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현장, 소설의 힘, 소설의 젊음을 느끼게 하는 신혜진 첫 소설집
퐁퐁 달리아
생의 냉소를 이기는 위대한 환대의 순간들
“활명수 같은 위로가 솟구친다!”
“소설의 힘, 소설의 젊음”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으며 제5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계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신인 작가 신혜진의 첫 소설집 《퐁퐁 달리아》가 출간되었다.
《퐁퐁 달리아》에는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인 <로맨스 빠빠>를 비롯하여, ‘오만한 냉소를 이기는 위대한 환대의 순간들’(김남혁 평론가)을 그린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소설집의 화자들은 껌을 씹다 침을 찍 내갈기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고 따질 것 같은 삐딱한 옆집소녀를 닮았다. 마치 고향 소도시의 약국집, 주유소집 딸내미들 이야기 같은 서민적이면서도 시크한 매력이 깃든 작품들이 배꼽을 쥐게 하면서도 아릿한 슬픔을 품고 있다.
작품들은 나아가 소외되고 비루한 인생들의 파국 뒤에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미세한 삶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삐딱한 소녀 같은 발칙함과 모성애의 각성이 어우러지며, 삶의 쓸쓸함과 애잔함을 이야기할 때에도 긍정과 따뜻함, 유머를 잃지 않는 이야기들이 ‘활명수’ 같은 위로를 전한다.
끊임없이 웃음이 퐁퐁 솟게 하는 사랑스러운 삐딱선
그 뒤에 감춰진 속 깊은 눈길과 마주치다
작가 신혜진은 소외되고 거세된 사람들이 출몰하는 변두리 삶의 누추한 현장 가운데서 소설 쓰기를 진행한다. 집안에서 패권을 잃은 중늙은이 아버지, 더 이상 팔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가난한 젊은이, 아내의 자리를 잃은 여자, 취직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낙향한 백수, 사랑을 잃은 자매,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채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여자, 기러기 아빠이자 직장에서도 자리를 잃기 직전의 사내 등 《퐁퐁 달리아》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통장 잔액처럼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결코 상처에 얽매이거나 우울에 빠지지 않고 재기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절망 대신 시크함으로, 냉소 대신 조건 없는 환대로, 슬픔 대신 아릿한 위트로 생의 반짝거리는 순간을 집어낸다.
“아잉아, 이게 뭔 줄 아느냐?”
“그냥 코 푼 거 아냐?”
“(…) 이것은 아부지으 눈물이다. 새벽기도 때마동 느이덜얼 위하야 월매나 월매나 간절허게 기도를 하는 중 아느냐?”
― <로맨스 빠빠> 부분 재구성
나아가 신혜진의 작품은 타인에 대해 이래저래 계산하고 따지기 이전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그들의 무지 때문에 위선 없이 타인을 환대할 수 있지만, 바로 그 무지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교묘히 활용되기도 하고, 맹목적이기에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로맨스 빠빠>에서 타인에 대한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방송국 프로그램의 소재로 소비된다. <대신 울어드립니다>에서 마르지 않는 눈물을 펑펑 쏟는 여자는 돈을 받고 장례식에서 대신 울어주는 일을 하게끔 된다.
그렇듯 신의 은총과도 같은 생의 환대가 왜곡되는 과정을 제시하면서도 신혜진의 소설은 결국 새롭게 도래할 환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슬픈 내면과 거리가 먼 유머러스한 상황서술과 열린 결말 방식을 통해, 비극적 상황에 처한 타자들에게 건네는 ‘활명수’ 같은 소설이 되고 있다.
이 소설집은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작품집이다.
