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빛

임재희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3년 9월 18일 | ISBN 9791167373496

사양 변형판 140x210 · 236쪽 | 가격 15,000원

분야 국내소설

수상/선정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책소개

개인적·사회적 비극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추는 작지만 따스한 불빛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제주4.3평화문학상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왔다. 2023년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세 개의 빛》(당선시 제목 《저녁 빛으로》)은 2007년에 미국에서 벌어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배경으로 이민자와 입양인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 비극 이후 남겨진 자가 겪는 마음의 문제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 드러낸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에서 울려 퍼진 총성이 바꿔놓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노아 해리슨과 미국으로 이민을 온 미셸 은영 송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한 친밀하고 다정한 연인 관계이다. 그러나 은영의 연인, 노아는 TV를 통해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이후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은영은 연인을 잃은 슬픔 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두려움과 알 수 없는 반발심,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이민자로서의 삶에 공감하는 마음과 거기서 오는 죄책감까지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혼란스러워한다. 혼란을 추스르기 위해 상담사의 권고에 따라 노아와의 일을 기록하던 은영은 노아에게 자신이 알던 ‘노아’라는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소설은 사회적, 개인적 비극 이후 남겨진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혼란과 애도의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이제야 뭔가 다 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내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도 같’다는 문장이 암시하듯, 소설은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고 슬픔에서 온전히 벗어난 상황을 그리기 위해 허겁지겁 내달리지 않는다. 인간이 비극 속에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이고 모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슬픔의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존재를 천천히 그리고 치열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설은 비극의 어둠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온기를 가진 빛을 발견해내고, 수많은 비극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도 그 빛을 건넨다. 마침내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된 평화’를 독자의 손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가끔 총소리가 들린다. 들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노아의 얼굴이 떠오르다 희미해진다.”

연인인 두 사람, 한국계 미국인이자 입양인인 노아 해리슨과 미국으로 이민 온 미셸 은영 송은 2007년 4월 16일, 한국계 미국인이 가해자인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게 된다. 입양과 파양, 그리고 양아버지가 총으로 양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을 겪었던 노아는 그 뉴스를 본 뒤 깊은 우울에 빠져 끝내 자살하고, 가장 가까운 관계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은영은 연인을 잃은 슬픔과 자신이 좋은 지지자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혼란스러워한다. 거기에 더해 총격사건의 가해자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백인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두려움과 반발심, 그리고 가해자의 이민자로서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게 되는 마음과 거기서 오는 죄책감까지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상담사로부터 여행을 떠나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은영은 노아와 함께 한국에 가보고자 했던 기억을 떠올리지만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시절 친구 현진을 떠올리고 용기를 내 한국으로 향한다.

환한 대낮이었고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어두운 터널로 진입했다. 다음에 내릴까? 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는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현진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 봐, 은영아. 어두운 터널 끝에서 작고 환한 빛의 동그라미가 점점 커지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그렇게 힘들거나 어둡지 않을 거라는 축복 같았다. 나는 두려움이 조금 가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이 아무리 멀어도 잘 갈 수 있을 것처럼.
은영아, 어서 와. 이곳이 조금이라도 네 맘을 편하게 한다면, 언제든 환영.
오래 망설이다 한국행 계획을 현진에게 알렸을 때 짧은 답이 왔다. 오래전 터널 끝 빛의 동그라미를 보았던 장면이 그렇게 다시 떠올랐다.
―본문 83~84쪽

한국 땅을 밟은 은영은 현진의 집에 머물면서 한국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노아의 기록을 찾기로 한다. 미국에 입양될 때 ‘남자아이-1’이라는 이름으로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은영은 현진의 도움으로 노아의 입양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운영된 입양 기관을 찾아가게 된다. 은영은 그곳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혼혈로 미국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리사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노아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지만, 노아에 대한 유의미한 기록을 찾지는 못한다.

