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플롯

황모과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3년 4월 26일 | ISBN 9791167372833

사양 변형판 128x188 · 240쪽 | 가격 13,000원

시리즈 은행나무 노벨라 |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은행나무 ‘노벨라’가 은행나무 ‘시리즈 N°’으로 새롭게 시작합니다.
2014년 론칭해 2016년까지 총 13권을 출간하고 잠시 멈춰 있던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가 새로운 명명과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시 출간됩니다. 배명훈 최진영 정세랑 안보윤 황현진 윤이형 문지혁 등 3~4백매 분량의 중편소설 시리즈로 한국문학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던 ‘은행나무 노벨라’. 그 의미를 동력 삼아 현재 한국문학 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장편소설선 ‘시리즈 N°’으로 바통을 건네받아 이어갑니다. 이번 신작 3종(박문영, 장진영, 황모과)을 비롯해 구간 리커버(최진영 윤이형 황현진, 이하 순차적으로 리커버)를 동시에 출간하며 서이제 장희원 한정현 정용준 정지돈 등 각자의 개성과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문학에서 발견하는 그 위태롭고 무한한 좌표들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해갈 시도를 독자 여러분께서도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황모과식 영웅 설화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은행나무 시리즈 N°16

 

은행나무 노벨라를 이어 새로운 이름으로 단장한 시리즈 N°의 열여섯 번째 작품은 한국과학문학상과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하며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가 만나야 할 세계’를 보여 온 소설가 황모과의 《서브플롯》이다. 소설은 현실에 좌절한 주인공 나현의 앞에 [제87차 서브플롯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라!’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했습니다. 메인플롯으로 돌아갑니다.]라는 문장이 떠오르며 시작된다.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며 소중한 것을 구출해온 황모과 유니버스에 게임과 멀티버스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다. 퀘스트와 함께 기억 속 장면으로 소환된 나현은 자신의 기억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시작한다. 점점 더 깊은 기억 속으로 향하며 나현은 자신이 마주 해야 하는 이야기로 점점 다가간다.
일반적으로 ‘서브플롯’은 부차적 이야기로, 그 자체가 완결된 이야기이면서도 메인플롯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이야기들을 말한다. 황모과는 지나온 삶 혹은 냉혹한 현실이라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메인플롯에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서브플롯을 배치한다. 그리고 결국 그 서브플롯이 메인플롯에 균열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문학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감과 상상력이 평가절하되고 정의로운 이야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음을 당하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작가는 ‘이야기 여행’이라는 서브플롯을 통해 상상력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의 상상력에 매료된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 법칙에 동의한 독자들에게, 더 나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다.”

주인공 나현은 ‘여행’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언니 미현의 집에 얹혀살며 조카 시환과 맨날 싸우는 철없는 이모이다. 그런데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주변 풍경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잊고 공감을 잃어버렸다.

내 담당 김듀라 선생님이 화면을 바라보며 장황한 설명을 하더니 증세를 진단했다. ‘감각 과잉 감정 과발산증’이라는 낯선 병명을 들었다. 내가 터트리는 웃음이 문제라고 했다. 과하게 발산되는 호흡이라나? 심지어 전염성이 높은 기묘한 바이러스를 분출한다며 나를 전염병 전파자 취급을 했다.
“네? 푸하핫!”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순간 선생님이 고개를 움직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 굴려 시계를 보더니 자기만 보고 있는 모니터 속에 무언가를 입력했다. 4시 37분, 다시 발작적으로 웃음, 같은 메모겠지? 선생님, 여기 앉아서도 다 보여요.
“에이, 그게 무슨 병이에요? 원래 옆 사람이 웃으면 나도 웃을 준비를 하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내가 감각 과잉이면 다른 사람들은 무감각증이라고요! 항변하고 싶었지만 선생님 얼굴엔 ‘원래’ ‘보통’ ‘대체로’ ‘일반적으로’ 같은 단어가 전혀 통하지 않을 고지식한 분위기가 어려 있었다.
―34쪽

여섯 살 조카 시환과 함께 열광했던 ‘냥나라 행성의 냥고’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는 나현뿐이다. 나현은 시환에게 냥나라 행성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기억나는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기 시작하지만 잘되지 않고, 설상가상 월세 때문에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나현이 체념하는 순간, 눈앞에 이상한 글씨가 보인다.

그 순간, 눈앞 공중에 이상한 글씨가 떴다.

제87차 서브플롯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라!’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했습니다.

메인플롯으로 돌아갑니다.
―53쪽

그리고 나현은 새로운 풍경에서 눈을 뜨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반지하방 앞이다. 나현은 자신이 이 장면들 속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브플롯’을 통해 바꿔야 할 메인플롯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현은 88번째 자신의 삶에서 ‘실패’하지 않고 올바른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을까? 다시 써내려간 서브플롯은 삶의 메인플롯을 뒤흔들 수 있을까?