깨알 같은 유머와 서사가 살아 있는 단편들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지 모르는 노년의 아버지에게 찾아든 귀여운 로맨스를 그린 <로맨스 빠빠>는 낄낄거리며 단숨에 읽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일본인 여성 방문자의 환심을 사려고 열심인 소도시의 한 늙은 남자의 갖가지 우스운 행태를 딸의 시점에서 전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인간 성격에 대한 성숙한 관심, 서술자 활용의 능란한 기술, 대상에 대해 깊이감을 부여하는 다채로운 수사력이 돋보인다. 작가는 작은 소도시의 사람 사는 풍경을 능란한 사투리에 담아 시원시원하게 풀어내며 삐딱선을 타는 딸을 화자로 하여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삐딱함 뒤에는 철없는 아버지의 헌신적 기도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속 깊은 마음의 눈길이 숨겨져 있어 가슴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바겐세일>은 백화점에서 땡처리 속옷 판매를 하는 소녀가장 제이의 이야기다. 속옷 판매를 하며 몰래 만 원짜릴 몇 장 훔치다가 결국 cctv에 덜미가 잡혀 급여의 몇십 배가 넘는 돈을 벌충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제이는 자신이 팔고 있는 팬티를 훔쳐 두 겹 껴입은 사실이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난자 기증을 하는 도우너에 지원하며 제이는 자신에게도 팔 게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럴싸한 직업이 없는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작품은 그런 비참한 상황에 몰린 젊은이의 일상을 아릿한 위트로 그려낸다.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함부로 대했던 남편에게 역으로 여자가 생긴 이야기를 그린 <밤소풍>에는 역전된 상황 속에서 그제야 자신이 바람피웠을 때 남편의 심경이 어땠을지 헤아리게 되는 자포자기 한 인생의 여자가 등장한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남편이 아들 소풍을 위해 싸놓은 김밥을 보고 밤나들이를 가자고 한다. 간만에 가족다운 분위기를 깨기 싫어 여자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작품은 비극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면 희망과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지를 물으며, 막다른 골목 담벼락 앞에서 죄책감에 가슴을 치는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한다.
<활명수>는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한 ‘나’가 고향의 약국집으로 돌아와 어릴 적 친구들과 조우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시인처럼 멋있었던 아이는 지금은 개 잡는 사람이 되어 있고, 찌질하고 바보 같았던 아이는 오토바이센터 사장이 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 어릴 적 시인아이와 첫 경험을 했던 나는 이번엔 사장이 된 바보아이와 관계를 갖는 또 다른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성이나 도덕관념, 윤리니 죄책감이니 따위에는 전혀 무관한 채 세상 물정에서 저만큼 떨어져 망각의 상태에서 관계를 가지는 여자의 모습이 원초적이면서도 신비감마저 자아낸다.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활명수를 파는 약국집 딸은 그들에게 활명수 같은 위로가 되었을까, 그녀에게 그들은 활명수가 되었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젖몸살>은 이제는 결혼하여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매가 오랜만에 해후하는 이야기다. 의처증 있는 남편을 두고 도망치다시피 떠나온 언니와, 일본인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동생이 오랜만에 만나 온천 관광을 간다. 젖몸살을 앓고 있는 동생의 젖을 결국 언니가 대신 빨아 주면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족의 해체와 연결을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마디에서 젖몸살을 앓는 자매가 퍽퍽한 심사를 서로 위무하는 과정이 특별한 결과 빛깔로 다가온다.
