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임성순의 新 하이브리드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
문근영으로부터 지구를 지켜라!
은둔형 오타쿠, 찌질한 스토커, 조루 음모론자
세상이 내놓은 ‘잉여’들이 벌이는 초특급 버라이어티 쌩쇼!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임성순의 新 하이브리드 소설.
본격 문학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절묘한 접합으로 주목받았던 임성순 작가가, 이번 신작 《문근영은 위험해》에서는 만화영화 같은 포복절도할 스토리와 기법, B급 영화 같은 키치적인 유머 속에 순문학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新 하이브리드 문학으로 한국 문학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히고 있다.
어느 날 세 청년이 똑같이 꿈속에 핑크빛 슬립을 입은 배우 문근영이 나타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면 무슨 의미일까? 이 작품은 문근영 뒤에 거대한 음모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으로부터 출발해 은둔형 오타쿠, 찌질한 스토커, 조루 음모론자, 이 세상이 내놓은 찌질한 세 명의 ‘잉여남’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문근영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리고 있다.
원래 작가의 구상은 웹과 연동된 하이퍼텍스트 형태였으나, 저작권법과 투입되는 자본의 문제로 현재까지 출판된 한국소설 중 각주가 가장 많이(그리고 아마 가장 재밌는) 달린 독특한 형식의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제목: 나 미친 거임?……………..[조회수: 12,584 | 댓글: 34]
님들하, 지금 창밖에 문근영이 있음.
우리 집은 8층임.
어쩐지 하늘을 나는 문근영은 엄청 섹시한 거 같음.
항가 항가.
―
만화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성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新 하이브리드 문학
제목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문근영이 우리가 아는 그 문근영이야?’ 하는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분명 소설 속의 문근영은 직업이 배우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 시작 전에 분명히 그 문근영이 아니라고 의뭉을 떨고 있다. 거기에는 이 작품을 읽어 낼 키워드라고 할 만한 작가의 중요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만화와 광고, 인터넷 최신 유행어의 패러디와 패스티시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극장 애니메이션을 본 딴 자막이 흐르고, 소제목은 대중음악 제목들이며, 각 부 사이에는 미드를 연상시키는 전편보기와 예고가 있다. 심지어 빈 페이지에는 출판사의 실제 도서 광고가 게재되어 있다.
이런 복합적이며 파격적 시도는 작가가 포스트모던한 전위소설을 지향해서가 아니라 미디어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대소비사회의 군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방편이다. 가령, 문근영을 문근영이 아니라고 한 것은, 우리가 아는 문근영은 복제된 문근영이고, 스타란 이름의 기호이자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장 보들리야르 《시물라시옹》) 책 속의 광고는 문학작품조차도 하나의 상품이 될 수밖에 없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미디어에 의한 지배는 곧 자본주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
이렇듯 이 작품은 문근영들에 의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B급 SF의 외형 속에, 현대미학의 핵심이론들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젊은 작가들에 의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중간문학이 선보이고 있지만, 이 작품처럼 SF, 패러디, 애니메이션, 현대미학, 메타픽션 등을 내용적으로 또 시스템적으로 과감하게 결합한 하이브리드 문학은 없었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봐. 이건 단지 감각기관의 문제가 아니야.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 정상적인 인간이 그걸 감당해 낼 턱이 없지. 왜냐면 스타가 된다는 건 자아가 자기 팬의 수만큼 확장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확장된 자아의 이미지는 그의 실체도 아니야. 매니지먼트 된, 다시 말해 상품화된 가짜니까.
― 중에서
소설조차도 실은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며,
사회비판적 이미지를 지닌 기호로 전락해 소비될 뿐
이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뱀이 꼬리를 물 듯 이어진다. 한 축으로는 세 명의 찌질한 잉여남들이 문근영을 조종해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회사’의 음모를 저지하고자 동분서주하지만, 버튼 하나에 허망하게 인류가 멸망하고 그 후 살아남은 세 명의 생존자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그 단락 사이 사이에 전작 《컨설턴트》(‘회사’에서 일하는 살인 시나리오 작가 이야기)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 작가가 ‘회사’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쓰라는 협박을 받고 글을 써내려가는 이야기가 끼어든다. 이 두 개의 안팎 없는 이야기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순의 은신처에 작가가 등장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파멸의 빨간 버튼을 누름으로써 인류를 멸망시킨 원흉이라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던 성순에게 작가는 이 모든 건 회사의 PPL일 뿐이며, 책을 덮고 세상 밖으로 나가면 모두 소비될 무언가로 돌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작중 작가의 입을 빌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는 자신의 전작 《컨설턴트》 같은 소설조차도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 비판적인 이미지를 지닌 하나의 기호로 전락하여 소비될 뿐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문근영은 위험해》 역시 작가 임성순이란 존재를 광고하는 광고판인 동시에, 이조차도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소비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다.
