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그 위선의 역사

지음 커스틴 셀라스 | 옮김 오승훈

브랜드 은행나무 | 발행일 2003년 5월 15일 | ISBN 8956600333

사양 변형판 148x210 · 457쪽 | 가격 14,000원

분야 종교/역사

책소개

유엔의 창설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벌어진 전범재판에서부터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 테러, 복수로 점철된 현재까지 격동의 인권사를 국제정치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살핀다. 저자는 인권을 이용해 약자들을 제압하고 정치적 이득을 챙긴 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할 때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경고한다.

미국은 각국의 정치에 개입하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인권을 내세웠다. 최근의 이라크 전쟁 역시 겉으로는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거론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 캠페인은 매우 변덕스럽다. 다시 말해 미국은 그들의 ‘인권 캠페인’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하다면 인권 희생자들을 쉽게 잊어버린다.
저자는 인권을 정치적인 문제로 본다. 인권에는 국제선언, 전쟁범죄와 재판, 대중운동과 외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정치인, 외교관, 법조인, 언론인, 운동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아가 인권의 역사는 겉으로는 으르렁대도 실제로는 한번도 싸워 본 적이 없는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위선의 역사는 이것을 의미한다.

책 표지 글

인권 – 강자를 위한 윤리
이라크 전쟁은 인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이었다. 3월 20일 부시 대통령은 개전 연설에서 전쟁의 명분을 "이라크 해방"으로 선언했다. 그것이 작전명이 되었다. 부시는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죽음의 공포에서 구하기 위해” 무법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테러 지원과 대량살상 무기 보유, 이 의심스런 혐의에다 부시는 민주정권 수립이라는 대의를 보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테러 보복 전쟁이 이라크에 이르러 완벽한 "인권 프로그램"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부시는 대국민 연설과 기자회견 때마다 후세인의 생화학 무기 사용 전력을 거론했다. 그는 “더 이상 야만정권에 자비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은 3월 28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5년간 이라크에서 다섯 살 이하의 어린아이 40만 명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었다. 막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을 보살펴야 할 현 정권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이유다.”

누가 보아도 이라크 땅에 인간존엄의 가치를 세우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 유엔은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전쟁만을 인정한 유엔 헌장을 어겼다. 국제규범을 무시한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나쁜 전쟁"이었음에도, 어떻게 미국은 침공을 강행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도덕과 명분을 무시하는 "무법정권"이고, 그것이 최강자의 "힘의 논리"라고? 너무 단순한 대답이다. 그 논법에는 약자의 대항논리를 찾을 수 없다. 일방주의와 신제국주의론으로도 부족하다. 뭔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인권을 방패로 삼은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20세기 인권의 역사를「인권, 그 위선의 역사」보다 더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은 없다. – "더 타임스" 2002년 7월 23일자

커스틴 셀라스는 다양한 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독창적이고 생생한 인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 "선데이 텔레그래프" 2002년 7월 28일자

<목차>
.들어가는 말 / 신은 인간에게 인권을 주지 않았다
1. 유엔 그리고 인권의 탄생 / 미국, 인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 25
2. 나치, 2차 대전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 죄 있는 자가 죄 있는 자를 돌로 치다 … 67
3. 제국, 히로시마 그리고 도쿄 전범재판 / 천황 폐하께서는 무고하십니다! … 103
4. 냉전, 제1부 / 엘리너 루스벨트, 인권의 대모 또는 냉전의 투사 … 137
5. 식민지와 인권 / 앰네스티, 그 대영제국의 애국자들 … 169
6. 지미 카터와 인권 십자군 / 정치는 어떻게 인권을 이용했는가 … 207
7. 냉전, 제2부 / 다시 빼앗긴 인권의 봄 … 241
8. 미국, 그 위선의 고향 / 20세기판 종교박해, 노예해방 그리고 헛소동 … 285
9. 유고슬로비아, 르완다 그리고 국제형사재판소 / 미국은 왜 국제형사재판소를 반대했는가 … 317
.나가는 말 / 미국의 꿈, 세계의 악몽 … 343
.옮긴이의 말 … 353
.부록 / 세계인권선언 … 361
.주 … 369
.참고문헌 … 439
.찾아보기 … 449

작가 소개

커스틴 셀라스 지음

커스틴 셀라스(Kirstn Sellars) –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현재 런던에서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활동 중이다. "가디언" "타임" "로스앤젤레서 타임스" "오스트레일리안" "뉴 스테이츠맨" "스펙테이터" "에스콰이어" "보그"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오승훈 옮김