 

 

당신을 구원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치유가 필요한 내게 다가온 진짜 이야기의 힘

《서브플롯》은 여행과 대비되는 ‘현실’로 돌아온 나현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때 ‘현실’은 웃음과 상상력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손익만 남은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여섯 살 조카 시환은 Pass와 Fail만을 반복해서 읊고 어린이집에서 주식 투자와 돈의 논리를 배우며 성장한다. 가장 무서운 점은 나현 외에는 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냉소와 무감각의 현실을 격파하기 위해 나현은 이야기를 찾는다. 흥미로운 점은 시환에게 들려줄 동화로 등장했던 ‘냥고 이야기’는 서브플롯을 통해 나현이 여행하는 행성이 되고, 나현의 진짜 현실에서는 하나의 결과물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결국 이야기는 나현의 삶을 구할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작에서부터 작가는 줄곧 기억과 데이터를 중요한 소설의 골조로 삼아왔다. 이 골조는 존재했던 현실 자체를 바꿀 순 없어도 그것을 기억하고 감각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리고 그곳에 이야기의 자리가 들어선다. 우리는 사건을 해석하고 재배치함으로써 공감하고 애도하고 더 나은 삶의 기준을 만듦으로써 용서하거나 단죄하며 기억을 조정한다. ‘서브플롯’을 통해 ‘메인플롯’을 바꿔나간다. 문학을 통해 비가역적 시간마저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황모과의 소설이 가진 강력한 힘이다. 독자들은 이 강력한 힘에 기대어 현실에서도 상상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받는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서브플롯을 써내려간다. 작가는 무수한 이야기가 창발할 우리의 멀티버스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 본문에서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여행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 아주 특별한 여행을 경험했다. 엄마와 한 번, 그리고 초등학교 때 단짝 송인과 또 한 번. 그땐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내가 이토록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나 우리처럼 여행을 떠나진 못한다는 것을. 혼자서는 떠날 수 없었다. 여행을 하려면 함께 건너갈 사람, 여행지를 동시에 꿈꿀 사람이 필요했다.
―본문 55쪽

 

이야기가 만들어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이야기를 자기 경험의 일부로 동의한 사람들이 함께 체감하는 특별한 곳이었다.
그다음부턴 간단했다. 서로의 설정에 동의한 뒤 그 세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해주면 됐다. 두 사람의 머릿속 그림이 일치하면 우리는 함께 그 세계로 건너갔다. 간단한 룰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든 누구든 누구와 함께든 체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그게 뭐냐고 말할 테고 또 어떤 사람은 유치하다고 말할 거였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몽상이고 망상일 뿐이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냉정하고도 이성적으로 슬며시 자신의 현실 밖으로 이야기를 내몰 것이다. 남의 이야기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일 뿐, 자기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였다. 살다 보니 그런 사람들도 많았다.
두 사람, 혹은 두 사람 이상이 하나의 이야기를 현실의 연장처럼 받아들이는 일엔 상상력이 필요했다. 비슷한 감수성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즐길 줄 아는 유머감각도 필요했다.
―본문 69~70쪽

태인과 함께 보낸 순간은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 안으로 들어왔다. 함께 요리를 만들고 음식을 나눈 일, 어떤 일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높인 일이 모두 냥나라 행성 속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과 사건들이 이야기 속 악역이 됐고 갈등이 되었다. 우리 둘이 동시에 사랑하는 일이 이야기의 결말이 되었다.
―본문 102쪽

“서브플롯으로 개작을 시도해보시겠습니까?”
“서브플롯? 무슨 개작이요?”
그는 내 인생을 다시 써보자고 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야 좋죠. 뭘 해보면 좋으려나?”
내게 허락되지 않은 삶을 새 인생처럼 각색해보자고 했다. 나는 그와 함께 구체적인 옵션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본문 133쪽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라는 가장 유니크한 이야기의 작가요. 이 생은 온전히 당신만의 이야기니까요.”
나만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구했다는 결론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본문 218~219쪽

 

▣ 추천의 말
이 소설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황모과식 영웅 설화이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모든 멋진 이야기를 상징하는 기호”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작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감동적인 헌사다. 그리고 “진짜로 진짜가 될 멋진 거짓말”을 또 한 번 지어낸 작가 황모과가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거부할 수 없는 히든플롯이다. 가장 작은 존재의 친구가 되리라 선언한 작은 영웅이 말한다. 남의 이야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기꺼이 엑스트라가 되어 주인공을 돕는 황모과의 이야기 속 룰에 합의하라고. 그러면 우리의 이야기는 더욱 아름답게 완성될 수 있다고. 냥라라랄라!
―조우리(소설가)

 

▣ 작가의 말
적어도 내가 목격한 폭력은 크건 작건 죄다 진부했다. 단언컨대 매력적인 배경을 두르고 근사한 이야기가 될 가치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반면, 파탄나고 산산조각이 난 파국이야말로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될 가치가 충분한 건 폭력에 맞선 쪽이다.
맥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편이 되어버린 무력한 일상을 끌어안고 우리는 이야기를 찾는다, 때때로 이야기를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유를 알고 싶고, 행여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원인을 찾고 싶다. 나를 도우려고 했던 혹은 망치려고 했던 이들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머리를 싸맨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납득하려고 숨은 맥락을 찾아본다. 자신의 해석이 가미된 이야기로 이해할 때 조금이나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파탄은 이야기를 낳는다. 나도 줄곧 이야기를 찾아왔다. 내게도 이야기가 필요했다.
다소 과욕일지 모르나 폭압과 횡포 속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길에, 자신의 기원과 유래와 파국에서의 탈주를 꿈꾸는 당신의 길 어딘가에 이 소설이 우연히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목차

▣ 차례

제1부 [서브플롯] : 이야기가 사라진 곳 009
제2부 [메인플롯] : 특별한 여행 054
제3부 [메인플롯] : 내 이야기가 없는 세상 097
제4부 [서브플롯]에서 [메인플롯]으로 : 전설의 완성 142
제5부 [메인플롯] : 당신을 위한, 당신만의 이야기 199
작가의 말 236

작가 소개

황모과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모멘트 아케이드〉로 데뷔했다. 앤솔러지 《대스타》 수록 작품 〈증강 콩깍지〉가 〈MBC 시네마틱드라마 SF8〉로 제작되었다. 소설집 《밤의 얼굴들》, 중편소설 《클락워크 도깨비》,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등을 출간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한 SF 단편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로 2021년 SF어워드를 수상했다. 2022년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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