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체인지

최정화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5년 3월 20일 | ISBN 9791167375353

사양 변형판 128x188 · 224쪽 | 가격 16,8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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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기괴한 경제 속에서

생기와 아름다움, 그리고 한 시절이 교환된다.” _우다영(소설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시스템이 야기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혼란

최정화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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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인간 내면의 불안, 기후 위기 등에 천착해온 작가 최정화의 신작 장편소설이 은행나무출판사 시리즈N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흰 도시 이야기》에서 기억을 삭제하고 왜곡하는 전염병이 가져온 혼란을, 《메모리 익스체인지》에서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한 소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그는 신작 《호르몬 체인지》를 통해 ‘젊음을 살 수 있게 된 근미래’를 묘파하며 날카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호르몬 체인지》는 타인의 호르몬을 주입받아 생체 나이를 젊게 되돌리는 수술이 가능해진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젊고 건강한 몸’을 향한 욕망. 그것을 비대하게 부풀리는 기형적인 시스템. 사회의 외면과 방관을 숙주 삼아 빈곤의 악순환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나아가 최정화는 ‘더 젊고 더 아름다운 신체’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일갈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젊음을 갈망하는 욕망이 어디로부터 기원하게 되었는지를 낱낱이 드러내고, 그것을 자극하는 시스템과 시스템을 추동하게 하는 사회를 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여러 화자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호르몬 수술을 받고 스무 살이 된 칠십대 노인, 나보다 어려진 엄마를 맞닥뜨리게 된 딸,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호르몬을 제공하는 셀러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윤리 의식을 저버린 사람들……. “외로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기괴한 경제 속에서 생기와 아름다움 그리고 한 시절이 교환”되고,(소설가 우다영) 독자는 서로 다른 사정과 입장을 지닌 화자들을 통해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부조리―순리를 거부하고 필요 이상의 것을 욕망하는 행위가 미래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빼앗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사라지고 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수술 후 내내 두려워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마냥 기쁨에 젖은 채 한동안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피부는 맑고 싱그러웠으며 붉은 입술은 잔주름 하나 없이 매끄러웠다. 마음껏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연인의 얼굴이라도 보듯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잔디에 대한 걱정도, 돈을 주고 젊음을 샀다는 자책도,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윤리적 부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_25쪽

“자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들이 셈을 치를 때 탈락하는 것들, “무시무시한 편안함”이 당신 앞으로 배송되었을 때 당신이 외면하는 것들을 보라. 최정화가 바꾸려는 세계는 바로 거기에 있다.” _우다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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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거리에서 존재를 감춰버린 노인들
젊음만을 추앙하게 하는 사회를 향한 예리한 비판

‘호르몬 리버스’는 호르몬 수술 전문 병원이다. 이곳에 입원해 있는 ‘바이어’들은 모두 ‘셀러’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생물학적 나이를 젊게 되돌려줄 미래 세대, 가장 적합하고 알맞은 맞춤형 호르몬 제공자를. 바이어의 신체에 딱 맞는 타인의 호르몬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수많은 검사를 거쳐 바이러스 감염과 기타 질환, 알레르기 등을 일으킬 확률이 가장 낮은 셀러를 선별한다. 여러 차례의 테스트 끝에 대상자가 매칭되면 바이어는 마침내 호르몬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큰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 확실한 젊음을 보장하는 수술. 이제 거리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노인들은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밤늦은 시간 어두운 골목만을 찾아 걷는다.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는 일엔 어느새 무덤덤해졌다. 정작 견디기 어려운 건 수술을 받은 친구들이 이십대로 돌아가는 바람에 혼자가 되고 만 외로움이었다. 인간은 이제 노화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얗게 바랜 머리카락, 깊게 파인 주름, 드문드문 검버섯이 올라온 피부, 굽은 등허리 같은 것들을 본 적이 없다. 만약 노인이 길거리를 지나다닌다면 동물원 우리를 탈출한 원숭이와 다름없는 볼거리가 될 것이다.” _8쪽

입원부터 검사, 수술 및 유지 과정 전반에 걸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다 셀러와 바이어 모두에게 신체적 위험 부담도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은 성행한다. 수요가 많은 만큼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기꺼이 헐어 그들에게 호르몬을 제공한다. 목숨을 담보하고서라도 가족들을 챙기고 돌볼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살 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한편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던 70세 노인 ‘한나’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삶을 택한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모두 호르몬 수술을 받고 한나의 곁을 떠나버리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호르몬 수술을 결정한다. 한나는 젊음 자체에 대한 욕심보다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사오십대로 셀러 매칭을 신청하지만 덜컥 스무 살 여성과 매칭이 된다. 젊은 시절 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탓에 이십대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한나는 다시 찾아온 스무 살이 설레면서도 자신의 이런 욕망이 낯설고 두려워 혼란한 마음에 사로잡히는데…….

“그 영화 좋아했다던 친구, 그리워요?”
(……) “그립지 않은 친구가 있을까요? 물론 남수랑은 아주 많이 친했죠. 우리가 헤어진 건 제가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때 난 그 애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 친구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걸요. 이젠 그 애를 탓할 자격이 제겐 없어요.” _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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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어두워 보이는 우리의 미래를
끝끝내 유토피아로 견인할 이야기

탄력 있는 피부와 주름 하나 없는 목, 획일화된 아름다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는 사회를 향해 최정화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욕망을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있는지. 이들의 욕망을 충동한 진짜 주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묻게 한다. 왜 우리는 나이 들어 보이면 안 되는지, 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늙어갈 수 없는지. 내면보다는 외면에 몰입하고 ‘잘 나이 드는 것’보다 ‘더 젊어지는 것’에 몰두한 사람들의 강박은 우리 삶에 매일 노출되는 미디어로부터 기인하고 키워진 것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지금의 현실과 거듭 겹쳐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최정화의 세계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디스토피아의 복판에서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약자를 외면하지 않고, 모든 생명과의 상생을 꿈꾸는 인물들이 끝끝내 ‘내일’을 포기하지 않으므로. 최정화의 소설은 일견 어두워 보이는 우리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묵묵히 견인할 것이다.

목차

호르몬 체인지 007
작가의 말 221

작가 소개

최정화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날씨 통제사》, 중편소설 《메모리 익스체인지》, 장편소설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산문집 《책상 생활자의 요가》 《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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