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사계

손정수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5년 8월 25일 | ISBN 9791167375797

사양 변형판 135x205 · 336쪽 | 가격 20,000원

분야 기타

책소개

현실과 환상, 의식과 세계를 가로지르는 불변의 가치
시대와 계절의 레이어로 읽는 고전문학

문학평론가 손정수의 시선으로 읽는
스물두 편의 고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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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한국문학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온 문학평론가 손정수의 해외고전 비평 에세이 《고전의 사계》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오늘날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다시 읽히며 다양한 판본과 2차 창작물로 제작되었고,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또한 그 궤를 같이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경우 동성애를 금기시하던 당시 영국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편집되었지만, 퀴어문학 연구가 활발해진 현재에 이르러 편집 전 초기작 형태를 복원한 판본이 재출간되기도 했다. 이렇듯 200년도 더 지난 고전문학 작품들이 여전히 유효하게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

‘고전 읽기’는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당대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재독하는 일이다. 인간으로 살아감으로써 맞닥뜨리게 되는 고뇌와 번민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매번 다른 형태로 우리 삶에 밀고 들어온다. 인간이라는 불변의 가치를 담고 있는 고전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대를 읽고, 이는 매번 ‘다르게 읽기’를 가능케 하는 무한대의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3년 동안 격월간 《Axt》에 연재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며, 그는 “삶의 문제가 작품으로 옮겨지는 창작의 과정”에도 관심이 갔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스물두 편의 고전 산문은 단순히 각각의 작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창작 배경이 되는 작가의 삶,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생을 통과하며 써내려간 다른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사계절’을 함께 엮는다. 한 사람의 생을 네 계절에 빗대듯, 한 작가와 그 작품 소개를 밀도 높은 서사로 완성해낸다. 이는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해석을 뛰어넘어 작가와 그 창작 세계를 향한 커다란 존중과 애정을 보여준다. 삶과 문학은 떼어놓고 이야기될 수 없는 만큼, 독자는 《고전의 사계》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고전-읽기’로의 길을 걷는 산책자가 될 것이다.

‘싸움이라도 벌인 것처럼 장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원고지’만큼 작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무용수나 축구선수의 발을 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잘못 쓴 원고를 버리지 않는, 혹은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아쿠타가와는 나쓰메 소세키에게서 보고 배웠을 것이다. 아쿠타가와의 소설과 삶을 겹쳐 읽으며 그 마음에 다가가본다.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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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일
생과 생을 가로지르며 무한히 탄생하는 재서술의 과정

손정수 평론가는 《고전의 사계》를 이루는 부 구성이 캐나다 문화평론가 노스럽 프라이의 논의를 바탕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서문을 통해 밝힌다. 노스럽 프라이가 그의 저서 《비평의 해부》에 뮈토스를 네 개의 계절로 나누었는데,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여름의 뮈토스”와 “현실 세계에 집중하는 겨울의 뮈토스”를 한 축으로, “이상으로부터 현실로 하강하는 가을의 뮈토스”와 “현실로부터 이상으로 상승하는 봄의 뮈토스”를 다른 한 축으로 설정한 것에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고전의 사계》의 또한 스물두 편의 비평에세이를 네 개의 부로 나누어 네 개의 계절에 차례로 대응시킨다. 이에 따라 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여름), 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가을), 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겨울), 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봄)이라는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1부에 해당하는 ‘여름―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에서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로 재창작되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를 다룬다. 작품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은 물론 작가 개인의 삶 깊숙이 파고들며 작품을 여러 레이어로 읽어낸다. 특히 위 작품들 모두 현대에 이르러 페미니즘, 젠더적 관점에서 작가와 작품을 향한 더 깊이 있는 이해와 독해를 이끌어내고 있는 고전들이기 때문에 각각의 비평을 비교하며 읽는 의미가 있다.

2부 ‘가을―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에서는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다룬다. 2부 또한 작가와 작품 사이의 연결점을 섬세하게 묘파하는데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서전과 소설이 함께 필요한 상황”에 보다 집중한다. 작가의 명성, 작품 속 이야기,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의 괴리를 통해 ‘쓰는 사람’으로서 필연적으로 짊어져야 하는 고통과 모순, 자의식 등을 작품과 함께 읽어낸다.

3부 ‘겨울―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에서는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알베르 카뮈 《페스트》,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다룬다. 3부에 실린 작품들은 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특히 시대의 영향을 받은, 혹은 시대에 영향을 준(주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을 통해 “한 인물의 내적 세계가 현실 속에서 객관화될 계기”를 얻고, 소설 속 “알레고리”가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는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 즉 현실적인 이상과 희망을 향해 나아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읽히기도 한다.

마지막 4부 ‘봄―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에서는 고전이 된 작품과 고전이 될 작품을 함께 다룬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30년대에 아직(까지도)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쓴 《멋진 신세계》, 그리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근현대에 가까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태고의 시간들》 《로드》를 차례로 읽는다. 그럼으로써 지금 이 순간에도 고전은 끊임없이 탄생하고, 인류 사회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고,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한다.