1963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문화일보 기자로 국회, 문화관광부, 노동부, 환경부 등을 출입했다. 현재 그는 미국 뉴저지 주 페어리 딕슨 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스쿨에서 초청연구원으로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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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서평
태초에 인권은 없었다
출처: 국민일보
태초에 인권은 없었다

인권이 인류 문명과 함께 탄생했다는 믿음은 거짓이다. 천부인권설은 18세기 계몽주의,가깝게는 20세기초 파시즘의 산물이다. 계몽주의를 사상적 아버지로 태어난 인권은 20세기초 파시즘의 광기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학살의 시대를 거쳐 인류는 인권이 곧 평화임을 깨닫게 됐다. 1945년 유엔의 창립과 곧 이어진 48년의 유엔 인권선언은 인권의 승리를 공고히 했다. 인권은 선이고 도덕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20세기 ‘인권 신화’의 이면에서는 사뭇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커스틴 셀라스의 ‘인권,그 위선의 역사’는 현대사라는 무대 뒤에서 만신창이가 된 인권사(史)를 들여다본다. 인권은 명분과 현실이 싸우는 정치의 격투장이었다. 세상의 진짜 주인은 정치. 인권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이데올로기를 위해 몸을 팔고 정치의 대리전을 치렀으나 대가는 착취당했다. 인권의 참얼굴을 보기 위해 저자는 두 차례의 전범 재판과 식민지 인권 문제, 라틴 아메리카 독재 정권과 미국 정부의 관계, 중국 인권 문제, 90년대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까지 국제 정치판을 달군 굵직한 이슈들을 점검했다.

유엔 인권선언은 출발부터 정치에 휘둘렸다. 위원회는 미국의 독무대였고,‘인권의 대모’ 엘리·루스벨트는 미국의 정책을 관철시키고 소련과 맞서 싸우는 데만 골몰했다. 뉘른베르크와 도쿄 전범재판은 정의 실현 대신 패전국 징벌에 힘을 쏟았다. 당연히 미국의 원폭 투하나 소련의 핀란드·폴란드 침공,영국의 약탈 등 승전국의 악행은 기소 대상이 아니었다. 공산주의에 맞서는 서독의 중요성을 깨달은 미국 등은 58년까지 독일 전범 대부분을 석방했다. 인권 보호의 명분이 반공 앞에서 헌신짝처럼 버려진 것이다.

카터에서 레이건, 클린턴 행정부로 이어지는 미국 인권 정책의 변화는 인권과 정치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카터는 베트남전 종결 이후 진보적 분위기에 편승해 인권 외교를 시도했다. 절대선인 인권은 좌파 급진주의의 기세가 꺾인 70년대에 국민 통합을 이끌어낼 비장의 카드. 그렇다고 카터가 인권이라는 무기를 아무 곳에서나 휘둘렀던 것은 아니다. 이해 관계가 없는 캄보디아의 인권침해는 거침 없이 비난한데 비해 원유국 사우디아라비아 비판에는 신중했다.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인권의 지위도 급변했다. 레이건의 강경 정책은 인권을 비인기 종목으로 추락시켰고, 클린턴 시절에는 사회주의권 붕괴로 사상적 공백이 생기면서 인권 이슈가 다시 급부상했다. 인권 문제를 빼들었다 버리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정치인들에게 인권은 담론을 선점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셀라스의 주장을 오늘 이 땅에 대입해봐도 좋을 듯하다. 북한과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둘러싼 진보·보수 간 신경전과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입국을 둘러싼 정부·인권단체의 대립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이 예외없이 정치의 볼모임을 웅변한다.

그렇다면 정녕 인권은 허구인가. “인권은 현대 정치 담론을 지배하는 가장 위대한 공용어”라는 저자의 말처럼 인권에 대한 정치의 구애는 역으로 인권의 상징적 힘을 보여준다. 인권은 정치에 휘둘리지만 정치는 인권의 도움 없이 민중을 설득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저자는 ‘가디언’의 기고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다(커스틴 셀라스·오승훈 옮김·은행나무·1만4000원).