“모르겠어? 회사가 나오는 소설 자체가 회사에 대한, 회사가 있을 거라고, 존재한다고, 그 힘을 믿으라고 말하는 광고일 뿐이라고! 회사의 품은 너무나 넓어서, 심지어 회사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그것의 치부를 밝히는 글조차 하나의 상품일 뿐이니까. 쓰이고, 읽히고, 잊히는 방식으로 그저 소비될 뿐인 광고.”
―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
죽어버린 소설가의 자화상을 그린 메타픽션
한편, 메타픽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근영은 위험해》는 하나의 상품으로서 소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사회구조를 논하고 싶어 하는 텍스트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상품에서 출발하고 결국 상품으로 돌아갈 것이란 상황적 한계도 있지만, 사라진 거대 담론(가리타니 고진)의 자리를 상품들의 파편, 취향들의 파편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소비자본주의를 체험하게 하려면 그것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소비자본주의 사회(혹은 그 속의 미디어)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온갖 것을 패러디나 패스티시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일찍이 개인을 어떤 형태로든 사회화시켰던 거대 담론과는 전혀 다른, 지극히 사적인 욕구를 품고 있는 타인의 이해가 불가능한 자신만의 세계의 집산 혹은 정보의 총합일 뿐이다. 우리의 찌질한 주인공들―아이큐 180이 넘는 천재지만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불법 포르노 업로드로 생계를 유지하며 2D의 세계에 빠져 사는 은둔형 오타쿠 승희,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지만 세상을 불신하며 모든 사물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음모세력이 있다고 믿는 조루 음모론자 성순(작가의 페르소나), 사랑에 실패한 뒤 미디어의 허상인 문근영을 쫓아다니며 마법사(남자가 30세까지 동정일 때 얻는 영예)로 늙어가는 문근영의 광팬 혜영―이 인류 멸망 후에도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침몰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소설(거대담론의 내면화로서의 근대문학)을 완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없는 것도 그런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 그려지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상금을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써서 상품일 뿐인 글을 쓰도록 강요받으며, 자신의 욕망과 소설에 대한 욕망 속에서 자아 분열된 채로 있는 죽어버린 소설(근대문학)가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부터 ‘가카의 꼼수’까지
포복절도할 스토리 뒤에 감춰진 신랄한 풍자
암울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책의 미덕은 시종일관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상품으로서의 소설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재미를 추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하나의 패러디, 풍자 문학으로서도 손색없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한때 실서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임성순이란 작가의 잡학다식한 지식과 유머의 레시피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은 흡사 음모론 세계사이자 폐인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가령, 우리의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왜 지구를 멸망시킬 위험한 존재라는 것일까? 작중 성순의 음모론 논리에 따르면, 미디어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세뇌하는 장치이며 스타는 그 세뇌 장치의 운전대 같은 것이다. 미디어가 세뇌장치라는 것의 증거로 ‘귓속의 도청장치 사건’을 예로 든다. ‘땡전 뉴스(1980년대 아홉 시 땡 치면 전두환 대통령 뉴스가 나오는 것)’에서 한 사내가 갑자기 뉴스 도중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사건이다. 성순은 그의 말에 “주어가 없다!”며 그 말은 사람들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주어가 없다!”는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BBK 관련 동영상이 유출됐을 때, 나경원 대변인이 “CD에는 BBK를 설립했다.”라고 되어 있지, “내가 BBK를 설립했다.”라고 되어 있지 않다라고 얘기한 것에서 유래한 인터넷 유행어로, 개드립을 늘어놓고 뻘글 투척용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즉, “귓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라는 말은 사람들이 미디어에 의해 세뇌, 도청되고 있음을 고발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멸망을 꿈꾸는 회사랑 우리나라는 또 무슨 상관일까?
