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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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기다림을 감싸 안는
애틋하고 간절한 그 마음의 무늬에 대하여
《콜센터》 《쇼룸》, 수림문학상 수상 작가 김의경 신작
“좌절과 실망의 순간, 서로를 돌아보며
손잡아주는 여자들의 이야기”_서유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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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콜센터》로 제6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김의경의 신작 《헬로 베이비》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평균 결혼 연령의 변화, 삼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임신과 출산을 계획할 수 있는 현실. 그 과정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사회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길고 지난한 시간을 견디고 싸워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헬로 베이비》는 그러한 고민을 안고 난임 병원에서 만난 삼사십대 여성들의 솔직하고 치열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에는 난임이라는 교집합 안에 모이게 된 다양한 직업군―변호사, 기자, 수의사, 가정주부 등―의 난임 여성들이 등장한다. 공통의 목표를 마음에 품고 장거리 마라톤 중인 그들은 단톡방 ‘헬로 베이비’를 만들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위로한다. 김의경은 그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의 현재, 어쩌면 미래가 될지 모를 이야기를 독자에게 밀어 보낸다.
“남편과 함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문정은 대기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심각한 저출산 국가의 난임 병원이 이렇게 붐비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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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시간을 함께 걸어온 이들이 만들어낸,
‘이해의 빛’을 향한 동그란 이정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하지만 시험관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아기천사병원’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갖고자 하는 난임 부부들로 매년 발 디딜 틈이 없다. 일을 하느라 마흔이 넘어서 난임 병원을 찾은 변호사 혜경, 경제적 이유로 임신을 계속 미루다가 아기를 갖기로 결심한 프리랜서 기자 문정,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파혼을 하고 난자 냉동 프로젝트를 시작한 수의사 소라, 무정자증 남편 때문에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냉동 정자가 든 질소 탱크를 옮기는 지은, 아동학대 현장에서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는 경찰 은하는 세계 3대 난임 센터 중 하나인 국내 최고 난임 전문 병원, 아기천사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문정도 그랬다. 남편과 자신을 닮은 아이와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남편도 예전보다 벌이가 괜찮았고 주로 집에서 일을 하니 독박육아를 할 염려도 없었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결심하기까지는 이런 조건들이 갖춰져 있었다.” _본문에서
문정을 중심으로 모인 그들은 ‘헬로 베이비’라는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정기적인 만남을 갖는다. 가능하면 이십대 중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에 출산을 하는 것이 좋다고, 그때가 임신 성공률이 가장 높다고 의사들은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시기에는 출산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취직을 해야 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필요했다.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그 모든 것을 이루기에 삼십대 초반은 너무 젊고 어린 나이였다.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 시험관 시술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몸과 마음은 눈에 띄게 지쳐가고, 신경 또한 날카롭고 예민해진다. 하지만 본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들은 때때로 무심하고, 아이를 원하는 시댁과 친정의 관심은 큰 부담이 된다. 고통스러운 시술 횟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여자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난임에 대해 가장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나누며 그들은 가족 그 이상의 의미가 된다.
“문정은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상처 입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끼리니까 할 수 있는 위로였다. 어차피 떠나갈 아기라면 아기집이 생기기 전에, 심장 소리를 듣기 전에, 난황이 생기기 전에 떠나는 것이 나았다. 그날 저녁 문정은 식욕이 나지 않아 병원 밥을 물렸다. 그러고는 환자복 차림으로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지은과 함께 병원을 빠져나가,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깔깔대며 먹었다. 누군가 봤다면 아기를 잃은 여자들 같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정효를 만난 것도 그날 밤 병원에서였다. 복도에 놓인 벤치에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 있는 낯선 여자에게 지은이 먼저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문정은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아이를 잃었다는 것을.” _본문에서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시험관 시술을 받지 않겠다고 한 이후 1년이 넘도록 단톡방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나오지 않았던 정효가 갑자기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정효는 단톡방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아기천사병원에 다녔던 언니다. 정효의 남편은 잦은 출장으로 거의 집에 없다시피 했고, 정효가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교양 있는 부잣집 사모님이었지만 손자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자주 정효를 벼랑 끝으로 내몰곤 했다. 그런 정효가 시험관 시술 중단을 선언한 지 1년 만에 임신을 했다니. 그것도 마흔여섯이란 나이에 자연임신으로. 단톡방 멤버들은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모종의 질투. 그리고 어쩌면 자신도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강렬한 희망. 그날 저녁, 그들은 아기를 보기 위해 정효의 집에 모이기로 하는데…….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 혜경은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급한 일 생겨서 나 오늘 시댁에 못 가. 어머니께 잘 말씀드려줘.
이런 기분으로 시댁에 가봐야 모두에게 좋을 게 없었다. (……) 시어머니는 아들 내외에게 자식이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인 사람이었다. 명절에는 노골적으로 손주 타령이었다. 혜경은 수술을 마치고 실밥도 제거하지 않은 지금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다가 들어가는 것이 혜경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혜경은 단골 꽃집에 들러 노란 장미를 샀다. 혜경은 플로리스트가 건넨 꽃다발에 코를 묻으며 노란 장미의 꽃말을 떠올렸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완벽한 성취였다. 그리고 질투.”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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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아픔을 공유하는 순간 피어나는
다정한 공감과 연대의 결속
김의경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은 대개 서사를 이끄는 인물들을 한데 집결시키는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 자성에 이끌려 모인 인물들이 직조한 세계는 사회를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고, 그 앞에 선 독자들은 제3자가 되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해왔던 사회 현상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헬로 베이비》의 구심점은 ‘난임 병원’이다. 비혼, 딩크, 난자 냉동 등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현상이 논제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난임은 관심의 사각지대로 벗어난 듯하지만, 앞서 말했듯 활발하게 다뤄져야 할 사회 현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작가는 지금껏 자세히 말해지지 않았으나 어쩌면 가장 첨예한 주제일지 모를 ‘난임’을 소재로 과감한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묻는다. 지금의 난임은, 어쩌면 사회적 난임이 아닐까. 외따로 놓여 가리어진 사람들을 문학으로 호명하는 자리. 이 소설이 그 논의의 장(長)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말
사람들은 언제 마음을 열고 언제 가까워질까. 상처와 아픔을 공유할 때, 그 공감 위에서 인간의 결속력이 자라난다. 《헬로 베이비》는 저출산의 시대에 아이를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좌절과 실망의 순간, 서로를 돌아보며 손잡아주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작가가 공들여 쓴‘ 난임’의 자리에 독자들은 각자의 염원을 담은 어떤 단어를 넣어도 좋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열망의 순간과 그것이 지나간 뒤의 실망, 그런 뒤에도 남아 있는 동지애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_서유미(소설가)
1부
2부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