2003년 5월 23일 금요일
이영미 / 국민일보
인권 신장도 강자의 역사일뿐 ...
출처: 문화일보
인권 신장도 강자의 역사일뿐 ...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인권(人權). 지금 이것은 현대 정치, 사회, 문화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최고의 가치다. 이면의 이유야 어떻든 최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침공도 표면적으로는 대량 살상무기에 따른 세계 인권의 위협과 그동안 후세인의 철권통치에 따른 이라크 민중 탄압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국이 주장하는 전쟁의 이름도 ‘이라크 해방전쟁’이었다. 인권은 최악의 인권침해 사태를 일으키는 전쟁마저도 용인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인권제일주의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은 하늘이 주었다’는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 그러나 천부인권설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수백만년 인류의 역사에서 고작 300년이 채 안된다. 18세기 ‘광명의 시대(si뫊cle de lumi뫊re)’에서야 비로소 인권문제는 공개석상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물론 문학적으로는 이미 오래전에 이같은 주장이 있었다. 기원전 442년에 씌어진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에서 오이디푸스왕의 딸인 안티고네는 폭군 크레온에 맞서 “저 하늘에 기록된 영원히 멸하지 않는 신의 법에 비하면 당신의 힘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오”라며 ‘인간의 자연권’을 외쳤다.

그 안티고네의 목소리가 실제 법제화되는 데까지 실로 2400년 가까이 걸렸다. 18세기 광명의 세기에 움트기 시작한 안티고네의 씨가, 1945년 샌프란시스코 유엔창립회의에서 비로소 세상에 머리를 내밀었으니 말이다. 유엔창립회의에서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은 광기에 휩싸인 최악의 인권유린 사태가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성장은 여전히 황소걸음이다. 이 책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 유엔창립회의에서부터 유고슬라비아, 르완다에서의 인종말살 정책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에 이르기까지 9개의 인권 관련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면서 아직도 비틀거리는 안티고네의 걸음을 보여준다.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계인권선언’ 제1조가 ‘모든 인간(all men)’에서 어떻게 ‘모든 인류(human beings)’로, ‘형제처럼(like brothers)’에서 ‘형제애의 정신(in the spirit of brothers)’으로 바뀌었는지 그 이면도 해부한다. 또 ‘반란권’의 조항이 어떻게 없어졌는지, ‘사회보장권’이 ‘무덤에서 요람까지’ ‘임신부터 사망까지’ ‘임신에서 파멸까지’ 등으로 다양하게 논의되는 과정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핵심 승전국의 입김이 어떤 영향을 미쳤고, 향후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한 소련이 어떻게 반발했고, 논쟁을 좋아하는 프랑스가 어떻게 미국의 발목을 잡았는지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생생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새로운 아침을 약속했으나,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힘들게 견뎌야 하는 어둠의 시간들이 아직 남아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아직 남아있는 어둠의 시간들을 ▲‘죄있는 자들이 죄있는 자를 돌로 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무고한 천황폐하’ 도쿄(東京) 전범재판 ▲인권의 대모 또는 냉전의 투사 엘리너 루스벨트의 ‘냉전’ ▲대영제국의 애국자들로 구성된 엠네스티의 식민지와 인권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지미 카터와 ‘인권십자군’ ▲ 20세기판 종교박해, 노예해방 등을 그린 ‘미국, 그 위선의 고향’등의 항목으로 자세하게 해부하고 있다.

원제는 ‘인권의 성장 또 성장(The rise and rise of human rights)’. 원제대로 하면 책은 비판적 내용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진행된 세계의 인권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옮긴이 오승훈씨는 ‘인권, 그 위선의 역사’로 의역했다. 그 만큼 이 책은 우리에게 ‘강자의 인권’으로서의 역설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씨는 기자 특유의 날카로운 감각으로 이면을 뚫고 들어가는 박력있는 문체로 그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작품성★★★★ 대중성★★★★)



2003년 5월 23일 금요일
김승현 / 문화일보
人權은 없다, 계몽주의 발명품일뿐 ...
출처: 세계일보
人權은 없다, 계몽주의 발명품일뿐 ...