그에 대해서는 MK울트라(소련의 세뇌장치라 알려졌던 리다머신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했던 것으로,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스파이나 킬러가 가능한가를 실험했던 뇌 구조 실험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시절, MK울트라 실험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포트 베닝으로 전두환과 노태우, 차지철이 6개월간 레인저 훈련을 받으러 간 사실을 지적한다. 그 시기 미군은 이상하게 제3세계 우방의 군사 교육을 본토의 기지에서 시켰고, 그곳에서 일련의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많은 제3세계 인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암살을 예로 들며, 김재규가 거사를 실행하기 며칠 전 미국 대사와 CIA를 접촉한 사실을 지적하며, 암살 당일 권총을 꺼내러 가기 직전 차지철이 했던 “그깟 새끼들 까불면 신민당이든 학생이든 전차로 싹 깔아뭉개 버리겠습니다.”라는 말이 바로 암살의 암호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프로젝트 아티초크(평범한 인격 아래 고도로 훈련된 암살자의 인격을 심는 다중인격 실험)에 의하면 세뇌된 사람은 방아쇠가 되는 암호에 반사적으로 지시를 이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차지철이 마지막 한 말은 5.18에 대한 완벽한 예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레이건 암살미수범이었던 힝클리가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암살을 시도했다고 말한 것을 지적하면서, 문근영이 이번 TV 생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이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울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필 우리가 같은 꿈을 꾼 직후 이런 사건이 그녀에게 벌어지는 게 우연일까? 그거 알아? 우리가 같은 꿈을 꾼 그다음 날 문근영이 토크쇼에 나오기로 했다는 거? 그녀는 TV에서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울 방아쇠가 될 말을 할 거야. MK울트라 프로젝트대로. 그리고 문근영은 버려지겠지. 다른 스타들처럼.”
― 중에서
한편, 성순의 여자친구 민주가 ‘벤쳐널 옵셔스 코리아’(BBK가 연상되는)라는 인터넷 금융회사를 차린 후 성순에게 투자를 권하며 “완전 수익이 747 점보제트기처럼 날아갈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는 “매년 7퍼센트의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 세계 7대 경제강국이라는 가카의 공약과는 무관하다. 만약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 전적으로 오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카의 꼼수처럼 들리겠지만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각주가 붙어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웃음을 공유한 적 있는 네티즌이라면, 이 책에 담긴 패러디와 풍자, 인터넷 유행어 히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재미가 될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B급 정서에, 패러디와 패스티시를 버무린 키치적 유머, 미드와 일본 애니에서 빌려 온 기법 등을 과감하게 버무려 전혀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그러한 하위장르적 장치 속에 메타픽션을 결합하여 현대미학에 대한 수준 높은 고뇌와 성찰을 담아내고 있는 매우 다중적인 소설이다.
줄거리
혜영, 승희, 성순은 어느 날 슬립을 입고 천사의 날개를 단 문근영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똑같은 꿈을 꾼다. 음모론을 신봉하는 성순은 이는 문근영을 조종해 지구를 폭파하려는 ‘회사’의 거대음모가 분명하다며, 문근영이 생방송에 나가서 하는 말이 기폭장치가 될 거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친구들을 설득해 문근영을 납치한다.
한편 임성순 작가는 문학상 수상식 날 만찬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전작 《컨설턴트》에 나오는 ‘회사’ 사람에게 납치를 당하고, 독자들이 회사를 믿지 못하게끔 하는 회사가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소설을 쓰라는 협박을 받는다. 글도 안 써지고 잠도 못 자서 병원을 찾은 작가는 어이없이 정신병동에 갇히고, 병원 침대에 누운 작가에게 의사는 귓속말로 “회사에서 치료 잘 받으시랍니다.”라고 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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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이다. 재밌고 엉뚱하고 슬프고 웃기고 무섭고 아프다. 시종일관 웃긴데 슬프다. 어지럽고 엉뚱한데 정리가 된다. 절망과 망상과 집착으로 가득 찬 이 혼돈의 숲을 여행하고 나면 어느새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상상을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시원 찝찝한 느낌이랄까? 비정상이라고 느껴지는 우리의 뇌 구조가 정상일 수도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이상한 소설이다.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와 서사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온 마음을 다해서 진실하게 자신의 뇌 구조를 드러냈기 때문이리라. 그 재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폐인 백과사전이라 부를 만한, 위트와 풍자 가득한 방대한 분량의 각주를 읽는 재미는 서비스~ 서비스~! ―장준환(영화감독)
원본? 그런 건 없다. 현실? 그것도 없다. 존재하는 건 짜깁기와 음모뿐. ‘문근영’이 납치된 순간 멸망의 타이머가 작동하느니. 짜깁기는 탄탄한 음모가 되고, 마침내 현실을 지배한다. 뭐야? 진짜야 구라야? X-파일을 능가하는 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그런데 어쩌지. 이거, 제대로 ‘병맛’이잖아! 게임은 다시 시작되고 당신은 외칠지도 모른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문근영과 함께 청와대로 간다!” 임성순은 이야기의 재미를 알고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현실, 그 커튼 너머를 들여다 볼 줄 아는 작가이다.
