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플라스틱

모 방송국이 환경호르몬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뒤 플라스틱 용기의 매출이 급감하고, 유리와 도자기 용기의 매출이 급성장했다. 방송에서 내보낸 실험은 과학적으로 허점이 많았지만 일반인들의 뇌리에 환경호르몬이라는 단어를 분명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환경호르몬의 위험을 널리 알렸다는 사실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리한 주장으로 환경호르몬에 대해 많은 오해를 퍼뜨렸다. 일반인들에게 퍼진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바로 ‘환경호르몬 = 플라스틱’이라는 생각이다. 즉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은 무조건 해로우니 가능하면 쓰지 말자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인체에 무해한 안전한 플라스틱은 어떤 것이 있을까?

 

환경에 방출된 화학물질

환경호르몬이란 다이옥신처럼 우리 몸에서 호르몬처럼 작용하면서 독성을 나타내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환경호르몬의 정식 명칭은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s)이다. 즉 몸에 들어가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를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일본 NHK 방송에 출연한 과학자들이 ‘환경에 방출된 화학물질이 호르몬처럼 작용한다’는 의미로 환경호르몬이라는 단어를 처음 썼는데 이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플라스틱이 환경호르몬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먼저 문제가 됐던 것은 농약과 살충제였다. 예전 농약과 살충제에는 다이옥신이라는 환경호르몬이 들어 있었다. 다이옥신은 우리 몸의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계에 작용해 독성을 나타낸다. 암 유발, 피부질환, 면역력 감소 등의 문제를 일으키며 기형아 출산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호르몬이란 다이옥신처럼 우리 몸에서 호르몬처럼 작용하면서 독성을 나타내는 화학물질을 말한다. 현재 세제, 화장품, 향수, 살충제, 컴퓨터 부품 등 다양한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화학물질이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부드러운 플라스틱을 조심하라

일반 건축자재로 이용되는 PVC 자체는 인체에 해롭지 않으나, 단단한 PVC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가소제에 환경호르몬이 섞여 있다. <출처: sxc.hu>

폴리염화비닐(PVC)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환경호르몬 위험 물질’ 리스트에서 제일 먼저 언급한 물질이다. 값이 싸고, 원하는 모양을 쉽게 만들 수 있고, 재활용도 쉬워 가장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중 하나다. 파이프 같은 건축자재는 물론, 저장용기, 필름, 장난감 같은 생활용품과 주사기 같은 의료용품으로도 널리 쓰인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이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PVC 자체는 인체에 해롭지 않다. 순수한 PVC는 매우 단단한 물질로, 건축자재로 쓸 때는 이런 성질이 좋지만 저장용기, 필름, 장난감을 만들 때는 좋지 않다. 따라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 위해 PVC에 가소제(可塑劑)를 섞는다. 가소제는 PVC 분자 사이로 들어가 분자의 결합을 유연하게 바꿔 주는 물질이다.

바로 이 가소제에 환경호르몬이 섞여 있다. PVC에 섞인 가소제는 서서히 배출되는데 온도가 높아지면 배출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음식을 넣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식용유 등의 기름 성분을 담아 두는 것도 좋지 않다. 가소제가 녹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품 용기나 식품을 싸는 랩, 주방용 일회용 장갑, 어린이들이 빨아 먹기도 하는 장난감, 주사기 같은 의료기기에 가소제가 섞인 플라스틱을 써서는 안 된다. 해외 여러 나라에는 가소제가 든 플라스틱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이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관련법이 없다. 소비자가 미리 알고 주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일단 부드러운 플라스틱이 단단한 플라스틱보다 더 위험하니 조심하자.

 

안전한 플라스틱 고르기

하지만 제품의 특성 상 반드시 부드러워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젖병, 음식 포장용 랩, 장난감 같은 아동용품이 대표적이다.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부드러운 플라스틱 중에 가소제가 섞이지 않은 안전한 것이 있다.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은 원래부터 부드러운 성질을 갖고 있다. 당연히 가소제를 섞을 필요가 없어 몸에 해롭지 않다. 대신 가격은 PVC에 비해 비싸다. 물이나 음료를 담는데 많이 쓰는 페트(PET)도 안전하다. 페트에는 환경호르몬을 분비하지 않는 산화타이타늄이 가소제로 쓰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재질의 플라스틱이 필요하다면 PE, PP, PET 중에서 고르는 것이 좋다.

폴리에틸렌을 재료로 생산되는 포장용 필름. <출처: gettyimages>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 의자. <출처: (CC)Alex Rio Brazil at Wikipedia.org>

음료 용기의 재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페트. <출처: gettyimages>

 

 

 

 

 

 

 

 

 

의심나는 물건이 있다면 재질을 살펴보자. 보통 안전 표시를 달고 나오는 유아용 장난감은 PE나 PP 재질이다. 어린이용 장난감 중에는 ABS수지 제품이 많다. PP나 PE 만큼은 아니지만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플라스틱이다. 말 많았던 플라스틱 식품용기는 어떨까? PP 제품은 일단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폴리카보네이트(PC) 제품은 성분 중에 비스페놀A가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PC는 유리처럼 투명하면서도 유리보다 250배나 강해 널리 쓰인다. 비스페놀A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안전하다는 연구결과는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 회사에서 내놓은 결과라 신뢰하기 힘들다.

시장에서 주는 검은색 일회용 비닐봉지는 대부분 PVC다. 여기에 식품을 잠시 담아 오는 건 무방하지만 이 상태로 오래 저장하면 좋지 않다. 이런 식으로 주변 물건 중에 해로운 것이 없는지 찾아 하나씩 바꿔나가면 된다.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플라스틱 제품을 안 쓸 수는 없는 일. 위험한 것을 하나씩 찾아 줄여도 환경호르몬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다이옥신

다이옥신은 산소 원자 2개를 포함하고 있는 분자를 부르는 보통 명사이다. 그러므로 다이옥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다이옥신은 염소가 결합된 벤젠 2개가 2개의 산소 원자로 연결된 구조를 하고 있는 폴리클로로다이벤조-파라-다이옥신(PCDD, polychlorinated dibenzo-p-dioxin) 종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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