"신은 인간에게 인권을 주지 않았다. 천부인권(天賦人權)이란 없다. 인권은 개인의 자유에 눈을 뜨기 시작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발명품일 따름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데올로기와 정파를 넘어서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새로운 ""종교""의 위상으로까지 격상된 인권에 대한 이런 식의 ""폄하""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이는 맞는 말이다. 신이 인권을 부여했다면,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동물 취급을 받았던 노예들은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금도 음지에서 인간의 권리를 포기당한 채 신음하는 사람들은 신이 버린 존재들이란 말인가. ""인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적인 살상행위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런던에서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인 커스틴 셀라스(Kirsten Sellars)의 ""인권, 그 위선의 역사""(오승훈 옮김.은행나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책이다. 지은이는 조작된 정의를 직시하며 ""참인권""과 ""위장 인권""을 가려내야 한다는 당위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미국이 ""인권""을 방패막이로 자행한 범죄적 행위를 중심으로, 현대사를 장식했던 인권이라는 이름의 한판 연극들을 9개의 사례를 제시하며 파헤친다. ""유엔 그리고 인권의 탄생"" ""나치 2차대전 그리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제국 히로시마 그리고 도쿄 전범재판"" ""냉전 제1부"" ""식민지와 인권"" ""지미 카터와 인권 십자군"" ""냉전 제2부"" ""미국 그 위선의 고향""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그리고 국제 형사재판소"" 등이 그 항목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이라크전쟁부터 보자. 이 전쟁에서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전쟁만을 인정한 유엔헌장을 어겼다. 국제규범을 무시한 나라가 되었다.

""무법정권"" ""힘의 논리"" ""일방주의"" ""신제국주의""라는 수사만으로는 이들 나라의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국제법을 어기고도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권을 방패로 삼은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인권은 자신을 앞세워 활용한 이들에게 엄청난 정치적-도덕적 이익을 챙기게 해주었다"고 적시한다. 이 점이야말로 지금껏 가장 중요하면서도 철저히 논외에 부쳐졌던 인권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1940년대 미국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인권문제만 잘 활용하면 새로운 정책과 기구 창설에 대한 국내의 지지를 얻어내고 간단하게 비판세력의 입을 막아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70년대 지미 카터 대통령은 환멸과 쇠락의 시대에 인권문제를 선거에 활용했다.

조지 부시 시니어와 빌 클린턴이 보여준 것처럼, 인권은 자칫 불쾌할 수 있는 내정간섭을 그럴듯한 모습으로 치장할 수 있게 해준다. 전후 세계 정의를 바로 세운 인류 양심의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아온 뉘른베르크와 도쿄 전범재판. 이 재판은 홀로코스트와 침략전쟁의 위법을 꾸짖었지만, 드레스덴과 히로시마의 살육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렸다. 승자의 인권만 인권이었다. 인권대통령을 자임했던 클린턴 행정부 시절, 보수진영은 극우 개신교 복음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아프리카 수단의 대대적인 노예해방운동에 나섰다. 기실 수단의 주민들을 괴롭히던 공포 중에서 노예제도는 사소한 것이었다.

결국 ""노예""에 대한 미국민들의 트라우마를 활용한 국내정치용 선전전에 불과했음이 증명됐다. 떠들썩한 소동이 끝난 후 수단문제는 곧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희생자들을 위한 간섭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권 캠페인""에 방해되는 희생자들은 희생시켜도 무방한 존재였다.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희생자들은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그들은 음지에서 여전히 신음한다. 미국이 인권을 내세워 이집트를 압박했을 때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에 다가가기 위해 몸을 숨기는 바위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그렇다면 ""인권""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권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사실이 지은이가 주장하는 요체다. 헤게모니 야욕에 불타는 정치지도자의 광기를 치장하는 황금면류관도 아니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의 변명의 대상도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은 인권을 정치적인 문제로 본다. 여기에는 국제선언, 전쟁범죄와 재판, 대중운동과 비밀스런 외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정치인 외교관 법조인 언론인 운동가들이 말하는 인권의 함량을 재는 잣대가 될 것이다.