―박상수(시인 ․ 문학평론가)
•제1부•
왜냐 묻지 말아요 ……윤연선
다 함께 차차차 ……설운도
So What ……Miles Davis
•제2부•
I could be dreaming……Belle & Sebastian
쓰끼다시 내 인생……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활주로
별일 없이 산다……장기하와 얼굴들
삼포로 가는 길……강은철
Cry……내 귀에 도청장치
•제3부•
Falling down……Travis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더……MOT
하루 하루……빅뱅
8th Wonder……The Gossip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눈뜨고 코베인
Spaceman……The Killers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012.1.28(토)
그런데 이 소설은 독특하다. 만화 같은 스토리와 ‘B급 영화’ 같은 기법, 여기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이론과 마셜 매클루언의 미디어 이해 등 인문학적 성찰까지 버무려져 마치 하이브리드 문학의 진경을 보는 듯하다. 각종 인터넷 신조어와 패러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명대사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여기에 이상한 형식의 각주와 노래 제목도 곳곳에서 출몰한다. 특히 작품 속 문근영은 분명 ‘장화, 홍련’과 ‘바람의 화원’ 등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국민여동생’으로 자리 잡은 문근영씨인 것 같은데도, 주를 통해 “그 여배우는 절대 여러분이 아는 그 배우가 아니다”고 딱 잡아떼는 능청스러움까지.
배우 문근영 뒤에 거대한 음모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자 성순과 은둔형 오타쿠, 문근영의 열혈팬, 이 세 명의 고교 동창은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배우 문근영을 납치한다. 모두 꿈 속에서 핑크빛 슬립을 입은 문근영이 나타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꿈을 꾼 후다. 문근영이 생방송 토크쇼에서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워 파국을 불러올 방아쇠가 될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문근영을 납치해 토크쇼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봐. 이건 단지 감각기관의 문제가 아니야.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169쪽)
...(후략)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컨설턴트>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씨의 두번째 장편 <문근영은 위험해>는이런 황당한 키치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당장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한 설정이 아니냐는 태클이 들어올 법한데, 작가는 책 머리에 "이 글의 독창성은 에베레스트 정상의 공기만큼 희박하다. 어디서 본 듯하다거나 읽은 본 듯한 내용이 나온다면, 어딘가에서 본 것이나 읽어 본 내용이 맞다"고 적었다. 뻔뻔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이 소설의 세계관 자체가 '원본 따위는 없다. 존재하는 것은 복제와 짜깁기와 음모뿐이다'는 것인데.
찌질남 3인방이 문근영을 납치하게 되는 계기는 어느 날 셋이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 같은 꿈을 꾼 것. 음모론 맹신자인 성순은 '회사'에 의해 조종되는 문근영이 TV 생방송에 나와서 TV에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울 방아쇠가 될 말을 해 인류는 파국을 맞을 것이란 주장을 펴면서 좌충우돌의 납치 소동이 벌어진다.
소설은 '문근영 납치'라는 B급 영화의 기본 설정 속에 세 주인공이 대표하는 2000년대 오타쿠, 음모론, 팬덤 문화 속에서 흘러 넘친 온갖 재담과 패러디, 유머를 끌어들여 난장의 짜깁기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하위 문화의 집산지인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디시 폐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문장, 이들이 즐기는 애니메이션ㆍ영화ㆍ 만화ㆍ미국 드라마나 온갖 세계사적 음모론을 집대성했다고 할 정도다. 작가는 덧붙여 노란 말풍선의 각주까지 달아서 그 용어나 문장의 유래를 친절하게 설명하는데, 이 각주만으로도 잉여를 자처하는 백수 세대의 하위 문화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은 디시 폐인에 대한 농담조의 헌사이자 유머로 읽는 폐인 문화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소설의 농담이 어떤 식인지를 보여주는 한 대목. 성순의 여자친구 민주가 '벤쳐널 옵셔스 코리아'(BBK가 연상되는)라는 인터넷 금융회사를 차린 후 성순에게 투자를 권하며 "완전 747 점보 제트기처럼 날아 갈거야"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붙여진 각주는 이렇다. "매년 7퍼센트의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세계 7대 경제강국이라는 가카의 공약과는 무관하다."