이렇듯 네 개의 계절을 통과해 책의 말미에 당도하고 나면,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해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과도 대응함을 깨닫는다. 이상세계를 꿈꾸지만 삶이라는 현실로 하강하고, 현실에서 고뇌하다 다시 그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해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희망 있음’ 상태에 우리를 끌어다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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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닌 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

《고전의 사계》 속 계절은 왜 봄이 아니라 여름부터 시작인가. 이는 고전문학을 통해 우리가 품어야 할 어떤 ‘이상’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력 가득한 봄으로 시작해 서서히 저무는 겨울로 마치는 것이 아닌, 뜨거운 여름으로 문을 열고 서늘한 가을과 겨울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찬란한 봄을 맞게 되는 것. 이렇듯 겨울이 아닌 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 더 아름답고 더 충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완성된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완성됨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미완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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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서

저자들은 괴물과 그를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그들을 만든 메리 셸리가 공유하는 소외와 죄의식이라는 유전자를 감식해내면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남자 괴물이 실은 위장된 여성”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괴물이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아무리 애써도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지 못하는 모습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고 설명하는 관점 역시 이런 맥락과 이어져 있다.(18~19쪽)

전설적인 영국의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인 모리시(Morrissey)의 성장기를 소재로 한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2017)에서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은 세무사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음악을 향한 꿈을 잃지 않고 조금씩 그 꿈을 향해 다가간다. 책과 음악을 장벽처럼 쌓아 외부와 격리한 ‘박물관’ 같은 그의 방의 한쪽 벽에는 오스카 와일드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것은 시대와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주의의 화신이자 예술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킨 유미주의자로서 오스카 와일드를 표상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초상은 자신의 삶을 예술에 던지고자 꿈꾸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지금도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67쪽)

지금 돌아보면 앞서 호손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저는 다른 식으로는 또 쓸 수가 없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바틀비의 어투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불안하고 어두운 예감이라기보다 자신이 갈 수밖에 없는 길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길로는 안 가는 편을 택하겠다는 ‘수동적인 저항’의 태도로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것이 허먼 멜빌을 《모비 딕》과 《필경사 바틀비》의 작가로 만들었고, 그의 작가로서의 비참과 영광을 낳았던 것이다.(94~95쪽)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메리웨스트매콧이라는 자기 속의 다른 존재가 필요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봄에 나는 없었다》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서로 다른 허구 이야기들 역시 그와 같은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에르퀼 푸아로와 조앤 스쿠다모어 또한 그런 목적을 위해 필요했던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 다른 얼굴들이 아니었을까.(140~141쪽)

한편 《페스트》에서 아랍인뿐만 아니라 여성이 점유하는 인물 공간 또한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특이한 일이다. 영국의 여성 작가 마리아 와너는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아랍인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없다는 사실에도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으나, 다시 읽으면서 “이 책에서 여성은 항상 다른 곳, 그러니까 소설의 바깥 구석에 어린 시절 어머니의 미소나 아픈 아내, 지금 여기에 없는 애인 같은 유령의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고 쓴 바 있다.(218~219쪽)

목차

서문 004

여름 | 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

존재의 심연에 다가가는 두 가지 이야기 방식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1818) 015
《폭풍의 언덕》이라는 팰림세스트(palimpsest)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1847) 028
시대를 넘어서는 고전의 힘과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판본들
—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1850) 040
삶의 붓으로 그린 예술가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1891) 054
소설과 영화의 길항, 그 혼융의 형식에 담긴 현실과 꿈
— 마누엘 푸익, 《거미여인의 키스》(1976) 070

가을 | 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

수동적 저항의 글쓰기가 남긴 비참과 영광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1853) 083
글쓰기의 자의식으로부터 추출된 특별한 성분의 이야기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1856) 098
잘못 쓴 원고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쓴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1915) 111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 얼굴
— 애거사 크리스티,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 129
기이한 인물 속 평범한 인간의 모습
— 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1942·1922) 145
‘남자 없는 여자들’의 시선으로 본 헤밍웨이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1952) 155

겨울 | 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

이상한 가역반응으로 빚어진 미메시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1861) 175
삶으로부터 이야기가 탄생하는 특별한 방식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1866) 185
분석적인 사랑의 심리 속에 새겨진 시대와 작가의 삶
—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1920) 197
‘페스트’라는 알레고리의 리얼리티
— 알베르 카뮈, 《페스트》(1947) 214
샐린저라는 텍스트 읽기
— J. 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1951) 223
삶과 소설, 혹은 자서전과 전기 사이에 놓인 작가
— 필립 로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1998) 241

봄 | 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

근대의 입구에서 떠올린 탈근대의 환상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6) 259
소설이라는 ‘신세계’를 형성하는 ‘멋진’ 재료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274
작가의 사명과 작품의 운명 사이의 아이러니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289
‘노벨’을 확장하는 두 가지 방식
—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1996) 309
삶에서 소설로 들어오는 길, 소설을 통해 삶으로 나가는 길
— 코맥 매카시, 《로드》(2006) 318

작가 소개

손정수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미와 이데올로기》 《뒤돌아보지 않는 오르페우스》 《비평, 혹은 소설적 증상에 대한 분석》 《텍스트와 콘텍스트, 혹은 한국 소설의 현상과 맥락》 《소설 속의 그와 소설 밖의 나》 《소설, 밤의 학교》 등이 있다.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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