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곡점
악스트 Axt 2025.05-06
격월간 문학잡지 『Axt』 60호의 키워드는 ‘변곡점’이다.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이라는 뜻을 가진 전문 용어였으나 현재는 우리 삶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 삶의 가장 큰 변곡점을 떠올리자면 작년 연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들에게 문학은 어떤 효용을 지닐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곧 다가올 또 하나의 거대한 변곡점을 단단한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한다.
◌ interview
“『치유의 빛』은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강렬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나에 대한 사랑. 친구, 연인, 타인에 대한 사랑. 부모와 내 고향, 동네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은 무척 강렬하지만 동시에 너무 나약해서, 혹은 너무 깊고 지독해서 증오가 돼요.” _강화길, interview 중에서
이번 호 interview에서는 ‘강화길이라는 장르’를 꾸준히 구축해 오며 곧 신작 장편소설 『치유의 빛』으로 우리를 만날 소설가 강화길을 인터뷰이로 선정했다. 소설을 쓰며 ‘꼭 써야 하는 이야기’임을 짐작했다는 그에게 이 소설은 어떤 변곡점으로 자리할까. 곧 출간될 『치유의 빛』 옆에 이 인터뷰를 함께 놓고 펼쳐 본다면 소설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chat * issue
chat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소설가 권혜영, 문학평론가 소유정, 시인 유선혜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읽히는 명작인 이 소설은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위기를 겪은 현대 사회와 맞물리며 많은 것을 시사한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세상”에서 어쩌면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되어 줄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같이 읽어 주었으면 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키워드를 다루는 issue에서 소설가 함윤이는 지난 연말부터 행진에 참여하며 키운 ‘피크민’에 대해, 소설가 이산화는 한국 SF의 놀라운 성장과 앞으로의 예측에 대해 말한다. 주제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하는 시의적절한 글들이 여기에 당도해 있다.
◌ key-word * short story
‘기념일’을 주제로 테마소설을 연재해 오던 key-word에서는 소설가 박연준의 「윌리」가 실렸다. ‘월드발레데이’에 죽음을 맞이한 발레리나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일생이 펼쳐져 있다.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릴레이 연재가 마무리된다.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독자들을 만날 순간을 기대한다. 더불어 다음에는 어떤 주제의 소설들로 릴레이 연재를 이어갈지 계속해서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short story에는 소설가 백가흠과 정진영의 신작 단편소설이 나란히 실렸다. 스스로 “비겁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남자를 그린 백가흠의 「가를 두고」에서는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우리 삶을 반추해 보게 한다. 정진영의 「또 다른 서울의 봄」에서는 현재 한국을 사는 이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름들을 유쾌하게 비틀어 풀어놓는다. 그러나 그 유쾌함 뒤에는 그저 웃고 넘길 수 없는 씁쓸하고 통렬한 진실이 남아 있다.
◌ novel
novel에는 소설가 김숨 송섬 정기현 이선진의 장편소설 연재가 실린다. 김숨의 「초대」는 6회 차에 다다른다. 섬은 하나의 생태계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과연 모두 악하게 태어난 것인가. 섬사람들 누구도 질문의 명확한 대답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볼 뿐이다. 송섬의 「멜볼딘 동물원」 3회는 ‘과거로 떠밀려가는 여자에 대한 짧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현재와 미래에 포함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영원히 과거에 남게 될 뿐이다.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 둘은 어떤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지 계속해서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 정기현의 「살구 농원 술래잡기」 2회는 우연한 기회로 ‘문종일’과 ‘기정’, 그리고 ‘선열’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기묘한 조합이지만 그들은 과수원 나무가 도둑맞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똘똘 뭉친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에 도달할지, 만족할 만한 결과일지 궁금해진다. 한편 이선진의 「잃기일지」가 첫 연재를 시작한다. 시누이의 비비안웨스트우드 목걸이를 끊어먹은 것이 마음 한구석을 쑤셔 조카들을 돌보게 된 ‘진진주’의 여정이 펼쳐진다.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기다릴지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바란다.
◌ review * essay * cover story
이번 호 review에서 다룬 책들 역시 흥미롭다. 문학평론가 황예인과 소설가 공현진 강보라가 읽은 서로 다른 책들에 읽는 이의 주의를 끌 만한 책이 있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감상이 피어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ssay에서 문학과 향을 엮은 김태형의 에세이와 시인이 오랜 시간 관찰하고 골몰했던 사물에 대해 쓴 김연덕의 에세이가 실렸다. 조향사가 생각하는 김지연의 『새해 연습』은 무슨 향일지, 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종이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이번 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잡지 『VOSTOK』와 함께하는 cover story에는 편집장 박지수의 글과 함께 사진작가 최형락의 광장 사진이 실렸다. 그가 기록한 탄핵 촉구 집회 장면에서는 키세스 초콜릿처럼 반짝이는 은박 담요(스페이스 블랭킷)로 몸을 감싼 시위자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모여 이루어낸 쾌거는 한국 사회에서 잊을 수 없는 커다란 변곡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속 개인들을 보며 이들은 다음에 또 어떤 변곡점을 남길지 기대하게 된다.
editor’s note
박연빈 10년 뒤의 당신은 의외로 댄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2―3
review
황예인 정유정 『영원한 천국』 8―15
요네자와 호노부 『가연물』
interview
강화길 형태를 바꾸는 감정이라는 덩어리 16―29
chat
권혜영·소유정·유선혜 목격하기, 마주하기 30―47
issue
함윤이 피크민과 나: 선 만들기 48―53
이산화 점, 점, 무슨 점 54―57
cover story
박지수 한 사람, 또 한 사람 58―65
―최형락의 광장 사진
review
공현진 김지연 「포기」 8―15
야마다 에이미 「풍장의 교실」
essay
김태형 박자가 어긋났습니다 82―87
김연덕 말 없는 종이들의 긴 잡담 88―95
key-word
박연준 윌리 98―121
review
강보라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122―130
히샴 마타르 『시에나에서의 한 달』
short story
백가흠 가를 두고 132―158
정진영 또 다른 서울의 봄 160―185
novel
김숨 초대(6회) 186―213
송섬 멜볼딘 동물원(3회) 214―231
정기현 살구 농원 술래잡기(2회) 232―263
이선진 잃기일지(1회) 264―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