....(후략)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작품은 문근영이 납치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복면한 남자들이 문근영을 지하실 의자에 묶어놓고, 그녀가 출연했던 이동통신사 광고카피인 “Have a good time”이란 말을 남긴 채 나가버린다.
문근영 납치사건의 전말과 함께, 한 작가의 이야기가 교차해 펼쳐진다. 작가는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거액의 상금을 받았다. 등단작 ‘컨설턴트’는 자살로 가장한 청부살인을 하는 한 회사의 이야기다.(이는 2010년 세계문학상에 <컨설턴트>란 작품으로 당선된 작가의 이력과 같다). 그런데 후속편을 준비하는 작가에게 정말 ‘회사’ 사람들이 나타나서 전작이 너무 사실처럼 보이니 회사의 정체는 외계인이었다는 설정으로 작품을 쓰라고 강요한다.
문근영을 납치한 남자들은 혜영, 승희 그리고 성순(작가의 이름과 같다)이다. 키 162㎝, 몸무게 107㎏인 뚱보 혜영은 골수 팬클럽 근영홀리세인트닷컴 회장이다. 말끝을 “~근영”으로 끝낼 만큼 충성심이 높다. IQ 180의 천재인 승희는 에로물을 팔면서 만화·비디오·게임에 빠져 사는 ‘오타쿠’, 그리고 성순은 세상만사를 음모로 바라보는 음모론 신봉자다. 이들은 이름이 여자 같다는 이유로 맺어진 중학교 동창이자 왕따, 루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잉여’들이다.
어느 날 이들은 똑같은 꿈을 꾼다. 하얀 슬립을 입고 천사의 날개를 단 문근영이 사랑한다고 속삭인 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음모론자 성순은 이것이 문근영을 조종해 지구를 폭파하려는 ‘회사’의 거대 음모임에 틀림없다며, 문근영이 영화 홍보차 생방송에 나가서 하는 말이 기폭장치가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논리로 친구들을 설득해 문근영을 납치한다.
이 소설은 패러디, 패스티시(혼성모방), 메타픽션(소설에 대한 소설) 등의 방법론을 차용했다. 만화 주인공의 대사, 광고 카피, 인터넷 유행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진짜 작가와 소설 속의 작가, 그리고 사건을 착각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 성순의 정체성이 혼동을 일으킨다. 소제목은 대중음악 제목들이며, 각 부 사이에는 미드를 연상시키는 전편보기, 예고가 있다. 빈 페이지에는 출판사의 진짜 도서 광고를 게재해 본문과 광고의 구분을 없앴다.
이 같은 글쓰기의 목적은 현대인들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다. 과도한 정보에 노출된 현대인은 사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환상을 사실보다 훨씬 진짜처럼 느낀다. 또 현대소비사회는 미디어를 활용해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부추긴다. 영화배우 문근영은 이런 ‘시뮬라크르 사회’에서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소구하는 기호이자 이미지다.
이런 사회에서 외계인이든, ‘회사’든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세력들에게는 미디어의 활용이 핵폭탄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문근영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것인가. 성순은 레이건 암살을 시도했던 힝클리가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려고 방아쇠를 당겼듯이 누군가 문근영을 향한 좌절된 욕망을 지구 멸망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해소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혜영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숭배했던 문근영은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가 알던 문근영이 아니다. 납치범들을 피해 하수도로 숨었던 문근영은 무한복제 모드로 접어든다.
