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아일랜드의 가장 사랑받은, 가장 악명 높은 소설

시골 소녀들

원제 The Country Girls

지음 에드나 오브라이언 | 옮김 정소영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24년 9월 25일 | ISBN 9791167374622

사양 변형판 130x190 · 304쪽 | 가격 17,000원

시리즈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 분야 해외소설

책소개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목소리로 그려낸

진짜 삶에 대한 두 소녀의 솔직한 갈망

20세기 아일랜드의 가장 사랑받은, 가장 악명 높은 소설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 에드나 오브라이언의 데뷔 장편소설 《시골 소녀들》이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제18권으로 출간되었다. 아일랜드 내에서는 격렬한 항의와 원성을, 국제적으로는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얻은 《시골 소녀들》은 데뷔작인 동시에 항상 작가의 이름과 함께 언급되는 대표작이다. 어린 두 소녀가 작은 시골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한 뒤 다양한 경험을 하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는 흔한 성장소설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당시 사회 통념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라고 여겨져 출간과 동시에 아일랜드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틀을 깬 소설이라고 정의하는 것조차 이 책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기존의 틀을 깬 소설이 아닌 새로운 틀을 만든 소설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사회가 여성에게 엄격하게 부과했던 정형을 여성 작가로서 깨부수었을 뿐 아니라, 소설의 탄생 비화나 출간 직후의 반응, 이후 몇십 년에 걸쳐 바뀐 평가와 같은 외적인 부분을 떠나 문학적 아름다움으로도 아일랜드 문학을 넘어 세계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다. 그 이후로 글을 쓰는 모든 아일랜드 여성 작가는 에드나 오브라이언에게 영감과 기회를 일정 부분 빚지고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2024년, 작가가 영면에 든 후 아일랜드의 여성 소설가 이머 맥브라이드는 “에드나의 죽음과 함께 아일랜드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마지막 위대한 빛 중 하나가 꺼졌다”라고 말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적 후계자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한평생 솔직하고 치열한 글로 아일랜드 여성을 비롯하여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대변했던 작가의 첫 작품을 국내에 선보인다.

불태워진 금서, 세계문학의 새로운 고전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 논란의 소설

1960년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시골 소녀들》은 아일랜드 국내·외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아일랜드 내에서는 외설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몇몇 교구에서는 책을 모아 불태우기도 했다. “아일랜드 여성들의 명예를 더럽혔다”라는 공개적인 비난과 함께 일부 독자들의 악의적인 편지, 고향 사람들의 가혹한 비난, 굴욕적이라는 가족들의 원망과 같은 사적인 고통도 겪어야 했던 작가는 하룻밤 사이에 아일랜드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여성이 되어 있었다.

냉담한 것을 넘어 적대적이었던 고국의 반응과 달리 국외에서는 비평적으로든 상업적으로든 큰 찬사를 받았는데, 오히려 이와 같은 국제적 성공이 더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강렬한 여성 작가의 존재에 당시 아일랜드 문학계는 소설의 인물들이 “색정증 환자들”이며 작가의 “고약한 남자 취향”을 드러낼 뿐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데뷔작 《시골 소녀들》부터 1970년에 발표한 《이교도의 장소(A Pagan Place)》까지, 작가가 발표한 첫 여섯 소설은 모두 아일랜드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후 사회적 분위기가 변함에 따라 작가에 대한 평가 또한 서서히 바뀌었지만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평생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런던에서 망명자로 살며 글을 썼다. 《시골 소녀들》은 1960년부터 2024년까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르와 형식, 주제를 넘나들며 쉼 없는 작품 활동으로 “다른 여성들은 가지 않는 전선에서 전보를 보내”던 아일랜드 현대문학 거장의 용감한 행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소설이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지 않아?”

약동하는 삶을 향한 두 소녀의 열망

‘시골 소녀들 3부작’은 숨 막히도록 보수적인 1950년대 아일랜드 사회에서 두 시골 소녀 캐슬린과 바바가 함께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운명적인 로맨스를 꿈꾸는 공상적인 캐슬린과 현실적이고 대담하며 때로는 오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바바는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시기하고 괴롭히기도 하는 애증의 관계를 맺는다. 그 미묘한 관계는 두 소녀가 시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그곳을 떠나 더블린에서, 또 런던에서 세상을 경험하면서 더 복잡해지고 깊어진다.

