의 말은 믿지 않는다. 현서의 기억에 분명히 실재하는 헬렌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지워버렸다.

“헬렌은 여기 없었던 거야. 헬렌은 엄마한테 갔어. 앞으로 절대 헬렌 얘기를 하지 마라.”
현서는 계속 헬렌을 기다렸다. 경찰이 지하방에 들이닥쳤을 때 현서는 먼저 헬렌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파랗게 질린 이모가 현서의 입을 막았다. 현서는 아빠, 엄마보다 헬렌이 보고 싶었다. _본문에서

유나는 열아홉이 된 현서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다. 유나만이 현서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주고 귀담아 들어주기 때문이다. 헬렌을 닮은 아이를 보았던 그날도 현서는 유나와 함께였다. 현서의 아빠 진철은 그런 유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서의 회복을 유나가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게 덮일 수 있는 일을 들쑤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거대한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려는 듯. 현서는 방파제에서 만났던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그동안 어른들로 인해 눈가림당해왔던 과거를 다시 마주하기로 마음먹는다. 헬렌을 위해. 그리고 현서 자신을 위해. 과연 현서는 12년 전 모두에 의해 덮여버렸던 그날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까.

다 틀렸다고, 헛소리라고 언제나 소리치고 싶었다. 거짓말하는 건 몸이었다. 몸의 상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복되고 말았다. 작고 어린 몸은 약해서 쉽게 짓밟혔다. 몸은 아이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미숙한 존재로 보이게 만들었다. 몸은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 아이를 사라지게 만든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 사실을 꺼내지 않는다면 드러내야지. 용서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줘야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어느새 두려워하지 않고 숨을 쉬고 있었다. 솟구쳐오르는 말들을 내리누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아이가 있던 자리가 빛이 되어 눈을 감아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젠 누가 뭐라든 헬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_본문에서

모순된 세계의 폭압을 견디기만 하더라도,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올해 유독 태풍이 많았고 그 태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가 된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아동폭력에 노출된 아이는 매일 태풍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매 순간 폐허의 삶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긴다. 이 순간에도 어디에서, 우리 주변에서 누군가는 그 태풍을 몸 전체로 맞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공포와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박유경이 소설을 통해 선택한 대답은, 사람을 돌보는 품위와 꼿꼿한 온기로 결국은 서로를 일으켜세워야만 한다고 말한다. 태풍이 오염된 대기를 순환시키듯, 주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아동폭력이 제거되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을 박유경은 소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1부

1. 몸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2. 부메랑의 방향

3. 살인범은 살인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4.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5. 장마

2부

6. 왕은 어디로

7. 갇힌 아이는 뛸 수 없다

8. 최대 풍속 초속 47미터

9. 남은 것과 남지 않은 것

10.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작가의 말

작가 소개

박유경

1984년 울산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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