...(후략)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소설과 ‘소설 속 상황’ 뒤섞여
진짜·가짜 모호한 ‘복제’ 세계
은둔형 오타쿠 승희, 찌질한 스토커 혜영, 조루 음모론자 성순 세 청년이 어느날 똑같은 꿈을 꾼다. 배우 문근영이 베이지색 슬립을 입고 나타나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꿈. 세 청년이 꿈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머리를 맞댄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문근영의 뒤에 거대한 음모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는 인류 멸절이라는 것.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은행나무)는 이렇듯 황당무계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학생 시절 한 묶음으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세 청년은 멸종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하고자 문근영을 납치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근영을 이용한 인류 멸절 음모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그들 역시 자의와는 상관없이 인류 멸망에 기여하게 된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사’의 의뢰에 따라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남자를 등장시킨 <컨설턴트>로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36·사진)의 두 번째 소설이자 그가 계획하고 있는 ‘회사 삼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컨설턴트>의 작가 임성순이 실명으로 등장하는데다, 문근영을 납치한 세 청년 중 하나인 성순은 작가와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세 청년이 문근영을 납치해서부터 인류 파멸의 단추를 누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기둥 삼으면서, 그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회사’ 사람들한테 납치당하고 소설의 내용과 관련한 협박성 주문을 받는 이야기를 병치시킨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작가’가 쓴 소설과 그 소설 속 상황은 서로를 넘나들면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급기야는 쓰고 쓰이는 관계가 역전되기에 이른다.
“이제 와 진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서로의 거울에 비친 그림자이자 복제에 대한 복제일 뿐이니까. 이미지들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 낸 가장 단순한 무한의 미로였던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두 친구와 함께 인류 멸절 이후에도 살아남은 성순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무수한 문근영들이 존재하고, 소설 밖 작가 임성순과 소설 속 작가, 그리고 그 소설 속 작가가 쓰는 소설 속의 성순이 서로를 비추는 ‘시뮐라크르’의 세계가 이 소설의 근거이자 무대다.
인터넷과 일본 대중문화, 음모론, 그리고 한국 사회와 세계사 등을 망라한 무려 209개의 시시콜콜한 각주는 이 소설이 모방과 복제의 원리 위에 구축되었음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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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이같은 느닷없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임성순의 장편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는 알록달록한 표지부터 키치의 이미지가 강하게 풍긴다.
본문을 펼쳐보면 B급의 향기는 더욱 강해진다.
인터넷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디씨 폐인'들이 주로 만들고 유통한 각종 인터넷 신조어들과 인터넷상에서 널리 패러디 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명대사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본문 중간에 시도때도없이 튀어나오는 노란 말풍선의 각주를 통해 이들의 유래와 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인이나 형식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소설의 내용이다.
'찌질남' 3인방이 문근영을 납치한 것은 어느 날 셋이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같은 꿈을 꾼 이후였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음모론자 성순은 미디어를 매개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회사'라는 조직이 존재하고 문근영은 다른 스타들처럼 사람들을 조종하는 수단으로 회사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마침 문근영이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하기로 돼 있는데 이때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워 파국을 불러올 방아쇠가 될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문근영을 납치해 토크쇼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봐. 이건 단지 감각기관의 문제가 아니야.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169쪽)
소설은 문근영 납치 사건과 더불어 '작가'로 지칭된 또다른 인물의 피랍 이야기도 함께 전개된다.
종잡을 수 없는 두 이야기는 극적이면서도 어딘가 허무한 결말 부분에서 한데 섞인다.
한없이 가벼워 보이기도 하지만 킥킥대며 즐길 수 있는 오락소설 이상의 가치도 분명히 있다.
가령 우리 사회 현실이 음모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불가해하고 부조리하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나 소설까지 포함하는 '문화 상품'의 기능에 대한 성찰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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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ye@yna.co.kr
개인을 사회화했던 거대 담론은 힘을 잃었다. 그 자리에는 개인의 욕망,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혹은 정보가 대신 들어앉았다. 사람들은 상품이나 취향의 파편을 쫓아 살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는 소비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주체로 미디어를 지목하고 이런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소설은 최신 신조어, 만화나 애니메이션 대사, 패러디를 통해 이런 암울한 이야기를 의뭉스럽게 전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 미디어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분명하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봐.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
책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문근영은 우리가 아는 문근영이면서 그 문근영이 아니다. 저자는 실재 인물과 다르다고 처음부터 못 박아 놓고도 문근영의 실재를 곳곳에서 가져다 쓴다.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연예인 역시 하나의 기호로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문근영은 우리가 아는 문근영이 아니기도 하다.