2003년 5월 24일 토요일
조용호 / 세계일보
"얻느냐 잃느냐" 가진자의 교묘한 줄타기
출처: 한겨레신문
"얻느냐 잃느냐" 가진자의 교묘한 줄타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국제연합(유엔)의 전신이 국제연맹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창설을 이끈 국제연합의 애초 이름이 ‘열강연합’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루스벨트가 구상한 유엔의 모습은 ‘전체주의 봉쇄정책’, 특히 소련을 겨냥한 견제의 원칙에 따라 구성된 열강들의 협의체였다.” 대신, 루스벨트는 “인권 문제를 심사숙고한 끝에 유엔의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주기로 했다.” 인권을 대대적으로 홍보·옹호함으로써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질서에 도덕적 기초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국제연맹의 비극을 가져온 주된 이유였던 약소국가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게 되었다.” 영국에서 국제문제 저널리스트로 활동중인 지은이가 쓴 <인권, 그 위선의 역사>는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식민지배에 있던 약소국의 민족자결권과 각종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열강들이 우회하는 차원에서 인권이 전면에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인권이 철저히 정치적인 실리의 문제로 취급됐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의 말을 비틀어, “‘인권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말로 전후 인권의 역사를 요약한다. 1945년 11월20일 열린 ‘역사적인’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물론이다. 나치에 대한 단죄 형식을 둘러싸고, 44년 가을부터 미국 행정부 안에서 치열한 설전이 오간다. 국무장관은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 이들의 부하를 잡아 즉결처형할 것을, 루스벨트와 재무장관은 재판절차 없이 나치 수뇌부를 사형집행하고 친위대를 노동수용소에 보내는 가혹한 화평조약을 지지했다.

하지만 미국 군부는 연합국의 미덕을 알리고 나치의 야수성을 선전하는 수단으로 국제법정이라는 ‘이벤트’를 제안했고, 이것이 관철된 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은 “선을 위한 전쟁”이라는 전설을 역사에 남겼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사령관이던 루돌프 회스가 “내가 대략 추정하기로는 250만명 정도가 가스형이나 화형에 처해졌고, 50만명은 기아와 병으로 죽었다”고 증언했듯이, 무엇보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의 실상이 재판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뉘른베르크 재판은 승전국의 전쟁범죄는 다루지 않기로 한 ‘반쪽’짜리 재판이었다. 독일에 대한 기소 혐의와 똑같은 짓을 했거나, 하고 있는 연합국의 행태”는 재판 내내 문제로 터져 나왔다. 1946년 3월3일 열린 도쿄 전범재판은 무려 5개의 판결문이 나오며 대실패로 끝났다. 냉전에 따른 연합국의 단결력이 무너지고, 일본은 소추하면서 식민지배를 포기하지 않는 열강들의 이중적인 태도는 도쿄 재판을 ‘실패한 뉘른베르크’로 만들었다. 이후 유엔에서 냉전의 바람은 인권 분야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47년 11월 영국은 유엔에서 소련의 강제노동을 향해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이 비난문을 작성했던 영국 정부의 실무자들은 “이런 종류의 연설문을 써내는 요령은 오직 하나, 아주 폭넓은 범위를 다루면서도 우리의 식민지에서 벌어진 문제들은 과감히 무시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 뒤 바통을 이어받은 미국은 소비에트 공격에 이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엘리너 루스벨트(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는 ‘인권의 대모’이자 ‘냉전의 투사’라는 복합적인 이름을 얻었다.

이 책은 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과 영국 정부의 밀월관계, 70년대 후반 카터 행정부 안에서 “겉으로는 서로 발톱을 세우고 으르렁댔지만, 정작 흑과 백으로 나뉘어 싸워본 적은 결코 없는” 인권을 둘러싼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의 대립을 들춰내고 있다. 유엔 헌장을 채택한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부터 2001년 9·11테러 이전까지, 열강들의 국내 정치적 우선순위에 좌우돼온 ‘인권 정치’의 수사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추적한다. 지은이는 말한다. “세계 열강의 굴절된 의식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인권 캠페인이 왜 그토록 변덕스러운지 잘 알 수 있다. 해외 인권탄압의 희생자들은 열강이 그들 정부에 간섭하는 구실이 된다. 희생자들을 위한 간섭이 아니다.

희생자들은(…) 필요하다면 희생시켜도 되는 존재가 된다. 그렇게 잊혀져버린 희생자들의 명단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 인권이 “더 강력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 당분간 서방의 의제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참 인권’과 ‘위장 인권’을 가려내고, 외부 개입에 대해 ‘자결권’과 ‘국가주권’을 지켜내는 어려운 과제를 ‘희생자’들이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3년 5월 24일 토요일
조준상 / 한겨레신문
인권을 "수단" 삼지말라 ...
출처: 중앙일보
인권을 "수단" 삼지말라 ...