<대신 울어드립니다>는 자신이 우울증이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장례식장에서 울어주는 일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눈물을 잃어버린 사람들 대신 펑펑 울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이혼 후 연락이 끊긴 아들에게서 전화가 와 있다. 여자가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장례식장 신속 도착 바람’이라는 문자가 뜬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거나 웃고 싶은데 표정만 찌그러질 때가 있다. 이 작품은 ‘누군가 대신 울어 준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밀어붙여 재미있는 콩트로 발전시켰다. 남은 건 눈물밖에 없는 이 여자를 필요로 하는, 눈물 없는 사람들이라는 상황이 아이러니한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자아낸다.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인 유원지 식당 카드판 풍경을 그린 <겨울 유원지>는 쓸쓸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변호사 사무실의 알바생이 유원지 식당 카드판 돈 심부름을 하며, 유능해 보이는 김 사무장이 실은 기러기 아빠이고, 통장 상태가 마이너스라는 걸 알게 된다. 김 사무장이 자살하려는 줄 알고 말리러 갔다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말리고 있는 김 사무장을 발견한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희망 없는 청년이 카드판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부유하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상황이 가슴 찡한 울림과 공감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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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혜진은 이미 닳아빠진 삶을 살고 있는 거세된 남자들과 소외된 여자들이 출몰하는 변두리 삶의 누추한 현장 가운데서 소설 쓰기를 진행한다. 그러나 결핍과 우울의 뉘앙스는 아릿한 위트와 깨알 같은 유머와 동거한다. 냉소는 조용히 극복되고, 소설은 타자의 윤리를 통과하며 다시 꿈틀거리는 삶의 미세한 가능성을 들여다본다. 삶은 오해와 거절의 방식으로 다시 수락되며, 비루함은 문득 귀여워진다. 위로라고 부를 수 없는 위로가 시작될 것이다. ― 이광호(평론가)
세상이 무슨 모범답안처럼 내세우는 규범이니 규율이니 윤리니 의무니 하는 따위에는 전혀 무관심한 채, 신혜진은 오늘도 세상 물정에서 저만큼 떨어져 ‘젖몸살’을 앓으며 불빛 한 점 없는 깜깜한 시간을 피투성이로 ‘밤소풍’ 중이다. 그런 그가 나에게는 글쟁이로서의 저주와 은총을 함께 받은 것처럼 여겨진다. 아직까지 소멸되지 않은 멸종위기의 동물처럼 자신의 저주를 버텨낸 그가 어떤 계기에 자신의 은총에도 눈뜬다면, 그 은총은 적막한 문단에 크게 눈부시리라. ― 송기원(소설가)
로맨스 빠빠 9
바겐세일 41
밤소풍 71
젖몸살 101
활명수 131
대신 울어드립니다 161
겨울 유원지 193
작품해설 224
작가의 말 256
기우뚱한 인물들이 위로하고 위로받는 방식은 이상하지만 그런 방식이 어루만진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함이 누그러들면서 안도감이 든다.
(이하 중략)
- 최여경 기자
--> 기사 전체 보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25020006
퐁퐁 달리아. 생소한 이 단어는 꽃이름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다. 한데 그 소박함과 촌스러움이 좋다는 이가 있다. 신진작가 신혜진(39)이다. 그가 첫 소설집 ‘퐁퐁 달리아’(260쪽, 은행나무)를 냈다.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로맨스빠빠’를 포함해 7편의 단편을 묶었다.
(이하 중략)
- 염지현 기자
--> 기사 전체보기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H21&newsid=01610486599629288&DCD=A00704&OutLnkChk=Y
아빠의 솔직한 짝사랑에 엄마는 구박을 계속하지만, 아빠는 오늘도 그 여성이 두고간 책을 읽습니다.
이처럼 '퐁퐁 달리아'는 우리 주변 바로 옆 이웃들의 이야기를 재미를 붙여 빠른 속도로 전해줍니다.
우울증 환자를 희망하는 여성이 장례식장에서 울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의처증 남편을 둔 언니와 고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운 동생이 함께 온천 관광을 떠납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삐딱한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솔직하게 풀어내면서 독자들을 위로합니다.
모두 환경은 불우하다. 그러나 우울은 이들의 몫이 아니다. 불안과 눈물의 씨앗은 이들이 광막한 세상과 마주하는 동안 어느새 단단함이라는 열매를 생산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슬픔으로 지친 허약한 마음을 서로 위무한다. 그 과정을 통해 냉소가 사라지는 기적을 일으킨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엔 웃음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이 부조리를 비웃는 것이든, 슬픔을 가리는 위트든 간에 그 덕에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활명수처럼 속시원한 위로를 선사하는 소설집 '퐁퐁 달리아(은행나무)'가 출간됐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인 '로맨스 빠빠'를 비롯해 7편의 단편을 엮어낸 이 책은 신혜진씨(안산제일교회)의 생애 첫 소설집이다. 장신대 학부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문창과,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등에서 공부한 신혜진의 소설에는 '냉소를 넘어서는 따뜻한 환대'가 있다. 소설집 '퐁퐁 달리아'의 작품해설을 쓴 김남혁씨는 "신혜진은 환대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뻔한 도덕 교과서나 환대의 순간을 미화하는 것으로 소설의 가능성을 축소시키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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