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의 유쾌한 개성 찾기
- 너도 공주, 너도 공주, 너까지 공주? 흥! 난 애꾸눈 해적.
“널 가장 무도회에 초대할게.”
자, 이런 초대장을 받는다면 아이들은 무엇이 되기를 꿈꿀까요?
대체로 여자아이는 공주나 요정, 남자아이는 왕자나 기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아마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 딸, 아들이 착하고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현명하고 용감하기까지 한 공주, 왕자가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초대장을 받아 든 순간부터 "금실 은실 수놓은 공주 드레스"를 입을 꿈에 부푼 소녀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바느질보다는 낱말 맞히기를 더 잘 하는 엄마에게 가장 무도회에 입고 갈 공주 옷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거든요. 예상대로 엄마는 딸의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립니다.
“공주라고? 말도 안 돼! 뭐니뭐니해도 해적이 최고지, 최고. 해적 옷 입고 바다의 왕이 되어 보는 거야!”
"여자라면 자고로 어여쁜 공주여야 하는 거 아냐?"
소녀는 "해적"이 되는 게 정말 싫었지만 도리가 없었지요. 색 바랜 줄무늬 윗도리에 동강 낸 반바지 입고 해적이 될 수밖에. 하지만 잔뜩 풀이 죽어 무도회에 참석한 소녀는 이내 엄마의 제안대로 해적이 된 걸 자랑스러워합니다. 모두 하나같이 공주 옷을 차려 입고 생글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애꾸눈 해적은 아주 특별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지요.
[해적과 공주]는 "희끗희끗 색 바랜 줄무늬" 해적 옷을 통해 "엄마라면 누구나 바느질을 잘 하고, 여자라면 자고로 어여쁜 공주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아이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 줍니다.
은행나무아이들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심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공주나 왕자의 환상에서 벗어나 개성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가기를 소망합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표현해 낸 [해적과 공주]는 스웨덴 도서관 협회에서 "좋은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 언어의 묘미를 최대한 살린, 시와 음악 같은 이야기
로따 울손 안데베리는 "언어의 마술사"답게 아이의 심정을 재치 있고 익살스런 문장으로 시각화해 냈습니다. "팔랑팔랑 발레리나, 나풀나풀 요정, 살랑살랑 인어공주"는 언어의 느낌만으로 뻐기듯 으스대고 싶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희끗희끗 색 바랜 줄무늬 윗도리에 해골 모자 쓰고, 삐쭉빼쭉 동강 낸 반바지 입고, 플라스틱 갈고리손 한 손에 매달고, 간질간질 근질근질 애꾸눈 신세"가 된 아이의 참담한 심정은 맛깔스런 글과 삐뚤빼뚤한 펜 그림이 어우러져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모두 하나같이 공주 옷 차려 입고, 모두 하나같이 으쓱으쓱 폼잡으며, 모두 하나같이 생글생글 미소짓고 있는" 친구들에게 기가 죽어 괜히 "투실투실 뚱보 여왕 정말 꼴불견"이라고 투덜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도 귀엽기만 하지요.
[해적과 공주]는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로따 울손 안데베리가 아이들의 재기발랄함을 톡톡 튀는 언어로 잘 그려 낸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웨덴에서 문학을 전공한 최선경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제대로 살려 냈지요.
반복적으로 나오는 간결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은 『해적과 공주』를 읽는 내내 둥둥거리는 타악기 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음을 넣어 읽어 주면 듣는 이도 노래를 부르듯 따라 읽게 되지요. 시처럼 음악처럼.
아이들의 언어를 제대로 살려 내는 동화 시인 로따 울손 안데베리는 스웨덴 최대 일간지 엑스트레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본문 소개
p10
풀죽은 내 모습 좀 봐!
희끗희끗 색 바랜 줄무늬 윗도리에,
세모난 모자 쓰고 해골까지 달았어.
드레스에 왕관은 꿈도 못 꾸지.
금실 은실 수놓은 공주 옷 대신
삐쭉빼쭉 동강 낸 반바지 입고,
플라스틱 갈고리손 한 손에 매달고,
간질간질 근질근질 애꾸눈 신세.
p13
마틸다는 구불구불 곱슬머리의 요정,
울리까는 살랑살랑 인어공주 빼다 박았지.
사라하고 앤하고 엠마도 공주 옷을 입었어.
나도 휘황찬란 금빛 드레스를 입었으면…….
모두 하나같이 공주 옷 차려 입고,
모두 하나같이 으쓱으쓱 폼잡으며,
모두 하나같이 생글생글 미소짓고 있어.
엄마가 만들어 준 공주 옷 입고서.
p20
우리는 하하하 크게 웃었어.
공주들이 날아가 버리도록 크게 웃었어.
다른 건 좋은 거야. 특별해 보이니까.
모두 똑같으면 재미없잖아.
저자 소개
글쓴이 로따 울손 안데베리(Lotta Olsson Anderberg)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태어났으며, 22세에 첫 시집 『그림자와 반영』(1994년)을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1999년 어린이책 『재잘재잘』을 처음 발표한 뒤, 지금까지 『해적과 공주』 『강아지의 하루』 『모리스가 집을 보다』 『모리스와 양말』 등을 썼습니다. 재치 있고 익살맞은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운율을 살린 글솜씨가 뛰어나 "언어의 마술사"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로따 울손 안데베리는 친한 친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리아 존슨과 함께 첫 그림책부터 지금까지 죽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옮긴이 최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웨덴어학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과 우메오 대학에서 문학과 여성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우메오 대학에서 문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좋은 책 번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 『책만 읽고 싶어하는 아이』 『무시무시한 꽥꽥이』 등이 있습니다.
"널 가장 무도회에 초대할게." 만약, 자신이 이런 초대장을 받는다면 무엇이 되기를 꿈꿀까? 주인공은 초대장을 받아 든 순간부터 "금실 은실 수놓은 공주 드레스" 입을 꿈에 부푼다. 하지만 엄마는 공주 옷을 만들기에는 솜씨가 부족하다. 결국 소녀는 엄마의 제안대로 색 바랜 줄무늬 상의에 동강낸 반바지를 입은 애꾸눈 해적으로 분장한다. 풀이 죽어 무도회에 참석한 소녀는 그러나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모두 똑같은 공주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여자 = 예쁜 공주"이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저학년이 읽기에 좋다.(은행나무아이들 펴냄)
2003년 1월 6일 월요일
/ 소년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