3부작 중 제1권 《시골 소녀들》은 두 사람이 나고 자란 시골을 떠나 엄격한 수녀원 학교로 진학했다가, 그곳마저 떠나 대도시 더블린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캐슬린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눈이 번쩍 뜨여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쉽게 잠에서 깨는 건 불안할 때나 있는 일인데, 가슴이 평소보다 빨리 뛰는 까닭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기억해냈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_9

첫 페이지에서 만나는 캐슬린은 아버지의 부재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열네 살의 여자아이다.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폭력적인 아버지는 집에 없을 때조차 어린 캐슬린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캐슬린은 다정하지만 유약한 엄마가 병에 걸려 죽거나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까 봐 늘 불안에 떤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인해 캐슬린은 사랑하는 엄마와 증오하는 아버지 모두의 품을 떠나 친구 바바의 집에서 지내며 작고 낡은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시골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바바는 캐슬린에게 못되게 굴기도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심각하고 비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캐슬린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웃음을 주고 이성의 목소리가 되어준다. 의지할 곳이 서로밖에 없는 수녀원 학교와 더블린에서의 삶을 겪으며 두 사람은 더 끈끈해지고,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

어머니, 아내, 수녀가 아닌

진짜 여성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일견 평범한 성장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책이 그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데에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이 있다. 《시골 소녀들》이 출간되었을 때 아일랜드는 아직 가톨릭교회와 정부가 분리되지 않은 극히 종교적이며 보수적인 사회였으며, 여성들은 목소리를 가지지 못하고 철저하게 소외된 존재들이었다. 여성에게는 가정 안에서의 삶이나 신앙의 삶처럼 정제된 형태의 삶만이 허락되었던 시기에 세속적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소녀들의 내면을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게 다룬 이 소설은 아일랜드 사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대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충격적일 게 없는 이야기 같지만, 아일랜드 여성은 순결하고 정신적이며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전혀 따르지 않은 것에 더해 어린 시골 소녀들을 성적 욕망과 판타지를 가진 주체로 그려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외설로 여겨졌다.

그러나 작가는 고국을 비난하거나 배신하기 위해 쓴 소설이 전혀 아니었으며, 오히려 떠나온 고향에 보내는 애정 어린 작별 인사였다고 밝혔다. 자신의 소녀 시절 경험들을 진솔하게 담아낸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여주인공들은 더 이상 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두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기에는 아일랜드 소녀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사회적 가능성을 로맨스를 통해서만 생각하도록 배우고 그에 따라 결국 남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무엇보다 어린 여성으로서 아일랜드에 살며 느꼈던 꾸밈없는 감정들, 갈망, 열정, 거절당한 사랑, 실현되지 않은 사랑, 실망, 상실, 분노가 페이지 위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위조할 수 없는 진짜 감정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한 작가는 이 소설이 자신이 쓴 것 중 가장 진실된 글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1960년대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두 어린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놀라울 정도로 우리에게 가깝게 와닿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추천의 말

현재 영어로 소설을 쓰는 가장 재능 있는 여성. _필립 로스

아름답고 외설적이고 유쾌하며, 잊을 수 없다. 아일랜드 소녀 시절의 전형적 이야기로 불리지만, 이 소설은 틀을 깬 소설이 아니라 틀을 만든 소설이다. _아이리시타임스

목차

시골 소녀들 • 9

작가 소개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1930년 12월 15일 아일랜드 춤그레이니에서 마이클 오브라이언과 레나 오브라이언 사이에서 태어났다.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다니며 가톨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들》 《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로 이루어진 ‘시골 소녀들 3부작’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 3부작은 아일랜드 내에서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고 불태워졌으나 국제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문학의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작들은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회에서 성장해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시골 소녀들 3부작’과 유사한 형식을 띠었다. 그러나 《강가에서(Down by the River)》(1996), 《작고 빨간 의자》(2015), 《소녀(Girl)》(2019) 등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여성의 개인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성의 눈을 통해 포착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다루었다. 소설뿐 아니라 희곡, 시, 논픽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인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함께 희망을 제시하는 작품을 집필했다.
아일랜드 펜문학상, 나보코프 문학상, 데이비드코언상, 페미나상 특별상 등 유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로 여겨진다.

정소영 옮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용인대 영어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시골 소녀들》 《가장 파란 눈》 《십자가 위의 악마》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대사들》 《어떻게 지내요》 《루시》 《웃음과 비탄의 거래》 《애니 존》 《사라진 모든 열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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