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저와 소통해 주시겠습니까?”

차고 미끈거리는 슬픔

지음 류경희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10년 12월 16일 | ISBN 9788956603704

사양 변형판 128x188 · 260쪽 | 가격 11,500원

분야 국내소설

책소개

“일상에 지친 남자 셋, 여자 셋
그들이 간직한 차갑고도 비밀스러운 비늘빛 슬픔”
문학적 감수성과 진정성을 담보하는 작가 류경희의 매혹적인 첫 장편!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문학창작지원사업 공모 당선작

소통이 부재한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여섯 개의 아릿한 기억
각각의 사연을 지닌 여섯 명의 사람에게 어느 날 ‘메모리 박스’에 초대한다는 익명의 메일이 도착한다. 그곳은 각자의 기억을 남기는 인터넷 사이트이다. 그들에겐 각기 다른 물고기 이름의 아이디가 부여되어 있었다. 답답한 일상에 갇혀 살아가던 그들은 하나씩 자신의 기억을 메모리 박스에 담기 시작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은 메모리 박스를 통해 서로의 비밀스런 기억을 공유하며 현실 속에서 느끼는 삶의 고단함과 상처를 보듬어 나간다. 그들에게 이곳은 위안이며 치유이다. 하지만 공통분모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이들을 누가, 왜, 어떠한 목적으로 메모리 박스에 초대했을까?

《차고 미끈거리는 슬픔》은 인간 본연의 불안과 고독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창작지원사업의 장편소설 부분에 선정된 이 작품은 소통이 결여된 삶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밀한 심리를 담아냄으로써 심사위원으로부터 ‘내면을 향한 시선의 깊이가 느껴지는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또한 퍼즐을 맞추듯 6인의 등장인물이 가진 기억을 하나로 모아 익명의 ‘메모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미스터리적 재미를 안겨준다. 그들에게 각기 부여된 물고기 이름의 아이디가 지닌 특성과 인물들의 삶을 연관지었을 때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상징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내밀한 상처를 치유하는 비밀의 공간 ‘메모리 박스’
메모리 박스는 상처 받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햇살과 남편을 맞바꾼 고양이줄고기, 캠핑카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유리고기, 촘촘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남자와의 일탈을 시도하는 나비가오리, 소외감에 짓눌린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 등목어, 결핍된 삶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은 모래무지, 돌아오지 않을 사랑을 기다리는 벚꽃뱅어. 이들 여섯 명은 비밀의 공간 ‘메모리 박스’에서 서로의 은밀한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등목어라는 고기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어?”
아내는 없다고 했다. 그뿐이었다. 대화를 나누려는 그의 시도는 번번이 묵살되었다. 인서는 아내에게 메모리 박스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곳은 기억을 적는 곳이야. 누군가가 나를 그곳으로 초대했어. 거기엔 물고기 이름을 가진 여섯 명의 회원이 있어. 그곳에서 나는 등목어야. 등목어, 먹이를 찾아 육지와 수면에 접해 있는 나뭇가지를 기어가는 습성이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지만 나는 자꾸 경전을 읽을 때 두드린다는 나무로 만든 제구가 떠올라. 인서는 속으로만 그런 말을 웅얼거렸다.
- 중에서

유리고기 수의 말처럼 ‘지리멸렬’한 일상에 탈출구는 없다. 메모리 박스를 알게 된 이후에도 이들의 일상은 변함이 없지만, 내면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난다. ‘소통’의 의미를 깨달은 이들은 그저 안으로만 숨고 싶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분노와 의심, 실망과 괴로움은 모두 자신 안에서 만들어내는 것이었음을.

남편이 위층으로 올라간 후 혼자가 되는 시간이면 지선은 거실 소파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 전면유리로 된 남향인 거실 창으로는 햇살이 숨 막힐 듯 쏟아져 들어왔다. 거실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위층 여자와 남편에 대한 뭉친 원망이 출렁거리는 햇살에 올올히 풀어져 내릴 듯도 했다.
석 달 전 오 층짜리 연립주택 사 층으로 이사 온 후 지선은 햇살과 남편을 맞바꾼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이 집에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남편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미욱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 중에서

녹아서 없어질지라도 인생엔 때론 설탕 같은 희망이 필요하다
소통을 시작한 이들은 메모리 박스 기억목록에 각자의 기억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고양이줄고기는 고교시절 단짝친구에 관한 추억을, 유리고기는 첫사랑 해파리에 대해, 나비가오리는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묘라는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등목어는 어릴 적 함께 뛰어놀던 제비꽃 소녀의 기억을, 모래무지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 메모리 박스 안에 담는다.
그리고 벚꽃뱅어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떠나버린 사랑의 흔적을 뒤쫓는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연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이해하고 그녀가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커다란 진실로 향할 때 비로소 이들은 자신들이 이곳 ‘메모리 박스’에 모인 이유와 ‘메모리 박스’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곳은 뜨거운 냄비 속에서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는 개구리와도 같은 일상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설탕 같은 희망이라는 사실을.

날 찾지 말아줘.
난 이제 거기에 없어.
오늘 밤이면 장거리 버스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거야.
언제 돌아갈지는 몰라.
어쩌면 영영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르지.
삶은 기억과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나는 믿고 있어.
내 기억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지만,
메모리 박스에 있는 당신들은 서로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관계 맺으며 소통할 수 있길 바라.
그게 당신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 중에서

작가 소개

류경희 지음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로 등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09 문학창작지원사업 3차 공모’ 장편소설 부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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