소설은 이야기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오덕'이다. 오덕은 하나에 몰두하는 '오타쿠'의 한국식 변형이다.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이 되는 세상 이야기를 끌고 갈 주체로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다.
4차원 음모론자 성순, 은둔형 오타쿠 승희, 문근영의 열혈팬 혜영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납치한다. 어느 날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같은 꿈을 꾸고 난 후다. 성순은 미디어를 매개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문근영이 이 회사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곧 토크쇼에 출연할 문근영이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워 세상을 멸망시킬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납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회사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이야기다. 작가는 회사에 납치돼 회사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쓰라고 강요받는다.
'찌질남' 3명의 좌충우돌 활약에도 결국 세상은 파멸한다.
소설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독특하다. 현실과 상상이 마구 뒤섞인다. 세상의 멸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땡전뉴스, BBK사건, 미국의 뇌 구조 실험 프로젝트인 'MK 울트라' 같은 실제 사건들을 엮어 넣는다.
여기에 인터넷 사이트에 주로 등장하는 각종 신조어,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대사, 패러디 등은 소설을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다. 각 장의 제목은 노래 제목이며, 본문 중간에 대사나 사물을 설명하는 노란 말풍선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현재까지 출간된 한국 소설 중 가장 각주가 많은' 독특한 소설이다.
메시지는 묵직하다.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이 되는 오늘날의 세상이 이런 황당한 이야기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고나 문화, 심지어 작가의 소설마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한다.
"난 그저 이 세계가 존재하기 위한, 네 욕망을 투영하기 위한 하나의 반영에 지나지 않아. 니가 속한 세계를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그림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상관없지. 그토록 위험하다는 문근영도, 너희들도, 소설 속 사라진 사람들도, 심지어 이 글을 읽는 독자조차 책을 덮고 세상으로 나가면 소비될 무언가로 돌아갈 뿐이니까." 소설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으로 이른바 '회사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임성순 지음/은행나무/336쪽/1만 2천500원.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개인을 사회화했던 거대 담론은 힘을 잃었다. 그 자리에는 개인의 욕망,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혹은 정보가 대신 들어앉았다. 사람들은 상품이나 취향의 파편을 쫓아 살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는 소비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주체로 미디어를 지목하고 이런 사회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소설은 최신 신조어, 만화나 애니메이션 대사, 패러디를 통해 이런 암울한 이야기를 의뭉스럽게 전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낸 미디어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분명하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봐.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
책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문근영은 우리가 아는 문근영이면서 그 문근영이 아니다. 저자는 실재 인물과 다르다고 처음부터 못 박아 놓고도 문근영의 실재를 곳곳에서 가져다 쓴다.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연예인 역시 하나의 기호로 하나의 상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문근영은 우리가 아는 문근영이 아니기도 하다.
소설은 이야기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오덕'이다. 오덕은 하나에 몰두하는 '오타쿠'의 한국식 변형이다. 비현실적인 일이 현실이 되는 세상 이야기를 끌고 갈 주체로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다.
4차원 음모론자 성순, 은둔형 오타쿠 승희, 문근영의 열혈팬 혜영은 국민 여동생 문근영을 납치한다. 어느 날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같은 꿈을 꾸고 난 후다. 성순은 미디어를 매개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회사가 존재하고, 문근영이 이 회사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곧 토크쇼에 출연할 문근영이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워 세상을 멸망시킬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납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회사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 이야기다. 작가는 회사에 납치돼 회사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쓰라고 강요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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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박종준 dreampark@munple.com
뭐? 문근영이 위험하다고? 이 책 쓴 사람, 겁도 없이 문근영의 팬이 얼마나 많다고. 사실 그렇다. <문근영은 위험해(은행나무)>라는 책 제목부터 거슬린다. 발칙하다 못해 괘씸하다. 얼핏 봐선 안티팬 100만명은 양산할 법한, 도발적인 제목. 그런 우려와 비호감이 엄습하는 찰나, 책도 책이지만 이 책을 쓴 작가와 출판사가 궁금해진다.
오라. 임성순이라고? 그래 잘만났다.
낯설기는 하지만 '세계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이 큼지막하다. 사실 유명세를 탄 작가는 아니지만 이 문제작(?)을 쓴 작가는 나름 내공이 있는 미스터리 장르 작가, 임성순이다.
