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너머의 세계

지음 전민식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4년 12월 13일 | ISBN 9791167374783

사양 변형판 135x205 · 364쪽 | 가격 17,0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전민식 신작 장편소설

자신이 있을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이
운명처럼 모이는 이곳에서
죽음 너머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다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전민식의 신작 장편소설 《길 너머의 세계》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당시 “상처 입은 존재들이 패배 속에서도 만들어내는 치유의 풍경을 훈훈하게 그린,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던 인물들은 서로의 세계에 한 걸음씩 발을 들여놓는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새로운 버팀목이자 있을 곳이 되어준다.
소설은 ‘수목장’이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 저마다의 이유로 모일 수밖에 없던 세 명의 인물을 조명한다. 그들에게 빈번히 일어나는 암장 사건과 어느 날 찾아왔던 한 부부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소설 전반의 긴장감을 더한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숨겨왔던 각자의 비밀이 드러나며 그들은 점차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마지막으로 찾은 이곳에서 인물들은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다. 그렇게 수목장은 상처받은 이들의 슬픔이 모여 희망으로 탈바꿈하는 공간으로 재의미화된다. 이처럼 《길 너머의 세계》는 각자의 이유로 수목장에 모일 수밖에 없던 인물들이 서로를 점차 알아가며, 일상 같은 수많은 죽음 앞에서 다시 삶의 의지를 다지는 따뜻한 휴머니즘 소설이다.

 

“‘너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너머’는 끝이고 마지막이며 다른 세상이었다.”

구릉 정상에 서면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너머 수목장’이 내려다보였다. 가까이 바다가 펼쳐져 있으며 왼편엔 메밀꽃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고 오른편에 반송 2000그루가 내리막길을 푸르게 덮은 채 달려 내려갔다. (……)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지만 결국 가야만 하는 곳은 왕의 정원처럼 화려했다. 죽은 자들의 곳이라기보다 산 자들의 수목원 같은 모습이었다. _8~9쪽

아름다운 정경을 자랑하는 ‘너머 수목장’에는 저마다의 계기로 모이게 된 세 명의 직원들이 상주한다. 주인공 ‘우중’은 수목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이곳을 찾은 이들을 맞이한다. 가끔은 얼굴도 모르는 사장의 지시대로 무연고 아이들의 골분을 수습하기도 한다. 한편 그의 관리자이자 팀장직을 맡고 있는 ‘도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안치를 직접 하지도 못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서툴다. 그의 일을 대신하며 수목장 전반을 관리하는 것은 ‘소미’이다. 함께 일하면서도 서로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죽은 이들의 골분을 나무 아래 묻어주고 그들을 추모해줄 뿐이다.
어느 날, 수목장 맨 아래 ‘하’ 열의 나무 아래 잔디를 뜨다 만 흔적을 발견한 우중은 도현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렇게 일련의 해프닝으로 넘어가는 듯했지만 누군가 암장을 시도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셋 모두에게 ‘최후의 보루’인 이곳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있을 곳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암장 사건’은 그들에게 더는 묵과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른다. 그들은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저기요. 그런데 이 반송은 수명이 어떻게 되죠?”
(……)
“나무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일부러 죽이지 않는 한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은 생존해 있을 겁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면 엄청 큰 나무가 되어 있겠죠.”
내 말이 끝나자 여자의 둥근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이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면 나는 삐질삐질 땀을 흘려 얼굴이 반들거리는 게 느껴졌다.
“오빠, 우리 나무는 수천 년은 살아 있겠다.”
“그래야지. 우리 나무니까.” _112~113쪽

한편 ‘너머’에 60년 치 관리비를 미리 지불하고 싶어 하는 부부가 찾아온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 ‘로로’를 안치한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목장을 방문한다. 그러나 갑자기 2주 동안 소식이 없고, 심지어 부부가 들렀던 절에 아이의 영정 사진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중은 그들의 집을 찾아가지만, 집 앞에서 마주친 남편의 동생 ‘김광식’과 함께 마주한 것은 나란히 누워 부패되고 있던 부부의 시신이었다. 이 사건으로 우중은 조사를 받게 되고, 광식은 부부를 대신하듯 수시로 수목장에 나타난다. 더군다나 보름 휴가를 받게 되어 수목장에 잠시 신세를 지게 된 우중의 동생 ‘우주’까지 합류하며 수목장은 더욱 북적이게 된다. 갈 곳 없는 이들은 필연처럼 이곳 ‘너머’에 모인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보일 새로운 길
계속해서 걸어갈 용기를 북돋워줄 이야기

소설은 인생의 끝에 몰린 인물들의 인생을 찬찬히 비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신의 꿈을 포기했거나, 안타까운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떠돌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나 형은 다른 애들하고 출발점 자체가 다르잖아. 나는 너무 뒤에 처져서 출발하고 있다고. 앞에서 치고 나가는 애들이 얼마나 앞에 나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어느 사회도 공평하지 않다는 거 정말 기분 나쁜 거야.”
나는 우주의 말에 문득 도현이 떠올랐다. 죽음만이 모든 걸 평등하게 만든다는 말. 바람도 햇빛도 꽃과 나무는 물론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만 평등해진다는 말. _268쪽

사회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이들은 모두 실패한 인물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 불평할지라도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죽었을 때 억울하지 않으려면 죽지 않은 현재의 시간과 공간이 내게 있어야 한다고 믿”(116쪽)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죽음과 그를 둘러싼 슬픔을 접하면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삶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진다. 수목장의 푸르른 나무들을 보며, 그 굳건한 줄기와 꿋꿋한 가지의 아름다움을 보며 내일을 그린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인물들의 앞에 희붐하게 밝아오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 작가의 말

나무에 힘이 있을까? 한 자리에서 길게는 수백 년을 앉아 있었으니 세상의 도쯤은 깨치고도 남을 세월이다. 붙박인 채 수백 년을 살았다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도 갖게 되지 않았을까? 나무는 사람들에게 행복했던 순간들을 기억나게 해주고 상처는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나무들 속에서 여러 계절을 살았다.
가끔 나무들이 말한다. 세상은 보기보다 넓다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계는 좁쌀보다 작다고, 내게 의지하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의 소멸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바람에 실린 나무의 말을 듣다 보면 여럿에게 미안했다.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모든 억울한 영혼들에게 미안하다. 세상은 연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고 우연의 연속이기도 하니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어떤 순간 그들 모두 만나게 되기를 고대한다.

목차

길 너머의 세계 7

작가의 말 360

작가 소개

전민식 지음

1965년 겨울, 부산에서 태어나 평택에서 자랐다. 서른을 앞둔 마지막 해에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년 만에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오로지 글쓰기에만 매진했고, 20년 넘게 한길만 고집한 끝에 마흔일곱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꾸준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작품으로는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13월》,《불의 기억》,《알 수도 있는 사람》,《9일의 묘》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강의를 하며 파주에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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