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절 한 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2
“그대, 그냥 가는가. 이 맑은 물로 차 한 잔 하고 가게.”
-푸른 바닷가 마음자락이 닿는 그곳, 고요한 암자를 찾아 길을 나서다!
권태와 피로,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청량제가 될 아름다운 사찰기행 에세이. 불교에 심취해 국내 사찰이란 사찰은 물론 이름 없는 암자까지 샅샅이 훑고 다닌 중년의 시인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진작가가 의기투합해 바닷가에 인접한 기도도량 14곳을 유람하고, 그 감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푸른 동해 남단 송정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관음성지 ‘해동 용궁사’, 남해 바다 흰 구름 위에 동자승마냥 아담히 앉은 ‘망운암’, 서해 바닷가 천년 고찰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서산 간월암’ 등 이 책에는 바닷가 끝점에 피안과도 같이 자리 잡은 아름다운 절들의 역사적 유래와 불교적 의미, 제각각 지닌 자연적 특징과 사연들이 지나침 없이 솔직담백한 문체로 묘사되어 있다.
강진 백련사로 가는 첫걸음은 다산초당 입구에서 시작한다. 겨울이 끝나고 봄빛이 제법 화사하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간 산중 소로 어귀는 동백꽃이 완연하게 피어 있다. 그 핏빛이 너무 붉어 온통 숲이 단청처럼 곱게 펼쳐져 있다.
그 사이 동백숲에 놓인 부도가 천년의 향내를 그대로 품고 있다. 손으로 천년의 이끼를 머금고 선 부도를 만져 보면 어느새 손바닥에 고찰의 향내가 묻어나온다. 그 빛깔을 말하라고 한다면 아, 푸르디푸른 그 녹색! 그 천년의 빛깔이다.
- 中.
절을 찾는 가장 중요한 뜻은 마음을 다스리는 ‘고요함(寂)’에 있다고 굳게 믿어온 저자는 스무 해가 넘도록 절을 찾아다니며 욕심과 집착의 미망 속에 갇힌 자신을 버리기 위한 작업에 몰두해 왔다. 특히 푸른 바닷가를 마당으로 두고 고즈넉이 앉아 있는 암자는 더 이상 어머니도 아니요, 아름다운 마음속 고향도 아닌 번뇌로 가득 찬 마음을 씻고 닦고 매만지고 어우르는 수행처와 같다.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지울 수 있는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바닷가 사찰은 다른 여느 사찰과 비교해 볼 때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저자는 말한다.
암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물 흐르는 소리와 산새소리를 들어 보라. 그 속에 든 고요를 느껴 보라. 바람소리, 종소리, 법고소리, 꽃이 피고 지는 소리를 들어 보라. 고요가 없이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절간의 소리들을 들어 보라.
소리를 듣는 것은 세간의 번뇌들을 지우는 작업이다. 아니 욕망의 때를 지우는 작업인 것이다.
- 저자 서문 中.
生死란 바다의 파도와 같다.
끝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었다 스러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생사를 반복한다.
그러나 바다 자체는 늘어나고 줄어들지 않는다.
인간뿐 아니라 만물 자체는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고 끝이 없어
上住佛滅 不生不滅이다.
따라서 생과 사는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는 것이다.
- 성철 中.
가슴 한 구석을 찡하게 울리는 한용운, 경허, 경봉, 성철 스님 등의 서정적인 법문과 법구경, 절제된 듯 아름다운 무채색의 풍광 사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시인의 글은 하룻밤 머물다 떠날 나그네가 아닌 여인의 마음처럼 배려 깊고 다정다감하다. 거기에 따듯한 차 한 잔 곱게 나누며 스님과 오가는 정겨운 담소까지, 구구절절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종교적 깨달음이 짙게 묻어난다.
긴 말도 필요 없다. 인생에 관한 것이든 종교에 관한 것이든 짧은 선문답 속에 담긴 속 깊은 이야기들이 한층 절절하게 와 닿는 법이다. 게다가 고요한 적막 속에 어우러진 산사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처지라면 달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자연 앞에서 한낱 덧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며 집착이며 욕심이다.
“스님의 일할을 듣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일할이라니요?”
“네, 번민에 잠겨 하루도 서울에 살 수 없었습니다. 마음의 휴식도 겸해서…”
“이미 그 할을 듣지 않았나요? 저 파도 소리가 바로 일할이요.”
“아, 그렇군요.”
- 中.
차향 가득한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고요한 절간에 홀로 와 앉아 있는 듯 마음자락이 따듯해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바다를 품듯 나를 감싸 안는 어느 작은 암자의 먼 법고소리마저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하다.
속세의 묵은 때를 벗어던지고 참된 나를 찾는 길,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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