“친근한 이름이네요. 제 연인은 ‘남자아이-1’이라는 이름으로 입양되었다고 들었어요.”
리사가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끄덕였다. 나는 따로 긴 설명은 하지 않았다. 리사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일 것만 같았다.
“혹시 그가 스쳐 갔던 곳이 여기가 아닐까 싶어서, 여기 오면 그를 만나는 기분이라도 느낄 것 같아서 이렇게 무작정 내려왔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힘든 마음을 고백하듯 말했다. 이토록 쉽게 입이 열리다니. 평소의 나답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노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아가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리사가 입양아라고 먼저 고백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일 수도 있었다. 어떤 상처나 고백은 그 자체로 타인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이름이었다면, 아기였을 때 입양되었겠군요.”
리사가 그 시절 한국의 입양 환경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거나, 실수로 기록이 삭제되었거나, 영문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오류였거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버려진 아이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출생 자체가 은폐된 채 보내진 아이일 가능성도 있다고. 너무도 다양한 노아의 ‘가능한 불행’에 대해 듣고 있자니 망연할 따름이었다.
―본문 116~117쪽

현진의 집으로 돌아온 은영은 한 통의 메일을 보게 된다. 노아가 죽은 후 구글링을 하다 알게 된 불교 수련원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한국으로 오기 전 은영은 노아가 불교 수련원에서 수련을 했던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노아의 연인이며 노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수련원에서의 노아의 기록을 알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늦게 도착한 답장에서 수련원 담당자는 이곳에서 수련했던 것이 노아가 맞다는 것, 그리고 노아에게 스님이 붙여준 ‘동아’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은영은 자신이 알지 못하던 노아의 기록 한 조각을 얻은 것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노아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온 노아의 이름들을 따라 마침내 올바른 애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노아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한국 이름이 있었다니!
나는 탄식에 가까운 숨을 토해냈다.
왜 나는 노아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두려웠을까. 어두운 그의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지레 겁부터 집어먹고 피했다.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마. 미래만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의 현실에 감사하자고 말했다. 친절한 회피였다. 과거에서 출발하지 않은 미래는 없다는 걸 나는 정녕 몰랐을까.
나는 용서를 빌듯 중얼거리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메일함을 열고 그 스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을까 묻는 짧은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헬레나가 보낸 메일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고 있었을 때, 헬레나가 바로 답을 보냈다. 기다리던 내용이 아니었다.

―본문 157~158쪽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되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이 보도되었을 때, 2007년 4월 16일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세계를 훨씬 더 가깝게 그리고 보다 생생하게 연결하는 지금, 비극 이후에 남겨진 존재로서 은영은 사회적, 개인적 비극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비극 속에서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감각한다.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경험과 정체성에 따라 분노와 슬픔, 우울에서부터 일견 비윤리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정까지, 두서없는 혼란이 한 존재를 사로잡는다. 소설은 이민자, 입양인, 여성, 흑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해석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 겪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천천히 공을 들여 보여준다. 함부로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의 재현 방식을 통해 고통은 천천히 정화-카타르시스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소설은 고통을 재현하는 데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재현이 정화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에는 애도의 가능성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은영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하기 위해 연인의 과거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은영에게는 노아의 또 다른 이름이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주어진다. 한치 앞을 모르는 미궁 속을 고작 얇은 실 하나를 붙들고 들어가는 마음으로 은영은 연인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렇게 도달한 한국에서 은영의 세계는 넓어지며 더 많은 존재들과 연결된다. 더 많은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은 용기를 알게 된다. 충분한 애도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소설은 소설적 순간을 통해 애도의 순간을 제시한다. 문학평론가 허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소설은 세 개의 어둠에서 ‘비폭력, 공감, 애도’라는 세 개의 빛이 어떻게 생겨나 서로 투영될 수 있는지를 끝내 증명해낸다. 이와 같은 빛은 국경을 비롯하여 구획된 경계를 넘나든 인물들이 같이 발견하고 반사한 결과물이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되는 것이다.”

 

▣ 본문에서

스물세 살, 그 청년.
이 거리 어디쯤에서 나와 한 번쯤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은 아니었을까.
상상은 분명한 확신이 되어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어느 한인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후루룩거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던 모습을 본 것처럼. 한국 마트에서 신제품으로 나온 한국 라면을 집어 들다, 한국 라면이 최고죠! 하며 서로 마주보고 웃었던 것처럼. 캠퍼스에서, 코리안 페스티벌에서, 아트 페어에서, 교민 마라톤 대회에서…….
그를 모른다고도 안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지점이 목을 죄었다. (21~22쪽)