이전부터 임성순은 본격 문학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절묘한 접합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신작 <문근영은 위험해>에서도 만화영화 같은 포복절도할 스토리와 기법, B급 영화 같은 키치적인 유머 속에 순문학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그 이름도 거창한 新 하이브리드 문학으로 한국 문학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히고 있다.
내용도 좀 미스터리한 요소가 있으면서도 환타지적 재미를 잘 살렸다.
어느 날 세 청년이 똑같이 꿈속에 핑크빛 슬립을 입은 배우 문근영이 나타나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면 무슨 의미일까? 이 작품은 문근영 뒤에 거대한 음모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으로부터 출발해 은둔형 오타쿠, 찌질한 스토커, 조루 음모론자, 이 세상이 내놓은 찌질한 세 명의 ‘잉여남’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문근영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그리고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원래 작가의 구상은 웹과 연동된 하이퍼텍스트 형태였으나, 저작권법과 투입되는 자본의 문제로 현재까지 출판된 한국소설 중 각주가 가장 많이(그리고 아마 가장 재밌는) 달린 독특한 형식의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는 것.
이번 임성순의 <문근영은 위험해>를 적나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책소개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만든 장준환 감독의 추천사를 보면 딱 알 수 있다. 장 감독의 추천사가 걸작이다.
장 감독은 "이상한 소설이다. 재밌고 엉뚱하고 슬프고 웃기고 무섭고 아프다. 시종일관 웃긴데 슬프다. 어지럽고 엉뚱한데 정리가 된다."고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안드로메다에나 있을 법한 환타지적 상상력은 물론 다양한 국내외 역사적 사건에 대한 풍자를 통해 인문학적 성찰로 환원된다. 독자는 판타지라는 몽환적 가상의 공간에서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물론 이 몽환적 가상의 공간을 현실과 치환시켜도 좋고 허구적, 창조공간인 안드로메다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이러한 판타지적 장치나 공간들은 모두 작가 임성순이 고안해낸 것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공간을 자신이 사는 삶과 결부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성순은 안드로메다적 판타지를 보여주며 "이거 믿지?" "믿어야 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허구의 공간 속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제시한 상상력보다 더 높은, 그 다음 단계의 초월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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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펼쳐보면 B급의 향기는 더욱 강해진다.
인터넷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디씨 폐인'들이 주로 만들고 유통한 각종 인터넷 신조어들과 인터넷상에서 널리 패러디 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의 명대사들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본문 중간에 시도때도없이 튀어나오는 노란 말풍선의 각주를 통해 이들의 유래와 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인이나 형식보다 더욱 난감한 것은 소설의 내용이다.
'찌질남' 3인방이 문근영을 납치한 것은 어느 날 셋이 문근영이 등장하는 똑같은 꿈을 꾼 이후였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음모론자 성순은 미디어를 매개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회사'라는 조직이 존재하고 문근영은 다른 스타들처럼 사람들을 조종하는 수단으로 회사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마침 문근영이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하기로 돼 있는데 이때 세뇌된 사람들을 일깨워 파국을 불러올 방아쇠가 될 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문근영을 납치해 토크쇼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란 신체의 확장이라고. TV란 확장된 눈과 귀야. 수천만의 사람이 똑같은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봐. 이건 단지 감각기관의 문제가 아니야. 일종의 세뇌지. 우리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수단인 거야. 스타는 바로 그 조종 장치의 운전대 같은 거고."(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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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전작 <컨설턴트>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임성순!
그가 포복절도할 스토리 뒤에 감춰진 신랄한 풍자가 담긴 소설, 『문근영은 위험해』로 돌아왔다. 책은 만화 같은 스토리와 기법, 인터넷 유행어의 패러디와 풍자를 담은 주석, 미국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미리보기와 다시보기 등 키치적인 유머 속에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세 명의 잉여남들이 문근영을 조종해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회사’의 음모를 저지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임성순 작가가 ‘회사’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얼토당토않은 소설을 쓰라는 협박을 받는 이야기, 이 두 개의 이야기가 뱀이 꼬리를 물 듯 이어진다. 진중하면서도 발랄한 상상력으로 선 굵은 스타 작가의 탄생을 예감케 하고 있는 작가 임성순의 신작!
<문근영은 위험해>
제 37회 <책과 사람>에서는 <문근영은 위험해>의 저자 임성순 작가를 만나본다.
방송 바로가기 : http://www.kbs.co.kr/1tv/sisa/enjoybook/view/vod/1862754_414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