""하늘이 준(天賦) 인권""이란 말에서 보듯 우리가 너무도 자명한 권리로 알아온 인권이 갖는 양면성에 대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등의 과정에서 미국이 어떻게 인권을 명분삼아 이라크를 압박해왔나 하는 과정까지를 풍부하게 서술했다. 책에 따르면 인권이란 자유에 눈을 뜨기 시작한 18세기 계몽주의 발명품. 그만큼 인류사에서 인권 개념의 등장은 뒤늦은 것이었다는 얘기다.
이후 세계인권 선언이 제창된 1945년 유엔 창립회의 이후 인권은 세계사를 움직이는 힘의 하나가 됐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말하듯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이라크 해방""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논리에 공감하는 이가 많지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를 책은 비판적으로 묻고있다. 즉 인권을 이용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 강자들의 위선 규명이 이 책의 관심이다. 즉 인권이 목적이 아닌 수단을 전락할 때 오는 위험에 대한 경고다.


2003년 5월 24일 토요일
김성희 / 중앙일보
신성한 인권 정치에 휘둘린 악몽의 역사
출처: 한국일보
신성한 인권 정치에 휘둘린 악몽의 역사

이라크 전쟁이 미ㆍ영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세계적 반전 여론을 무시한 채 치러진 이번 전쟁의 명분 중 하나는 ‘인권’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에 신음하던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죽음의 공포에서 구하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키운 정권이 아닌가.
인권은 흔히 ‘자연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신성한 권리’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신성한 권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 자주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목적을 가리는 방패로 악용되곤 한다. ‘인권, 그 위선의 역사’는 인권이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 유엔 창설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인권사를 국제정치의 스펙트럼을 통해 고찰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지은이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1945년 샌프란시스코 유엔 창설회의에서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이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시작부터 미국의 독무대였으며, 이 선언이 구속력을 갖지 못하게 앞장서서 훼방을 놓은 것도 미국이고, 유엔 인권위원회를 이끈 ‘인권의 대모’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 국무부의 외교 노선에 철저한 냉전 투사였다는 것이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자국 대표단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자칫 인권의 원칙을 경솔하게 적용했다간 위험한 악마를 불러낼 수 있다. 타국의 권력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등 서방이 인권 수호를 내세워 제 3세계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여러 사례는 이 경고가 선견지명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가 고문을 금지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92년 유엔 보고서에 대해 이집트는 이렇게 반박했다. “왜 같은 규범을 이스라엘에는 적용하지 않는가. 그들이야말로 악명 높은 고문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보편적 가치여야 할 인권이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왜곡돼 온 역사를 폭로한다.

그는 2차 대전 후 뉘른베르크와 도쿄의 전범재판부터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지미 카터 정권의 이른바 ‘인권 외교’, 인권을 문제 삼은 미국의 중국 정책, 90년대 후반 구유고 연방과 르완다 내전의 처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인권이 어떻게 정치에 놀아났는지 설명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미국의 꿈, 세계의 악몽’이다. 지은이는 세계의 경찰로서 인권 수호에 앞장선다는 미국의 자부심이 세계의 악몽이 될 가능성을 지적함으로써 깨어있는 눈으로 인권문제를 살필 것을 강조하고 있다.


2003년 5월 24일 토요일
오미환 / 한국일보
[책마을] 정치의 꽃놀이패가 된 인권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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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강자의 면죄부인가
출처: 대한매일
인권, 강자의 면죄부인가

흔히 인권은 인간의 문명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애초부터 천부인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권은 개인의 자유에 눈뜨기 시작한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 인권은 ‘세계인권선언’이 제창된 1945년 유엔 창립회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계역사 속에 첫발을 내디뎠다. 미국은 ‘세계인권선언’을 둘러싸고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넣기 위해 서슴없이 흥정을 하고 모략을 꾸몄다. ‘세계인권의 심장’인 유엔 인권위원회는 출발부터 미국의 독무대였던 셈이다.
인권위원회를 이끈 ‘인권의 대모’ 엘리너 루스벨트도 미국 국무부의 외교노선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었던 철두철미한 냉전주의자였다. 전후 세계정의를 바로 세운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아온 뉘른베르크와 도쿄 전범재판은 홀로코스트와 침략전쟁의 위법을 꾸짖었지만, 드레스덴과 히로시마의 살육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인권,그 위선의 역사’(커스틴 셀라스 지음,오승훈 옮김,은행나무 펴냄)는 이처럼 유엔의 창설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벌어진 두 전범재판에서 시작해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 그리고 테러와 복수로 점철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인권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런던에서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인권을 이용해 약자들을 제압하고 정치적 이득을 챙긴 강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권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할 때 얼마나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경고한다. 인권이 정치에 놀아난 사례는 한 둘이 아니다. 91년 걸프전을 앞두고 조지 부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병원 신생아실에 난입해 인큐베이터를 약탈해가는 바람에 수십 명의 아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떠벌렸다.