나도 그처럼 될 수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손가락이 떨려요. 그가 방아쇠를 당기던 그 순간이 내 손가락에 그대로 전해진 것처럼 전율이 일어요.
과장이 아닙니다.
그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이 느끼는 통점이 내게도 있을 테니까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남의 일이 될 수 없어요. 나는 단지 그처럼 되지 않기를 선택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 청년이 혹은 노아가 숱하게 들었을 ‘Go back to China!’ 왜 백인들은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을 먼저 떠올리는 걸까요. 한국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정은 몇 번째 상상으로 가능할까요? 누군가 속으로 그런 말을 껌처럼 씹고 있는 표정을 본 적 있어요. 그 눈빛을 아직 기억해요. 오래 혐오하는 일이 일상처럼 집요하고 능숙한 사람들. 피를 보지 않고도 피를 흘리게 만들어서 대놓고 반박할 수도 없죠. 돌아서면 그게 혐오였다는 걸 느낄 뿐이죠. (28쪽)

“노아가 예전에…….”
에디의 입에서 또 무슨 말이 흘러나올지 몰라 긴장되었다.
“미국에 처음 입국한 날의 입국 기록을 열람해봤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기록에 뭐라고 적혀 있대? 부모 이름은? 한국 이름도 있어? 출생지는? 기억해?”
두서없는 질문들이 내 입에서 쏟아졌다.
“노아에게 단 한 번 들었는데 거의 다 기억해.”
“그게 무슨 뜻이야?”
“내용이 거의 없는 기록이니까.”
나는 에디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없었다.
“이름 대신 한글과 영어로 ‘남자아이(Boy)-1’, 영문 이름은 ‘Noah’로 표기되어 있었대.” (63~64쪽)

경험하지 못하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겠죠. 하지만 사실 그 청년의 심정을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이해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우리가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아니라는 방증 같아서 오히려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자체가 어찌 보면 불가능하고 끔찍한 일이고요. 그렇다고 그를 그냥 살인마, 악마, 이렇게 부른다고 마음이 편하지도 않아요. 그와 우리가 완벽한 타인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202쪽)

그림 제목이 뭐야? 정했어? 내가 물었다. 말줄임표야.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응? 응. 내가 삼킨 말들, 차마 꺼낼 수 없던 수많은 말을 점으로 그렸어. 침묵과 달라. 내 방식의 목소리야. 보기에는 비슷해도, 다 다른 말이야. (209쪽)

이제야 뭔가 다 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내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가끔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희미한 총성처럼 나와 함께 살아갈 것들이었다. (228쪽)

 

▣ 심사평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단기필마라고 할까.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든 덕에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출혈의 시작점을 끝내 찾아내고 말았다고나 할까. 거기에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생한 언어들이 그 집요함을 감싸고 있는 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_심사위원 공선옥(소설가), 공지영(소설가), 한창훈(소설가)

 

▣ 작가의 말

나를 움직인 것은 폭력이 휩쓸고 간 뒤 남겨진 사람들이 보여준 성숙한 ‘행동’이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사건의 희생자는 서른두 명이었는데, 추모석과 꽃과 검은 리본은 모두 서른세 개로 꾸며진 추모식이 열렸다. 희생자 가족들과 친구들은 스물세 살 그 청년을 ‘폭력’과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동등한 ‘희생자’로 품은 것이다. 그들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분노보다 슬픔을 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어쩌면 분노보다 슬픔이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오래 그 마음에 고개 숙였다.
하루의 마지막 빛을 끌어모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작은 빛이라도 마음에 품고 오늘을 건너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 추천의 말

세 개의 빛을 포착하려면 세 개의 어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임재희는 빛이 그 자체로 찬란한 것이 아니라, 막막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위로가 되어줄 때 가치 있게 빛남을 공들여 보여준다. 그러한 빛은 희미할지언정 온기가 있다. 이 소설은 세 개의 어둠에서 ‘비폭력, 공감, 애도’라는 세 개의 빛이 어떻게 생겨나 서로 투영될 수 있는지를 끝내 증명해낸다. 이와 같은 빛은 국경을 비롯하여 구획된 경계를 넘나든 인물들이 같이 발견하고 반사한 결과물이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되는 것이다. _허희(문학평론가)

목차

6일의 시간 7
남자아이-1 57
동그라미 찾기 67
여름 숲 107
이름, 이름들 146
남산에서 183
저녁 빛으로 207
에필로그 217

심사평 229
작가의 말 232

작가 소개

임재희

소설을 쓰며 번역 일을 한다. 둘 사이가 멀지 않은 일이다.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배웠다.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비늘》,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가 있으며, 《라이프 리스트》 《블라인드 라이터》 《예루살렘 해변》 《모호한 상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23년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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