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의 유일한 국내 미출간작 초역
셜리 1
‘셜리’라는 이름을 여성에게 준 역사상 첫 작품
《제인 에어》 《빌레트》 샬럿 브론테의
유일한 국내 미출간작 초역
★1905년 에드먼드 뒬락 일러스트 판본★
고전문학과 영국소설, 여성 작가의 상징과도 같은 샬럿 브론테의 장편소설 《셜리》가 국내 최초로 출간되었다. 샬럿 브론테가 집필한 네 편의 장편소설 중 유일하게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었던 《셜리》는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별나고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출간 당시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며 대중적으로는 큰 사랑을 받았다. 이전에는 남성적이라고 여겨졌던 ‘셜리’라는 이름이 이 소설의 출간을 계기로 여성의 이름으로도 쓰이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강했다. 《제인 에어》나 《빌레트》로 알고 있던, 또는 예상할 수 있었던 샬럿 브론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샬럿 브론테의 가장 혁신적이며 페미니즘적인 소설’이라고 재해석되어 다시 읽힌다.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샬럿 브론테의 목소리로 생동하는 이 문제작을, 19세기 말 20세기 초 북 일러스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드먼드 뒬락의 1905년 판본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으로 선보인다. 기존 판본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표지와 내지에 포함된 뒬락의 삽화는 현대에 새로운 고전문학을 만나는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지위를 초월한 여성 연대
가장 사적인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려내는
격동하는 19세기 영국의 초상
1811년, 유럽의 경제는 나폴레옹전쟁으로 침체되었고, 영국 북부의 섬유 공업 지대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습격하여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소설은 혼란한 국내·외 시국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는 요크셔의 두 여성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교구사제의 조카딸이며, 가난하고 소심하지만 지적이고 온화한 캐럴라인 헬스턴과, 대저택과 부를 물려받은 상속녀이기에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당당한 셜리 킬더는 상이한 사회적 지위와 성격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에서부터 특별한 유대를 느낀다. 두 사람은 여성으로서 처한 갑갑한 상황과 나아갈 수 있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며 자매와도 같은 친밀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이야기는 캐럴라인과 셜리가 마주하는 가족 관계, 사랑, 결혼 등의 개인적 문제를 렌즈 삼아 당대 영국 사회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전작 《제인 에어》와 ‘여성 작가’의 한계를
스스로 넘어서고자 했던
작가 유일의 역사 사회 소설
샬럿 브론테는 소설 첫 장에서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서두를 읽고 로맨스 비슷한 것이 준비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독자여, 그것이야말로 오산이다. 감상이나 시, 몽상을 기대하는가? 열정, 자극, 멜로드라마를 원하는가? 기대를 내려놓으라. 기준을 낮추라. 여러분 앞에는 냉정하고 진지하며 현실적인 무언가가 놓여 있다. _1권 9-10쪽
이는 큰 성공을 거두었던 전작 《제인 에어》를 과감히 떠나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하겠다는 선언이자,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하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대두되었던 노동계급의 문제를 다룬 시사적인 문학이 유행이었다. 샬럿 브론테 또한 여성 개인의 사적 경험에 국한되는 글 대신 격변하던 19세기 영국의 상황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개인들의 삶을 다룬, 이전에 쓴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는 여성에게 요구되던 특정한 방식의 글쓰기와 여성 작가의 글을 바라보는 시선에 내포되어 있던 시혜적인 관용과 멸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샬럿 브론테는 여성적인 글을 쓸 것을 권하는 동료 작가이자 비평가에게 “나는 글을 쓸 때 여성적으로 매력적이고 우아한 게 뭔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조건이나 생각을 염두에 두고 펜을 잡아본 적이 없어요. 만약 내 글이 그런 조건으로만 용납된다면 나는 대중을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했으며, 비난이나 비판보다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정중하게 언급한 시혜적인 칭찬이 훨씬 더 모욕적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큰 성공을 거두었던 자신의 전작을 스스로 뛰어넘고 성별과 무관하게 작가로서 평가와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야망을 품고 집필한 작가 유일의 역사 사회 소설이 바로 《셜리》다.
당대의 문제작에서 가장 현대적인 고전으로
샬럿 브론테 그 자신만의 목소리로
해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소설
그럼에도 샬럿 브론테만의 정수는 여전히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전쟁과 산업혁명, 노동 문제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그 당시 출간되었던 소설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그 사안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명확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산업혁명과 전쟁 등으로 인해 격변하고 있던 영국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대한 고발이다. 이야기 속 여성 인물들은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노동을 하기를 원하며, 스스로가 누구인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표면적으로는 빅토리아시대 로맨스 소설의 전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당시의 답답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마 나는 결혼하지 못할 거야. 로버트가 나에게 마음이 없으니 난 사랑할 남편을 결코 갖지 못할 거고, 돌봐줄 어린애들도 못 가질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와 애정이 내 존재를 차지하기를 마음 놓고 기대했었지. 하지만 이제 분명히 알겠어. 아마도 나는 노처녀가 될 거야. 나는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고. 그럼 난 무엇을 위해 태어났을까? 이 세상에 내 자리는 어디일까?’ _1권 248쪽
여성 인물들은 서로 연대하기도 하고 돌보기도 하며 가르치거나 싸우기도 하는데, 중얼거리고 항변하고 소리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샬럿 브론테 특유의 정열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출간 당시 《셜리》는 “지나치게 남성적인 강렬함 때문에 불쾌하다”라는 식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주된 비판은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조화롭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한 학자는 이 소설을 두고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없던 시대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시도”라고 묘사했다. 선례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위해 전에 없었던 언어와 인물을 상상해내는 과정에서 생긴 균열은, 어색하고 삐걱거리기도 하지만, 새로운 의문들이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셜리》는 명쾌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와 시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문제작이었던 이 작품은 특정 문화권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170년이 넘는 시간을 훌쩍 넘어, 한국의 독자와도 공명하는 의의를 지닌 채 우리 앞에 당도한다.
■ 추천의 글
《셜리》는 샬럿 브론테의 가장 페미니즘적인 소설이다. 19세기 초의 존재 셜리는 후대의 페미니스트와 비교해도 너무나 선구적인 인물이며, 독립성과 경제적 수단, 지성을 모두 갖춘 여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샬럿 브론테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가진, 남성과 동등하며 자신감 넘치는 젊은 여성을 상상한 것이다. _린달 고든(브론테 전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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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브라이어메인스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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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필드헤드 • 264
12장 셜리와 캐럴라인 • 290
13장 그 이후의 사업상의 연락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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