미국의 무력개입을 합리화하기 위한 교묘한 선전전이었다. 역설적인 것은 이 헛소문을 퍼뜨린 주인공이 바로 평화와 양심의 상징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권정책을 단순히 ‘정부사기극’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인권은 현대 정치담론을 지배하고 있는 가장 위대한 공용어(lingua franca)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인권만큼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더 강력한 대안이 나타나지 않는 한,인권은 당분간 서방의 의제를 주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라크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주권국가를 침략하고 무고한 시민을 살상한 미국의 위선조차 인권의 추인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은 유엔헌장이 아니라 인권을 방패로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인권은 헤게모니에 대한 야욕에 불타는 지도자의 광기를 치장하는 황금 면류관이 아니다. ‘강자를 위한 윤리’가 돼서도 안된다. 정치로 하여금 인권을 말하게 하지 말고, 인권으로 하여금 인권을 말하게 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1만 4000원.



2003년 5월 28일 수요일
김종면 / 대한매일
인권전도사들의 두얼굴 ...
출처: 동아일보
인권전도사들의 두얼굴 ...

우리는 유엔과 유엔인권위원회 그리고 인권선언의 탄생으로 인류의 ‘삶의 질’이 개선됐다며 자위한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의 전범재판은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들에게 보복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고 이를 통해 전쟁 없는 전후 50년의 세계질서가 수립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인권운동가들은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를 인권운동의 대모로 추앙하며 그를 본받아 인류애의 증진에 헌신한다. 또한 앰네스티가 각국의 인권 신장에 공헌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터는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이념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임을 설득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자위와 카타르시스, 평화의 수사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나아가 인권운동가와 단체들 그리고 인권을 표방한 정책 등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저자의 추적에 따르면 인권위원회와 인권선언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며, 두 차례의 전범재판은 ‘승자의 정의’를 강요한 희대의 정치쇼다. 루스벨트 여사는 인권보다는 미국의 국익 신장에 기여한 냉전의 투사였고 앰네스티는 자신들의 추악한 식민사를 은폐하고 일방적 가치를 강요하는 영국인들의 집단이다.

또 카터는 정권 획득의 수단과 침체된 미국의 돌파구를 ‘인권’에서 찾고 그런 미명하에 제3세계 국가들의 주권을 짓밟은 미국인이다.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저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어찌 ‘해방전쟁’이냐고 반문한다. 이 책은 피 묻은 손이나 간사한 혀로 더럽힐 수 없을 만큼 숭고한 보편적 이념이 현실의 정치와 야합해 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 국제정치사를 비판적 관점에서 서술했다. 사실 저자는 ‘인권’ 이념의 탄생 과정에서의 동기의 순수성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이 책을 읽고 너무나 당연한 정치적 논리와 현실을 한 권의 책으로까지 써낸 데 대해 의아해 하면서도 경의는 표할 것이고, 아직도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시민운동가라면 그런 순수성을 폄하하는 저자의 냉소적 태도에 경악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저자의 의도를 의심할 것이다. 정치의 무대 뒤를 관찰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나 매일매일 신문의 정치면을 통해서 한국정치를 들여다볼 만큼 정치에 관심도 있고 또 스스로 필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개혁, 그 위선의 역사’라는 제명의 한국현대정치사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독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리는 독후감의 결론은 “그래서 결국 뭘 어떻게 하자는 거냐?”하는 비아냥거림이 섞인 의문문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책은 버려진 진실과 숨겨진 사실을 시시콜콜하게 적시하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처럼 독자가 감탄하게 하거나 적어도 수긍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인권과 국가주권이 충돌하고 그럴듯한 구호와 정치적인 음모가 뒤엉킨 국제사회의 교통정리 방법에는 침묵한다. 인용된 유엔에 대한 평가 즉 “많은 공을 들여 만든 휴지통”의 운명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철학적 고민을 가미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역자후기가 이 한계를 약간은 보완하고 있고 친절한 역자주도 독자층의 범위를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2003년 5월 31일 토요일
이웅현(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국제정치) / 동아일보
[서재에서] 강자의 편에 서 있는 인권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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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1205174458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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